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서구' 그리스 매체 "미, 전쟁 끝내려 정직한 타협"
유럽 주요국 지도자, 서방 언론들 '맹폭'
영토 문제는 '휴전 이후'로 연기 주장도
미국-우크라, 제네바서 '트럼프 안' 협의
"평화 프레임워크, 더 진전되고 정교해져"
안보·개발·인프라·항해 자유·주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해 제시한 28개 항의 평화안이 '침공한' 러시아 쪽의 입장을 대거 반영한다는 비판이 서방 진영에서 강하게 제기된 가운데,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공동으로 "더 진전되고 정교해진" 평화 프레임워크(틀)를 만들어 내는 데 일단 성공한 모양새다.
양국은 유럽국들과도 긴밀히 접촉해 가며 러시아에 제시할 공동의 제안을 도출하기 위해 앞으로 며칠간 집중적으로 협의하기로 했다.
미국과 우크라는 23일 스위스 제네바의 미국 대표부에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안드리 예르마크 대통령 비서실장이 각각 수석대표로 참석한 가운데 '트럼프 평화안' 논의를 위한 회동을 하고 이렇게 의견을 모았다고 양국 대표단이 공동성명에서 밝혔다.
미-우크라, 23일 제네바서 '트럼프 안' 논의
"평화 프레임워크, 더 진전되고 정교해져"
백악관은 이날 공개한 '미-우크라 회동 공동성명'에서 "회담은 건설적이고 집중적이며, 존중하는 분위기에서 공정하고 지속적인 평화를 달성하겠다는 공동의 의지를 강조했다"며 "협의 결과, 양측은 더 진전되고 정교해진 평화 프레임워크 초안을 작성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런 틀 안에서의 최종 결정은 우크라와 미국 대통령에 의해 이뤄질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성명은 또한 "양측은 향후의 어떠한 합의도 우크라의 주권을 온전히 수호하고 지속이 가능하고 공정한 평화를 낳아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특히 백악관은 별도 성명을 통해 "우크라 대표들은 오늘 이뤄진 수정과 설명을 토대로 현재의 초안이 자국의 국익을 반영하고 단기로나 장기로나 우크라의 안보를 지키는 신뢰할 수 있고 집행력이 있는 메커니즘을 제공한다고 본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우크라 대표단은 회의에서 안전 보장, 장기적 경제 개발, 인프라 보호, 항해의 자유, 정치적 주권 등 중요한 모든 우려 사항이 철저히 다뤄졌다고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도 텔레그램 메시지를 통해 "많은 변화가 있다"며 "중요한 것은 미국 대표단과 대화가 진행 중이며, 트럼프 대통령팀이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신호가 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모든 중요한 우려 사항 철저히 다뤄져"
안보, 경제개발, 인프라, 항해 자유, 주권
이날 루비오 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제네바 회동 목적이 28개 항의 트럼프 평화안에 담긴 쟁점 목록들을 좁히기 위한 것이었다면서 "아마도 우리가 관여한 이후 이 문제에 관해 가장 생산적이었던 날이다"라고 자평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제네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엄청난 진전을 이뤘다"고 소개한 뒤 "오늘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은 26개 혹은 28개 항으로 구성된 문서에서 아직 열려 있는 쟁점을 좁히는 것이었다"며 "오늘 우리는 그 목표를 매우 상당한 수준으로 달성했다"고 밝혔다.
루비오 장관은 우크라이나에 미국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조약 5조에 해당하는 안보 보장, 즉 외부 공격 시 나토와 유사한 수준의 집단 방위를 보장할지에 대해 "분명한 건 전쟁을 끝내려면 우크라가 안전하다고 느끼고 다시는 침공이나 공격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라면서 "우리는 그 부분과 다른 부분에서 큰 진전을 이뤘지만, 오늘 세부 사항을 말하진 않겠다"라고 말했다.
루비오의 말마따나 28개 항의 트럼프 평화안이 제네바의 미-우크라 회동을 통해 '더 진전되고 정교해진" 구체적 내용은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미-우크라-유럽이 러시아에 제시할 최종안이 언제 나올지, 그리고 그 최종안이 나오더라도 교전 상대인 러시아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상황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앞서 21일 트럼프는 올해 추수감사절인 오는 27일을 '시한'으로 자신의 평화안을 우크라에 제시했다. 그 대강을 살펴보면, △ 첫째, 영토 조항(21항)에선 러시아가 2014년 병합한 크림반도와 돈바스(루한스크, 도네츠크) 지역을 러 영토로 '사실상'(de facto) 인정하고, 남부 헤르손과 자포리자도 현 전선 동결에 따라 러시아에 포함 △ 둘째, 안전 보장과 관련해 우크라의 나토 가입 금지하되 유사시 집단 방위 가동, 러시아-우크라-유럽 간 불가침협정 체결, 나토군의 우크라 주둔 금지 △ 우크라군 규모 60만 명 제한 △ 자포리자 원전 가동과 전기 균등 배분 △ 우크라 상업 활동을 위한 드니프르강 사용과 흑해 통한 자유로운 곡물 운송 허용 △ 대러 제재 해제와 주요 8개국(G8) 재가입 △ 동결된 러시아 자산 1000억 달러 처리 △ 관련자 완전 사면 △ 100일 내 우크라 대선 실시 △ 나치 이념과 활동 금지 등이 포함돼 있다.
유럽 주요국 지도자, 서방 언론들 '맹폭'
영토 문제는 '휴전 이후'로 연기 주장도
이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등 유럽 주요국 정상들이 즉각 반대하고 나섰고, 서구 주요 매체도 이 계획에 맹폭을 가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22일 너무 형편없고, 모호하며, 균형도 없는 비현실적이라면서 "그것은 벌거벗은 기회주의와 전략적 근시안의 슬픈 혼합"이라고 비난했다. <가디언>도 23일 "미국 정부의 계획"이 아니라 "러시아의 희망 목록"이란 미국 상원의원들의 말을 인용했으며, 미국 뉴욕타임스는 22일 "우크라인들엔 항복 계획"이라고 지적했고, 폴리티코는 21일 러시아 특사인 키릴 드미트리예프와 함께 트럼프 평화안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는 정신과 의사가 필요하다"고 극언을 퍼붓기도 했다.
이들 유럽국은 △ 모든 영토 문제는 휴전 이후로 연기 △ 우크라군 60만 제한 불가와 중무장 △ 자포리자 원전의 우크라 통제 △ 드니프르강에서 완전한 항해의 자유 보장 △ 러가 우크라에 대한 손해 배상 동의하지 않는 한 러시아 자산 동결 유지 △ 러시아가 이런 합의 준수하는 전제하에 대러 제재의 점진적 해제 등을 주장하고 있다.
앞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은 2022년 11월 주요 20개국 정상회의(G20)에서 '젤렌스키의 평화 공식 10개 항'을 발표했다. 이 중 이번 '트럼프 평화안'과 배치되는 건 △ 자포리자 원전 등 안전 확보와 러 군 철수 △ 러의 에너지 시설 공격 중단 △ 1991년 국경 기준으로 우크라 영토 완전 복구 △ 모든 점령지에서 러 군 완전 철수와 적대 행위 즉시 중단 △ 러 침략 조사할 특별 국제재판소 설립과 모든 전쟁 범죄 처벌 △ 우크라에 효과적이고 신뢰할 만한 안전 보장 메커니즘 수립 △ 러가 공식 준수 확인하며 문서 통해 전쟁 종식 등이다.
반서구 성향의 그리스 매체 '뱅킹뉴스'
"서방이 우크라 패배 첫 진지한 인정"
이처럼 서구 언론의 트럼프 안 성토가 이어지는 가운데, 반서구 성향의 그리스 매체 <뱅킹뉴스>가 색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이 매체는 23일 자 기사에서 "트럼프의 계획은 (우크라가) 전쟁에서 이기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서방 최초의 진지한 인정이다"라고 주장했다.
뱅킹뉴스는 "미국의 계획은 유럽 언론의 공격을 엄청나게 받았지만, 이제까지 서구에서 금기시됐던 기본적인 가정들을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 기본 가정들의 예로 △ '나토 밖의 우크라'란 누구도 수용하지 않는 진실 △ 우크라의 초군사화와 미국 재정 영구 의존을 끝내고 러시아의 비무장화 요구와도 거리를 둔, 현실적 규모의 '60만 병력' △ '법률상'(de jure)가 아닌 '사실상'(de facto)의 접근을 통해 러의 획득 영토에 대한 인정은 피하되, 우크라의 반환 압력은 제거 △ 유럽연합(EU) 기준들에 따른 소수민족 보호. 이 조항은 2014년 '마이단 혁명' 이후 취해진 나치 지향적 방향과 충돌해 키이우 당국 자극 우려 △ 미국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는 우크라 재건 자금 조달이란 명확한 목표에 따른 동결 러시아 자산 사용 등을 거론했다.
뱅킹뉴스는 "현 지정학적 순간의 역설은 명확하다"면서 "미국은 비용이 많이 드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정직한 타협을 모색하지만, 유럽은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전략적 이유로 분쟁의 지속을 바란다. EU는 (트럼프) 계획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대륙(유럽)의 평화 가능성도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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