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지역화폐, 국민의힘은 특활비 살려
소비 활성화 뒷전…나눠먹기로 추경 누더기
시급한 추경이라기보다 본예산 성격 더 강해
관세전쟁 여파로 4월 대미 수출 6.8% 줄어
수출 불확실성 커져 내수경기 회복 중요해져
새 정부 출범 후 소비 진작용 슈퍼추경 필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합의로 13조 800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이 1일 확정됐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12조 2000억 원에서 1조 6000억원 늘어난 금액이다. 정부와 양대 정당은 재해·재난 대응과 내수 부진 극복, 첨단전략산업 발전 등을 목적으로 제시했다.
추경 금액은 얼마 되지 않고 너무 많은 곳에 예산을 투입하려다 보니 결과적으로 죽도 밥도 아닌 꼴이 됐다. 추경은 명확한 목적성과 신속한 집행이 생명이다. 목적부터 분명하지 않으니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어 집행 속도도 더딜 가능성이 크다. 효과는 별로 없고 예산 낭비만 초래하는 추경으로 끝날까 우려된다.
민주당·국민의힘 정략 따라 ‘나눠 먹기’ 증액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증액한 추경안 내용을 보면 어정쩡한 타협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민주당은 역점 사업인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예산을 관철했고, 국민의힘은 본예산에서 삭감된 예산을 복원하려고 했는데 일부가 추경에 반영됐다. 증액한 예산을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식으로 나눠 먹은 셈이다.
이번 추경은 정부안 자체가 엉터리였다. 우리 경제 전체로 봤을 때 당장 급한 과제는 고물가와 고금리, 고환율로 2년 이상 바닥을 기고 있는 내수경기를 살리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책무를 외면하고 건전재정을 핑계로 추경을 거부해왔다. 이에 대한 국민 여론이 악화하자 영남권 산불을 명분으로 재해·재난에 대비해야 한다며 마지못해 추경안을 내놓았다.
그러다 보니 소비 진작에 배정된 추경 예산은 얼마 되지 않았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합의한 추경안 역시 정부안의 기본 틀을 깨지 못했다. 이번 추경 협상의 최대 쟁점이었던 지역화폐는 4000억 원으로 정해졌다. 민주당은 단독으로 행정안전위원회에서 1조 원 규모의 지역화폐 예산을 의결했으나 6000억 원을 줄여 합의했다. 신속한 추경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국민의힘에 양보한 것으로 보인다.
추경에는 본예산에서 전액 삭감됐던 법무부 소관 검찰 특정 활동 경비와 감사원 특수활동비 일부가 복원됐다. 물가 관리용 농축 수산물 할인지원 예산이 약 1700억 원, 대학 국가장학금 예산 1157억 원, 여름철 수해 대비 예산 300억 원, 건설 경기 활성화를 위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예산 약 8000억 원 등 추경이 아닌 본예산에 넣어야 할 것들이 많았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올해 예산을 과도하게 삭감했다고 주장했는데 추경에서 삭감된 예산을 복구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이날 추경안 합의를 발표하며 “지난해 민주당이 일방 삭감한 예산안을 처리했는데, 그때 전액 감액된 민생 수사 관련 예산을 전부 복원했다”며 구체적인 항목을 열거했다.
첫 단추부터 잘못 낀 정부 추경안
정부가 편성한 12조 2000억 원 규모의 추경안은 통상과 인공지능(AI) 지원에 가장 많은 4조 4000억 원을 배정했다. 재난·재해 대응력 강화를 위해 3조 2000억 원, 소상공인 직접 지원에 3조 5000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소비 진작 효과를 낼 수 있는 예산 투입은 1조 6000억 원에 불과하다. 증액된 지역화폐 4000억 원을 포함해도 13조 8000억 원 중 2조 원 정도만 소비 진작용 예산에 속한다. 이 정도로는 극심한 침체를 겪고 있는 내수경기를 살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언 발에 오줌 누기’도 안 되는 예산이다.
결국 대선이 끝나고 새로 출범하는 정부는 소비 회복의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는 추경을 또 편성해야 할 판이다. 민주당은 내수 살리기 차원에서 35조 원의 슈퍼 추경을 요구한 바 있다. 이재명 대선 후보가 집권하면 곧바로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물론 추경을 대규모로 편성하면 재정 상태가 나빠질 수밖에 없어 반대 여론도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 경제는 재정건전성을 걱정할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관세 폭탄 맞은 자동차 수출 3.8% 감소
내수경기 침체 장기화에 윤석열 내란 사태까지 겹치며 올해 1분기 우리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피하지 못했다. 지난달부터 트럼프 발 관세전쟁으로 자동차와 철강 등 주력 제품의 수출도 감소 추세로 돌아섰다. 대미 수출도 역주행하기 시작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일 발표한 4월 수출입 동향 자료를 보면 대미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8% 감소한 106억 달러로 집계됐다. 반도체와 함께 양대 수출 품목인 자동차는 65억 달러로 작년 동기 대비 3.8% 줄었다. 다만 반도체 수출 호조에 힘입어 지난달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3.7% 증가한 582억 1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관세전쟁으로 수출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경제 추락을 막을 방법은 내수경기를 회복하는 것이다. 일시적 재정 악화가 생기더라도 일단 소비를 활성화하는 게 급하다. 그렇지 않으면 올해 우리 경제는 0%대 성장률도 달성하기 힘들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1일 ‘2025년 한국 경제 전망(수정)’ 보고서를 공개했는데 올해 한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12월 당시 전망했던 1.7%에서 0.7%로 1.0%포인트나 하향 조정했다.
올해 성장률 내수경기 회복 여부에 달려
현대경제연구원은 “소비와 투자의 내수 불황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경기 선행지표의 뚜렷한 반등 신호를 포착할 수 없다. 향후 트럼프 관세 인상 정책 등 대외 불확실성의 부정적 영향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수출 경기 침체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은행은 아직까지 1%대 성장률을 예상하지만, JP모건과 씨티 등 일부 글로벌 투자은행은 0% 초중반에 그치는 전망치를 내놓았다.
박찬대 민주당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추경 합의를 발표하며 “대선 이후에 다음 정부가 더욱더 민생과 경제 살리기를 위한 특단의 조치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며 소비 진작용 슈퍼추경 가능성을 열어 뒀다. 추경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민주당은 집권에 대비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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