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습적인 주말 비공개 조사, 제대로 이름 붙여야
마무리된 듯 보도…'총장 패싱 논란'으로 논점 흐려
이제 특검은 필요 없다는 논리로 연결 지으려는 것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씨를 주말에 검찰청이 아닌 제3의 장소에서 비공개로 조사를 한 것에 대해 많은 언론들이 비판과 지적을 하고 있다. 22일자 1면 머릿기사와 사설들은 현직 대통령 부인이 첫 검찰조사를 받았으며 12시간 동안 조사에 응했다고 쓰면서 ‘석연찮은 ‘도둑 조사’(동아일보), ‘수사 공정성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한국일보)라고 지적하고 있다.
“(김건희 여사가) 소환에 응해 의혹을 적극적으로 소명하려는 의지를 보였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며 “최 목사의 공작 의도가 명백한 사건이었으나 마지막 퍼즐이었던 김 여사 조사까지 이제 마무리한 것”이라고 사설에 쓰며 드러내놓고 긍정적으로 평가한 서울신문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신문에서 그 같은 비판적 보도를 볼 수 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조차 비판적인 논조다. 그러나 그 비판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역설적인 결론이 나온다. 4년 만의 늑장 조사를 비판하는 이들 신문의 지적에서 오히려 왜 김건희 씨에 대한 조사가 이같이 뒤늦게, 그것도 사람들의 뉴스 주목이 덜한 주말을 틈탄 비공개로 이뤄질 수 있었는지가 설명된다.
언론은 무엇보다 김건희 씨는 검찰로부터 과연 '소환'됐는가, 라고 물어야 한다. 검찰이 ‘소환 조사’라고 밝힌 것에 대해 과연 ‘소환’이 있었는지, ‘조사’다운 조사가 있었는지를 언론은 먼저 따져봐야 한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김 씨에 대한 수사와 관련해 “법 앞에 예외도, 특혜도, 성역도 없다”고 했는데, 검찰의 조사 절차와 방식에 비춰보면 김건희 씨는 소환된 게 아니라 ‘초대’받은 것이라고 해야 맞을 듯하다. 경향신문이 “토요일 오후 전격적으로 비공개 조사한 것이나 전직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 등도 섰던 검찰청 포토라인에 김 여사만 비켜간 것이나 경호와 안전을 핑계로 제3의 장소인 보안청사에서 조사한 것”을 들어 “이쯤 되면 김 여사가 검찰을 소환한 셈”이라고 한 것은 다른 신문들에서 볼 수 없는 적확한 지적이다.
검찰과 언론은 김건희 씨의 ‘자진 출석’과 ‘헌정 사상 첫 현직대통령 부인 조사’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고발된 때로부터 4년간이나 조사를 받지 않았던 인물이 국민들의 분노, 임박한 특검 청문회의 압박을 받아 어쩔 수 없이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이를 '자진'해서 출석했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검찰은 김 씨를 12시간 '장시간' 조사했으며 심야까지 강도 높게 조사한 듯이 밝혔지만 그 정도가 주가조작과 명품백 수수 사건 조사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조차 됐는지에 대해 언론은 먼저 물어야 한다.
김건희 씨의 기습적인 주말 비공개 조사는 그에 대한 조사의 끝이라기보다는 이제 겨우 시작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이것으로 검찰 조사가 마무리됐다고 얘기하려는 듯하다. 이 신문은 22일자 1면 <새로운 불씨 남긴 김건희 여사 소환>에서 검찰총장 ‘패싱’ 논란을 제기했다. 수사팀이 조사가 시작된 주 10시간 뒤 이원석 검찰총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면서 이를 ‘새로운 불씨’라고 쓰고 있다. 검찰총장에 사전 보고를 안 했다는 것이 새로운 불씨라는 얘기는 ‘김건희 소환 조사’라는 첫 번째 중요한 불씨는 이제 꺼졌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김건희 씨 조사 특혜에 대한 비판을 검찰총장 패싱 논란이 덮는 이 같은 보도는 여러 언론들에서 공통적으로 보인다. 1면 머릿기사에서 ‘현직 대통령 부인 첫 조사’와 ‘12시간 진술’을 강조하면서도 제3의 장소에서 주말에 비공개로 이뤄졌다는 사실은 빼놓은 중앙일보는 사설에 <‘총장 패싱’ 논란 김 여사 조사>라고 제목을 달고 있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이번 조사에서 배제된 것에 대해 헌정사상 첫 대통령 부인 조사를 총장 보고도 없이 진행한 것을 납득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라며 “이번 조사를 놓고 ‘총장 패싱’ 논란이 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는 배경”이라고 했다. 다른 신문에서도 “이르면 22일 이원석 총장이 자신의 거취를 밝힐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는 식의 보도들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 배우자 조사와 같은 중요한 사건이 검찰 총장에게 사전에 보고되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같은 논란 증폭은 부수적인 것으로 더욱 본질적인 것을 가리는 결과를 낳는다.
김건희 씨 검찰 조사에 대한 언론의 보도들이 명품 가방 사건 발생 이전의 김건희 씨에 대한 낯 뜨거운 칭송과 미화 기사들과는 대조적인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한국 언론들이 김건희 씨에게 씌운 '성역'의 베일은 아직 한국 언론들에게 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듯하다. 바로 그것이 피고발자에 대한 첫 '소환' 조사가 사실상 '초대'라는 형식으로 4년 만에야 이뤄지게 됐는지에 대한 한 설명이 된다.
조선일보의 사설 <김 여사 검찰 조사, 늦은 만큼 더 엄정해야>에서 그같은 '조심스러운' 태도가 드러난다. 이 사설은 “내분으로 치닫는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들도 검찰의 김 여사 조사는 어떤 식으로든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김 여사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이라며 “아무리 친북 인사의 정치 공작이었다고 해도 김 여사가 가방을 받은 것 자체는 부적절했던 만큼 직접 사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기어코 명품 가방 수수를 ‘아무리 친북 인사의 정치 공작이었다고 해도’라고 쓰고 있다.
중앙일보 22일 기사 <尹, 초유의 영부인 검찰 출두 OK...리스크 덜고 국정매진 올인?>은 “김건희 여사가 ‘자진 출석’해 12시간가량 대면 조사를 받았다”면서 이를 “임기 반환점을 앞둔 윤석열 정부가 국정운영 추진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필요조건을 채우려는 시도”라고 풀이하고 있다.
정치공작이며 몰래카메라에 걸린 '억울한 여사님'이지만 초유의 '검찰 자진 출석 결단'으로 리스크를 털었으니 이제 특검은 필요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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