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의원선거 열흘 앞둔 이시바 궁지 몬 상호관세
“일본 얕잡아 본 미국 관두지 않겠다” 절규
SNS 통보의 일방적 서한 형식과 내용에 분노
상호관세나 일본산 자동차 추가관세 철회 기대
기대가 묵살당한데 대한 수치와 분노
참의원 선거 의식한 정치적으로 계산된 분노
“이것은 국익을 건 싸움이다. 얕잡아 보는데, 그냥 둘 것인가.”
이시바 시게루 일본총리가 지난 9일 도쿄 인근 지바현 후나바시 시에서 열흘 앞으로 다가온 참의원선거 거리유세에서 한 말이다. “우리는 해야 할 말은, 설사 동맹국일지라도 정정당당하게 해야 한다.” 그 다음에 이어진 말이다.
동맹국이란 미국이다. 미국이 일본을 얕잡아 본다는 건 무슨 말인가?
자민당을 화나게 한 ‘트럼프 통보’의 형식과 내용
지난 7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에 먼저 보내고, 이어서 말레이시아와 카자흐스탄 등 12개 국가에 보낸 새로운 상호관세율 통보 서한의 내용과 형식에 대한 이시바 총리의 반발 내지 정치적 대응과정에서 나온 표현이다. 그 서한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과 거의 동일한 내용으로 관세 및 비관세 장벽과 미국의 무역적자 얘기를 늘어놓은 뒤 25% 관세율을 8월 1일부터 적용하겠다고 통보했다.
이에 대해 이시바 총리가 화를 낸 이유 중 ‘형식’과 관련된 것은 집권 자민당 정조회장인 오노데라 이쓰노리의 다음과 같은 말 속에 잘 드러나 있다.
“달랑 편지 한 장으로 이런 통고를 하는 것은 동맹국에 대해 큰 실례가 되는 행위다. 강한 분노를 느낀다.”
아무런 공식절차나 관례에 따른 양해나 사전 조정도 없이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SNS에 올린 일방적인 편지 한 장으로 일본의 국익이 걸린 중차대한 사안을 지시사항 내려보내듯 통보한 ‘무례’에 대한 분노가 우선 읽힌다. 집권 자민당과 이시바 총리를 얕잡아 보는 듯한 당돌한 트럼프 방식이 참의원 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불안도 느낄 수 있다.
상호관세나 일본산 자동차 추가관세 철회 기대
다음은 25% 관세 통보라는 내용이다. 이시바 총리, 그리고 아마도 일본 여야 정치권, 나아가 일본국민 대다수는 트럼프 정권이 일본에 대한 관세율을 최종적으로 완전히 철회하거나 적어도 지난 4월에 발표한 24%보다는 훨씬 낮은 수준으로 통보할 것으로 믿었던 것 같다.
지난 4월 2일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에게 24%의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이시바 총리를 비롯한 일본정부 관계자들은 세율이 그 정도일 줄은 짐작도 하지 못한 듯 “이렇게 높단 말인가”하고 경악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들은 미국이 협상용으로 우선 그렇게 고관세를 때린 것이고 쌍방의 최종 조율을 거치면서 그것이 철회되거나 훨씬 낮춰질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또 상호관세는 그렇게 가더라도 일본의 주력산업이자 대미 수출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자동차에 대한 추가관세는 철회해 줄 것으로 그들은 믿었다. 트럼프 정권은 자동차와 철강, 알루미늄에 대해 25%의 품목별 추가관세를 부과해 놓은 상태다.
일본 쪽의 그런 믿음에는, 트럼프 1기 정권 때 당시 아베 신조 총리 정부 때의 일본이 다른 조건 양보 대가로 대미 수출 자동차 추가관세는 피해갔던 ‘성공’경험도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기대가 묵살당한데 대한 수치와 분노
그런데 상호관세나 자동차 추가관세 완전철회는커녕 기존 24%에 1%p를 더 얹어 한국과 꼭같은 25%로 통보한 것에 일본은 경악했다.
이시바 총리와 일본정부는 지난 2월 처음 미국을 찾아가 정상회담을 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에 대한 관세 부과 문제를 의제로 올리지 않은 것에 고무돼 “일본은 특별 취급을 받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그 때문에 아마도 트럼프 정권은 특수 동맹관계인 일본에 대해서는 상호관세나 자동차에 대한 추가관세를 철회하거나 대폭 낮춰 줄 것 같다는 기대를 했다는 것이 일본 언론들의 분석이다.
아닌게 아니라 이시바 총리는 2월 정상회담 때 8천억 달러에 이르는 세계1위의 대미 직접투자액을 1조 달러대로 올리겠다며 일본의 미국경제에 대한 기여를 강조했고, 6월 캐나다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때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 점을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대규모 미군 주둔 기지가 있는 일본의 안보상의 중요성, 즉 미중 패권경쟁 격화에 따라 더욱 커지는 친미적 일본의 안보전략상의 중요성을 미국이 특별히 감안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트럼프 정권은 그런 믿음이나 기대를 완전히 깔아뭉개고 한국이나 말레이시아, 카자흐스탄 등과 한묶음으로 엮어 25% 관세율을 일방 통보하는 ‘무례’를 범했다고 그들은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 분노에는 아마도 그 나머지 나라들과 같은 취급을 당했다는 데에 대한 분노와 수치도 포함됐을 것이다. 그만큼 자민당 등 일본 보수 지배세력의 아시아 타민족들에 대한 시대착오적인 자아도취적 우월감과 대미·대서방 의존도가 강했을지도 모른다.
이시바 총리의 발언에는 이 모든 기대와 허위의식이 트럼프의 SNS 통보서한 하나로 일거에 보기좋게 묵살당한 것에 대한 수치와 분노가 담겨 있다.
참의원 선거를 의식한 정치적으로 계산된 분노
‘미국이 우리를 얕잡아 봤다’는 데에 대한 이시바 총리의 수치와 분노 표시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정치적 노림수를 지닌, 계산된 발언이기도 했다. 어쩌면 당장은 이것이 이시바 총리에게 더 다급하고 중요한 요소일 수 있다.
그것은 트럼프의 SNS 일방통보가 지금 판세가 자민당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참의원 선거 국면에서 자민당과 공명당 연립정권에 치명타가 될 수도 있는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난해 중의원 선거에서 대패해 야대여소가 된 이시바의 자민당 정권은 오는 20일 투개표가 실시되는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도 야대여소로 전락할 경우 정권을 내놔야 할 상황으로 몰릴 가능성이 높다.
지난 3일 공시된 참의원 선거는 3년마다 6년 임기의 참의원 의석 절반씩을 교체하는 선거다. 참의원 248명 정원 중 절반인 124명을 개선하는데, 이번 선거에서는 도쿄선거구 보궐선거 1석까지 포함해 모두 125석을 놓고 자민ˑ공명 연립여당과 입헌민주당 등 야당들이 겨룬다.
자민ˑ공명 연립여당은 과반수 의석 확보를 일번 선거 목표로 내걸었다. 현재 연립여당의 참의원 의석수는 141석이고, 그 중 비개선 의석(이번에 개선 대상이 아닌 의석)이 75석이어서, 개선 대상 의석수 66석 가운데 50석만 얻어도 전체 의석 과반을 차지하게 된다. 말하자면 기존 의석에서 16석을 잃어도 과반은 유지할 수 있다. 이처럼 과반 확보 목표 설정은 지지율이 떨어진 이시바 시게루 정권이 만일의 경우 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을 줄이기 위한 고육책으로, 여당 내에서도 너무 낮은 목표라며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런 판에 비개선 의석까지 포함해 과반선인 125석을 얻는데도 실패한다면 이시바 총리가 자민당 총재(사실상의 총리)자리를 유지하기는 어려워진다.
그가 “미국이 우리를 얕잡아 보는데 그냥 둘 것이냐”고, 미국과 트럼프를 노골적으로 겨냥한 “매우 이례적인” 표현을 써가며 목청을 높인 것은 바로 그런 참의원선거 판세를 의식한 계산된 발언이라고 봐야 한다. 미국에게 그렇게 얕잡아 보이는 총리를 일본 유권자들이 좋게 볼 리가 없다.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결의를 보이지 않으면 실망한 유권자들이 자민당 후보에게서 등을 돌릴 것이다. 그냥 두지 않겠다, 단호하게 싸우겠다는 결의 표명으로 유권자들 마음을 붙잡아 둘 절박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통상 국가 원수가 쓰지 않는 용어를 구사한 이시바의 그 “매우 이례적인” 발언은 뉴스의 초점이 됐고, 야당 공세의 빌미가 됐다. 제1 야당 입헌민주당의 노다 요시히코 대표는 9일 아모모리 시 유세에서 “골(자민당의 참의원 과반의석 획득)이 멀어져 간다. 허들(장벽)이 높아졌다. 교섭(대미 협상)이 잘 되지 않고 있다는 증거”라고 쏘아붙였다. 그 전날 국민민주당의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는 SNS를 통한 미국 쪽의 (무례한) 통보에 대해 “미일간에 인간관계가 구축돼 있는지, 그것조차 의심스러워지는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10일 TV에 출연한 이시바 총리는 안보와 식품 등을 둘러싼 미일관계에 대해 언급하면서 “완전히 믿고 있으니까 하는 얘기인 만큼 들어 달라는 얘긴데, 그것을 얕잡아 보면 곤란하다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리고는 “미국 의존에서 자립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
이시바 총리 관저의 한 간부는 그의 발언에 대해 “선거정세가 여당에게 좋지 않은 가운데, 미국과 제대로 교섭(협상)하고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어하는 심정”이라고 해석했다.
원래 이시바 총리는 참의원 선거전에서 미국의 고관세 방침을 철회시켜 표를 얻으려는 전략을 짰다. 그래서 미국의 대일 “관세 철회”를 자주 입에 올렸으나, 7일 트럼프의 일방적 통보서한이 발표된 뒤 그 말을 쓸 수 없게 됐다. 미디어들의 여론조사에서는 총리가 승패의 기준으로 내세운 여당의 과반의석 확보조차 장담할 수 없는 결과가 나왔다. 이처럼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그런 발언이 나왔다.
1기 정권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2기의 트럼프 위상
이시바와 자민당의 그런 잘못된 전략은 미국의 일본 특별대우에 대한 오산과 1기 정권 때의 트럼프와 1기 정권의 트럼프가 전혀 다른 입지 내지 위상을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들이 많다.
일본정부는 트럼프 정권 내에서 트럼프가 장악하고 있는 힘의 크기에 대해 오해를 했다. 1기 정권 때의 트럼프는 정치가로서의 경험과 실적이 미약한 처지에서 일본과의 무역협상도 일정 부분 각료들에게 위임해 두고 있었다. 당시는 미국통상대표부(USTR)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대표가 대일 교섭 창구를 맡고 있었다. 이시바 정권은 그것을 참고했는지, 이번의 대미 교섭창구를 그때의 미국식으로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에게 맡겼다. 그러나 아카자와 재생상은 7차례나 미국쪽 상대역들과 교섭을 벌였지만 전혀 성과가 없었다.
2기 정권에서 트럼프의 발언권은 1기 정권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트럼프 본인의 의중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고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 아카자와 재생상은 트럼프가 아니라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만 줄곧 상대했다. 그들과 7차례나 만나고도 아무런 성과가 없자, 일본정부 내에서는 베센트와 러트닉, 그리어가 제각각 대일 교섭에서 먼저 성과를 올려 트럼프의 인정을 받으려는 공적 다투기를 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돌았다.
이재명 정부도 이런 사정을 참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트럼프 1기 정권 때 미일 무역협상은 일제 자동차에 대한 추가관세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당시 아베 신조 정권은 미국산 소고기와 돼지고기 수입관세를 무기로 미국 수출 일제 자동차에 대한 관세 철회를 요구했다. 일본이 당시 미국이 막 탈퇴의사를 표명한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와 같은 수준으로 소고기 돼지고기에 대한 관세를 낮출 경우 TPP 가입국인 호주산 소고기 돼지고기가 일본시장에서 미국산을 대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내세워 일본산 자동차에 대한 추가관세를 철회시키는데 성공했다.
지금은 트럼프가 힘이 훨씬 더 커진 데다, 그렇게 써먹을 카드가 일본에게 없고, 당시 정치적 경험과 정부 내의 입지가 약했던 트럼프가 도움을 받고자 했던 친미적이고 노회한 아베와 같은 정치가도 일본에는 없다.
자민당의 비주류 중도 ‘온건 좌파’ 이시바의 정치생명이 트럼프의 관세전쟁 도박으로 한층 더 위태로워졌다.
관련기사
- 트럼프, 브라질 콕 집어 "50% 관세"…그 이유가 황당
- ‘죄수의 딜레마’ 강요하는 트럼프의 관세협상
- 트럼프, 일본·말레이시아·카자흐도 25% 관세 통보
- 트럼프 "한국은 그리 알라"…8월부터 25% 상호관세
- “미국 없는 아시아 독자적인 자유무역체제 만들자”
- 트럼프의 대중국 관세 전쟁 싱겁게 끝나나?
- 피해자 정서 둔감한 미국, 한·일 공동 운명체 몰아
- 이시바 정권 존속 여부 걸린 참의원 선거 20일 실시
- 일본 엔 하락, 트럼프 새 관세통보 여파로 가속 조짐
- 트럼프, 러 50일 내 정전 않으면 중·인에 100% 관세?
- 미일 관세협상 15% 둘러싼 진실공방 어디까지 갈까?
- ‘성찰의 미학’이 가린 제국주의의 그림자
개의 댓글
댓글 정렬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