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료 대폭 늘리며 소득대체율 찔끔 인상

연령 따라 보험료율 차등…“세대 갈라치기”

퇴직·개인연금 지원 확대…노인 불평등 심화

“위장된 재정 안정화, 분칠한 연금 삭감안”

시민단체 “반통합적…논의할 가치도 없어”

“정부의 연금 개혁안은 ‘위장된 재정 안정화, 위장된 연금 삭감 개혁’이며 세대 간 갈등을 증폭시키는 반통합적 방안으로 국회에서 논의할 가치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참여연대 연금행동 정책위원회는 더불어민주당 남인순·김남희 의원과 공동으로 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윤석열 정부 연금개혁 방안 분석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은 총평을 내놨다. 이날 간담회에서 참여연대는 이런 평가에 대한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며 정부 연금개혁안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가 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연금개혁 방안 분석 기자간담회’에서 정부의 국민연금 개혁안을 평가하고 있다. 2024.9.5. 연합뉴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가 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연금개혁 방안 분석 기자간담회’에서 정부의 국민연금 개혁안을 평가하고 있다. 2024.9.5. 연합뉴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윤석열 정부 연금 개혁안

개혁안의 골자는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 인상, 기금고갈을 막기 위한 자동 조정장치 도입,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지원 확대, 기초연금 40만 원 인상 등이다. 이 중 가장 논란이 되는 대목은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 인상안과 자동 조정장치 도입안이다. 특히 단순하게 나이에 따라 보험료율을 차등 적용하는 것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제도이고 세대간 갈등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연령별 보험료 인상에 차등을 두면 예상할 수 있는 부작용이 한둘이 아니다. 정부는 40~50대는 20~30대보다 보험료를 덜 부담하고 연금을 더 많이 받는다는 점을 차등 인상의 근거로 꼽았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연금 같은 사회보험은 개인의 소득과 재산에 따라 부담을 결정하는 게 원칙이다. 재산과 소득이 많을수록 부담을 늘려야 한다. 현행 제도도 이 원칙을 따르고 있다. 단순히 출생 연도를 기준으로 보험료를 책정하는 것은 사회보험의 근본 원칙을 무시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한 살 차이로 보험료 부담이 적지 않게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다. 참여연대 분석에 따르면 2028년 기준 만 53세인 1975년생과 만 52세인 1976년생은 출생 연도 한 해 차이로 보험료가 2%포인트나 차이가 난다. 400만 원으로 소득이 같을 때 1975년생은 1976년생보다 약 8만 원을 더 부담해야 한다. 형평에 맞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다.

 

 자료 : 참여연대. 시민공론화 다수안과 윤석열 정부 연금개혁안 비교.
 자료 : 참여연대. 시민공론화 다수안과 윤석열 정부 연금개혁안 비교.

보험료율 차등 인상 40~50대 고용 불이익 초래

특정 세대에 ‘고용상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기업이 보험료 부담이 큰 40~50대 고용을 꺼릴 수 있다는 뜻이다. 50대는 기존 직장에서 퇴직해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는 연령대다. 결국 세대 간 보험료 차별은 40~50대 재취업을 저해하고 생애 소득 감소로 인해 노인 빈곤 취약성도 높일 우려가 있다는 게 참여연대 지적이다.

더욱이 50대 취업자 중 비정규직과 자영업자 비중은 51%로 매우 높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50대는 직장 가입자보다 지역 가입자 비중이 높을 것이라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차등 보험료를 적용하면 50대 보험료 부담은 확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같은 세대 안에서도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저소득층은 보험료를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다. 참여연대는 “나이별로 보험료 인상에 차등을 두는 제도는 어느 나라도 도입한 적이 없는 기괴한 발상이며 노인부양 문제를 세대 간 연대에 기반해 해결한다는 공적연금의 기본 원리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또 “차등 보험료는 잠재된 세대 간 연금 갈등에 불을 지를 수 있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강조했다.

 

4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정부의 연금개혁 추진계획 발표 중계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2024.9.4. 연합뉴스
4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정부의 연금개혁 추진계획 발표 중계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2024.9.4. 연합뉴스

소득대체율 42%로 올려도 OECD의 78% 수준

자동 조정장치는 연금 기금의 고갈로 인한 미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인구와 경제 변화에 대응해 보험료율이나 소득대체율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제도를 말한다. 일본 등 여러 국가에서 시행 중이다. 취지는 그럴듯 하지만 사실상 연금 삭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개혁이 아닌 개악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에 비해 소득대체율이 낮은데 이 제도가 도입되면 연금 지급액은 더 줄어들 수 있다. 노후 생활 보장과 노인 빈곤 문제를 개선한다는 국민연금 취지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다. 지난해 발간된 국민연금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일본이 시행하는 식의 자동 조정장치를 도입하면 평균 소득자의 총연금 수령액이 1.7%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정부는 자동 조정장치를 도입하면서 소득대체율이 40%에서 42%로 올라갈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는 지난 4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시민대표단 공론화 설문조사에서 다수 의견이었던 소득대체율 50%와는 괴리가 크다. 42%로 소득대체율을 높여도 OECD 회원국 평균에는 미치지 못한다. 평균소득 가입자를 기준으로 한국의 공적연금(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소득대체율은 32.9%로 OECD 평균의 77.8% 수준에 그친다.

 

 자료 : 참여연대. 공적연금 소득대체율 비교
 자료 : 참여연대. 공적연금 소득대체율 비교

자동 조정장치 도입하면 총연금액 20% 줄어

참여연대 연금행동이 추계한 바에 따르면 일본식 자동 조정장치를 도입하면 현재 만 44세인 1980년생과 만 32세인 1992년생의 총연금액이 약 20% 삭감된다. 총연금 수급액이 1억 원에서 8000만 원으로 감소하며 소득대체율은 8%포인트 떨어진다. 명목상 40%의 소득대체율이 실제로는 32%가 된다는 뜻이다. 정부는 전년도 연금액보다는 더 많이 받는다고 하지만 물가를 고려하면 궤변일 뿐이다. 참여연대는 “올해 연금액이 100만 원이고 물가가 3% 올랐으면 103만 원 연금을 지급하게 되는데 자동 조정장치가 도입되면 101만 원 또는 102만 원 받게 된다”며 “이것을 가지고 올해보다 더 많이 받는 것이라 삭감은 아니라는 정부 주장은 세계 연금사에서 최대 코미디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같은 사적연금을 강화하겠다는 방안도 공적연금 개혁과는 거리가 멀다. 정부는 대기업부터 퇴직연금을 의무화하고 개인연금에 세제 혜택을 확대하겠다고 한다. 참여연대는 이에 대해 “지난 공론화에서 확인된 공적연금 강화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방안”이라고 질타했다.

현재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은 가입률과 수급률이 국민연금과 비교해 너무 낮다. 가입률이 90%가 넘는 국민연금에 국가 보조를 확대해도 모자랄 판에 개인연금과 퇴직연금 같은 사적연금에 세제 혜택을 확대하겠다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 참여연대는 “사적연금의 다층체계를 구축하는 방안은 장기적으로 필요할 수는 있으나 현재로서는 국민연금의 노후 소득 보장 기능을 훼손하는 대안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자료 : 참여연대. 주요국 연금 자동 조정장치 도입 당시 소득대체율, 보험료율, 노인빈곤율
 자료 : 참여연대. 주요국 연금 자동 조정장치 도입 당시 소득대체율, 보험료율, 노인빈곤율
 자료 : 참여연대.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가입률과 수급률.

시민공론화 다수안이 정부안보다 훨씬 합리적

지난 4월 발표된 시민 공론화 다수 안은 정부가 내놓은 개혁안보다 훨씬 합리적이고 현실적이다. 보험료율을 13%로 인상하되 소득대체율도 50%까지 올리자는 게 핵심 내용이다. 정부가 강조한 재정 안정과 세대 간 형평성에 대한 해법도 담겨 있다. 사전적 국고 투입으로 미래세대 부담을 완화하고 보험료율 인상과 함께 국고 지원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정부안은 ‘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여연대는 윤석열 정부의 연금 개혁안을 총평하며 “보험료 부담은 대폭 늘리면서 국민 삶과 직결되는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급여 수준은 생색내기 인상에 그쳤다”며 “청년을 위해 차등 보험료를 도입한다고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청년들의 연금을 대폭 삭감하는 자동 조정장치를 도입하는 등 앞뒤가 맞지 않는 방안”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지나치게 재정 안정화만을 강조해 저소득 중장년층의 노후 소득 보장을 악화시키는 반면 보험료 인상과 재정 안정화 장치로 기금을 늘려 운용기관인 금융사만 배 불리는 개악안”이라고 비판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