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국 경제 망가져야 수익률 높은 채권 매입
야당 요구 외면하다 "10조 추경" 언발에 오줌
한국은행 총재도 “추경 15~20조 돼야 효과”
극심한 소비 침체로 자영업자 연체율 급증
내란 사태에 소비 위축…음식·숙박업 찬바람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느닷없이 10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서둘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요일인 30일 경제관계장관간담회에서 현안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곧바로 집행할 수 있는 사업에 투입할 ‘필수 추경’을 하자는 것이다. 여당과 야당이 여기에 동의하면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빨리 집행할 수 있도록 추경 편성에 속도를 내겠다고도 했다.
영남권 산불 피해복구를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진작에 편성했어야 할 추경을 이제야 하겠다고 한 것은 뒷북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극심한 소비 침체를 살리기에는 추경 금액이 턱없이 모자란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이 추경 요구할 때는 외면하더니…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작년부터 줄기차게 추경을 요구했다. 내수 경기가 더 침몰하기 전에 소비 진작의 마중물 역할을 할 추경을 하자는 것이었다. 당장 재정 부담이 있더라도 내수를 살려놓아야 성장률 하락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를 비롯해 경제 전문가들도 이구동성으로 추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냈다. 그런데도 최 장관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추경 편성을 위해 적자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데 건전재정을 지키려면 그래서 안 된다는 주장을 폈다.
경제 정책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불이 났으면 먹을 물이 부족해도 일단 불을 꺼야 한다. 물이 부족해질 것이라며 불을 쳐다만 보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극심한 소비 침체는 경제에 불이 붙은 상태로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긴급한 현안이다. 어떻게든 소비를 살려놓아야 할 시기에 ‘건전재정’ 타령만 하다가 뒤늦게 추경을 하겠다는 최 장관의 저의가 의심되는 이유다.
미국 국채 투자로 비난받자 나온 ‘필수 추경’ 제안
지난 주말 그는 미국 국채에 2억 원 가까이 투자한 사실이 알려지며 구설수에 올랐다. 관보에 게재된 ‘공직자 정기 재산변동 사항’을 보면 최 장관은 작년에 1억 9700만 원 상당의 2050년 만기 미국 국채를 매입했다. 미국 국채는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떨어져야 수익을 보는 상품이다.
미국 국채 투자는 원화를 달러로 환전해 사고, 팔 때는 달러로 받아 원화로 바꿔 수익을 확정한다. 달러 가격이 올라야 미국 국채를 팔 때 수익률이 높아진다. 미국 국채를 사는 한국인은 국채 자체의 수익률과 함께 원화 가치 급락을 기대하는 투자자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 국채는 원화 가격의 급락을 막고 환율을 안정시킬 책무가 있는 경제 수장이 투자하기에는 매우 부적절한 상품이다.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최 장관 측은 미국 국채 투자가 공직자윤리법 등 법과 규정을 어긴 게 아니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경제 수장이 한국 경제가 망가졌을 때 수익이 높아지는 상품에 베팅한 건 선을 넘은 재테크다. 차마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서 규정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행태는 뻔뻔함을 넘어 파렴치하다. 일요일에 예정에 없던 회의를 소집해 추경을 제안한 것도 미국 국채 매입에 대한 비난 여론을 덮으려는 속셈은 아니었을까.
10조 찔끔 추경으로 꺼진 소비 불씨 살릴 수 있나
최 장관이 뒤늦게 추경에 열의를 보이고 있지만, 제시한 금액을 보면 정말 불씨가 꺼져가는 소비를 살리려는 의지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재난과 재해 대응, 통상과 인공지능 경쟁력 강화와 함께 민생 지원을 추경의 주요 사용처로 꼽았다. 민생 지원에는 소비 활성화도 포함됐다. 최 장관은 “영세 소상공인에 대해서는 고물가, 고금리에 따른 경영 부담 완화 방안을 마련하고, 서민과 취약계층의 소비 여력을 확충해 내수를 진작시키는 사업들을 적극 발굴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10조 원 정도의 추경으로는 ‘언 발에 오줌 누기’에 그칠 공산이 크다. 대규모 추경에 부정적 인식을 보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15조~20조 원 정도는 돼야 올해 성장률을 0.2%포인트 올릴 수 있다고 했다. 그 이하면 효과는 없고 재정만 낭비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민주당은 내수 경기 침체와 트럼프 발 무역전쟁으로 인한 수출 둔화 등 우리 경제가 직면한 위기를 고려하면 30조 원 이상 추경을 편성해야 할 상황이라고 주장한다.
자영업자 연체율 급증에 상환 불능 우려 커져
최상목 장관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추경를 미룬 결과 소비 침체로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들의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여러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 상환이 불가능한 이들도 증가 추세다. 31일 한국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과 행정안전위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개인사업자대출 세부 업권별 연체율’ 자료를 보면 지난해 4분기 말 저축은행 연체율(1개월 이상 연체 기준)은 11.70%로 직전 분기보다 0.70%포인트 올랐다. 지난 2015년 2분기(11.87%) 이후 9년 6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카드사와 캐피탈 등 여신전문금융사 연체율(3.67%)도 직전 분기(2.94%)와 전년 동기(2.31%)보다 각각 0.73%포인트, 1.36%포인트 올랐다. 2014년 2분기(3.69%) 이후 10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연체율이다. 자영업자 대출액의 70%는 여러 금융기관에서 대출받은 다중채무였다. 자영업 다중채무자는 1인당 평균 4억 3000만 원의 빚을 지고 있었다. 2021년 4분기 이후 가장 많은 금액이다. 이들 다중채무자는 높은 대출 금리와 소비 부진이 지속되면 빚을 갚지 못하는 최악의 상태에 빠질 위험이 크다.
소비 심리 위축으로 숙박과 음식업종은 냉골
전체 산업생산과 소비·투자가 반짝 살아나도 자영업자의 주요 업종인 숙박과 음식점업에는 찬바람만 분다. 통계청이 31일 발표한 2월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산업생산과 소비·투자가 감소한지 한 달 만에 모두 증가세로 전환했다. 그러나 숙박과 음식점업 생산은 3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었고, 소매 판매 역시 1년 전과 비교하면 2.3% 감소했다.
지난달 숙박과 음식점업 생산은 전달 대비 3.0% 줄며 지난 2022년 2월(-8.1%) 이후 낙폭이 가장 컸다. 이는 12·3 내란 사태와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 선고 지연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탓에 소비 심리 위축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숙박과 음식점업 생산은 지난해 2월 이후 매달 줄었고 최근 4개월은 감소 폭도 컸다.
각종 통계 수치는 소비 진작을 위한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촉구하고 있다. 상황이 심각한 만큼 찔끔 추경으로는 어림없고 효과를 볼 수 있을 정도의 규모가 필요하다. 민주당은 최 장관의 10조 원 추경 제안에 대해 “정부의 안이한 태도에 개탄하고, 규모도 이해가 안 된다”고 혹평했다. 민주당은 이날 정책위원회 명의의 보도자료에서 “정부가 지금까지 손을 놓고 있다가 3월 말이 돼서 추경안을 편성해 국회로 제출한 것도 아니고 여야에 동의를 구하는 추경을 제안한 것에 대해 개탄한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10조 원은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대한민국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에는 턱없이 부족한 규모”라고 주장했다.
“경제사령탑이 국민 고통을 돈벌이 수단으로”
민주당은 최 장관이 미국 국채에 투자한 것에 대해서도 “한국 경제가 망가질수록 최상목 본인은 이득을 보는 경제 파탄 베팅인 셈”이라며 “경제 위기로 국민은 숨통이 막히고 있는데, 경제사령탑 최상목은 그 고통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았느냐? 공직윤리조차 갖추지 못한 한심한 사람이 대한민국 경제 수장”이라고 비판했다.
증권사 리서치센터장 출신인 홍성국 민주당 최고위원은 “원/달러 환율이 위기에 처해 있는데 달러를 사는 게 기재부 장관의 역할인가. 이번 미국 국채 투자로 나라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데 열중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관련기사
- 내수 진작용 추경 거부하더니…일자리도 초토화
- 간 부은 최상목…정국 혼란 틈타 ‘상속세 감면’ 꼼수
- 최상목 대행, 윤석열 '내란 대행' & '궤변 대행'
- 최상목은 오늘도 윤석열을 위해 ‘헌신’한다
- 최상목 '유령인간' 취급하기로 한 민주…탄핵은 아직
- 왜 가장 악한 자가 가장 윗자리에 올라가는가
- 최상목을 언제까지 놔둬야 하나 …안철수는 또 '철수'
- 내란 공범들에게 대선 관리 맡기면 안된다
- 최상목, 추경 찔끔 증액…그마저도 기업 지원용
- 소비 진작에 달랑 1.6조…한덕수·최상목 ‘헛다리’ 추경
- 미·중 무역 전쟁에 한국 골병…경제성장률 ‘반토막’
- 추경 1.6조 찔끔 늘려 13.8조…내수 살리기엔 역부족
개의 댓글
댓글 정렬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