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않고 야당 비난 '양비론' '정쟁론'으로 몰아

전임 이동관·김홍일 왜 탄핵에 '도주사퇴'했나

과거 방송장악· MBC 민영화 추진…극우 발언도

시민사회·언론계 "이진숙 자격없다" 보도 안해

두 번의 국회 탄핵 추진과 탄핵 발의 직전 두 번의 ‘도주 사퇴’로 윤석열 정부에서 방송통신위원장이라는 자리는 코미디의 주인공이 됐다. 2008년 방통위 설립 이래 한 번도 없던 일이다. 국회 탄핵을 모면하려고 잽싸게 사표를 내고 도망가는 장관급 인사를 6개월 만에 두 명이나 보게 될 줄이야. 윤석열 정권에서는 갖가지 해괴한 일들이 많이도 벌어지고 있다.

방통위원장은 우리나라 방송통신 정책을 총괄하는 자리다. 방통위는 방송의 공공성·공익성 강화, 콘텐츠 보호와 이용자의 권익 보호, 미디어 다양성 확대, 디지털 시대의 인터넷과 방송통신 융합 등을 위한 정책을 수행하는 중요한 기관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방송통신 관련 정책은 들어본 적이 없고 ‘방송 장악’과 ‘탄핵 도주’ 같은 말만 난무하고 있다. 이것이 정상적인 정부 기관의 모습인가?

그렇다면 이 웃지 못할 사태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두 번이나 방통위원장 탄핵을 추진한 야당이 문제인가, 아니면 탄핵당할 일을 하다가 탄핵이 임박하자 사표를 내고 달아난 두 명의 방통위원장이 문제인가? 언론이 따져 물어야 할 것은 이것이다. 정확한 사실과 합리적 논거를 통해 국민 앞에 시시비비를 가려줘야 한다.

탄핵 직전 사표를 내고 사라진 두 방통위원장이 누구인가? 그들이 재임 중 한 일은 무엇인가? 윤석열 정부 첫 방통위원장인 이동관 씨는 이명박 정부의 대변인, 홍보수석을 역임하면서 공영방송 KBS, MBC 장악에 나섰던 인물이다. 김홍일 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검사 선배인데 방송통신이나 미디어와 관련된 일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자다. 도대체 무슨 관련 경력으로 방통위 수장 자리를 꿰차게 됐는지 알 수 없다. 

 

두 사람은 재임 중 KBS, MBC, EBS 등 공영방송 이사진을 내쫓고 자기편 사람으로 채워 넣은 뒤 공영방송 사장에도 자기편 사람을 앉혔다. 방통위 합의제 원칙을 무시하고 ‘2인 체제’에서 벌인 일이며, 같은 방식으로 준 공영방송 YTN을 자격 미달로 보이는 사기업에 넘기기도 했다. 정부 비판 보도에 ‘청부심의’까지 동원해 제재를 남발한 방심위를 그대로 방치했는데, 방통위가 정부 비판적 보도에 가한 최고수위 제재는 역대 가장 많았다.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온통 방송 장악과 비판언론 탄압을 위한 일만 열심히 하다 야당의 탄핵 철퇴를 맞고 발의 직전 사표를 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동관·김홍일 두 방통위원장은 방통위법의 ‘합의제’ 원칙을 무시해 법원의 위법성 경고도 받았다. 방심위원장의 ‘청부민원’ 심사는 이해충돌방지법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다. 위법과 불법이 정부 기관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언론자유가 침해받고 있는데 이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지난 총선에서 민심이 윤석열 정부 심판에 나서고, 야당이 두 번이나 방통위원장 탄핵에 나서게 된 이유다.

정상적인 언론이라면, 방송(특히 공영방송)이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에 의해 운영되어 끝내 공영방송 KBS가 ‘땡윤뉴스’ 같은 어용 보도나 하고 있는 데에 분노하고 비판해야 한다. 권력 감시와 견제가 본업인 언론들이 권력에 아부하는 다른 언론과 그렇게 만든 정부에 대해 매서운 비판을 가하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러나 일부 주류 언론들은 ‘묻지마 탄핵’(한국일보), ‘이재명 방탄 탄핵’(조선일보), ‘도돌이표 탄핵’(서울신문), ‘명백한 불법 증거 없는 탄핵’(중앙일보)이라며 오히려 민주당의 탄핵을 비난하고 있다. 방통위원장 사표에 대해 ‘꼼수 사퇴’라며 비판했지만 이는 양비론을 펼치기 위한 재료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이내 민주당-국힘당의 ‘볼썽사나운 대치’ ‘힘겨루기’ ‘정쟁’으로 치환시켜 정치 혐오를 자극한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꼴보기 싫은 정쟁만 일삼는 두 정당 모두 나쁘다’는 식이다.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양비론 보도의 스테레오타입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주 MBC 종군기자 출신이자 윤석열 대선후보 캠프 언론특보였던 이진숙 씨가 세 번째 방통위원장에 내정됐다. 다음 방통위원장은 전임 방통위원장과는 달라야 한다. 그것이 총선에서 참패한 윤석열 정권이 “국정을 쇄신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는 일이다. 이진숙 내정자는 정말 전임 위원장들과는 달리 '탄핵이 필요없는' 자격을 갖춘 후보인가? 

이진숙 씨는 과거 이력을 볼 때 ‘탄핵-도주’ 사태를 빚은 전임 방통위원장들보다 나을 것이 없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공영방송을 장악할 당시 MBC에서 홍보본부장을 지내면서 기자·PD 해고를 주도하고 MBC 민영화를 몰래 주도했던 인물이다. 이런 전력 때문에 자기 회사 기자회로부터 사상 처음으로 제명당했던 부끄러운 기자다. 박근혜 정부 때에는 보도본부장을 맡으면서 세월호 오보와 희생자 폄하 방송을 맡았던 인물이다. MBC 기자회가 이진숙 씨의 방통위원장 내정 소식에 “MBC를 망가뜨리고 동료들을 탄압하는 데 앞장섰던 자”“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MBC의 흑역사의 상징”이라는 험한 말을 쏟아낸 이유다.

그는 또 “이태원 참사가 좌파 조작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는 윤석열 대통령, 극우 유튜버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내정자 신분으로 “방송은 공기가 아닌 흉기”라면서 ‘공영방송을 손보겠다’는 무시무시한 의지도 나타냈다. 전임 이동관·김홍일 방통위원장과 생각과 말이 똑같은 것이다. 그가 두 전임자들의 바통을 이어받아 ‘손봐야 할 흉기 방송’이라고 지목한 방송사는 바로 자신이 몸담았던 MBC다. 이진숙 내정자 발표 직후 MBC 구성원들은 물론 야당, 언론인 단체, 시민사회에서 반발과 비난이 쏟아지는 게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일부 주류 언론들의 보도는 다르다. 이진숙 씨가 전임 방통위원장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지, 방통위원장으로서 자격과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등의 검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도 오히려 야당의 ‘탄핵 경고’만을 나무라고 있다. 조선일보는 “취임도 안 한 방통위원장을 또 탄핵한다니”(7월6일자 사설)라고 하고, 중앙일보는 “지명 첫 날 탄핵카드...방통위가 정쟁 제물인가”(7월6일자 사설)라고 보도하는 식이다. 핵심보다는 주변, 본질보다는 껍질, 달 보다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크게 말함으로써 이진숙 씨에 대한 검증은 덮고 윤석열 정권의 뜻이 관철되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한겨레(“언론탄압 앞장섰던 이진숙, 방통위원장 자격없다”, 7월4일 사설)와 경향( “이동관·김홍일 잘못 없다는 이진숙, 방통위 수장 자격 없다”, 같은 날 사설)만이 이진숙 내정자 검증과 비판 목소리를 내고 있다. 

 

어용언론이 어용보도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수법은 여러 가지다. ‘땡전뉴스’니 ‘땡윤뉴스’처럼 노골적으로 정권을 찬양하거나 미화하는 것이 스스로 보기에도 민망할 때는 ‘양비론’이나 ‘정치혐오론’을 펼친다. ‘양비론’으로 옳은 것과 그른 것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정쟁론’ 혹은 ‘정치혐오론’은 국민의 관심을 사라지게 하는 수법이다. 아예 보도하지 않음으로써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속이기도 한다. 양비론과 정치혐오론은 무책임한 언론이 가장 즐겨 하는 의도적인 헛소리인 것이다.

어용언론들이 이번에도 힘을 합쳐 양비론, 정치혐오론을 꺼내들고 있다. 장관급 공직이자 우리나라 방송통신정책 수장인 방통위원장 후보에 대한 검증은 없다. '국정쇄신하겠다'더니 쇄신은커녕 조금의 변화도 없는 윤석열 정부나, '총선민심 들어야한다'더니 총선민심을 왜곡하고 은폐하는 '애완견 언론' 혹은 '어용언론'이나 다를 게 없다. 애완견 언론 혹은 어용언론들이 하는 헛소리(bullshit)의 대가로 윤석열 정권 내내 방송의 공공성· 공익성 강화 같은 우리나라 방송통신정책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가장 불행한 일은 KBS에 이어 국민들이 가장 신뢰해온 공영방송을 또하나 잃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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