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인석에서 본 이진숙의 답변 "해도해도 너무해"

법카를 개인 업무에 사용…정직도 청렴도 '빵점'

공사 못가리고 방송독립 의지 없이 오직 권력욕만

국회·국민 반대에도 임명…남미행 특급열차인가

헛웃음이 나왔다. 저런 태도, 저런 답변으로 청문회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까 한숨이 나왔다. 저래도 결국 임명할 것이라 생각하니 울화가 치밀었다. 다음에 찾아온 건 불안함이었다. 선진국 문턱을 넘자마자 고속 낙하하는 남미행 급행열차를 타고 있는 것 같아서.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이런 청문회는 없었다. 아무리 막 가자 해도 이래선 안 된다. 인사청문회는 고위 공직에 지명된 후보자가 공직자로서의 기본적인 덕목과 지명된 공직을 수행할 만한 자질과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국민이 보는 앞에서 검증하는 시험이고 공개 면접이다. 이진숙 인사청문회는 인터넷으로 생중계되고 있었다.

지위의 높고 낮음을 떠나 모든 공직자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덕목은 정직성과 청렴성이다. 그런 점에서 이진숙 방통위원장 후보자는 공직자로서의 자격이 없다. 법카 사용만 봐도 그렇다. 회삿돈을 그냥 펑펑 쓴 정도가 아니라 마치 임자 없는 돈을 쓰기라도 하는 것처럼 법카를 마구 긁어댔다. 마치 안 쓰고 덜 쓰면 손해라고 생각하기라도 한 것처럼.

예를 들어보자. 빵집에서 수십만원 어치의 빵을 사고 법카로 결제했는데, 혼자서는 들고 갈 수 있는 양이 아니다. 그 많은 빵을 혼자 먹었는지 누구에게 선물했는지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SK에너지(주) 200만원’은 탱크 몰고 가서 주유를 한 게 아니라 주유상품권을 사서 누구에게 주었다는 거다. CGV 극장에서 220만원을 법카로 결제한 것 역시 영화관람 상품권을 샀거나 누군가를 위해 단체 관람 비용을 대납했다는 거다. 법카로 수백만어치의 와인을 샀고, 사장실의 와인 냉장고에는 값비싼 고급 와인이 수북했다. 마개를 딴 와인도 있었다.

 

영업활동을 위해 썼다고 하지만 사실이 아닐 것이다. 이진숙 후보자는 법카 사용과 관련한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MBC는 공영방송이고 사장이 광고주 상대로 직접 영업활동을 하지 않는다. 추측하건대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적인 인맥 관리와 정치권 줄대기에 썼을 것이다. 회사 영업이 아니라 개인 영업을 했다는 거다. 그게 아니라면 법카 사용 내역을 밝히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일반 기업에서 이진숙 후보자처럼 법카를 썼다면 사주의 노여움을 사서 진작에 해고됐을 것이다.

정직하지 않고 청렴하지도 않다. 그런 사람을 국민 세금을 쓰는 공직에 임명해서는 안 된다. 정직하지도 청렴하지도 않은 사람을 고위 공직에 임명한다는 건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공직관이 그렇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완장을 채워주면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사람을 고위 공직에 임명하는 건 매관매직이나 다름없다. 그런 걸 권력의 사유화라 한다.

공직자로서의 도덕성에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가장 큰 임무는 방송의 독립을 지키는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 설치법 제1조는 방통위의 독립적 운영을 명시하고 있다. 우리의 방송통신위원회는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FCC)를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미국 FCC의 설립 목적은 방송의 독립성을 지키는 것이고, 의회가 추천한 5인의 위원이 합의제로 운영한다.

인사청문회에서 이진숙 후보자는 '바이든-날리면' 보도는 보도 가치가 없다고 했다. 기자로 밥 먹고 살아온 내 귀에 그 말은 공영방송은 대통령을 비판해선 안 된다는 걸로 들렸다. 공영방송 KBS와 MBC를 권력을 비호하는 선전도구로 만들겠다는, 용산을 향한 맹목적 충성 맹세로 들렸다. 미국 FCC 관계자들이 그 말을 듣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눈이 휘둥그레질 것이다. 한국은 여전히 민주주의에 있어 후진국이라 할 것이다.

대통령의 실언도 보도의 대상이다. 미국 언론도 대통령의 실언을 보도한다. 대통령은 다른 누구보다 언행에 신중해야 한다. 나쁜 언행을 보고도 비판하지 않으면 고쳐지지 않는다. 대선 후보 시절의 윤석열 대통령은 말이 곱지 않았다. 자기 당의 대표에게도 뒤에서는 ‘이 xx, 그xx’라고 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다. 그런데도 정색하고 그걸 비판하는 언론은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바이든 쪽팔려서’라는 실언을 했을 때,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속담이 떠올랐고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다는 생각이 든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후보 시절에 언론이 혹독하게 검증하고 비판했더라면, 그런 실언 사고는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바이든 쪽팔려서’ 실언은 MBC만 보도한 게 아니었다. 그 보도는 윤석열 대통령이 '이 xx'와 '쪽팔려서' 같은 비속어로 국가의 품격을 떨어뜨렸다는 보도였고, 감시견으로서 언론의 역할에 충실한 보도였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언론이 제기한 ‘이 xx’와 ‘쪽팔려서’라는 비속어 실언에 대한 해명 대신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들린다고 우겼고, 전 국민이 ‘바이든’으로 들리는지 ‘날리면’으로 들리는지 듣기 평가를 하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그 바람에 대통령의 ‘비속어’ 실언이라는 문제의 본질은 휘발되어 사라지고, 그 보도가 국익에 부합하느냐 하는 엉뚱한 논란만 남았다. 비속어 실언이든,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든, 결론부터 말하자면 보도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한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지난 7월 25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7.25 연합뉴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지난 7월 25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7.25 연합뉴스

이진숙 후보자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귀에는 지금도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으로 들리는가. 국민을 속여서라도 바이든 대통령을 불쾌하게 만들지만 않는다면, 미국 의회를 지칭하여 ‘이 xx’라 해도 되고 ‘쪽팔려서’라는 저속한 표현을 써도 되는가. 한국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의 심기나 살피는 게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는가. 당신이 생각하는 국익이란 무엇인가. 윤석열 대통령을 위해서라면 언론이 국민에게 지록위마의 강요를 해도 되는가. 그것이 당신의 언론관인가. 국민의 귀를 속이는 보도가 국익에 부합하는가. 

참고인석에서 지켜본 이진숙 인사청문회는 방통위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개인' 이진숙이 공직자로서의 기본적인 덕목을 갖추고 있는지, 방통위원장 자리에 어울리는 자질과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검증하는 시험대인 동시에 인사권자인 윤석열 대통령의 공직관과 언론관을 검증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단언컨대 정직과 청렴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공직관을 가진 대통령이라면, 이진숙처럼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을 고위 공직에 지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방송의 정치적 독립과 언론의 자유를 중시하는 민주국가의 정상적인 대통령이라면, 극우 성향을 드러내놓고 자랑하거나 권력 지향적인 언론관을 갖고 있는 사람을 방통위원장에 임명할 생각은 아예 하지 않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공직자로서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이진숙이란 인물을 방통위원장에 지명한 건 부하 노릇에 충실한 여당과 후견인 언론이 뒤를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흘에 걸친 인사청문회에서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은 민주당 의원들이 의혹을 제기하면 연막탄을 터뜨려 의혹을 가리고,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흙탕물을 만들어 진실을 가리고, 억지와 궤변으로 이진숙 후보자의 무자격을 감싸고 두둔하였다. 그뿐인가 조중동을 비롯한 대다수 주류 언론은 인신공격 난무, 야당의 이진숙 때리기, 후보자 난도질이라고 왜곡하며 정치혐오 프레임을 씌워 이진숙 호위무사를 자임하였다. 인사청문회 무용론은 이럴 때마다 보수언론이 써먹는 습관적인 선동의 기술이다. 조중동이라는 창으로 세상을 보는 독자들은 이진숙 청문회를 ‘잔다르크 마녀사냥’으로 오인할 수도 있겠다.

국회의 권능을 강화해야 한다. 인사청문회가 고위 공직으로 가기 전에 거치는 요식행위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검증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청문회 대상인 공직후보자가 타당한 이유도 없이 자료를 제출하지 않거나 진술을 거부하면 공직에 임명하는 걸 원천 봉쇄해야 한다. 국회를 무시하면 법의 처벌도 감수하도록 해야 한다. 미국 의회는 그렇게 한다고 들었다. 그래야 오기와 불통과 독선으로 똘똘 뭉친 대통령이 국민 여론을 무시하고 함량 미달인 인물을 고위 공직에 임명하는 걸 막을 수 있고, 대통령 잘못 뽑았다가 나라가 수렁으로 빠지는 걸 방지할 수 있다.

 

7월 31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등 각 단체 관계자들이 더불어민주당 김현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2024.7.31. 연합뉴스
7월 31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등 각 단체 관계자들이 더불어민주당 김현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2024.7.31. 연합뉴스

‘여론조사 꽃’의 여론조사를 보면, 이진숙 방통위원장 후보자는 방통위원장으로 부적격하다는 답변이 55.8%이었다. 적격이라는 답변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고작 24.9%였다. 여당인 국민의힘 지지율은 물론이고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 보다도 낮다. 보수층에서도 반대 의견이 많다는 거다. 그럼에도 오기의 윤석열 대통령은 결국 이진숙을 방통위원장에 임명했다. 윤 대통령은 방송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안위를 위해 이진숙을 방통위원장에 임명한 것이다.

유유상종이고 초록은 동색이라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자격 미달인 이진숙을 방통위원장에 임명한다는 것은 이진숙의 공직관이 윤석열의 공직관이고, 윤석열의 언론관이 이진숙의 언론관이라는 거다. 이진숙이 윤석열이고 윤석열이 이진숙이라는 거다. 암울하다. 나라 곳간이 비어가고 기둥뿌리가 썩고 있는데, ‘조중동’ 주류 언론은 그게 다 야당 탓이란다. 방송 독립도 언론 자유도 민주주의도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다. 선진국의 문턱을 넘자마자 고속 낙하하는 남미행 특급열차를 타고 있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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