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생명정치, 역사적·이념적·문명의 폭력 응시

생명을 대상화하는 권력에 대한 저항 포기하지 않기

어떻게 살 것인가? 정답은 없지만 함께 만들 수 있다

새로운 생명 서사, 다른 세계 만들기에 희망을 건다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주요섭 (사)밝은마을 생명사상연구소대표
주요섭 (사)밝은마을 생명사상연구소대표

작가 한강의 노벨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후, 나는 ‘2박 1일’ 동안 밤낮으로 꼬박 한강의 책을 읽었다. 오래전 읽다 말고 책장에 꽂아두었던 『소년이 온다』를 밤새 읽고, 전자책으로 『작별하지 않는다』와 『채식주의자』와 『흰』을 연달아 읽었다. 눈물 나게 고통스럽고, 눈물 나게 감사했다. 그리고 일어난 하나의 생각, ‘한강의 생명정치‘.

칼날 위를 전진하는 몸

한강의 생명은 신체적이다. 그래서 고통스럽고 불편하다. 보통의 경우 ’심리적인 사건‘은 괴로울지언정 고통스럽지는 않다. 견딜 만하다. 그러나, 어떤 경우엔 가슴을 후벼파고 애간장을 태운다. 견디기 어렵다. 『소년이 온다』를 쓴 후 그녀의 신체는 고통스런 시간을 통과하고 있었다.

“나의 지난 사 년은 껍데기에서 몸을 꺼내 칼날 위를 전진하는 달팽이 같은 무엇이었을 것이다. 살고 싶어하는 몸. 움푹 찔리고 베이는 몸. 뿌리치고 껴안고 매달리는 몸. 무릎 꿇는 몸. 애원하는 몸. 피인지 진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끝없이 새어나오는 몸.”(『작별하지 않는다』.)

“살고 싶어하는 몸. 움푹 찔리고 베이는 몸. 뿌리치고 껴안고 매달리는 몸. 무릎 꿇는 몸. 애원하는 몸”. 그리고, ’핏물‘이면서 ’진물‘이면서 ’눈물‘인 알 수 없는 액체가 새어나오는 몸, 그것이 우리의 몸이다. 생명이다. 『소년이 온다』의 ’동호‘의 몸도, 『작별하지 않는다』의 앵무새의 몸도, 『채식주의자』의 ’나무‘의 몸도, 『흰』의 개의 몸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죽은 자들의 신체마저도.

우리가 죽은 자들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여전히 몸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의 몸은 분쇄된, 물기와 같이 축축한, 혹은 기체화된 몸일 것이다. 그러나 죽은 자들 역시 실제적이고 체험적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메를로 퐁티를 빌려 ’살(la chair)‘이라고 말해도 좋고, 동아시아의 문법대로 ’기(氣)‘라고 말해도 좋다.).

몸은 느껴지고 감응되며, 어떤 소리를 낸다. ’귀신 소리‘가 그것이다. 떨림과 울림이 있다. 그리고 천지공심(天地公心)의 마음을 가진 이는 간혹 판소리에서 말하는 ’귀신의 울음 소리(鬼哭聲)‘을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 한강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언젠가 우리는 한강의 ’귀신 웃음 소리(鬼笑聲)‘를 들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15일 국회도서관에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2024.10.15. 연합뉴스
15일 국회도서관에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2024.10.15. 연합뉴스

그녀의 실루엣에 소스라치는 생명

문제는 신체가 폭력에 몹시 취약하다는 것이다. 심리적 괴로움도 신체를 고통스럽게 만들지만, 웬만해서는 견딜 수 있다. 나의 경험으로도 그렇다. 오래전 학생운동 시절 그들의 폭언과 조롱이 나를 괴롭히기도 했지만, 나를 결정적으로 공포에 빠뜨린 것은 물리적 폭력이었다. 그리고, 폭력을 경험한 신체는 한강의 작품 『흰』에서의 ’개’처럼 자동적으로 반응한다.

”개가 계속해서 소스라치며 뒤로 물러설 때마다 쇠사슬 소리가 정적을 깼다. 두 개의 검은 눈이 소리 없이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더 소스라치며, 낮은 몸을 더 낮추고 뒤로 물러서며 차르르, 사슬 소리를 냈다. 그녀의 얼굴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은 채였다. 공포. 그 눈이 공포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아보았다.”(『흰』)

생명에게는 폭력의 전조를 예감하고, 예측하는 능력이 있다. 혹 그 개를 공포로 빠뜨린 것이 인간이었다면, 어린 소녀의 실루엣에도 개는 경기를 일으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에게는 청색 자켓만 보아도 가슴이 철렁하던 시절이 있었다.

생명에게 이념과 역사는 의지처이기도 하지만,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다. ’이념적 진리‘의 이름으로 수많은 목숨줄이 절단되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역사적 신념‘의 이름으로 생명을 구속하고 단죄하는 현장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대규모로, 집단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작가 한강은 제주 4.3사건을 통해 그것을 극적으로 증거한다.

그런 맥락에서 한강의 생명정치는 무엇보다 ’몸의 정치‘다. 그리고 몸의 정치는 타자의 ’몸-생명‘의 고통과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한강의 생명정치는 역사적 폭력, 이념적 폭력, 문명의 폭력을 온몸으로 응시한다.

 

지난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을 찾은 시민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작품들을 고르고 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그의 작품들을 읽으려는 독자들이 몰리면서 한강의 책들은 엿새 만에 누적 기준으로 100만부 넘게 팔렸다. 2024.10.16. 연합뉴스
지난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을 찾은 시민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작품들을 고르고 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그의 작품들을 읽으려는 독자들이 몰리면서 한강의 책들은 엿새 만에 누적 기준으로 100만부 넘게 팔렸다. 2024.10.16. 연합뉴스

산 자도 죽은 자도 ’작별하지 않는다‘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 이유에 대해 “신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식”이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그렇다. 생명은 신체적이지만, 동시에 생명은 산 자와 죽은 자를 넘나든다. 공존한다. 적어도 동아시아를 사는 우리에게 죽은 자의 세계는 실제적이다. 귀신의 존재가 그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별할 수 없다. 역사적 평가를 마쳤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이 만들어지고, '제주 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만들어졌지만, 우리는 1980년 광주와 4.3의 제주와 작별할 수 없다. 그것은 다짐의 문제가 아니다. 이승은 물론이거니와 저승과도 작별할 수도 없고, 작별한 적도 없다. 그런 점에서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프랑스어 번역 “불가능한 작별”은 정확하다. 산 자와 죽은 자는 분리될 수 없다.

작가 한강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살아있는 생명들과 죽어서도 살아있는 귀신들을 생각했기에, 혹은 감응했기에 잔치를 벌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감정이입만이 아니다. 인간 귀신만이 아니다. 천지의 모든 귀신과도 작별할 수 없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것은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명을 대상화하는 권력에 대한 저항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경우 그것은 살아남기 위해 결단하는 ’굴신(屈身)‘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나에게 생명정치는 이중적이다. 권력을 양도하여 근대국가를 추동한 것도, 권력의 폭력에 맞서 저항하는 것도 ’생명력의 힘‘인 것이다.

’이념‘으로서의 생명평화, ’염원‘으로서의 생명평화

이념과 종교 역시 (헤겔이 말한 ’이성의 간계‘에 빗대어 말하면) ’생명의 공모‘인지도 모른다. 특별히 인간 생명은 추상(抽象)과 분별을 통해 하나의 이념과 서사를 지어내고 문명을 구축했다. 공동의 생명세계를 창조했다.

오늘날 보수 기독교를 배경으로 하는 극우의 생명정치는 생명을 극단적으로 분별하고, 이를 통해 생명세계를 둘로 가른다. 동성애를 불온시하고, 트랜스젠더를 ’비정상‘으로 취급하고, 낙태를 무조건 단죄한다. 거기엔 공포에 떠는 생명도 없고 폭력을 행사하는 생명도 없다. 저항하는 생명도 없고 굴신하는 생명도 없다. 산 자의 세계와 죽은 자의 세계를 오가는 생명도 없다. 생명세계를 주관하는 유일한 신적(神的) 질서만이 있을 뿐이다.

좌파의 생명정치는 생명을 이상적으로 추상화한다. 생명은 평화로워야 한다. 생명이 곧 평화다. 그런 맥락에서 한강의 노벨상 수상자 선정에 대한 <한국작가회의>의 논평이 눈에 띈다. <작가회의>는 지난 11일 낸 논평에서 한강의 문학을 “생명과 평화를 탄원“이라고 썼다. <작가회의>는 "한강의 영광은, 여린 생명을 감싸안은 문학언어를 위한 축복"이라며 "한강의 문학적 문제의식은 생명과 평화를 탄원하며, 한국문학의 선배 세대가 꾸준히 일구어온 질문을 더 깊고도 집요하게 심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생명평화’의 이념과 가치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전북생명평화포럼(준)>의 운영 책임을 맡고 있고, <생명평화 향연>의 운영진의 일부로 참여하고 있다. 오는 12월 <생명과 평화의 길> 2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그 공연의 형식이 ‘굿’이라는 점이다. 귀신소리를 포함해 소리를 모으고 있다.).

생명의 본성은 평화일까? 생명에 어떤 본질적인 속성이 있을까? 실제의 세계에서 생명은 평화롭지 않다. 괴로움과 고통의 늪이다. 생명은 평화를 염원하지만, 한강의 작품이 잘 보여주듯이, 생명은 두려움에 떨고, 그리워하고, 애가 타고, 죽을 것을 뻔히 알고 죽음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한강은 분명 ‘생명’의 ‘평화’를 염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작가 한강의 이념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좌파 한강’은 두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생태주의자’ 한강이나 ‘페미니스트’ 한강, 혹은 ‘생명평화’ 한강도 진실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정답은 없다. 함께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인간 생명에게 분별과 이념은 벗어날 수 없는 삶의 전제조건이다. 더욱 발전시켜야 할 인간의 역능이다. 생명사상 역시 ‘사상을 앞세우지 않는 사상’일 수는 있지만, 하나의 사상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글을 써 세상과 만나는 작가 한강은 묻는다. 이를테면 이렇다. 세상은 이토록 고통스러운데, 이 세상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한강 스스로도 그렇게 말했거니와 대다수 평자들도 이렇게 말한다. 한강의 작품은 답을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질문을 할 뿐이라고.

우리는 생명 중에서도 ‘인간’ 생명이다. 인간 생명은 생명세계를 느끼고 경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섬세하게 관찰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 생명의 아주아주 특별한 점, 언어를 사용해 말하고 쓸 수 있다. 기술(記述)할 수 있다. 그렇다고, 생명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말하고 쓸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채식주의자』의 영문 번역자가 말한 것처럼 한강의 소설은 ‘진실’하다. 『채식주의자』에서 세 명의 화자는 관찰자일 뿐이다. 각기 다른 관찰자가 각기 다른 관점에서 기술한다. 정답은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살아야 한다.“ 한강은 권유한다. ”불편한 질문 속에서 견디며 머물러 보는 게 어떨까요?”

이제 남은 과제는 이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살라는 명령(生命)‘은 하늘의 것이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삶의 조건을 만들 것인가?‘는 인간의 몫이다. ’인간/비인간‘의 공동과제다. “생명 살림의 사회적 형식인 ’사회체계/사회환경‘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왼쪽)가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아이파크타워에서 열린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 참석한 후 책에 사인하고 있다. 2024.10.17. 연합뉴스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왼쪽)가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아이파크타워에서 열린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 참석한 후 책에 사인하고 있다. 2024.10.17. 연합뉴스

“앞으로는 생명에 관한 이야기를 써 보려고 해요.”

작가 한강의 이전 인터뷰 기사가 눈에 띈다. 지난 해 11월 메디치상 수상 기자간담회에서 한 이야기라고 한다.

생명이라는 말이 들어갔기에 하는 말이 아니다. 인류사적 대전환기, 나의 염원을 담아 한강 이전의 세계와 한강 이후의 세계를 상상해본다. 기존의 생명사상이 구약시대 최후의 예언자인 세례 요한처럼 그날을 선포하는데 머물렀다면, 작가 한강을 비롯해 연민의 마음을 지닌 수많은 한강들은 지금 여기 생명사랑의 신약시대를 열 것이다.

우리는 죽은 자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살아있는 자들만이 세계를 균열시킬 수 있다.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 노벨상 작가 한강의 새로운 생명 서사를 기대한다. 새로운 사랑 이야기를 고대한다. 그의 또 다른 세계 만들기에 하나의 희망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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