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 늘려 총 12조 원…통상·AI 대응 위주
가장 시급한 소비 진작용 예산은 미미
작년 소매 판매 2003년 이후 최대 감소
빚 시달리다 폐업한 자영업자 100만 명
내수 경기 임계점…긴급 예산 투입 절실
국회, 소비 쿠폰 포함 슈퍼 추경 편성해야
지난해 소매 판매는 전년보다 2.2% 감소했다. 신용카드 대란으로 소비가 급격히 꺾였던 2003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극심한 내수 경기침체로 문을 닫은 자영업자는 100만 명을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된다. 작년 말 기준 소득이 낮거나 여러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 자영업자는 전체 자영업 차주의 14%에 육박했다. 이들의 대출액은 1년 새 10조 원 가까이 늘었고 연체율은 11%를 넘어섰다.
소비침체 장기화로 한계에 처한 자영업자
올해 들어서도 소비는 살아나지 않고 있다. 눈덩이처럼 쌓이는 빚을 감당하지 못해 폐업하는 자영업자도 계속 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하는 소매유통업 경기 전망지수는 2분기 75에 그쳤다. 1분기보다 2포인트 하락했다. 윤석열 파면으로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이 다소 해소됐지만 트럼프 발 관세 폭탄 등 또 다른 악재가 덮치면서 소비심리는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고물가와 고금리, 고환율이 장기화하며 내수경기는 바닥을 뚫고 지하까지 내려갔다. 트럼프 발 관세전쟁으로 수출도 불안한 상황이이다. 지금은 어떻게든 소비의 불씨를 살려 내수경기에 온기를 불어넣는 정책을 최우선으로 실행해야 할 때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작년 말부터 30조 원 이상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 소비 진작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유다. 타이밍을 놓치면 더 큰 비용을 투입해야 할 수도 있어 가급적 빨리 추경을 편성하라고 촉구했다.
한국은행도 추경 규모 최소 20조 제안
하지만 정부와 국민의힘은 ‘건전재정’을 내세워 추경을 차일피일 미뤘다. 그러다가 내수경기가 한계점에 이르자 마지못해 추경을 편성하겠다고 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0조 원 규모의 ‘필수 추경’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내수경기를 살리기 어렵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액수를 찔끔 늘렸다.
정부는 15일 이전에 발표한 금액에서 2조 원 증액한 12조 원의 추경 예산안을 발표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를 비롯해 많은 전문가가 최소 20조 원을 편성해야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를 무시하고 증액 시늉만 한 것이다. 민주당은 소비 진작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하려면 추경이 35조 원 정도는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찔끔 증액도 문제지만 예산 편성 내용도 가장 시급한 소비 진작과는 거리가 있다. 예비비로 충당할 수 있는 재해·재난 대응 예산을 추경에 포함하고, 통상과 인공지능(AI) 경쟁력 강화 등 기업 지원용 예산을 크게 늘렸다. 소상공인·취약계층 지원에도 약 4조 원을 배정했다. 그러나 소비 쿠폰 등 내수경기를 근본적으로 살릴 수 있는 정책에 예산을 투입하는 것에는 인색했다.
정부 추경안 기업 지원 늘리며 소비 진작 예산은 인색
최상목 장관은 정부의 추경 편성안을 설명하며 엉뚱한 대목만 강조했다. 그는 “대규모 재해·재난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3조 원 이상을 투자하겠다”며 “재해대책비를 기존 약 5000억 원에서 2배 이상 보강하고, 첨단장비 도입 및 재해 예비비 등에 2조 원 수준을 반영하겠다”고 했다.
최 장관은 또 관세전쟁에 대비한 통상과 기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AI 지원도 강조했다. 통상·AI 지원책으로 정책자금 25조 원을 신규로 공급하고 수출 바우처 지원기업도 2배 이상 늘리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AI·반도체 등 첨단산업 관련 인프라·금융·연구개발(R&D)에도 2조 원 이상 재정지원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영남권 산불로 피해가 심각한 만큼 재해·재난 예산을 늘릴 필요는 있다. 관세전쟁과 기술 경쟁에 대응하려면 통상과 AI 지원도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보다 불씨가 꺼져가는 소비를 살리는 게 더 급하다. 소비가 늘어나야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숨통이 트이고 내수경기 회복도 기대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소비 쿠폰 지급에 필요한 추경 예산을 편성할 필요가 있다. ‘현금 살포’라는 프레임을 씌워 무조건 반대만 할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추경 규모 늘려 소비 활성화 예산 반영해야
소비 쿠폰은 지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때 지급한 재난지원금이 민간 소비를 살렸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이미 증명됐다. 지금 소비시장은 코로나19 당시보다 더 심각하다. 소비 쿠폰 발생이 얼마든지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
최 장관은 “추경은 무엇보다 타이밍이 중요하다”며 국회에서 최대한 빨리 처리해달라고 요청했다. 국민의힘도 “정부 추경안이 우리나라의 경제 동력을 살릴 실질적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 추경안으로는 내수경기 회복이라는 가장 중대하고 시급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추경 규모를 정부의 추경 편성안보다 2배 이상 늘리고 소비 쿠폰 발행 같은 소비 진작에 필요한 실효적인 내용도 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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