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상승에 가계 대출도 꺾이지 않아

정책 자금 방출·금리 인하 기대가 원인

정부 집값 띄우고 뒤늦게 대출 조이기

오락가락 정책에 대출 규제 효과 반감

부동산 부양 헛발질로 꼬인 금리 인하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내리는 ‘빅컷’을 단행했다. 미국 고용시장이 가라앉자 통화정책 기조를 긴축에서 완화로 전환(피벗)한 것이다. 연준은 18일 기준금리를 기존 5.25~5.50%에서 4.75~5.0%로 인하했다. 이로써 한국과 미국의 금리 차이는 2.00% 포인트에서 1.50% 포인트로 줄었다. 미국의 금리 인하는 2020년 3월 이후 4년 6개월 만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왼쪽)와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콘퍼런스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2024. 08.28 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왼쪽)와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콘퍼런스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2024. 08.28 연합뉴스

연준이 올해 추가 금리 인하까지 예고한 상태라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난 2022년부터 시작된 고금리 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금리 인하는 정부와 기업, 가계 등 경제주체의 자금 조달 부담을 줄여주고 소비를 촉진하는 등 경기 부양 효과가 있다.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시장에도 호재로 작용한다.

미국 금리 인하에 고민 깊어진 한국은행

그러나 실물 경제는 ‘금리’라는 한 가지 요인만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한 번에 대폭 금리를 내린 ‘빅컷’이 경기침체 신호로 해석되면 호재가 아닌 악재로 돌변할 수도 있다. 금리 인하가 부동산 시장 거품을 키워 경제 성장을 막는 역효과를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금리 인하로 시장에 풀린 자금이 기업 투자와 소비에 쓰이지 않고 부동산으로만 흘러 들어가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현재 한국 경제가 처한 딜레마가 바로 이것이다.

이렇게 된 원죄는 고금리 상황에서도 저리의 정책자금을 마구 풀고 부동산 규제 완화로 끊임없이 집값을 부양했던 윤석열 정부에 있다. 기준금리를 올려야 할 때 올리지 않은 한국은행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자승자박인 셈이다. 미국이 금리를 내렸지만 한국은행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서울과 수도권 집값이 들썩이며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중심으로 가계부채 증가세가 꺾이지 않는 데다 원/달러 환율의 변동성도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불안한 중동 정세 등으로 국제 유가 흐름도 예측하기 힘들어 물가도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차이. 연합뉴스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차이. 연합뉴스

대출 규제 강화해도 줄지 않는 가계부채

정부와 은행권이 대출을 조이기 시작했으나 주담대와 가계부채는 계속 늘고 있다. 집값이 더 오를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수요가 몰리고 있어서다. 은행들이 대출 총액을 줄이고 있고,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에 들어갔는데도 증가세는 멈추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금리를 내리면 부동산 시장이 더 과열될 게 분명하다.

지난 12일 기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전세자금 대출 포함 주담대 잔액은 570조 8388억 원으로으로 이달 들어서만 2조 1772억 원 불었다. 2단계 스트레스 DSR 규제를 앞두고 대출 수요가 몰린 8월보다는 증가세가 다소 둔화하기는 했다. 그러나 월 평균 증가 속도 측면에서 결코 느린 것은 아니다.   

19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5대 은행에서 8월에만 새로 취급된 주택 구입 목적 개별 주담대 총액은 12조 4370억 원에 달했다.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했던 2011년 1월 이후 가장 많은 액수다. 9월에도 신규 취급액은 하루 평균 3400억 원이 넘는다.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은행을 찾으면서 대출 규제 효과가 반감된 것이다. 주담대의 약 70%가 서울과 수도권에 몰려 쏠림 현상도 심하다. 올해 들어 주택 거래가 많았다는 점에서 이런 추세는 최소 2~3개월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5대 은행 가계대출 증감 추이. 연합뉴스

집값 불안과 가계부채 덫에 걸린 한국 경제

가계부채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고금리 상황에서도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매월 통계가 발표될 때마다 기록을 경신했다. 그 원인은 건설과 부동산 경기를 살리기 위한 정부 정책에 있다. 시중 주담대 금리가 6% 안팎을 넘나들 때도 정부는 저출산 등을 명분으로 1%대 저리의 정책자금을 수십조 원 풀었다.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된 자금은 서울 집값을 밀어 올렸고 고금리에도 집값이 하락하지 않자 불안해진 수요자들이 추격 매수에 나서면서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커진 것이다. 결국 정부의 정책 헛발질 때문에 대한민국 경제는 가계부채 덫에 걸려 꼼짝도 못 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미국이 금리를 대폭 내렸는데도 임계점에 도달한 가계 빚 탓에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가 어렵게 됐다. 

정부는 뒤늦게 대출을 조이겠다며 야단법석을 떨고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9일 열린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주택시장이 과열되거나 가계부채가 빠르게 증가하면, 추가적 관리 수단을 적기에 과감하게 시행할 것”이라고 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가계대출의 안정적 관리 기조를 확고히 유지하고, 필요시 상황별 거시 건전성 관리 수단을 가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통화정책을 긴축에서 완화로 전환한 만큼 국내에서도 금리 인하 기대감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집을 사려는 수요도 증가할 게 뻔하다. 은행권이 대출을 조여도 실수요자들이 매수에 가세하면 집값 상승세를 제어하기 힘들어진다.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는 이런 흐름에 기름을 부을 위험이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금리 동결을 결정한 후 그 배경을 설명하며 “부동산 가격과 그에 따른 가계부채 증가 위험신호가 커지고 있다”고 경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은행권 가계대출 증감 추이. 연합뉴스
 은행권 가계대출 증감 추이. 연합뉴스

국제기구들도 한국의 가계부채 걱정

한국의 가계부채 문제는 국제기구도 걱정할 만큼 심각하다. 국제결제은행(BIS)도 얼마 전 공개한 보고서에서 한국처럼 가계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100%가 넘으면 경제성장률을 저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민간부문의 부채 상환과 이자 지급 부담이 늘면 미래 성장 잠재력을 약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내수 경기가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 것도 과도한 가계부채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빅컷’을 단행하며 선제적 경기 부양에 나섰지만 한국은 가계부채부터 해결해야 하는 힘든 처지에 몰리게 됐다. 윤석열 정부의 무모하고 무분별한 건설·부동산 부양 정책이 한국 경제를 깊은 수렁에 빠뜨린 셈이다. 내달 미국을 따라 금리를 내려도, 집값 불안과 가계부채를 고려해 금리를 동결해도 후폭풍은 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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