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는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애초에 황당 변명

뒤늦게 손바닥 뒤집듯 말 바꿔 의혹 더 증폭시켜

"허풍‧과시였다" 주장도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려워

이 씨 "국회 청문회 나가 모든 것 다 얘기하겠다"

야당, '영부인 국정농단 게이트' 규정…특검 불가피

'댓글팀' 운영 의혹까지…"청문회에 김건희 나와야"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8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쉐라톤 와이키키 호텔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 참석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2024.7.9.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8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쉐라톤 와이키키 호텔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 참석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2024.7.9. 연합뉴스

한국 공직사회에서 대통령을 'Very Important Person'의 약자인 'VIP'로 표현해온 건 오래된 관행이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대통령 시절엔 대통령이 없는 자리에서도 반드시 '각하'라고 칭했지만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공식적으로 각하 호칭을 금지한 이래 'VIP'라는 표현이 관가의 대화나 공문서상에서 점차 자리를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민간에도 전파돼 정치권과 재계 인사들이 대통령을 종종 'VIP'라고 언급하고 때론 '업자'들이 권력층과 가까운 관계임을 과시 또는 암시하려는 의도에서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 로비를 한 것으로 의심되는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가 "녹음파일에 나온 VIP는 대통령이나 김건희 여사가 아니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을 때 "그게 말이냐 막걸리냐"며 황당한 변명이라는 반응이 쏟아졌던 것이다. 해병대 사령관을 VIP라고 부른다는 건 군 관계자들도 금시초문인데다, 설혹 이 전 대표의 후배라는 송모 씨가 먼저 VIP라는 말을 꺼냈다고 해도 송 씨가 이명박 대통령 시절 청와대 경호처 간부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송 씨 역시 오랜 직업적 습관에 따라 대통령을 지칭하는 뜻에서 VIP라고 언급했다고 해석하는 게 상식적이다.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21일 오전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수사외압 의혹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출석하고 있다. 2024.5.21. 연합뉴스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21일 오전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수사외압 의혹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출석하고 있다. 2024.5.21. 연합뉴스

결정적으로 애초 이 사건의 발단이 'VIP 격노설'이었고, "VIP가 격노했다"고 전한 당사자가 바로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었다. 항명죄로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군 검찰에 냈던 진술서에 따르면, 박 전 단장은 지난해 7월 31일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 브리핑을 앞두고 갑자기 김계환 사령관으로부터 브리핑을 취소하라는 통보를 받자 다음과 같은 문답을 주고받았다.

수사단장 "도대체 국방부에서 왜 그러는 것입니까?"

해병대 사령관 "(오늘) 오전 대통령실에서 VIP(대통령) 주재 회의 도중 1사단 수사 결과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VIP가 격노하면서 장관과 통화한 후 이렇게 되었다."

수사단장 "정말 VIP가 맞습니까?"

해병대 사령관 "맞다."(고개를 끄덕이며)

박정훈 전 단장은 물론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도 윤석열 대통령을 'VIP'라고 했는데, 이젠 김 사령관이 VIP였다는 주장까지 나오니 김 사령관 본인도 기겁할 일이다. 해병대 내에서 3성 장군인 사령관을 VIP로 호칭했다면 대통령은 VVVIP 정도로 불렀다는 것인지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만에 하나 군 내부에서 사령관을 VIP로 칭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외부인이 그렇게 불렀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이종호 씨는 송 씨의 문자 메시지나 김규현 변호사의 말을 단순히 옮긴 게 아니라 "내가 VIP한테 얘기를 하겠다" "내가 VIP한테 얘기할 테니까 사표 내지 마라" "너는 성근이를, 임 사단장을 안 만났구나" "쓸데없이 내가 거기 개입이 돼 가지고, 사표 낸다고 그럴 때 내라 그럴걸" 등 본인이 주도적으로 VIP를 들먹이며 임 사단장을 잘 알고 있고 구명 활동을 벌였음을 거듭 표명한 바 있다.

이 밖에 VIP가 김계환 사령관이 될 수 없다는 논리적 근거와 정황은 차고 넘친다. 박정훈 전 단장의 법률대리인인 김정민 변호사는 11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김계환 사령관이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기록을) 이첩 보류시킨 게 아니지 않는가? 이첩 보류는 최소 국방장관이 한 것"이라며 "그 윗선으로 갈 순 있지만 아래로 내려갈 수는 없다. (오히려) 김계환 사령관은 원래대로 (경북경찰청에 이첩)하기 위해서 굉장히 버텼는데 김계환 사령관에게 로비를 해서 성공했다? 말이 안 된다"고 일축했다. 나아가 "이 씨가 VIP를 김계환 사령관이라고 말한 건 약간의 의도가 깔린 거 아니냐"면서 "내가 언제까지 침묵할 것 같으냐는, 용산에 대한 일종의 협박 같다"고 추정했다.

 

채널A 뉴스 화면 갈무리
채널A 뉴스 화면 갈무리

결국 이종호 씨가 평소 사석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각각 'V1' 'V2'로 지칭해왔다는 제보자 김규현 변호사의 진술을 공수처가 확보했다는 보도까지 나오자 이 씨는 더 이상 궁색한 항변을 지속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는지 VIP는 사실 김건희 씨를 말한 거라고 실토했다. 이 씨는 11일 채널A 기자에게 "통화에서 언급한 VIP는 김건희 여사를 뜻한 것"이라며 "다만 허풍 과시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또 "도이치모터스 사건으로 너무 고생을 해서 그 사람들 얘기만 나와도 싫다"며 "김 여사의 연락처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이 씨가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는 상황에서 "내가 VIP한테 얘기할 테니까 사표 내지 마라"고 했던 게 단지 허풍이었고 김건희 씨 연락처도 모른다는 해명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다. 마침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민 청원과 관련해 오는 19일과 26일 청문회를 열기로 했고 두 차례 모두 이 씨를 증인으로 채택해 이 자리에서 진상이 제대로 밝혀질지 주목된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야당은 19일에는 채 상병 순직 사건의 대통령실 외압 의혹을, 26일엔 김건희 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및 명품가방 수수 의혹을 집중적으로 다루기로 했는데, 이 씨는 주가 조작 사건의 핵심 공범으로 김건희 씨의 증권 계좌를 관리했던 인물인데다 이번에 '임성근 구명 로비' 의혹까지 겹쳐 두 날짜 모두 출석하도록 돼 있다. 이 씨 본인도 청문회에 나오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조만간 관련 입장을 표명할 예정"이라며 "국회 청문회에 나가서 모든 것을 다 얘기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전현희, 김승원, 이건태, 장경태, 이성윤, 박은정 등 야당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이 12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국민청원 청문회 추진과 관련 대통령실에 증인출석요구서 수령을 촉구하며 서울 용산 대통령실을 항의 방문하던 중 경호 관계자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2024.7.12. 연합뉴스
전현희, 김승원, 이건태, 장경태, 이성윤, 박은정 등 야당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이 12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국민청원 청문회 추진과 관련 대통령실에 증인출석요구서 수령을 촉구하며 서울 용산 대통령실을 항의 방문하던 중 경호 관계자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2024.7.12. 연합뉴스

이와 관련해 박찬대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12일 국회 본청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영부인 국정농단 게이트를 둘러싼 의혹이 파도 파도 끝이 없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이종호 녹취록에는 이 씨가 국방부 장관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말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며 "임성근 구명 로비뿐 아니라, 장관 인선이라는 핵심 국정도 비선의 검은 손길이 좌지우지했을지 모른다는 충격적인 보도다. 사실이라면 일개 주가 조작범에게 대한민국이 휘둘렸다는 소리가 된다"고 개탄했다.

이어 "영부인이라는 뒷배가 있지 않고서야 이런 일들이 어찌 가능했겠는가? 이종호 씨는 VIP가 해병대 사령관을 지칭한 것이라고 둘러댔지만 평소에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VIP1, VIP2라고 불렀다는 진술도 공개됐다"면서 "국정농단의 썩은 뿌리가 대체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 이러다 정말 대한민국이 어찌 되는 것은 아닌지 국민은 참담한 심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모든 의혹과 문제의 근원은 결국 윤석열 대통령 부부다. 특히 여러 정황을 살펴봤을 때 해병대원 사건 은폐 시도에 깊숙이 개입했을 것으로 보이는 김건희 여사에 대한 직접 조사가 불가피하다"며 "시시각각 충격적인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하나같이 특검을 해야 할 필요성을 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장경태 최고위원도 "대한민국 대통령을 의미하는 VIP는 윤석열 대통령이 아닌 김건희 여사였다. 사실상 이종호 씨는 김건희 여사의 비선 실세로서 직접 통화로 밝힌 구명 로비 발언은 엄연히 범행 자백"이라며 "허세였다고 면피할 생각은 하지 말라. 청문회에서 확인시켜 드리겠다"고 못박았다. 나아가 "이종호 씨가 비선 실세로서 로비를 한 것이 비단 장군 인사뿐이었는가? 결국 모든 의혹의 시작은 김건희 여사"라면서 "디올백 수수부터 구명 로비까지 커튼 뒤 민원실이 대통령실을 삼켜버렸다"고 지적했다.

 

9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청래 위원장이 '탄핵 청문회' 표결을 진행 중인 가운데 국민의힘 유상범(붉은색 넥타이) 등 의원들이 이에 반발하고 있다. 2024.7.9. 연합뉴스
9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청래 위원장이 '탄핵 청문회' 표결을 진행 중인 가운데 국민의힘 유상범(붉은색 넥타이) 등 의원들이 이에 반발하고 있다. 2024.7.9. 연합뉴스

황정아 대변인은 국회 소통관 브리핑에서 "김건희 여사는 '영부인'이라는 호칭도 쓰지 않고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 약속하더니, 당무에 전방위로 개입한 것은 물론이고 '댓글팀'을 운영했다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 'V2'라는 단어가 세간에 떠도는 것 자체가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을 떠올리게 한다"며 "대통령 관저 수의계약 의혹, 주가 조작 방탄 수사, 명품백 수수와 알선수재를 넘어 이제는 공직자 인사와 불법적 수사 외압까지 'V2' 김건희 여사가 거명되고 있다"고 열거했다.

황 대변인은 "김 여사의 주가조작 공범이 임성근 전 사단장 구명은 물론 고위급 인사에 개입했다는데 그 뒷배가 누구겠는가? 윤석열 정권에서 벌어지는 불법·위법·탈법의 공통분모가 모두 김건희 여사로 모아지고 있으니 기가 막힌다"면서 "주가조작 세력이 이제 뒷배를 두고 국정까지 조작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정황만으로도 총체적인 국정농단"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청원 청문회에서 하나하나 따져 묻겠다"며 "또한 해병대원 순직사건 특검법, 김건희 특검법을 관철해 국정농단 세력을 심판하겠다"고 밝혔다.

조국혁신당 김준형 당대표 권한대행은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통령실에서는 임성근 사단장 구명 로비와 대통령 부부와 전혀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냈다. 그렇게 떳떳하다면 당당히 윤 대통령 부부의 휴대폰을 제출하라"며 "김건희 여사는 최초로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된 영부인이 됐다. 증인 채택에 동의하고 국회와 국민 앞에 서라. 청문회에 직접 나와서 모든 의혹에 답변하라"고 촉구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