전현희 후임 장관급 국민권익위원장에 내정돼

서울지검 3차장 때 "이명박 무혐의" 수사 지휘

MB정부서 중수부장까지…직속 부하가 윤석열

지난 대선 땐 '고발 사주' 방어 등 윤 캠프 공신

독립성 생명인 권익위, '정권 2중대' 전락 우려

인사청문회 안 거쳐…부위원장 3명도 친윤 일색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지난 2007년 12월 5일 서울 중앙지검에서 김홍일 3차장검사가 BBK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BBK의 실소유주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2007.12.5. 연합뉴스
지난 2007년 12월 5일 서울 중앙지검에서 김홍일 3차장검사가 BBK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BBK의 실소유주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2007.12.5. 연합뉴스

장관급 국민권익위원장 자리는 역시나 '친윤 특수통 검사' 출신이 차지할 전망이다.

정부·여당이 가하는 온갖 유무형의 압박에 우산 역할을 했던 전현희 전 위원장도 없는 상황에서, 이제 국민권익위가 감사원이나 방송통신위원회처럼 윤석열 정권의 '2중대'로 전락하는 일은 시간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의 부패 방지 정책을 총괄하며 정부 각 기관과 공공기관에 개입해 각종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국민권익위 차기 수장에 김홍일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가 사실상 확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홍일 변호사는 2007년 12월 5일 서울중앙지검 3차장 시절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BBK 주가조작' 수사를 지휘하고 '이명박 무혐의, 김경준 단독범행' 결론을 내린 인물이다(당시 수사팀 라인업은 김홍일 3차장-최재경 특수1부장-김기동 특수1부부장). 김 변호사는 대선을 불과 2주 앞둔 시점에 직접 수사 결과 브리핑에 나서 "이명박 후보가 김경준과 주가조작에 공모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검찰이 할 수 있는 모든 조사를 다 해도 다스(DAS)가 이명박 후보의 소유라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 이 부분도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했다"고 자신 있게 발표했다.

 

다스 자금을 횡령하고 삼성 등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2018년 4월 구속기소됐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9년 1월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속행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19.1.23. 연합뉴스
다스 자금을 횡령하고 삼성 등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2018년 4월 구속기소됐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9년 1월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속행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19.1.23. 연합뉴스

모두가 아는 대로 이 엉터리 수사 결과는 나중에 완전히 뒤집혔다. 이명박이 구속되기는커녕 면죄부를 받고 무사히 대통령이 되는 데 김 변호사가 최대 공로자였던 셈이다. 이후 김 변호사는 이명박 정부에서 대검 마약조직범죄부(옛 강력부) 부장을 거쳐 특수 검사의 최고봉인 대검 중수부장에 올랐다. 그가 중수부장으로 부산저축은행 비리 수사를 총괄했을 때 직속 부하인 중수2과장이 바로 윤석열 검사였다. 김 변호사는 이명박 정부 내내 승승장구하다 2011년 8월 고검장으로 승진해 부산고검장을 지낸 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옷을 벗었다.

그는 대형 로펌 중 하나인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로 활동하다 지난 대선 때 윤석열 캠프에 합류해 윤 대통령 당선의 공신이 됐다. '정치공작 진상규명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네거티브 대응에 주력한 것인데, 일례로 '고발 사주' 의혹이 터졌을 때 제보자인 조성은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선대위 부위원장이 박지원 국정원장을 사적으로 만났던 사실을 부풀려 '박지원 게이트'로 역공을 했던 게 이 특위의 작품이다.

김 변호사가 지휘한 정치공작 진상규명 특위는 2021년 9월 12일 보도자료를 내고 "앞으로 '박지원 게이트' 즉,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과 '수사기관 사유화 의혹'에 대한 진실 규명에 집중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윤석열 후보에게 치명적일 수 있었던 '고발 사주' 사건을 거꾸로 '박지원 게이트'로 둔갑시켜 국면 전환을 시도한 데서 정치적 술수에도 능한 솜씨를 엿볼 수 있다.

 

2021년 9월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이마빌딩 윤석열 예비후보 국민캠프에서 열린 '정치공작 진상규명 특별위원회' 1차 회의에 김홍일 위원장이 입장하고 있다. 2021.9.12. 연합뉴스
2021년 9월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이마빌딩 윤석열 예비후보 국민캠프에서 열린 '정치공작 진상규명 특별위원회' 1차 회의에 김홍일 위원장이 입장하고 있다. 2021.9.12. 연합뉴스

윤석열 정권이 출범 초부터 전현희 위원장을 어떻게든 몰아내려고 절치부심하며 융단폭격을 가했던 것은 김홍일 변호사를 빨리 그 자리에 앉히려는 포석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지난해 7월 27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은 전현희 위원장에게 뜬금없이 "윤석열 대통령을 존경하느냐?"고 물은 뒤 "윤석열 대통령과 국정철학을 공유하고 국정과제 이해도가 높은 분이 지금 대기하고 있는데, 본인이 그분보다 더 윤석열 대통령을 존경하고 철학을 같이하면서 과제를 성실히 이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며 자진 사퇴를 종용했다.

정부‧여당이 그렇게 소원했던 대로 김홍일 변호사가 권익위원장에 부임한다면 각 부처와 기관 요소요소에 전‧현직 검사들을 심어왔던 검찰독재정권엔 가히 화룡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특수통 강성 친윤 인사가 권익위를 장악해 향후 어떤 활약을 벌일지는 불문가지다. 독립성과 중립성, 공정성이 생명인 권익위마저 정치 논리에 휘둘리면서 정적들을 겨냥한 '제3의 사정기관'이 될 것이라는 우려는 머지않아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미 권익위 부위원장 3명은 모조리 친윤 인사들로 채워진 상태다. 과거 국민고충처리위, 국가청렴위, 국무총리행정심판위 3개 기관이 합쳐진 권익위는 3명의 차관급 부위원장을 두고 있는데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됐던 이들이 전부 윤석열 정권 들어 자의반 타의반 차례로 물러났다. 그 자리에는 강경보수 성향으로 유명했던 김태규 전 부산지법 부장판사,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선거대책본부에서 일하다 공약집에 '오또케'라는 표현을 써 물의를 빚자 해촉됐던 검사 출신 정승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지난 대선 때 국민의힘 캠프에서 일했던 판사 출신 박종민 변호사가 윤 대통령에 의해 차례로 임명됐다.

 

김태규 국민권익위원회 고충처리부위원장이 25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장애인 국가유공자 활동 지원 강화방안 제도개선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2023.4.25. 연합뉴스
김태규 국민권익위원회 고충처리부위원장이 25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장애인 국가유공자 활동 지원 강화방안 제도개선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2023.4.25. 연합뉴스

특히 김태규 부위원장은 현직 부장판사 시절 '사법농단 판사 탄핵'을 결의한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오히려 "탄핵하자"고 요구하고, 대법원의 일제 강제동원 배상 판결을 맹렬히 비판하는가 하면, 대북 전단 살포 제한을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등 강성 보수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왔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김 부위원장이 임명됐을 때 그가 일간지에 썼던 '민주당 솔직해져라' '민주당의 불순한 검수완박' 제목의 칼럼 등을 들어 "정치적 편향성이 아주 강한 분"이라며 "정치 판사였고, 편향 판사였고, 민주당 공격 칼럼만 썼던 인물에 대한 보은 인사"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이런 부위원장 3명에 김홍일 변호사가 위원장으로 등극해 국민권익위 정무직 4인방이 친윤 일색으로 완성되면 야권엔 설상가상이자 또 하나의 악몽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방통위원장과 달리 권익위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도 거치지 않는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제청해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하면 그만이다. 기성 언론 대부분이 어용 성향이라 김홍일 변호사와 관련한 부정적 문제를 거의 안 다룰 게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청문회 기회까지 없으니 여론전을 펼치기도 어려워 야권으로선 이래저래 '전현희 이후'가 걱정스러운 국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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