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매각 ‘넥스페리아’ 중국공장의 반격

일본 혼다, 독일 폴크스바겐 등 서방업체들 감산

독일 자동차업체들이 가장 큰 타격

10월 30일 김해 미중 정상회담에도 영향

중국공장의 차량용 반도체 칩 수출 중단 조치로 세계 자동차업계를 곤경에 빠뜨린 넥스페리아.  연합뉴스
중국공장의 차량용 반도체 칩 수출 중단 조치로 세계 자동차업계를 곤경에 빠뜨린 넥스페리아.  연합뉴스

미중 패권경쟁으로 반도체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자동차 필수부품인 반도체 공급부족으로 세계 주요 자동차생산업체들이 감산과 가격인상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와 폴크스바겐 등 독일 업체들과 다국적 회사 스텔란티스, 혼다 등 일본 업체들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고 현대자동차도 예외가 아니라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다. 자동차용 반도체 부품 공급 부족에 따른 이런 사태에는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규제와 중국의 반발, 중국 반도체 생산업체들의 공급 중단이 배경에 자리잡고 있다. 지난 10월 30일 부산(김해)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이 문제가 논의됐다. 당시 추가 고율관세 부과와 희토류 수출 규제를 무기로 맞섰던 미중 정상이 서로 정책시행을 연기하면서 일종의 휴전태세로 한 발짝씩 물러선 데에는 중국산 반도체 공급 중단에 따른 산업 전반에 걸친 악영향과 그로 인한 정치적 부담을 피하려는 계산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일본경제신문>(닛케이)은 25일 혼다와 닛산 등 일본 주요 자동차 업체들이 중국정부도 출자하고 있는 중국 스마트폰 위탁제조회사 윙테크(聞泰[원타이]科技) 산하 반도체기업 넥스페리아(Nexperia) 중국공장의 차량용 반도체 수출 중단 여파로 생산에 차질을 빚으면서 판매도 줄고 있다고 보도했다.

 

올해 하반기까지의 일본 자동차업체들 해외판매 자동차 대수 변화 추이. 맨 아래 스즈키를 빼고는 2020년대 들어 모두 크게 줄고 있다. 맨 위는 닛산, 그 아래는 혼다. 그리고 스즈키. 단위:만 대.  일본경제신문 11월 25일
올해 하반기까지의 일본 자동차업체들 해외판매 자동차 대수 변화 추이. 맨 아래 스즈키를 빼고는 2020년대 들어 모두 크게 줄고 있다. 맨 위는 닛산, 그 아래는 혼다. 그리고 스즈키. 단위:만 대.  일본경제신문 11월 25일

 

혼다 북미지역 생산 및 판매 감소

<닛케이>에 따르면, 혼다는 반도체 부족에 따른 북미지역 생산 감소로 올해 하반기 세계판매(일본 국외 판매)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4% 줄어든 166만 대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일본 자동차생산업체 순위도 지난해 같은 기간 도요타에 이은 2위에서 4위로 내려가고, 대신 스즈키가 2위로 뛰어올랐다. 이에따라 장기간 정립돼 온 도요타 혼다 닛산 3강체제가 무너지면서 공급망 리스크의 영향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2017년 10월 4일, 일본 도쿄 쇼룸에서 혼다 모터스 로고가 시빅 세단 차량에 표시되어 있다. 2017.10.4. 로이터 연합뉴스
2017년 10월 4일, 일본 도쿄 쇼룸에서 혼다 모터스 로고가 시빅 세단 차량에 표시되어 있다. 2017.10.4. 로이터 연합뉴스

닛케이는 혼다의 이런 감산은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중국자본 소유 반도체 생산업체 넥스페리아의 차량용 반도체 칩 출하 중단의 영향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한 반도체 부족으로 혼다의 하반기(10월~내년 3월) 북미 판매는 당초 예상보다 11만 대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혼다는 부품 일부를 넥스페리아에서 조달하는 반도체 칩에 의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혼다 미국, 캐나다 공장은 10월 27일부터 생산조정에 들어갔고, 멕시코 공장은 10월 28일부터 생산이 중단됐다.

10월 30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무역분쟁 휴전상태에 들어가면서 멕시코 공장 생산은 11월 19일부터 재개됐고, 캐나다와 미국 공장 생산도 차츰 원래 상태를 회복해 가고 있다.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을 우려해 네이메헌에 있는 넥스페리아 본사 경영권을 접수했던 네덜란드 정부도 넥스페리아에 대한 경영 개입을 중단했지만, 네덜란드 법원이 내린 ‘긴급조치’는 아직 해제되지 않고 있다.

그 여파로 혼다의 하반기 세계판매 대수는 반도체 부족 때문에 자동차 생산이 중단됐던 2008년의 리만 쇼크(월스트리트발 세계 금융공황) 이후 최저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북미지역 판매 수익 비중이 큰 혼다의 올해 4~9월의 판매 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 늘어난 85만 6000대로 세계판매 대수(168만 대)의 50%가 넘는다. 반도체 칩 부족에 따른 영향으로 혼다의 영업이익은 1500억 엔(약 1조 4000억 원) 줄어들 것으로 보이며, 연간 영업이익은 전년도 대비 55%가 줄어든 5500억 엔(약 5조 1000억 원) 정도로 예상된다.

닛산도 일본 내 옷파마초 공장과 규슈 공장에서 생산을 줄였고 내년 3월 판매에 이로 인한 손실분을 계상할 예정이다.

넥스페리아, 중국 국유기업 등 컨소시엄에 매각

이처럼 중국 윙테크 산하 네덜란드 반도체 기업 넥스페리아의 반도체 공급 중단이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 자동차 업계 전체를 직격하고 있다. 일본 경제전문 주간지 <다이아몬드 온라인>에 따르면,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는 “넥스페리아의 반도체 출하 중단이 계속되면 며칠 안에 생산라인이 멈출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사태는 지난 9월 말 네덜란드 정부가 경제안전보장의 관점에서 넥스페리아를 정부관리 아래 둠으로써 중국 본사로 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막으려 한데서 비롯됐다. 이에 대해 중국정부가 강력 반발하면서 대항조치로 넥스페리아 중국공장의 차량용 반도체 칩 출하를 중단시켰다.

넥스페리아는 1920년대에 네덜란드 종합전기회사 필립스의 반도체사업으로 시작했다. 필립스는 1950년대 초에 네덜란드의 네이메헌과 독일 함부르크에서 반도체 생산을 시작했다. 함부르크 공장은 지금도 넥스페리아 웨이퍼 생산공장으로 가동되고 있다.

2006년에 필립스는 반도체사업을 분사해 NXP세미컨덕터를 설립하고 지분 80.1%를 사모펀드 투자자들에게 매각했다. 10년 뒤인 2016년에 NXP세미컨덕터는 범용형 파워반도체사업 부문을 중국 국유기업 투자회사인 베이징 젠광자산관리 유한공사(JAC 캐피털)의 자회사와 와이즈 로드 캐피털 유한공사로 구성된 중국 금융투자 컨소시엄에 매각했다. 이 사업은 2017년에 중국 투자펀드 산하의 ‘넥스페리아’라는 독립적인 브랜드로 바뀌었고, 2018년에는 중국 윙테크(원타이 과기)가 이를 252억 위안(당시 환율로 약 3조 8500억 원)에 매수했다.

스마트폰을 위탁 제조해 온 대기업 윙테크에는 중국정부도 출자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미국정부 내에는 군사용으로 전용될 수 있는 반도체 칩 메이커가 중국자본 아래로 들어가는 것을 위험시한 사람들도 있었으나 매수를 막지는 않았다.

윙테크 산하로 들어간 넥스페리아는 반도체 회로기판을 만드는 전(前)공정은 독일 공장에서, 기판에서 칩을 잘라 케이스에 넣는 후(後)공정은 중국 공장에서 각각 수행했다.

미중 분쟁 뒤 네덜란드 정부 넥스페리아 접수

이런 기업 투자, 매수가 진행된 뒤 미중 대립이 격화됐고, 트럼프 1기 정권과 조 바이든 정권은 미국 반도체기술과 지적 재산이 중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중국기업들을 대상으로 금수조치를 확대했다. 2024년 말 바이든 정권은 윙테크를 경제 안전보장상의 이익에 반하는 기업 명단(Entity List)에 올려, 사실상 금수조치를 취했다.

네덜란드 정부도 미국의 압박과 함께 넥스페리아 지적 재산의 중국 유출을 막을 필요가 커졌다. 네덜란드는 세계 유일의 극자외선(EUV) 사용 반도체 노광장치 생산업체인 ASML이 있는 나라다. ASML도 원래 필립스에서 출발했다.

지난 9월 안전보장상의 문제를 우려한 네덜란드 경제부는 물품공급법을 근거로 네이메헌에 있는 넥스페리아 본사를 접수, 경영권을 장악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윙테크 경영진의 사업운영 방해였다.

중국, 넥스페리아 중국공장 칩 수출 중단으로 보복

보복에 나선 중국정부는 넥스페리아 중국공장의 칩 수출을 사실상 중단시켰다. 10월 하순에는 네덜란드가 중국 광둥성에 있는 공장에 대한 반도체 회로기판 공급을 중단했다. 그 결과 이번 자동차 감산사태가 벌어졌다. 넥스페리아의 차량용 반도체들 중에는 세계 점유율이 최대 40% 가까운 것도 었어서, 중국 공장의 수출 중단과 유럽의 기판 등 부재 공급 중지로 세계 자동차 관련 분야의 타격이 확대되고 있다.

 

11월 2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컨벤션 센터에서 폭스바겐의 자율주행 컨셉트 I.D 버즈 우버가 공개됐다. 2025.11.20. 로이터 연합뉴스
11월 2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컨벤션 센터에서 폭스바겐의 자율주행 컨셉트 I.D 버즈 우버가 공개됐다. 2025.11.20. 로이터 연합뉴스

독일 자동차업체들이 가장 큰 타격

이번 사태는 일본보다 유럽 자동차업계에 더 큰 충격을 안겼다. 유럽의 관련 기업들은 넥스페리아 칩 대체품을 확보하기 위해 분주했으나 쉽지 않았다. 다이아몬드 온라인 기사(“도요타도 걱정하는 ‘반도체 넥스페리아 문제’…그 이면에 중국이 착실히 추진해 온 ‘국가전략’?”, 11월 11일)를 기고한 마카베 아키오 일본 다마대 교수는 이번 사태로 가장 심각한 영향을 받은 나라로 독일을 꼽았다. 독일의 대형 부품생산업체 ‘ZF프리드리히스하펜’은 반도체 칩 부족 때문에 전동구동장치 등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주력공장에서는 종업원 근무 교대수도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부품 조달이 줄면서 폴크스바겐 주요 모델 ‘골프’의 생산이 중지될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BMW도 반도체 공급망이 영향을 받고 있다는 얘기들이 흘러나왔다.

지프와 푸조, 시트로엥, 피아트, 마세라티 등 14개 브랜드를 지닌 스텔란티스(본사 네덜란드)는 파워반도체 공급상황을 계속 모니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각 반도체 생산업체들로부터 대체품 재고 유무를 확인하면서 차량용 칩과 유닛의 새로운 조달체제 구축을 서두르고 있다.

최근 폴크스바겐을 비롯한 유럽의 자동차업체들은 EV(전기자동차)로의 급속한 이전이 여의치 않게 되자 내연기관 차와 하이브리드 차 생산체제를 재구축하는 한편 SDV(Software Defined Vehicle. 소프트웨어로 하드웨어를 제어하고 관리하는 자동차)에 대한 대응을 서두르고 있다. 이처럼 자동차업계가 100년에 한 번 있다는 변혁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넥스페리아 문제는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10월 30일 김해 미중 정상회담에도 영향

미국과 유럽 자동차업계는 미중 정부에 이번 사태의 조기 해결을 촉구했다. 자동차 생산 감소는 주요국들의 고용과 소득을 악화시킨다. 내년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런 사태는 피하고 싶을 것이다. 10월 30일 김해 회담에서 미중 정상들이 무역ꞏ관세 전쟁의 잠정 휴전에 합의한 데에는 이런 사정들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마카베 교수는 중국의 차량용 반도체 칩 출하 중단으로 촉발된 이번 사태가 일단 수습된다 하더라도 자동차업계는 앞으로도 많은 차량용 칩이 필요하다며, 미중 대립과 중국경제 불황, 유럽경제 성장률 저하 등으로 자동차업계에 역풍이 부는 가운데 차량용 칩 부족 사태가 재발할 경우 타격이 클 것으로 본다.

마카베 교수는 10월 30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고, 중국 공장의 차량용 반도체 칩 공급 재개가 합의내용에 들어간 것으로 본다. 그러면서 그는 이처럼 차량용 범용 반도체뿐만 아니라 희토류 수출, 미국산 농산물 수입 등의 논점들에서 중국이 미국보다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고 있다고 했다. 패권을 향한 중국정부의 주도면밀한 자국기업 세계점유율 확대 전략이 먹혀들고 있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중국은 주로 외국기업에게 제조기술 등을 강제로 이전하게 하고, 대규모 산업보조금을 자국 기업들에 지급했으며, 공장용지를 싼 값에 제공하고, 정부 주도 아래 국유기업들의 경영통합 등을 추진했다.

윙테크도 반도체 생산체제를 확장해 주요 자동차 생산업체들의 수요를 이끌어냈다. 철강과 조선, 전동차, AI, 반도체, 배터리, 태양광 패널, 액정 디스플레이, 의약품 원재료 등 다른 많은 분야들에서 중국은 그런 전략을 썼고, 중국에 의존하는 구미와 일본 등의 서방 기업들이 늘어갔다.

트럼프 정권은 역으로 다국간 제휴를 토대로 중국 포위망을 만들려고 하겠지만, 이제까지의 트럼프 언동으로 보건대 선뜻 미국과 손잡으려는 나라가 얼마나 될까. 마카베 교수는 김해 미중 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중국의 보조금이나 국유기업 경영통합 등의 문제는 따지지도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넥스페리아 사태와 같은 일이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그리고 그것은 대기업들 경영뿐만 아니라 일반 물가나 고용, 소득 악화 등 일반시민생활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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