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공짜는 없다”
돈과 욕망 무한 추구 괴물들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재미’와 ‘이익’에 세뇌당한 시스템의 노예들
늑대 피하려 범을 불러들인 핵발전 옹호
핵전쟁이 될 제3차 세계대전으로 달려가는 인류
입력된 재미와 이익이 아닌 자신의 것 찾아야
한 생명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자살이라고 한다. 살기 위해 태어났지만 막상 살아보니 태어난 이유가 의심스러워지는 상황이 계속되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세상에 죽으려고 태어나는 생명은 없다. 천방지축 뛰어노는 어린아이를 보면 생명의 약동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하지만 그 아이가 커서 사리분별을 하게 될 즈음부터 생명의 약동은 사회와 부딪치면서 점점 힘을 잃어간다. 이 사회화 과정을 잘 견뎌내면 ‘정상인’, 견뎌내지 못하면 ‘비정상인’으로 취급된다. 자살은 당연히 비정상인 가운데 일어난다. 이렇게 보면 자살은 확실히 사회의 산물이다. 누군가 자살을 하면 측은해하면서도 자살한 사람을 비난하는데, 실은 자살을 하게 만든 사회가 더 비난받아야 한다. 우리나라가 자살률 세계 1위이고, 20대 청년의 사인 가운데 자살이 1위라는 사실은 한국 사회가 그만큼 살기 힘들다는 증거이다. 그럼에도 유튜브에 들어가 보면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선진국이라는 '국뽕' 영상물이 넘쳐난다. 사회 전체가 집단으로 정신분열 상태에 빠져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자살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문명
자살이 사회적 산물이라면 문명은 어떨까? 문명은 추상 개념이지만 태어나서 성장하다가 쇠퇴하고 사라지는 것을 보면 사람과 다를 게 없다. 다만, 사람처럼 의지를 가지고 자살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문명의 흥망성쇠를 살펴보면 마치 자살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처럼 한 방향으로 미친 듯이 달려가는 경우가 있다. 문명이 몰락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흔한 것이 사회의 부패와 기후환경의 변화이다. 전자는 내적 원인이고 후자는 외적 원인이다. 어느 하나의 이유로도 문명이 몰락할 수 있으나 둘이 합쳐질 경우에는 확실히, 단기간에 몰락한다. 아마도 인류문명이 금세기 내에 몰락한다면 이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가이아'의 명령을 어긴 인간
현재의 문명이 자살을 향해 치닫고 있는 분명한 징후는 기후위기에서 볼 수 있다. 약 50억 년의 나이를 갖고 있는 지구는 놀라울 정도의 항상성을 유지해왔는데, 이는 물리적 순환체계와 생물적 순환체계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루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이 나타나기 전까지 지구에는 5번의 대멸종이 있었다고 한다. 주로 지구 자체의 지질학적 변동과 기후변화, 그리고 운석 충돌 등에 의해 벌어진 일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20만 년 전에 모습을 드러낸 인간을 두고 지구와 다른 생물들은 “이번엔 좀 특이한 놈이 나왔네?” 하며 그때까지 지구 생태계를 풍성하게 만든 생물종 다양성의 하나로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인간이란 존재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생명체였다. 초유기체인 지구를 다스리는 가이아(Gaia)의 명령을 어기고 자기 스스로 법칙을 만들어 지구와 다른 생명체를 정복해나가기 시작했다. 다른 생명체들은 가이아가 정해 놓은 법칙에 따라 살았지만, 인간은 가이아의 명령을 존중하는 척하면서 자기들만의 독특한 생활양식을 만들어 나갔다. 문명(文明)이라는 것이다. 가이아는 당황스러웠다. 다른 넘들은 다 내 품 안에서 먹고 자고 싸는데 이넘은 내가 알지 못하는 재료를 가지고 집인지 뭔지 이상한 것들을 무수히 지어서는 마치 지구 전체가 자기 땅인 양 행세를 한다. 개발인지 나발인지 가는 곳마다 난장판을 만들어 놓고는 지들끼리 쌈질은 또 어찌나 해대는지... 잠시 살다 가는 종자가 이럴 수 있나 싶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가이아가 지구를 다스리는 원리는 단순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There’s no free lunch)”는 원칙 하나만 지키면 된다. 가이가가 하나를 떼어주면 그것을 받아먹고 다른 형태로 하나를 내놔야 한다. 그래야 먹이사슬을 통해 다른 존재들이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이란 넘들은 하나를 떼어주면 자기네 문명을 살찌우는 데에 다 써버리고 대신에 문명 건설의 찌꺼기인 오염물질만 싸지르는 것이다. 그 때문에 가이아의 품 안은 여기저기 썩어들어가고 다른 생명체들은 하나 둘 죽어가고 있었다. 가이아가 견딜 수 없어 때때로 자연재해라는 이름으로 인간을 후려치지만 넘들은 과학인지 뭔지 이상한 것을 들고나와 신통하게도 잘 막아낸다. 과학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가이아의 ‘인간 버전(Human Version)’인데, 가이아의 처지에서 보면 “나를 흉내낸 것을 가지고 나를 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가이아는 결심한다. 이넘들을 내버려 두었다가는 다른 생명은 고사하고 지구 자체가 사달나게 생겼으니 이참에 아예 없애버려야겠다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인간과 문명
사실 가이아는 인간을 없애버리기 위해 특별히 할 일이 없다. 인간이 하는 일들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인간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문명 안에 자살의 요소가 심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자살은 인간이 주위 환경과 어울리지 못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인데 문명 역시 자신의 뿌리인 자연과 어울리지 못해 스스로 죽음을 향해 치닫고 있다. 문제는 문명의 설계자이자 관리자인 인간이다. 인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연을 배경으로 문명을 만들어서는 다른 생물종 위에 군림하면서 ‘겸손’을 잃어버린 것이다. 겸손에는 공생, 조화, 균형, 배려 등 여러 가지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내가 제일 잘나가”라는 우월 의식이야말로 가이아 파괴의 핵심이다. 내가 잘나가면 그만큼 다른 누군가가 대접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구라는 닫힌계에서는 그 원칙이 더 철저히 지켜진다. 그러고 보니 요즘 잘나간다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겸손은 힘들다고 노래하는 자들이 많기는 하다.
돈과 욕망을 무한 추구하는 괴물들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잘하는 사람, 또는 잘나가는 사람에 대한 대우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나은 것은 자연스런 이치다. 그러나 거기에도 한계가 있어야 한다. 잘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쏟아주면 전체의 균형이 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체제에는 한계가 없다. 누군가 그로 인해 돈을 벌 수 있으면, 스타 한 명에게 모든 걸 쏟아붓는다. 그렇게 되면 동종 업계의 대부분은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장과 대중은 그 스타 선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짜릿하고 흥분되기 때문이다. 판이 이렇게 돌아가면 모든 선수들은 자본가와 대중의 총애를 받기 위해 삶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일반인의 관점에서 보면 프로 선수는 거의 괴물에 가깝다. 괴물이 되기 위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한다. 사회가, 문명이 괴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스포츠뿐 아니라 인간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도 그렇다.
괴물이 지배하는 세상을 유지하는 몇 개의 기제가 있다. 하나가 돈이 되면 무엇이든 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이고, 또 하나는 인간의 무한한 욕망이다. 이 두 가지가 ‘국가’라는 허구의 공동체를 통해 작동할 때 세상은 지옥이 된다. 생태계 파괴, 지구온난화, 기후위기, 끝없는 전쟁, 구조적 가난과 착취 등 모든 것이 이 구조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문명이 짜릿하고 재미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이 문제다. 젊은이들은 말한다. 재미가 없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나도 철없는 젊은 시절엔 그랬다. 나이 서른까지 재미있고 짜릿하게 살다가 죽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정말 거짓말처럼 서른 살에 무기수가 되어 감옥에 갇히고 만다. 그 안에서 무수한 사색을 통해 나의 그런 생각이 실은 사회와 문명이 내게 강요한 것이며 그런 강요를 통해 재미를 보는 사람들이 따로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재미’와 ‘이익’에 세뇌당한 시스템의 노예들
물건을 만들어 팔아 이익을 남기는 것, 욕망을 실현하여 자존감을 높이는 것, 그리고 국가라는 공동체를 통해 삶의 영역을 확장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것 등은 전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문명은 이런 일들의 반복을 통해 더욱 세련되고 고차원적으로 발전해왔다. 문제는 특정 무리들이 이 세 가지를 하나로 묶어서 대중을 세뇌시켜 영속적인 노예상태로 만들었을 때이다. 세 가지를 묶어 대중을 세뇌하는 데에 작동하는 기제가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재미’이고 또 하나는 ‘이익’이다.
시스템의 설계자들은 어떻게 하면 대중이 자기네가 만든 상품에서 재미와 이익을 찾아볼 수 있을지 불철주야 노력한다. 재미가 있으면 이익이 없거나 적더라도 계속 찾을 것이고, 이익이 있으면 재미가 없어도 꾸역꾸역 찾게 마련이다. 둘 다 보장되면 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드디어 세뇌는 완성되고 대중은 특별한 자극이 없어도 스스로 알아서 설계자가 의도한 길을 찾아가게 된다. 세뇌된 대중은 돈 많이 벌고, 열심히 욕망을 추구하고, 국가에 충성하면 훌륭한 인생을 사는 것으로 안다. 그렇게 하지 못한 사람들에겐 비애국자, 낙오자, 비시민, 루저, 비정상 등 온갖 부정적 딱지를 붙여 차별한다. 이런 일이 국가를 넘어 나라들 사이에서, 더 나아가 전 지구적으로 벌어짐으로써 지구적 차원의 생태위기를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개개인은 사회가 또는 국가가 하라는 대로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어찌하여 이런 위기를 마주해야 하는지 실감 나지 않을 것이다.
늑대 피하려 범을 불러들인 핵발전 옹호
가장 쉬운 예로 핵발전을 들어보자. 핵발전을 옹호하는 자들은 우라늄 1g에서 얻는 에너지가 석탄 3t에서 얻는 에너지보다 많다며 당장에 모든 에너지를 핵발전으로부터 구할 것을 요구한다. 현대문명의 특징이 효율성의 추구라면 이보다 더 효율적인 에너지는 없을 것이다. 효율이 어마어마하므로 이익도 어마어마하다. 여기서 잠시 멈추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가이아의 원칙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그 어마어마한 효율성의 대가는 바로 처리 불가능한 오염물질의 배출이다. 다 사용하고 남은 핵쓰레기는 최소 10만 년에서 최대 백만 년은 두어야 자연 상태로 돌아간다. 엄격히 말해 핵에너지는 아무리 효율이 좋아도 꺼내 써서는 안 되는 에너지이다.
사실 핵에너지는 처음부터 발전용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전쟁 중에 상대방을 한 방에 제압하기 위해 만든 폭탄에서 비롯되었다. 핵발전이라는 것은 폭탄을 서서히 터뜨려 가면서 에너지를 얻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핵물질에서 나오는 방사선에 노출되면 ‘피폭(被爆)’되었다고 말하는데, 이는 폭탄을 맞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째서 사람들은 이토록 위험한 물질을 꺼내어 쓰는 걸까?
이익이 되면 무엇이든지 하는 자본주의와 자신의 욕망을 무한대로 실현하고픈 핵산업 종사자와 과학자들, 그리고 에너지와 핵무장으로 국가를 강화하고픈 위정자들 때문이다. 요즘엔 여기에 환경론자들까지 끼어들었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눈앞의 늑대를 피하려고 범을 불러들이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극도의 효율성을 추구하여 한때 세계 2위의 경제력을 자랑하던 일본은 활성 지진대 위에다 핵발전소를 무려 60개나 지었다. 미쳐도 단단히 미친 사람들이다. 결국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핵발전소 4기가 터져 일본 본토는 물론 태평양을 방사능으로 오염시키고 말았다. 오염이 한 번에 그친 게 아니라 1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핵오염수가 산과 바다로 흘러들고 있다. 그런 엄청난 사고를 겪고도 일본은 현재 12기의 핵발전소를 가동 중에 있으며 앞으로 계속 재가동을 확대해 나갈 작정이다. 사고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위에 말한 세 가지 늪에 빠지면 죽을 때까지 가던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자살문명이다.
핵전쟁이 될 제3차 세계대전으로 달려가는 인류
핵발전만이 문제가 아니다. 지금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 지역에서 전쟁이 한창이다. 지역에 대한 헤게모니를 계속 유지하려는 서구 열강과 지역의 맹주들 사이의 싸움이다. 특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전쟁이 우려되는데 갈수록 핵전쟁의 위험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전력상 도저히 이길 수 없음에도 서구 열강의 지원을 받아가며 전쟁을 지속하고 있다. 이미 국민의 절반이 사망했거나 국외로 탈출했고 자원은 바닥났지만, 우크라이나 지도부는 전쟁을 계속해야만 자신의 생명과 자리를 지킬 수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뼈를 갈아 넣으며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서구 열강도 전쟁의 여파로 경제가 말이 아니라서 전쟁을 중단하고 싶지만 지금까지 투자한 것이 아깝기도 하고 도저히 체면이 서지 않아 그만두겠다고 말도 못한다. 핵심 지원국가인 미국은 선거를 앞두고 전쟁에서 발을 빼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다급해진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러시아 본토를 공격함으로써 서구 열강의 지원을 끌어내려고 안달이다.
만약 서구 열강이 잘못 판단해 러시아 본토 공격을 승인하게 되면 이후로 전개될 상황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핵전쟁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제3차 세계대전은 필연코 핵전쟁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기후위기도 위기지만 핵전쟁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다. 한때 식민지였던 미국은 두 번의 세계대전을 통해 초강대국으로 우뚝 서게 되었는데 시간이 지나 지금까지 누려왔던 특권적 위치가 불안해지자 또다시 세계대전을 일으킬까 말까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가상이지만, 미 본토가 전장이 되지 않고 제한된 핵전쟁을 통해 적들을 주저앉힐 수 있다면 미국은 전쟁을 일으킬 것으로 본다. 정확히 말하면,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연출할 것이다. 모든 나쁜 일은 한꺼번에 일어난다고 했는데 인류 멸망도 비슷한 경로를 밟고 있지 않나 심히 우려된다.
핵발전소는 핵폐기물과 핵전쟁 외에 입지 선정의 문제도 있다. 현재 세계에는 모두 420개 정도의 핵발전소가 있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이 해안가나 큰 강가에 있다. 냉각수를 쉽게 확보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해수면이 계속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수면의 상승은 더 강력한 태풍과 홍수를 유발하기 때문에 핵발전소의 위험도 가중된다. 인간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망하는 건 좋은데 살아남은 사람과 나머지 생명체들은 도대체 무슨 죄가 있다고 방사능에 오염된 지구를 떠맡아야 하는가?
입력된 재미와 이익이 아닌 자신의 것 찾아야
이익이 되면 무엇이든 하는 자본주의와 인간의 무한한 욕망, 그리고 국가 단위로 나뉘어 끝없이 경쟁하며 전쟁을 일으키려는 충동을 억제하지 않으면 인류문명은 필연코 멸망에 이를 것이다. 심각한 기후위기 상황을 눈으로 보면서도 전쟁을 멈추려 하지 않는 전쟁광들에게 멈추라는 말 대신 편을 갈라 싸우는 대중이 있는 한 멸망은 피할 수 없다. 일년 동안 온갖 규제를 통해 자동차 배기가스 배출을 줄여봐야 전장에서 미사일 한방 쏘면 그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된다. 헛수고에만 그치면 다행이다.
전쟁은 그렇지 않아도 나의 작은 노력이 기후위기 극복에 무슨 도움이 될까 하고 미심쩍어하는 대중을 낙담케 하여 될 대로 되라는 태도를 갖게 만든다.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당장! 자본가와 위정자들이 입력한 재미와 이익을 의심하고 자신의 관점에서 제대로 된 삶의 재미와 이익을 찾아야 한다. 쇼핑의 재미보다 스스로 만들어 쓰는 재미가 더 크다는 것을, 남을 짓밟고 올라서서 얻는 큰 이익보다 이웃과 함께 나누는 작은 이익이 더 의미있고 행복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전쟁에 미친 사람들과 이익에 눈이 먼 사람들, 허무한 재미를 퍼뜨리는 사람들에 대한 지지를 거둬들여야 한다. 그들을 고립시켜 자살로 치닫는 문명으로부터 뛰어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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