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과 언론 '문 정부 국기문란' 기정사실화
해당 통계들 어떻게 조작됐다는 건지 실체 불명확
일방적 혐의 흘린 뒤 여론몰이 수법, 검찰과 판박이
잇단 표적 감사 앞장서며 '정권의 도구'로 전락 비판
감사원장 "감사원은 대통령 국정운영 지원하는 기관"
감사원이 문재인 정부 초대 통계청장이던 황수경 전 청장에 이어 소득주도성장의 설계자로 불린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조사할 것으로 알려지자 정부·여당과 친윤 언론들이 '국기문란 행위'로 단정 짓고 공세 수위를 갈수록 높이고 있다.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소득, 고용, 집값 등 주요 통계가 고의로 왜곡됐고 여기에 청와대가 개입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감사원을 비롯한 관계 기관에서는 해당 통계들이 어떻게 조작됐다는 건지 그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확인되지 않은 혐의를 일방적으로 흘린 뒤 범죄로 기정 사실화해 여론몰이를 하는 수법이 검찰과 판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때는 검사의 감사원 파견이 중단됐었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감사원에는 부장검사도 아닌 특수통 차장검사가 이례적으로 파견을 나와 있는 상태다.
감사원은 이미 문재인 정부 시절 탈원전 정책,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등에 관한 표적 감사에 무리하게 나서며 '정권의 도구'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받은 지 오래다. 헌법과 감사원법이 직무에 관한 독립된 지위를 명시하고 있는데도 특정 정권과 유착해 정치적 '하명 감사'에 노골적으로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최재해 감사원장은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 나와 "감사원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지원하는 기관이라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으며, 유병호 사무총장은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에게 "오늘 또 제대로 해명자료가 나갈 겁니다. 무식한 소리 말라는 취지입니다"라는 내용이 담긴 문자 메시지를 전송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무엇보다 이번 통계 왜곡 의혹은 행위의 구체적인 실체가 제시되지 않아 문재인 정부 측 당사자들이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서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통계의 기준과 계산 방법에 관한 평가는 충분히 논쟁적일 수 있는 사안이지만 수구보수 언론과 정부·여당은 벌써 결론을 내려놓고 '범죄 행위'로 낙인찍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 같은 '통계 조작' 프레임에 대해 문재인 청와대 출신 인사들은 "치졸한 언론 플레이"라고 규정하며 '여론 조작'을 멈추라고 반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19일 국회 당대표회의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치 감사, 표적 감사로 윤석열 정권의 앞잡이를 자처하고 있는 감사원이 이번에는 문재인 정부가 주택 가격 관련 통계를 왜곡한 것처럼 언론 플레이를 하는 치졸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청와대 대변인 출신인 고 최고위원은 "감사원의 통계청 감사는 지난 10월까지 감사를 완료해야 했음에도 수 차례 연장을 통해서 두 달을 더 끌어오고 있다. 문제가 있어서 조사하는 게 아니라, 문제가 나올 때까지 조사하는 것 같다"며 "얼마나 많은 국토부 직원들을 불러다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윤석열 정부는 감사원을 통한 여론 조작, 정보 조작 행위를 멈추라"고 촉구했다.
이어 "통계의 정확성을 제고하고 국민에게 투명한 그 결과를 알리기 위해서 통계체계를 개선·발전시키는 것은 국가기관이 마땅히 해야 할 책무"리며 "이런 개선 노력을 마치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뤄진 것처럼 언론 플레이를 통해 여론을 조작해 전 정권을 모욕주는 행위는 비겁하고 비열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또 "감사원은 여러 차례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몰아가기식 감사, 조사 내용 유출 등 범법 행위도 서슴지 않고 있다"면서 "특히 업무상 비밀 유출 행위는 명백한 범법 행위이므로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고 최고위원은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서도 "통계 조작이 있었는가, 저희는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드리고 싶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감사원의 감사 내용들은 바깥으로 이렇게 발설될 수가 없다. 그게 감사원법에 규정돼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 차례 뉴스들을 통해서 '단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보도가 되고 있다"고 개탄했다.
같은 당 윤건영 의원은 18일 '만약 문재인 정부가 정권 유지를 위해 부동산 관련 통계를 인위적으로 조작했다면 그것이 바로 국정농단'이라고 주장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에 대해 "원 장관의 수준이 참 형편없다. 현직 장관이 정치 보복의 돌격대를 자처한 듯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문재인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 의원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현직 장관이 최소한의 구체적 팩트도 없이, '국정농단'이라니, 누구에게 잘 보이려 하는 말이냐"며 "윤석열 정부 6개월 동안 숱하게 봐 온 너무나 익숙한 패턴"이라고 다음과 같이 짚었다.
"첫째, 관련 부처가 갑자기 영문도 모를 자기반성을 합니다. 그리고는 감사원이 등장합니다. '조사'를 명분으로 그 부처와 관련자들을 들쑤시고 괴롭힙니다. 해괴한 조사 결과를 내놓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은 검찰 차례입니다. 지난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이 그랬습니다. 감사원이 들쑤시는 많은 사건들도 그럴 것입니다. 서해 피격 공무원, 흉악범죄자 북송 사건으로 만족할만한 '이득'을 얻지 못했습니까. 대한민국 안보를 난도질하고도 모라자, 이제는 통계입니까. 속이 뻔히 보이는 수작입니다.
둘째, '은폐'니 '삭제'니 '조작'이니 하는 거친 단어만 존재할 뿐 내용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저 자극적 단어에 끼워맞출 뿐입니다. 원희룡 장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직 대통령의 '국정농단'까지 나갈 거면 내용부터 당당하게 공개하십시오. 의혹이라는 단어만 적힌 깃발을 휘두를 것이 아니라, 무엇이 문제인지를 밝히십시오. 현직 장관이 '카더라식'의 가짜 뉴스를 생산하는데 앞장서서야 되겠습니까. 부동산 통계뿐 아니라 정부의 통계는 뻔한 방법입니다. 전문가들을 포함해 보는 눈이 많은 것이 통계입니다. 대체 정부가 무슨 수로 그 수많은 눈을 속이고 '조작'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셋째, '정치 보복'에 골몰하면서, 정작 자기 할 일에서는 책임지는 장관이 없습니다. 직원 개인이 판문점에서 찍은 영상을 굳이 찾아 공개하는 통일부 장관이나, 3고 경제 위기로 심각한 경제는 내팽치고 '통계 조작' 운운하는 국토부 장관이나, 재난 안전의 책임 부처이면서도 수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은 10·29 참사에 대한 책임은 나 몰라라 하는 행안부 장관, 국민이 아닌 눈앞의 야당 국회의원과 싸우는 일밖에 관심이 없는 법무부 장관. 이들 모두는 각 부처의 행정을 꼼꼼히 챙겨 민생에 보탬이 되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기 정치 이득 생각뿐입니다. 국민 지갑은 비어가는데, 자기 지갑 채우는 일만 최대 목적인 이들밖에 없습니다."
반면 국민의힘은 이날 통계 왜곡 배후에 문재인 청와대 주요 인사들이 깊숙이 연루돼 있을 개연성이 크다며 '윗선'에 대한 감사원 조사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19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통계 조작은 중대 범죄 행위이자 국기 문란 행위"라며 "통계청장 개인의 출세욕으로 치부될 것이 아니라 범정부의 묵인이나 조작이 있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든다"고 했다.
주 원내대표는 "소득분배와 비정규직 규모, 부동산 가격 등 분야를 조작하면서 자의적인 표본 교체, 임의적 숫자 입력 같은 짓도 저질렀다고 한다"며 "조작의 대가로 인사 특혜까지 있었다는 내부 진술도 나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양금희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국가 통계 조작은 국정의 눈을 멀게 한 국정 파괴 행위"라며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벌인 사기 행각"이라고 단정했다.
김행 비대위원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통계 왜곡에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개입했을 것이라고 보냐'는 사회자 질문에 "지시 없이 할 수가 없다"면서 "(감사원 조사 대상이) 적어도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까진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문재인 전) 대통령을 속였거나, 또는 대통령이 지시했거나 둘 중의 하나"라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