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생태문명 건설, 대안인가 마케팅전략인가
쓰촨성 청두서 열린 ‘2024 글로벌 판다 파트너스’
인간과 사회, 자연의 조화로운 발전 추구
성장 지속하면서 포스트자본주의 시대에 대응
하얗고 우람한 몸집에 검정 목도리와 선글라스·부츠를 착용한 듯한 외모, 어린아이처럼 땅바닥에 철퍼덕 앉아서 휘어지는 대나무 가지를 양손으로 잡아당겨 아작아작 먹는 모습, 하루 대부분을 먹거나 자면서 보내는 느긋한 습성…. 중국인들이 국보로 취급하는 멸종위험 동물 자이언트 판다(大雄猫)를 바로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판다 외교
2020년 7월 한국에서 태어나서 올 4월 중국으로 건너간 푸바오(福寶)는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2014년 시진핑 주석의 한국방문을 계기로 삼성물산(용인 에버랜드)이 대여한 엄마 아이바오와 아빠 러바오의 장녀로서 탄생부터 시작해 활달하고 영리한 ‘푸 공주’로 자라기까지 전 과정을 온 국민이 지켜보았다.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따라 만4세 이전에 원산지인 중국 쓰촨성으로 귀환한 이후에도 오로지 푸바오를 보기 위해 청두시 인근 워룽 선수핑 판다기지까지 다녀오는 패키지 상품이 생겼을 정도로 열혈팬들이 많다.
지난 11월 26일, 쓰촨성 청두시에서 열린 ‘2024 글로벌 판다 파트너스(GPP)’라는 콘퍼런스에 초대받아 참석했다. 중국 5대 도시로 꼽히는 청두는 『삼국지』에서 유비가 세운 촉나라의 수도이며 지금은 2200만 명이 거주하는 쓰촨성 성도이다. 판다의 고향답게 티엔푸 국제공항에 내리면서부터 도시의 모든 곳에서 판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GPP는 신화통신사 청두 분사와 중국야생동물보호협회 등의 공동 주최로 올해 처음 열렸는데 중국에서 판다를 임대받은 국가의 전문가, 활동가들을 초대해 판다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나누고 친선을 다지는 행사이다. 글로벌 환경 거버넌스에서 중국의 주도권을 확인하고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룬 ‘생태문명’을 홍보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곰과 너구리의 중간쯤 되는 판다는 쓰촨성 일대에만 서식하며 육식동물의 장기를 가졌으면서도 대나무를 주로 먹는 초식동물이다. 다 자란 판다는 몸무게가 100㎏이 넘는데 워낙 열량이 적고 영양이 부족한 대나무를 하루 30㎏씩 먹는 탓에 그 독성으로 인해 잠을 많이 잔다. 청두 인근 네 군데 판다기지에서 사육되는 판다는 보통 오전 9시부터 11시 사이에 나와서 대나무를 먹을 뿐 오후에는 잠을 자느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일 년 중 사흘만 교미할 정도로 번식률이 낮아서 전 세계에 2500마리(야생은 1800마리) 정도 서식한다.
판다는 중국의 중요한 외교 수단이다. 판다가 중국을 상징하는 동물로 세계무대에 등장한 것은 1930년대이며 1980년대부터는 우호적 국가에 커플 판다를 임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중국과 가깝기만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사육과 관리를 위한 상당한 지식과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지금까지 판다를 임대한 국가는 유럽 10개국을 포함해 20개뿐이며 아시아에서는 한국, 일본, 싱가폴, 카타르,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에 판다가 있다. 콘퍼런스에 참석한 모스크바 동물원 관계자는 수십 년간 시행착오 끝에 2023년 러시아에서 처음 태어난 암컷 판다 ‘카추샤’(톨스토이 소설 『부활』의 여주인공 이름)의 성장 일지를 자세히 소개했다.
청두에서 판다는 핵심적인 경제 수단이기도 하다. 대나무 숲이 우거진 판다기지는 전 세계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이며 이곳에서 판매하는 판다 캐릭터 상품은 끝도 없다. 한참 경제가 발전하는 도시답게 청두 도심에는 세계 각국의 명품 숍이 즐비한데 그중 국제금융센터는 판다가 기어 올라가는 장면을 연출한 외벽으로 유명하다. GPP를 계기로 청두와 병마용으로 유명한 시안 등 인근 도시들은 판다를 중심으로 하는 관광산업 활성화를 도모하기로 했다.
생태문명
판다는 ‘청산녹수가 금산은산’이라는 중국 생태문명 정책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자연을 잘 보존하는 것이 경제발전에도 이바지한다는 뜻이다. 중국은 1972년 첫 유엔 인간환경개발회의가 열리면서 확립된 세계 환경 거버넌스에서 주도권을 갖기 위해 2000년대 들어 생태문명이란 개념을 발전시켜왔다. 2012년 후진타오의 권력을 승계한 시진핑 주석은 공산당 헌법에 생태문명 건설을 포함시켰으며 생태문명의 수립이 당대와 미래의 세대에게 모두 이익이 되는 일이라고 천명했다.
당시 생태문명이란 “인간 문명의 발전에서 새로운 개념으로서 인간과 사회, 자연의 조화로운 발전 법칙을 따르는 과정에서의 물질적·영적·조직적인 성취”이며 “문명의 과정을 숙고하면서 사람 간 그리고 사람과 자연과 사회 간의 조화로운 공존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실현하는 윤리적 도덕이며 이데올로기”(주광야오·중국생태문명촉진협회)라고 정의된다. 유엔 환경계획은 『그린 이즈 굿(Green is Gold)』라는 소개 책자를 내는 등 생태문명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왔다.
2017년 제19차 중국공산당 대표자대회를 계기로 생태문명 정책은 본 궤도에 들어섰다. 대회 보고서에 따르면 “생태문명 건설은 신시대 사업으로 산업문명이 일정한 역사적 단계로 발전한 산물이자 인류문명 발전의 역사적 추세이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인 중국몽 실현과 관련되는 대사”이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전체 인민의 생활 수준을 높이기 위한 샤오캉(小康) 정책을 변함없이 추진하면서도 아름다움과 조화로움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생태문명은 급속한 경제발전 과정에서 희석되는 공산사회의 이데올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진정성을 놓고 수많은 논란이 벌어졌다. 개발도상국은 물론 선진국조차 경제개발을 자연보호보다 더 중시하는 상황에서 생태문명이라는 담대한 개념을 제시한 중국 정부를 지지하는 개인과 단체도 많았지만 동시에 녹색 관련 산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으려는 중국의 마케팅 전략이라는 의심도 커졌다. 중국은 전통적인 화석연료 산업을 발전시키면서도 일찍이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와 전기자동차 등에 국가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해 왔다. 이들 상품을 세계시장에 판매하는데 필요한 구호로서 생태문명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청두만 해도 서부 대개발의 중심지로서 엄청난 경제발전을 추진하는 게 느껴진다. 대규모 국제공항을 지은 지 10년 남짓 되었고 신시가지에 들어선 ‘신세기 글로벌센터’는 단일면적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연면적 51만 평(176만 ㎡)의 복합문화공간으로 미국 펜타곤의 3배에 이른다. 도시를 방사형으로 둘러싼 네 개의 원환 도로 바깥으로 계속 도로가 확충되며 바이오 클러스터를 목표로 한 고층건물 건설도 한창이다. 차도에는 테슬라보다 인기가 높은 중국산 전기차 비야디(BYD) 못지않게 대형 벤츠, 볼보, 아우디가 즐비하다.
국가 정책으로서 생태문명은 경제성장을 지속하는 동시에 포스트자본주의 시대에 대응한다는 투 트랙 전략에 가깝다. 해안에는 원자력발전소를 짓고 내륙에는 태양광발전소를 짓는다. 도로를 건설하면서 그 둘레에 공원을 만든다. 모든 이들이 좋아하는 판다를 내세워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강조하지만 어디까지나 생태중심주의가 아니라 인간중심주의이다. 그렇다면 생태문명이라는 구호는 기만이고 허상일까? 진짜 대안은 정부가 아닌 민간, 도시가 아닌 향촌에서 찾을 수 있다.
향촌건설운동
콘퍼런스 다음 날, 중국후현대발전연구원 대표인 왕찌허(王治河) 박사와 함께 청두 북쪽 푸장현 티에뉴츤(鐵牛村)이라는 곳을 방문했다. 이곳은 3000여 명의 주민이 1980년대부터 오렌지를 키워온 농촌이다. 그런데 고령의 구촌민과 구별되는 젊은 신촌민이 들어오면서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11월 ‘탐미생활’이라는 컨소시엄을 만들어 마을을 바꾸고 있다. 우리를 안내한 자오징(趙璟) 박사는 UCLA를 졸업한 생화학자인데 상하이에서 제약회사에 다니다가 친환경 건축가이자 향촌건설운동가인 남편 시궈핑(習国平), 두 아이와 함께 이곳으로 이주했다. 부부는 60여 명에 이르는 신촌민 그리고 300여 관계 인구의 지도자이다.
이들이 먼저 한 일은 오렌지 농사를 유기농업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농약이나 비료를 뿌리지 않은 오렌지는 단맛이 덜한 대신 껍질까지 먹을 수 있고 땅을 부드럽게 만든다. 유리병에 채집해놓은 흙은 몇 년 사이 딱딱하고 밝은 갈색에서 부슬부슬한 검정으로 바뀌었다. 마을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는 식당의 주메뉴는 채식 훠궈 샤브샤브인데 인근에서 지배된 유기농 채소와 콩고기로 구성됐을 뿐만 아니라 잘 말린 오렌지 껍질을 넣어 향긋한 냄새가 난다.
신촌민들은 오렌지를 활용한 다양한 상품을 개발했다. 오렌지 마멜레이드, 오렌지 차, 오렌지 과자, 할머니들이 손뜨개로 만든 오렌지 모양 장식품 등을 식당과 붙은 작은 가게에서 팔고 있다. 마을 활동의 중심이 될 커뮤니티 센터를 짓고 있는데 기초에도 전혀 콘크리트를 사용하지 않으며, 에어컨 대신 자연 공조시설을 활용한 친환경 건축물이다. 기존에 사용하던 마을회관에는 탐미생활의 역사를 잘 기록했다.
이런 장소가 만들어진 이유는 지방정부의 유인책과 젊은 세대의 욕구가 잘 맞았기 때문이다. 푸장현은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바이오 관련 연구개발단지를 조성하면서 여기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마을과 연계해서 아이를 키우고 살아가도록 배려했다. 당초 자오징 박사 부부에게 이주를 제안한 이유이기도 하다. 초기 신촌민들의 헌신 덕분에 다양한 직군의 고학력자들이 마을에 들어오면서 경제뿐 아니라 보육과 교육, 문화시설이 향상되고 있다. 쓰촨성은 이처럼 살기 좋은 2000개의 마을, 100개의 고품질 마을을 육성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한국도 농촌으로의 인구 유입 정책을 쓰고 있다. 지방소멸의 대안으로 여러 가지 혜택을 주면서 은퇴자나 일부 젊은 층이 비싸고 경쟁적인 도시를 떠나서 시골에서 삶의 기반과 일자리를 찾고자 한다. 그러나 차이라면 중국은 20세기 초반부터 시작된 향촌건설운동의 오랜 전통 아래 있다는 것이다. 서구의 근대화, 산업화에 맞서 주권과 농촌을 지키려는 삼농(농업·농민·농촌) 운동이다. 거대한 중국 인민을 먹여 살리는 건 결국 농업이며 이는 자본주의 경제의 불황에 대한 완충장치로서 농촌이 존재해야 한다는 농업경제학자 원톄쥔(『백년의 급진』 저자)의 사상으로 이어졌다. 티에누츤 역시 이런 전통과 연결돼 있다.
자본주의는 최고의 기술과 생산성을 가능하게 만든 매우 효율적인 경제 제도이다. 담대한 도전과 혁신, 재능과 노력에 적합한 보상을 준다. 그러나 대지에 뿌리내리고 고유의 습성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무대는 더불어 삶이 가능한 마을이다. 젊고 뛰어난 중국 젊은이들이 티에뉴츤 같은 곳으로 모여들고 다양한 실험이 이뤄지는 것은 중국 생태문명의 다른 모습이다. 공식적인 구호가 그 내용을 전부 채우지는 못하더라도 사회적 지향을 제시하고 사람들의 행동을 촉진한다는 점에서 생태문명이라는 말은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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