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죽이기' 점입가경…총선 앞두고 장악 의도

여당 "선관위원 총사퇴" 항의 방문 등 전방위 압박

권익위 조사 착수했는데도 감사원 또 나서 '옥상옥'

헌법‧국가공무원법 위배…독립‧중립성 상실 '돌격대'

전현희 10개월 먼지털이 '맹탕'에도 끝까지 치졸해

선관위, 채용 의혹 '부분 감사' 수용했지만 콧방귀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9일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회의를 마친 후 청사를 나서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 선관위는 전·현직 간부들의 '자녀 특혜채용 의혹'에 한해 감사원 감사를 받기로 결정했다. 2023.6.9. 연합뉴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9일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회의를 마친 후 청사를 나서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 선관위는 전·현직 간부들의 '자녀 특혜채용 의혹'에 한해 감사원 감사를 받기로 결정했다. 2023.6.9. 연합뉴스

감사원과 여당이 채용 비리 의혹을 빌미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완전히 초토화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선관위가 결국 전방위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기존 입장을 바꿔 채용 비리에 한해 감사를 받기로 결정했지만 그 정도로는 어림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선관위 죽이기'에 더욱 집착하는 모양새다. 전면적인 직무감찰 수용은 물론 노태악 선관위원장을 비롯한 선관위원 전원 사퇴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은 총선용 길들이기 또는 물갈이를 통한 철저한 장악 의도로 보인다. 여당이 상습적인 정치 공세를 벌이는 행태는 그렇다고 쳐도 윤석열 정권 들어 독립성과 중립성이 처참하게 붕괴된 '2중대' 감사원이 선관위를 감사할 자격이 있느냐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여당 "선관위원 총사퇴…국정조사 전에 전면 감사받아야"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9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선관위는 국정조사 이전에 국민적 공분을 감안해 감사원 감사를 전면적으로 수용할 것을 국민의 이름으로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전날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와 관련한 국회 청문회와 선관위 국정조사를 실시하기로 합의했지만 그 시기에 대해서는 전혀 합의된 바가 없었다. 그럼에도 '선(先) 감사원 감사, 후(後) 국정조사'를 못박은 것이다.

이렇게 여당이 일방적으로 일정을 공표함으로써 국정조사 실시 자체가 불투명해졌다. 민주당은 그간 선관위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독립성 및 중립성을 훼손하는 전례를 남길 수 있다며 강력 반대해왔다. 국회 국정조사와 국민권익위 조사, 경찰 수사로 충분하다는 얘기다.

국민의힘은 지난 5일 의원총회를 통해 '선관위원 총사퇴, 감사원 감사 수용'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한 바 있다. 이어 7일에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경기도 과천에 위치한 중앙선관위로 직접 몰려가 김필곤 상임위원 등을 상대로 면전에서 항의했다. '프로 고발러'로 유명한 국민의힘 이종배 서울시의원은 지난 4일 "선관위의 감사 거부는 명백한 불법행위"라며 선관위원장과 위원 전원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기도 했다.

앞서 감사원은 지난달 31일 보도자료를 내고 "선관위 전‧현직 직원의 자녀, 친인척 등 채용 실태를 전수조사하고 선관위의 인력관리 실태도 정밀 점검할 것"이라며 "비위 행위자 등 책임자는 엄중 조치하겠다"고 감사 방침을 공식화했다. 바로 전날인 30일에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기자간담회를 통해 "선관위 자녀 채용과 관련해 권익위에 신고가 접수됐고 채용비리통합신고센터에서 조사에 착수한 상황"이라고 밝혔음에도 감사 돌입을 밀어붙인 것이다.

1963년 설립 이래 단 한 번도 직무감찰 안 받아

그러나 선관위에 대한 감사원 감사는 여러모로 부적절하다. 우선 헌법 제97조(국가의 세입·세출의 결산, 국가 및 법률이 정한 단체의 회계검사와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감찰을 하기 위하여 대통령 소속하에 감사원을 둔다)에 규정된 감사원의 감사 범위에 선관위는 해당이 안 된다. 선관위는 행정기관이 아닌 독립된 헌법기관이다.

또 국가공무원법 17조(국회·법원·헌법재판소 및 선거관리위원회 소속 공무원의 인사 사무에 대한 감사는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의 명을 받아 국회사무총장, 법원행정처장, 헌법재판소사무처장 및 중앙선거관리위원회사무총장이 각각 실시한다)는 '인사 사무에 대한 감사를 선관위 사무총장이 실시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헌법과 감사원법상 감사는 회계감사와 직무감찰로 구분되는데, 선관위는 그동안 국가기관 간 견제와 균형 차원에서 직무감찰을 받지 않았던 것이 헌법적 관행이다. 그래서 선관위도 지난 2일 "선관위원 전원의 일치된 의견"이라며 감사원의 직무감찰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감사원은 "그간 선거 관리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선관위 감사를 자제해온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궁색한 논리다. 선관위는 1963년 설립 후 단 한 번도 감사원 직무감찰을 받지 않았다.

이와 함께 선관위는 국회의 국정조사, 국민권익위 조사, 수사기관의 수사에는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채용 비리 의혹에 대한 단독 조사도 진행해 배우자 및 4촌 이내 친족까지 범위를 확대한 가족 채용 전수조사를 이달 중 마무리할 계획이다. 선관위는 앞서 5급 이상 공무원의 자녀 채용 전수조사를 통해 10명의 사례를 확인하고 박찬진 전 사무총장 등 간부 4명에 대해서는 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한 바 있다.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5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하기 위해 국무회의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날 국무회의는 정부세종청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렸다. 2023.6.5. 연합뉴스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5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하기 위해 국무회의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날 국무회의는 정부세종청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렸다. 2023.6.5. 연합뉴스

권익위 이미 조사 착수…선관위 봐주기? 가능성 없어

'옥상옥'의 문제도 있다. 선관위 협조 속에 이미 권익위는 부패방지국과 심사보호국 인원까지 수십 명을 투입해 대규모 '채용비리 전담조사단'을 꾸렸으며, 6월 1일부터 한 달 내내 집중 조사를 진행한 뒤 부족한 부분은 추가 조사하기로 했다. 권익위가 '봐주기' 조사를 할 여지도 없다. 민주당 출신 전현희 위원장은 오는 27일이면 임기가 끝나는 데다, 3명의 차관급 부위원장은 전부 윤석열 정부 들어 임명된 친윤 보수 성향 인사들이고 후임 위원장 역시 마찬가지일 게 불 보듯 뻔하다. 권익위가 오히려 여권과 코드를 맞출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에서 감사원 감사까지 따로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독립성‧중립성 처참히 붕괴…정권 '돌격대' 전락

무엇보다 윤석열 정부의 감사원은 총선을 불과 10개월 앞둔 시점에 선관위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흔들어댈 우려가 너무 크다. 감사원이 헌법상 대통령 소속 기관으로 행정부에 포함되기도 하지만, 특히 이번 감사원은 정권과 유착해 '하명 감사' '정치 감사'에 노골적으로 매달리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확인되지 않은 혐의를 일방적으로 흘린 뒤 범죄로 기정 사실화해 여론몰이를 하는 수법이 검찰과 판박이라는 비판도 무수히 제기돼 왔다. 탈원전 정책,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통계 조작 의혹 등 전임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전방위적 표적 감사와 방송통신위, KBS 등에 대한 먼지털이식 감사를 통해 '정권의 사냥개'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받은 지 오래다.

최재해 감사원장은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 나와 "감사원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지원하는 기관"이라고 대놓고 그 종속적 인식을 드러낸 바 있으며, 유병호 사무총장은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에게 "오늘 또 제대로 해명자료가 나갈 겁니다. 무식한 소리 말라는 취지입니다"라는 내용이 담긴 문자 메시지를 전송해 파문을 일으킨 사실도 감사원 수뇌부와 대통령실과의 밀착 상태를 능히 짐작하게 해준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감사원의 최종 감사 결과 발표를 앞둔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기 앞서 "권익위 직원 징계 철회하라' 등이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2023.6.9. 연합뉴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감사원의 최종 감사 결과 발표를 앞둔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기 앞서 "권익위 직원 징계 철회하라' 등이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2023.6.9. 연합뉴스

전현희 '먼지털이' 대표적…맹탕 결과에도 끝까지 치졸

특히 전현희 권익위원장 축출을 노린 일련의 집요한 시도는 감사원의 정략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감사원은 지난해 8월부터 전 위원장의 근태와 출장비, 유권해석 업무 등을 문제 삼아 고강도 감사를 진행했다. 또 지난 2020년 9월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특혜 의혹에 대한 권익위 유권해석을 발표하는 과정에 전 위원장이 부적절하게 개입했다고 보고 검찰에 직권남용 혐의로 수사를 요청했다. 유병호 사무총장이 "묵과할 수 없는 내부 제보가 있다"며 본감사에 더해 두 차례 실지감사 기간을 연장하면서까지 전 위원장을 탈탈 털어낸 행태는 악랄한 린치에 가까웠다.

결국 조사 10개월 만인 지난 2일 감사원 최고 의결기구인 감사위원회는 최재해 감사원장을 제외한 감사위원 6명 만장일치로 '불문(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전 위원장과 권익위에 책임을 물을 만한 심각한 비위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럼에도 감사원은 9일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13가지 비위 의혹 가운데 7건은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했고, 6건에 대해서는 확인된 제보 내용이라며 보고서에 그대로 기재했다.

감사원이 상습지각 등 6건의 '처분을 요구하지 않은' 내용을 기어이 공개한 데서 치졸한 망신주기 의도가 고스란히 나타난다. 물론 전 위원장의 소명 자료들은 보고서에 일절 포함하지 않았다. 전 위원장이 지난 2021년 직원 대상 갑질로 징계를 받게 된 권익위 국장에 대해 권익위 직원들이 작성한 탄원서에 서명해준 일을 두고 "부적절한 처신"이라며 단 1건의 '기관 주의' 처분을 내렸지만 그나마 위법성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전 위원장은 "끝까지 불법적인 감사 결과 공개로 권익위원장을 파렴치범으로 몰아가려는 의도"라며 "허위공문서 작성, 명예훼손, 무고, 직권남용 등 혐의로 유병호 사무총장과 사무처 관련자들을 법적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선관위, 채용 의혹 '부분 감사' 수용했지만 파상공세 계속돼

이 같은 무소불위의 감사원이 검찰 수사를 의뢰하기 위한 수사요청서 작성에까지 착수했다고 겁박하자 선관위도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이미 선관위 자체 의뢰로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가 채용 비리 사건 수사에 돌입한 상태다.

선관위는 9일 오후 과천 청사에서 위원회의를 마친 뒤 전·현직 간부들의 자녀 특혜 채용 의혹에 한해 감사원 감사를 받기로 결정했다. 선관위원 만장일치로 감사를 거부한 지 일주일 만에 입장을 선회한 것인데, 위원들의 찬반 토론이 격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노태악 선관위원장은 여권의 사퇴 요구에 대해 기자들에게 "지금 당장 그만두는 것이 능사인가, 바로 위원장에서 사퇴하는 것인 책임 있는 자세인가 고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선관위가 어렵게 '부분 감사'를 수용하기로 결단을 내렸지만 여당과 감사원의 파상 공세는 그칠 기미가 없다. 국민의힘은 선관위 결정 직후 국회 로텐더홀에 집결해 규탄대회를 열고 또 다시 선관위원 전원 사퇴 및 '전면 감사' 즉각 수용을 몰아붙였다. 이를 거부하면 감사원법 위반죄로 고발하겠다는 엄포도 잊지 않았다. 감사원도 "감사 범위는 감사원이 결정할 사안"이라며 부분 수용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완강한 태도를 고수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9일 국회에서 열린 선관위 규탄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선관위는 이날 '자녀 특혜채용 의혹'에 한해 감사원 감사를 받기로 결정했다. 2023.6.9. 연합뉴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9일 국회에서 열린 선관위 규탄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선관위는 이날 '자녀 특혜채용 의혹'에 한해 감사원 감사를 받기로 결정했다. 2023.6.9. 연합뉴스

민주 "총선 야욕 노골적…감사원을 국정조사하겠다"

이에 민주당 김한규 원내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선관위를 압박해 총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며 "선관위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은 국회에서 국정조사를 실시하고 수사기관이 수사를 하면 그만이다. 문제가 있으면 철저히 찾아내 처벌하고 바로잡으면 되는데 이걸 기회로 감사원이 헌법상 독립기관인 선관위를 감사하려는 것은 명백한 권한 남용"이라고 강조했다.

박광온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감사원이 법에 맞지 않는 선관위 감사를 계속 주장하면 민주당은 감사원에 대한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며 "지난 1년간 독립성과 중립성을 버리고 정치 감사에 나선 감사원이 감사 대상이 돼야 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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