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이 천 코면 걸릴 날이 있다.” - 우리나라 옛말(俗談)
#1. 그물코 하나; 깜냥은 웋끗의 숨줄
옛말에 “그물이 천 코면 걸릴 날이 있다.”라고 했다. 또 “하나의 벼리를 들면 만 개의 그물코가 펼쳐진다.”라는 강거목장(綱擧目張)도 있다. 한 줄의 벼리(紀)에서 이어진 여러 가닥의 벼릿줄(綱)은 그 사이사이에 수천 수만 개의 그물코(目)를 갖는다. 그물코는 코(鼻)가 아니라 눈(目)이다. 그물코 눈이 작으면 작은 물고기를 잡고 크면 큰 물고기를 잡는다. 깨달음은 크고작은 물고기에 있지 않다. 그저 물고기의 ‘참꼴’(眞身)을 알아차리면 된다. 다석 류영모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사람이 『성경』만 먹고사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유교의 경전도 먹고 불교의 경(經)들도 먹습니다. 살림이 구차하니 정식으로 먹지 못하고, 구걸하다시피 여기서도 얻어먹고 저기서도 빌어먹어 왔습니다. 그래서 그리스의 것이나 인도의 것이나 다 먹고 다니는데, 이 사람의 깜냥[消化力]으로 소화시켜 왔습니다. 그렇게 했다고 하여 내 건강이 별로 상한 일은 없습니다. 『성경』을 보나 유교 경전을 보나 불교의 경을 보나 그리스의 지(智)를 보나 종국은 이 ‘몸성히’, ‘맘뇌어’, ‘뜻태우’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 『다석강의』, 다석학회 엮음, 현암사, 2006, 606쪽.
늘 닦아가는 까닭은 눈뜨기 위해서다. 한 눈 뜨고 두 눈 뜨고 세 눈 떠야 다 들어찬다. 온갖 잘몬(萬物)으로 들고나고 여닫고 가온다. 온갖 때 사이사이로 들고나고 여닫고 가온다. 온갖 빈탕으로 들고나고 여닫고 가온다. 세 눈이 뜨이면 저절로 그리 된다. 떠진 눈이 천 개의 그물코다. 그런 그물코를 벼릿줄로 잘 꿰어야 한다. 벼리에서 벼릿줄로 펼쳐지듯이, 긴 날실을 씨줄로 휘어감아 벼릿줄로 올리고 벼리로 솟나야 한다. 그래야 실낱의 눈이 온통 한 눈이다. 밝고 맑은 빛눈이다.
실낱의 날실을 감아돌리지 못하면 영영 깜깜하다. 날실에 씨줄이 닿아 돌아갈 때 벼락 빛이 터진다. 그물코 빛눈이다. 누런 황금빛 빛살을 타고 ‘흰’이 내리오르며 솟구친다. 흰이 성한 사람은 눈이 환캄(恍惚)으로 빛난다. 저절로 ‘뜻태우’ 이루고 벼리를 이룬다. 언제나 성하여 새 그물을 가진 이. 그이는 깜냥이 커서 그 어떤 날실(經)도 올바로 곧이 곧장 알아차린다. 그이에게 ‘깜냥’은 고래 심줄이다. 코 없이 벼리가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벼리 없는 코가 있을까? 아니다. 코가 짱짱할수록 벼리는 벼락 번개다. ‘뜻태우’의 그물코-벼릿줄-벼리는 날벼락이다. 나고 나서 이어이어 나는 날벼락이다. 섬광(閃光)이다!
다석은 1955년 5월 22일에 이런 읊이를 썼다. 한글로 쓴 읊이는 위에, 한문으로 쓴 읊이는 아래에 두었다. 다석은 글씨 사이를 똑같이 했다. 띄어쓰기는 없다.
몬 있 은 ᄀᆞᆫ 끗 으 로
숨 있 은 웋 끗 으 로
命 存 在 上 元
物 存 在 中 心
올(理)이 늘 바로 되어야 잘 깨달아 움솟는다. 몬(物)을 읽을 때는 잘몬(萬物) 보다는 먼지나 티끌로 보는 게 좋다. 목숨 명(命)은 일름 명(命)으로도 알아야 하고, 그 목숨을 타고 오르내리는 일름에 땅하늘이 감아도는 김․숨(氣)이 숨줄이란 것도 깨달아야 한다.
다석이 ‘숨’이라고 한 것은 ‘웋’(하늘․하나․ᄒᆞ실)에 줄줄 닿아 있기 때문이다. 숨을 ‘명줄’이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나서 죽는 데까지의 줄이다. 줄이 끊어지면 죽기 때문이다. ‘끗’은 긋(極)과 끝(終)을 한데로 묶어 쓴 글씨다. 끝끝내 ‘없꼭대기’(無極)까지 솟으란 뜻을 담았다. ‘끗’의 쌍기윽 ‘ㄲ’은 하늘이 땅 그리워 내리는 기윽(ㄱ)이 두텁게 붙었으니, 히읗 두 개가 위아래로 맞붙은 ‘웋’의 뜻과 이어진다.
다만, ‘웋’과 ‘끗’도 움솟아 돌아가는 ‘큰극’(太極)으로 꿍꿍해서 보아야 한다. 그래야 글이 그림으로 보이고 뜻이 새어 나온다. 그림 2을 보자.
#2. 그물코 둘; 찍기는 첫비롯의 함께
그림을 먼저 보자. 세 동그라미는 율려(律呂)의 가락이 울려퍼지는 ‘ᄆᆞᆷ’이다. 그 ‘ᄆᆞᆷ’은 스스로 크게 돌아가는 빈탕(虛空)에 맞짝으로 숨돌리는 감ᄒᆞᆫ 암ㅎ의 빛숨이다. 빈탕의 텅 빈 ‘ᄆᆞᆷ’ 한 가온데를 떠올려 보라. 그림 가온데 ‘가온’(ㄱㄴ) 속에 ‘함께’라는 글씨를 썼다. 이 ‘함께’라는 글씨를 싸고 있는 왼쪽 오른쪽의 닿소리 글꼴이 ㄱㄴ 곧 기윽니은이다. 가온이다. 가고가고 오고오는, 가오는 한 자리다. 그 자리에 ‘함께’를 찍어 숨돌린다.
가온찍기는 가고오는 가온데를 탕 찍는 것이다. 탕 찍어 놓은 글씨가 ‘함께’다. 왜 ‘함께’라고 했을까? 기윽은 하늘(天)로부터 ‘내림’이요, 니은은 땅(地)으로부터 ‘오름’이다. 그 둘은 하나로 내리오르며 ‘함께’ 가온다. 가오는 하나의 자리다. ‘있없’도 한꼴이듯이 ‘가옴’도 함께다. 그러니 그 자리는 늘 숨돌리는 제자리다. 저절로 늘 솟나는 자리요, 나죽지 않는 산알의 자리다. 든적도 없고 난적도 없이 본래 스스로 있는 그대로의 산알이다. 텅 텅 텅 탕 탕 탕 빈탕의 ‘첫비롯’(一始)이 솟구쳐서 둘셋을 잇는다. 길 나니 하나요, 하나 나니 둘이요, 셋 나니 잘몬(萬物)이라 한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가온찍기라야 늘 ‘가온찌기’다. 단박에 찍어야 깨달아진다. 한 번 찍힌 뒤에는 다시 찍을 필요가 없다. 깨달아진 뒤에는 다시 깰 필요가 없다. 잠에서 깼으면 그만이듯이, 한 번 깬 뒤에는 ‘가온찌기’로 살아진다. 가온찌기는 저절로 일어나는 ‘눈뜸’이다. 한 번 가온에 ‘함께’가 찍히면 그 순간부터 가온찌기는 쉬지않고 숨돌린다. 가온찌기는 멈춰지지 않는다. 가온에 ‘함께=찌기’가 내내 숨돌리며 알차차린다. 끝끝내내 숨돌리며 돌아간다. ‘없큰극’(無太極)이 한꼴이라는 이야기는 옳다. 옳은 소리요, 바른 소리다. 가없고 끝없고 밑없는 ‘큰극’(太極)에 ‘숨’(氣) 하나 오롯하다. 움 솟아 돌아가는 숨 하나다. 집집 우주의 숨이다.
그러므로 “숨 있 은 웋 끗 으 로 = 命 存 在 上 元”이다.
그러므로 “하늘 웋 하늘 아레 오롯 나 홀로 솟 = 天上天下唯我獨尊”이다.
언제나, 늘, 항상 ‘나 홀로 솟’이다. 깨달음은 홀로 ‘움솟아’ 일어난다. 그래서 ‘깨달움’이다. 그런 뒤에야 ‘홀로’에 ‘서로서로서로’(相卽相入)가 하나로 이어지고 꿰어진다. 왜 ‘찍기=함께’인지를 알아차려야 한다.
가온이 돌아가고 있으니 땅하늘이 돌고 있는 것이다. 니은에 기윽이(땅에 하늘이), 기윽에 니은이(하늘에 땅이) 한꼴로 돌아가는 가온에 ‘함께’가 솟았다. 그 ‘함께’가 가온찍기의 ‘찍기’다. 하늘아(․)가 있는 자리! ‘ᄀᆞᆫ’의 하늘숨 자리. 하늘아 한 긋(點)은 ‘참나’를 뜻한다. 크게 돌아가는 땅하늘 사이에 ‘참나’의 우주가 움솟아 돌아간다. 그렇게 솟아 돌아가야 가온찌기가 올바르다. 크게 깨달아 한울의 울이 된다. 하늘 하나 ᄒᆞ실로 ‘함께’다. 그러니 ‘함께’는 하늘아(․)에 다름 아니다. 똑같다.
‘함께’는 이런 뜻이 ; 너나랑 함께, 단둘이 함께, 우리 함께, 더불어 함께, 다 함께.
‘함께’는 그러므로 ‘너나’를 나누지 않는다. 너와 나가 아니라, 그냥 ‘너나’다. ‘너나’가 한 몸 하나다. 그 하나는 하늘이요, 늘 하시는 ‘ᄒᆞ실’이다.
#3. 그물코 셋; 뛰어오름(跳躍)과 얽힘
양자도약(量子跳躍, quantum jump)은 양자 에너지가 불연속으로 흡수 또는 방출되는 현상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전자가 원자 내부에서 불연속으로 궤도를 ‘뛰어올라’(跳躍) 건너뛰는 현상이다. 아주 작은 미시 자연계는 에너지가 불연속으로 분포하고 움직이는 걸 뜻한다.
양자얽힘(量子-, quantum entanglement)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측정하기 전까지는 입자의 상태를 알 수 없는 두 부분계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두 부분계는 서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아주, 아주 멀리 말이다. 수십 억 광년이라고 해도 좋다. 그런데 측정을 하는 순간 한 계의 상태가 결정되는데, 이때 ‘즉시’ 그 계와 얽혀 있는 다른 계의 상태도 결정된다. 이걸 ‘양자 얽힘’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정보가 동시에 한 계에서 다른 계로 이동한 것처럼 보인다.
다석의 그림 글꼴은 도약이요, 얽힘이다.
맨첨에 온끝이요, 온끝에 맨첨이다. 끄트머리는 ‘함께’에서 비롯하는 도약이고 얽힘이다.
생각과 사름이 아니라 ‘생각사름’이다. 그것은 동시에 일어나는 일이다.
말씀계심에 올끈이다. 말씀없이 올끈이는 일어나지 않는다. 올끈이로 ‘끗’이다. 이 또한 도약이고 얽힘이다.
숨줄이 줄줄줄 닿아서 ‘이’에 이르는 찰라이 이 모든 것들은 ‘함께’ 일어난다. 기윽니은에 ‘함께’를 넣은 까닭이다. ‘함께’로 가온 돌리는 숨은 하나의 문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에 온끝이든, 끗에 맨첨이든, 아니 생각에 끗이어도 되고, 올끈이에 맨첨이어도 상관없다. 다석이 그려놓은 이 그림 글꼴은 뛰어오르고 건너뛰면서 ‘얽힘’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다석은 『천부경(天符經)』의 ‘일시무시일석삼극무진본’(一始無始一析三極無盡本)을 ‘일.시․무:시.일석․삼:극.― 무진본―. ’으로 풀었다. 한글로 바꾸면 ‘ᄒᆞ실.너나․없:비롯.ᄒᆞᆫ푸리․셋:가장.― 못다ᄒᆞᆯ 밑둥― .’이다. 마침표로 끊어 읽으면 이렇다.
ᄒᆞ실
一
너나ㆍ없 : 비롯
始 ㆍ 無 : 始
ᄒᆞᆫ 푸리ㆍ셋 : 가장
一析 ㆍ 三 : 極
― 못다ᄒᆞᆯ 밑둥 ―
― 無盡本 ―
글월로 바꾸면, 하나는 늘 하시고 계시니 ‘ᄒᆞ실’이요, 너나로 하나는 쪼개진 바 없으니 그 ‘없’에 비롯이 일어남이요, 큰 뿌리 하나는 셋으로 풀리는데 그 하나하나하나가 곧 가장이라는 이야기다. 가장은 맏이요 으뜸이다. 여기, 나누지 않은 ‘너나’는 곧 ‘없’이다. 다석은 노자 늙은이 1월(章)에서 ‘무명천지지시’(無名天地之始)를 “이름 없에, 하늘땅이 비롯고”로 풀었다. ‘없에 비롯한다.’는 이야기는 『천부경』과 똑같다.
가온에 든 ‘함께’는 숨돌리며 비롯하는 자리다. 노자 늙은이는 ‘없에 비롯한다.’라고 했다. 그러니 ‘함께’는 ‘없께’라고 할 수 있다. ‘함께=없께’인 것이다. ‘없께’는 “없이 계시는 님께로”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빈탕의 ‘ᄆᆞᆷ’에 가온찌기로 늘 숨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는 ‘나’를 뜻하기도 한다. ‘ㅣ=나’로 보자. 이때 이응 ‘ㅇ’은 없는 소리다. 소리내지 않는다. ‘ㅣ’는 하늘(ㆍ), 땅(ㅡ), 사람(ㅣ)의 사람이요, 그것은 ‘나’를 뜻한다. 사람으로 ‘나’이니, 나로서는 늘 ‘생각’을 살라야 한다. 나는 생각 사름이다. 늘 생각 불꽃을 피어 올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럼 또 무슨 생각을 살라야 할까? 올끈이다. 올끈이는 올바르고 똑바른 줄(經)이다. 하늘 줄이 ‘ᄆᆞᆷ’으로 이어진 끊임없는 줄이다. 거룩한 얼(聖靈)이 나에게 내려 준 줄이다. 또 하나는 올끈이 줄에 새겨진 말씀이다. 사실 거룩한 얼은 말씀으로도 계신다. 말씀에 계시는 이가 얼줄이잖은가. 그러니 올끈이 말씀 계심으로 이 생각을 사르고 살라서 ‘끗’이라는 없꼭대기(極)에 끝끝내 올바로 서야 한다.
끝끝내 올바로 서야 하는 자리는 어딜까? 바로 맨 처음이다. 맨 처음, 맨첨. 다 이루어진 끝자리다. 예수가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 하신 자리, 바로 거기. 거기가 ‘온끝’이다. 맨첨에 온끝이 맞붙어 하나로 돌아간다. 가온 한꼴로 돌아 ‘함께’의 ‘없’에 이른다. 그 자리는 다섯꾸러미 오온[五蘊: 빛․받․끎․가․알(色․受․想․行․識)이 다 끊어진 자리다. 비로소 마음이 빈 ᄆᆞᆷ으로 맑고 시원하다.
온끝∞맨첨. 생각∞사름. 끝없고 밑 없고 가장자리 없이 크니 무한대 ‘∞’이다. 늘 끄트머리라는 이야기다. 그 무한대가 가온찌기로 돌아간다. 집집 우주가 ᄆᆞᆷ에 돌아간다. 길나니 하나인데, 하늘도 하나, 땅도 하나, 사람도 하나다. 그 셋을 ‘줄곧뚫림’(中)으로 뚫어꿴다. 솟구친다. 셋을 꿰뚫고 솟구쳐야 ‘참나’(眞我)다.
천명지위성 天命之謂性
솔성지위도 率性之謂道
수도지위교 修道之謂敎
하늘 뚫린 줄을 바탈이라 하고
바탈 타고난 대로 살 것을 길이라 하고
디디는 길 사모칠 것을 일러 가르치는 것이라 한다
_ 다석 류영모, 『중용(中庸)』 풀이에서
- 참고문헌 -
『多夕日誌-多夕柳永模日誌』, 홍익재, 1990
류영모 글, 다석학회 엮음, 『다석일지』, 동연, 2024
박영호 지음, 『다석전기(류영모와 그의 시대)』, 교양인, 2012
류영모 말씀, 박영호 엮음, 『씨의 메아리 다석어록: 죽음에 생명을 절망에 희망을』, 홍익재, 1993
다석학회 엮음, 『다석강의』, 현암사, 2006.
관련기사
- [다석의 한글철학 ⑯] 맨첨에, 긋 끝 나 말씀
- [다석의 한글철학 ⑮] 으(ㅡ), 숨 돌리는 땅
- [다석의 한글철학 ⑭] 세상을 짚고 일어설 발
- [다석의 한글철학 ⑬] 피돌기에 숨 돌리는 ‘밝숨’(內丹) 닦기
- [다석의 한글철학 ⑫] 아오(⋅), 하늘이 열리다
- [다석의 한글철학⑪] 히읗(ㅎ), 홀로 솟은 길
- ⑩ 이응(ㅇ), 한 둥긂의 ‘없’이다
- [다석의 한글철학 ⑨] 치읓(ㅊ), 참에 홀로 깨어나!
- [다석의 한글철학 ⑧] 시읏(ㅅ), 뚝 떠 솟구치다
- [다석의 한글철학 ⑦] 비읍(ㅂ), 바닥에 비롯하는 하늘
- [다석의 한글철학 ⑥] 미음(ㅁ), 처음이 비롯하는 ‘맨’이다
- [다석의 한글철학 ⑤] 하나둘셋에 다사리는 한울이다
- [다석의 한글철학 ④] ㄹ, 땅하늘이 너울나울 춤춘다
- [다석의 한글철학 ③] 니은(ㄴ), 땅이 하늘을 받듦이다
- [다석의 한글철학 ②] 꼭지이응(ㆁ)은 참나의 씨알이다
- [다석의 한글철학 ①] 기윽(ㄱ)은 하늘에서 온 얼이다
- '다석 류영모의 한글철학' 연재를 시작하며
- [다석의 한글철학 ⑱] 큰 슬기 졔 건넴 ᄆᆞᆷ줄, 반야심경
- [다석의 한글철학 ⑲] 너나 없 비롯, 하나둘셋
- [다석의 한글철학 ⑳] ᄒᆞᆫᄋᆞᆯ 댛일쪽 실줄, 천부경
- [다석의 한글철학 ㉑] 참에, 하! 늘 ‘나라’ 다!
- [다석의 한글철학 ㉒] ‘ᄋᆞᆷ’에 ‘ᄀᆞᆷ’이요, 곰에 검(神)이다
- [다석의 한글철학 ㉓] 태극도설(太極圖說) 한글풀이
- [다석의 한글철학 ㉔] 크다, 바뀜이어!
개의 댓글
댓글 정렬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