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들 대부분 남성, 담세율 중산층보다 낮아
1조원 이상 자산가 2800명 세금, 자산의 0~0.5%
일본 ‘1억엔의 벽’, 상위 10%가 자산 58% 보유
한국-양극화 심화, 감세로 대규모 세수 펑크
국제 비영리단체인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올라 있는 지난 8월 6일 보도에 따르면, 세계의 초부유층 3000명이 소유한 자산은 14조 4천억 달러로,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3%에 달한다. 1993년에는 이들 억만장자들의 재산이 세계 GDP의 3%도 되지 않았다. 지난 30년간 부자들의 재산은 급속도로 늘었고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에도 그만큼 가속도가 붙었다. 그만큼 세계는 더 불평등해졌다.
억만장자들 대부분 남성, 담세율 중산층보다 낮아
국적 불문하고 이들 억만장자들은 두 가지의 뚜렷한 유사점을 지니고 있다. 그들 대부분이 남성이라는 것,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고용한 사람들을 비롯한 일반적 중간층 노동자들(중산층)보다 훨씬 더 적은 세금(소득 대비)을 낸다는 것이다.
이처럼 부의 집중은 전 세계적 문제다. 지난 7월 25~26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에서 열린 주요 20개국 재무장관 중앙은행총재 회의에서도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다루고 공동성명을 냈을 만큼 심각한 문제다. 그 공동성명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초고액 자산가(ultra-high-net-worth individuals)를 포함한 모든 납세자가 세금에서 공정한 몫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 초고액 자산가의 공격적인 세금 회피 또는 세금 탈루는 조세제도의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 (…) 효과적이고 공정하며 진보적인 조세정책을 촉진하는 것은 국제 조세협력과 목표로 잡은 국내 개혁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한국도 G20에 들어 있다. G20이 설정한 과제를 한국은 제대로 풀어가고 있을까.
1조 원 이상 자산가 2800명 세금, 자산의 0~0.5%
유럽연합(EU) 조세관측소(Tax Observatory)가 지난해 10월에 발표한 보고서에는 세계에는 총자산 10억 달러(약 1조 3490억 원) 이상인 초부유층이 2800명 정도 있고, 그들이 내는 세금은 자산 대비 0~0.5%에 지나지 않는다고 돼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의 가계가 자국 바깥에서 보유하고 있는 금융자산은 2022년 현재 세계 GDP의 약 12%다. 그 중 일부가 조세회피처(Tax Heaven)로 흘러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비거주자들의 은행 계좌 정보 등을 당국들 간에 교환하는 등 각국이 과세 강화를 위한 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만, 여전히 자산의 25% 정도는 과세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기업의 오너가 자산보유회사 등을 만들어 소득세를 회피하는 것도 실효세율을 낮게 만든다
EU 조세관측소는 초부유층 자산의 2%에 상당하는 자산을 세금으로 내는 최저 과세(부유세)제를 도입해 그 세수를 기후변동 대책 등의 재원으로 쓰자고 제안하고 있다.
부익부 빈익빈, 부의 양극화 심화는 전 세계적으로 정치사회적 혼란을 부르는 주요 원인이며, 억만장자들이 오히려 상대적으로 세금을 더 적게 내는(세금 부담률이 내려가는) 과세 왜곡이 이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이런 왜곡은 조세정책이나 입법을 주도하는 세력이 부자거나 부자들 편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역진적인 ‘1억 엔의 벽’
일본에도 연간소득이 1억 엔(약 9억 원)을 넘어가면 오히려 소득세 부담률이 줄어드는 ‘1억 엔의 벽’이라는 조세 불공평 문제가 있다. 지난 6일 <일본경제신문>은 2022년도 신고 납세자의 소득에서, 소득 5천만 엔(약 4억 5천만 원) 이상 1억 엔 이하 층의 세 부담률은 26.3%인 데 비해, 소득 100억 엔(약 900억 원)이 넘는 층은 17.2%로 크게 떨어진다고 보도했다.
이런 역진적인 조세 왜곡 원인 중의 하나는 금융소득이다. 소득이 100억 엔에 가까워질수록 주식 등의 양도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높아진다. 급여 등의 소득에 부과되는 세금은 누진과세지만 금융소득 과세는 일률적으로 20%(소득세 15%, 주민세 5%, 부흥특별소득세는 제외)로, 고소득자일수로 받는 혜택이 크다.
파리에 본부를 둔 세계불평등연구소는 일본의 자산 분포가 “매우 불평등하지만, 서구 제국에 비해 불평등한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1995년 이후에는 불평등이 더 크게 확대되진 않았지만, 상위 10%가 약 58%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1억 엔 벽 없애겠다던 이시바, 집권 뒤 침묵
이 때문에 10월 1일 새로 집권한 이시바 시게루 총리도 취임 전에는 소득이 많은 부유층일수록 세 부담률이 낮아지는 ‘1억엔의 벽’을 바로잡겠다며 금융소득 과세 강화에 대해 언급했다.
지난 9월에 이시바는 자민당 총재선거 출마 의사를 밝힌 뒤 금융소득세 강화를 “실행에 옮기겠다”고 얘기했다. 그때도 “개인확정출연 연금(iDeCo)이나 신NISA(소액투자 비과세제도) 세를 강화할 생각은 전혀 없다”며 저축보다 투자하는 쪽으로의 변화를 방해하진 않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부유층 금융소득에 대한 역진적 과세 왜곡을 바로잡겠다는 자세는 분명했다.
하지만 집권 직후의 국회 ‘소신 표명’ 연설에서는 이에 대해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 그는 금리 인상에 대해서도 집권 전에는 인상해서 장기간 초저금리의 무제한 금융완화정책으로 왝곡된 경제를 바로잡겠다고 했으나, 집권 뒤에 적어도 당분간 금리를 인상할 상황이 아니라며 말을 바꿨다. 10월 27일로 예정된 총선 결과와 그 이후의 이시바 내각 정책을 두고 봐야겠지만, 당내 기반이 약한 그로서는 자민당 전임 내각들의 기존 정책 틀을 깨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양극화 심화, 감세로 대규모 세수 펑크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역진적 조세 왜곡으로 인한 불평등은 더 깊어지고 더 빨라졌다. 금투세, 종부세 등을 둘러싼 한국사회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부자 감세' 등으로 표출된 윤 정권의 특징적인 면모들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지난해 2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보건복지포럼에 공개한 보고서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 및 격차 실태와 정책적 함의’에 따르면, 순자산 기준 상위 1%가 전체 자산의 10.9%, 상위 5%는 29.3%, 상위 10%는 43.2%를 보유하고 있었다. 자산을 5분위로 나누어 비교할 경우 소득 1분위의 평균 총자산은 2012년 1628만원에서 2021년 2597만원으로 늘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에 고소득 5분위는 10억 1628만 원에서 15억 1688만 원으로 증가했다. 하위 20%의 자산이 약 1000만 원 늘어날 때 상위 20%는 5억 원이나 증가했다.(조선일보 2023년 2월 28일)
서울사회경제연구소와 한국경제발전학회, 산업연구원이 지난 2022년 가을에 공동 주최한 ‘추계 심포지엄’에서 우적신 명지대 교수는 ‘ 윤석열 정부의 조세 개편과 사회복지정책에의 함의’ 발표를 통해 “윤 정부는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를 앞세운 감세 정책의 효과로 고용·투자 증가를 주장하지만, 현재의 경제위기 상황을 고려할 때 성과는 불확실한 데 비해 세수감소는 직접적이고 대규모로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 교수는 “윤 정부는 임기 중 감세 규모가 13조 원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60조 원에 이르고, 자연증가분까지 고려하면 250조 원에 달할 것”이라면서 “윤 정부가 건전 재정을 앞세우고 있으나 감세로 인해 달성이 어렵고, 사회복지·고용분야의 지출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우려했다.(<한겨레> 2022년 10월 28일, 2024년 7월 13일 수정)
2년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우리 사회가 이들 연구소와 학회가 걱정한 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최근 5년간 우리나라에서 세계 조세회피처로 빠져나간 자금 규모는 약 40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신영대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0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국내에서 조세회피처 15곳으로 송금된 금액은 39조 341억 원으로 집계됐다.
연도별로는 2020년 7조 894억 원에서 이듬해 6조 7462억 원으로 감소했지만, 2022년 처음으로 10조 원을 돌파한 10조 6479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도 10조 3831억 원이 조세피난처로 빠져나갔다. 국가별로는 에너지 수입 대금이 포함된 러시아(18조 6252억 원)를 제외하면 케이맨 군도가 17조 2134억 원으로 가장 많다. 이곳은 법인세와 소득세, 상속세 등을 부과하지 않는 곳으로 송금액이 매년 전체 조세회피처의 50%에 육박한다.
법인 규모별 조세회피처 송금 비중은 올해 상반기 기준 대기업이 44.4%로 가장 크다. 공공법인(20.1%)과 금융법인(21.6%)을 포함한 기타, 그리고 중소기업(12.5%)과 개인(1.4%) 등의 순이다.(<노컷뉴스> 2024년 10월 11일)
지난해 우리나라 10대 기업(수입금 상위 10개 기업)이 외국에 낸 세금이 국내에서 낸 법인세의 42.7%에 달했다는 <연합뉴스> 보도도 세수 기반이 가속적으로 약화되고 있는 현실의 단면을 보여 준다.
지난 10일 국세청이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법인의 외국 납부세액은 7조 6464억 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2019년(3조 2758억 원)과 비교하면 약 4조 4천억 원 늘어난 것이다.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확대 기조로 무역 장벽이 높아지면서 해외에 직접 생산체계를 구축하는 우리나라 기업이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수입금액 기준 상위 10대 기업의 외국 납부세액은 3조 547억 원으로 전체 외국납부세액의 40%를 차지했다. 이들의 외국납부세액은 국내에서 낸 법인세의 42.7% 수준이었다. 국내에서 낸 법인세의 절반에 가까운 세금을 외국 정부에 내고 있다는 뜻이다.
상위 10대 기업의 외국납부세액의 국내 법인세 대비 비중은 2021년 14.7%, 2022년 32.6%로 최근 빠르게 상승하는 추세다.(<연합뉴스> 2024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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