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딤돌·버팀목 정책대출 금리 찔끔 인상
주택 공급 빌미로 재건축 규제 대폭 완화
그린벨트 해제 발표에 후보지 땅값 들썩
가계대출 4개월째 증가…주담대가 주도
서울 아파트 거래량 4년 만에 최다 전망
정부가 주택을 매입할 때 낮은 금리로 자금을 제공하는 정책대출 금리를 인상하겠다고 한다.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 급증하며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데다 서울과 수도권 집값이 들썩이자 부동산시장으로 흘러 들어가는 정책 자금을 조이기로 한 것이다. 전형적인 뒷북 대책이다. 정부가 고금리 상황에서도 저리의 정책 자금을 푼 것이 집값 상승을 부추겼다는 점에서 ‘병 주고 약 주는’ 꼴이기도 하다.
이제야 집값 상승 주도한 정책대출 조이기
정부가 뒤늦게 대출 조이기에 나섰으나 집값 안정과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8일 발표된 '8.8 주택공급 대책'에 재건축 규제 완화 등 집값 상승을 부채질할 내용이 대거 포함됐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부동산 보유세를 줄이고 재건축 규제를 풀면서 다른 쪽에서는 대출을 조이는 정책 엇박자로 시장 혼란만 커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정부는 미래 세대를 위해 반드시 보존해야 할 그린벨트까지 풀겠다고 발표해 해제 후보지 주변 땅값을 자극하고 있다.
정부는 디딤돌·버팀목 대출 등 무주택자 등을 위한 정책 금리를 최대 0.4%포인트 올리기로 했다. 서울과 수도권 요지의 집값 상승세가 이어지고 정책 자금을 중심으로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 큰 폭으로 늘고 있어 대출을 조이겠다는 것이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9일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며 “정책대출과 시중은행 주담대 금리 차이가 자꾸 벌어지고 있어 두 금리 차이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60%가 저리의 정책 자금
하지만 이런 취지라면 작년부터 정책대출 금리를 큰 폭으로 올려야 했다. 정책대출과 시중은행의 주담대 금리가 훨씬 더 벌어졌기 때문이다. 주담대 금리는 한때 7% 안팎까지 올랐다. 시중금리만 보면 대출로 집을 사는 수요가 줄면서 문재인 정부 때 급등했던 집값이 조정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특례보금자리론 같은 정책 자금 대출을 통해 수십조 원이 부동산시장에 풀리면서 집값 하락을 막았다. 최근 3개월(4~6월)만 봐도 은행권이 취급한 주담대 중 60%가 디딤돌 등 정책 금융 상품이었다.
최근에는 시중금리가 떨어지며 정책대출 금리와의 격차가 좁혀지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책대출 금리를 조금 높여도 빠른 속도로 상승하는 서울과 수도권 집값을 잡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주택 매입 자금에 적용되는 디딤돌대출은 부부합산 연 소득 8500만 원 이하인 무주택자가 대상이다. 소득이 높을수록 적용되는 금리 수준이 올라간다. 정부는 디딤돌대출 금리를 현재 2.15~3.55%에서 2.35~3.95%로 올리기로 했다. 부부합산 연 소득 5000만 원 이하 무주택자에게 연 1.5~2.9% 금리로 전세자금을 빌려주는 버팀목 대출 금리는 연 1.7~3.3%로 상향 조정된다.
하지만 이 정도 대책으로 가파른 가계대출 증가세를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욱이 올해 저출생 대책으로 내놓은 신생아 특례대출 금리는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국토부는 올해 상반기 주택도시기금 대출 공급액 28조 8000억 원 중 신생아 특례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4%(4조 원) 수준이라고 밝혔다.
가계대출 4개월 연속 증가세…7월에도 5.5조 급증
한국은행이 12일 발표한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7월 말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정책대출 포함) 잔액은 1120조 8000억 원으로 한 달 만에 5조 5000억 원 증가했다. 은행권 가계대출은 올해 3월 1년 만에 하락했으나 4월 5조 원 늘면서 증가세로 전환한 뒤 4개월 연속 늘고 있다. 유형별로는 전세자금 대출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882조 5000억 원)이 5조 6000억 원 늘어난 데 반해 신용대출 등 기타 대출(237조 3000억 원)은 1000억 원 감소했다. 주담대가 가계대출 증가세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5월 이후 서울을 중심으로 증가한 주택매매 거래가 시차를 두고 주택담보대출 실행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대출 금리 하락과 지속적인 정책대출 공급이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은행은 또 “6월 서울 아파트 거래 증가세 등으로 미뤄 당분간 가계대출 증가세도 더 확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은행은 정책대출 금리 인상과 9월 시행될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효과에 대해서도 불확실하다고 주장했다. “디딤돌대출이 5~7월 꾸준히 늘어났는데, (금리 인상이) 큰 흐름을 바꿀 것 같지는 않다. 2단계 스트레스 DSR도 은행들이 어떤 금리 유형의 대출 상품을 내놓을지, 차주들이 어떻게 선택할지에 따라 영향이 달라 지금 효과를 미리 말하기가 쉽지 않다.”
은행권을 포함한 금융권 전체 가계대출도 비슷한 추세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12일 공개한 ‘가계대출 동향’을 보면 은행과 제2금융권을 포함한 금융권 전체 가계대출은 지난달 5조 3000억 원 늘었다. 증가 폭도 6월 4조 2000억 원보다 커졌다. 신용대출 등 기타 대출은 2000억 원 줄었으나 주담대가 5조 4000억 원 불었다.
서울 아파트 거래량 4년 만에 최다 기록 예상
주택담보대출 증가로 서울과 수도권 주택 거래량과 가격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지난달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4년 만에 최다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12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7월 서울 아파트 계약 건수는 계약일 기준으로 6911건이다. 7월 계약분 신고 기한은 이달 말까지로 20일가량 남은 시점에 전월 거래량(7450건)의 92.8%까지 도달한 수준이라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이런 추세라면 7월 거래량은 2020년 12월(7745건) 이후 3년 7개월 만에 최다이거나 이것도 넘어서면 2020년 7월(1만 1170건) 이후 4년 만에 최다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8.8 주택공급 대책’이 집값 불안을 잠재울 것을 기대하겠으나 그렇지 않을 확률이 더 높다. 오히려 서울과 수도권 부동산시장을 더 뜨겁게 달굴 수 있다. 재건축·재개발 촉진법 제정과 3년 한시 용적률 30%포인트 상향, 통합심의 허용을 비롯한 사업절차 간소화, 임대 의무 비율 완화,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폐지 추진 등 집값에 불쏘시개 역할을 할 규제 완화가 모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그린벨트 해제 방침을 밝히자 후보 지역 땅값은 벌써 들썩이고 있다.
주택공급은 대책 발표 후 아무리 빨라도 3년, 대체로 5~30년 걸린다. 당장의 집값 안정 대책이 될 수 없다. 과거에도 주택공급 대책이 오히려 부동산시장을 자극한 적이 많다. 이번에 나온 주택공급 대책도 그린벨트를 푸는 등 집값 상승을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이런 대책을 내놓고 정책 자금 대출 금리를 찔끔 올린다고 서울과 수도권 집값이 안정될 수 없다. 주택 보유세를 더 걷고 부동산시장으로 유입되는 자금의 대출 금리를 대폭 인상하는 동시에 투기세력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관련 규제를 강화해야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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