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이 무너뜨리는 건 MBC가 아니라 대통령?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소준섭 전 국회도서관 조사관
소준섭 전 국회도서관 조사관

‘2인 체제’의 기괴한 방통위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을 보장하기 위해 설립된 국가 기관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가장 기괴한 형태를 취하면서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 보장이라는 설립 목적을 가장 극적으로 배반하고 있는 중이다.

본래 방송통신위원회는 대통령 추천 2인, 여당 추천 1인, 그리고 야당 추천 2인으로 총 5명으로 구성되는 위원회이다. 정치적 다양성을 반영하는 ‘합의제’ 기관인 것이다. 하지만 현재 방통위의 위원은 단 두 명이다. 그것도 야당이 추천한 인사는 대통령이 임명을 거부한 채 대통령이 추천한 두 명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 두 명의 위원만으로 그간 KBS 경영진 교체, YTN 매각 등 방송의 공공성을 심각하게 ‘파괴’해왔다. 그리하여 방통위는 방송의 자유와 합의는커녕 오로지 정권에 부합하는 어용방송 만들기로만 치닫는 괴물기관으로 전락하였다.

이 말도 안 되는 ‘2인 체제’는 위법이다. 2022년 8월, 방송통신위원회는 당시 방통위원장과 이상인 위원, 단 두 사람만의 의결에 의해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의 권태선 이사장을 해임했다. 하지만 권태선 이사장이 방통위를 상대로 낸 후임 이사 임명 처분 집행 정지 신청 항고심에서 서울 고법은 2인에 의한 해임 의결의 절차적 결함을 지적하면서 권 이사장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방통위법은 정치적 다양성을 위원 구성에 반영해서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의 입법 목적을 달성하도록 한다고 볼 수 있다”며, “그런데 이 사건의 임명 처분은 단 2명의 위원들 심의 및 결정에 따라 이루어져 방통위법이 이루고자 하는 입법 목적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2인 체제’ 방통위의 결정은 위법성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었다.

3인이 최소 필수 요건이다

지난 6월 25일에 개최된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에 출석한 김홍일 당시 방통위원장은 2인 체제 방통위의 위법성을 묻는 국회의원의 질문에 “방통위법에 의하면 2인 이상의 위원 요구가 있거나 위원장이 회의를 소집할 수 있고 회의는 재적 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돼 있는데 재적 위원은 2인이다. 따라서 2인의 과반수인 2인의 찬성으로 의결하면 문제가 없다”면서 2인 체제의 정당성을 강변했다.

그런데 바로 이 답변 속에 2인 체제의 위법성이 숨겨져 있다. 방통위법 제13조 1항은 “위원회의 회의는 2인 이상의 위원의 요구가 있는 때에 위원장이 소집한다”라 규정하고 있다. 2인 이상의 ‘위원’이라는 문구와 ‘위원장’이 명기되어 있다. 2인 이상의 위원이란 방통위원장이 아닌 다른 위원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따라서 방통위원회에는 최소 3명의 위원이 필수 요건이라는 의미이다.

한편, 2023년 5월 23일 서울 고법은 방통위 관련 판결에서 “방통위가 합의제 행정기관에 해당하고 방통위법 13조 1항 내용에 비추어 회의를 요구할 경우 2인 이상의 위원 및 위원장 1인 합계 3인의 재적 위원이 최소한 요구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도 없지 않아 2인 의결로 행해진 이 사건 처분의 절차적 위법성이 문제 될 여지가 있다”고 한 바 있다.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열린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지명 철회 촉구 기자회견에서 민주언론시민연합 신태섭 상임공동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2024.7.5 연합뉴스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열린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지명 철회 촉구 기자회견에서 민주언론시민연합 신태섭 상임공동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2024.7.5 연합뉴스

야당 추천 위원의 임명을 거부하는 대통령

기괴하기 짝이 없는 이 ‘2인 체제’는 야당 추천 인사를 임명권자인 윤석열 대통령이 고의로 임명을 거부함으로써 출현하게 된 ‘왜곡된’ 체제다. 임명권자가 임명을 거부하는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다. 대통령이 야당 추천 인사의 임명을 거부하는 이러한 사태는 방통위만이 아니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서도 동일하게 발생되고 있다. 국가의 법을 가장 잘 준수함으로써 모범을 보여야 할 대통령이 가장 앞장서서 법을 왜곡, 농단하고 있는 장면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방송 장악을 주도했던 이동관을 방통위원장으로 앉힌 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방송 장악 의지를 ‘투명하게 ’보여준 것이었다. 특히 이동관은 대통령 인수위 신분 상실로부터 3년이 되지 않은 자는 방통위원회 위원이 될 수 없다는 규정(방통위법 제10조 제1항 6호)이 명문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법적’으로 임명한 것이다. 이동관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후임으로 임명된 새 위원장은 전혀 방송계와는 거리가 먼 검찰 출신이었다. 바로 윤석열 대통령이 대검 중수 2과장 시절 중수부장으로 직속 상관이던 김홍일이었다. 방통위 15년 사상 첫 검찰 출신 위원장이었다. 오죽하면 조선일보조차도 “방통위원장까지 검사 출신, 꼭 이렇게 해야 하나”라는 제하의 사설을 실을 정도였다. 오직 방송 장악에만 그 뜻이 있을 뿐이니, 방통위원장이란 단지 ‘장악 전문가’면 되는 것이었다.

치명적인 법 왜곡과 농단

현 정부가 말끝마다 내세우는 법치란 자신을 제외한 타인에 대한 권한만 존재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책임이 더욱 큰 것이다. 법률을 집행함으로써 공정한 법치주의의 실현을 솔선수범해야 할 당사자들이 “사리를 추구하여 법을 왜곡”한다면 우리 사회의 정의를 지탱하는 근거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행위는 오히려 일반 범죄보다 범죄성이 훨씬 크다. 현 정부 출범 이래 방통위는 교묘하게 법을 왜곡하고 희롱하면서 방송 장악에 몰두해왔다. 그 옛날 법으로 장난치면서 백성들을 수탈하던 법비(法匪) 아전들의 행태를 그대로 연상시킨다.

독일 형법 제339조는 “법관, 기타 공직자 또는 중재인이 법률 사건을 지휘하거나 재판함에 있어 당사자 일방을 유리하게 하거나 법을 왜곡한 경우에는 1년 이상 5년 이하의 자유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법왜곡죄다. 독일을 비롯하여 스페인, 노르웨이, 중국 등 적지 않은 국가에서 이러한 법왜곡죄를 규정하고 있다. 방통위가 벌이는 갖가지 탈법 행태들은 당연히 법왜곡죄로 다스려야 할 ‘범죄’이다.

김홍일 전 방통위 위원장은 국회의 탄핵에 직면하자 사의를 표명했고 대통령은 즉시 수용한 뒤 곧바로 이진숙을 후임으로 임명하였다. 전에 이동관 위원장이 탄핵 위기에 처했을 때도 사의 표명과 수리 및 후임 임명이라는 동일한 과정이 반복되었었다. 대통령 스스로 방송 장악을 강행한 두 전임 방통위원장과 철저하게 손발을 맞춰나가고 있는 모습을 만천하에 ‘시전’한 셈이다. 방통위 방송 장악 ‘공동 정범’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다분하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먼지털이식으로 추상같은 잣대를 들이대면서 정작 자신들에게 법망은 한없이 인자하고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모든 게 빠져나가도록 충분히 성길 뿐이다.

또 하나의 대통령 탄핵 사유 될 것

방통위는 현 정부 출범 이후 탈법적인 2인 체제로써 그 설립 목적과 완전히 배치되는 방향으로 온갖 법 규정을 농단하면서 오로지 정권을 위한 방송 장악에 골몰해왔다. 그리하여 방통위는 정권의 전위부대의 역할을 자임하면서 그야말로 ‘방송장악위원회’로 변질되고 말았다. 지금 방통위는 훗날 희대의 코미디로 기록될 것이 확실한 “‘날리면’ 사태”로 정권의 눈 밖에 난 MBC 장악 시나리오를 착착 진행시키고 있다. 이 마구잡이식 농단들의 배후에 이 나라 최고권력자가 있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현재 대통령 탄핵은 이미 60%의 국민들이 동의하고 있다. 온라인에서의 탄핵 청원은 140만 명에 육박한다. 탄핵의 사유들은 계속 쌓여만 가고, 탄핵의 외침은 커져만 간다. 방통위를 둘러싼 너무나 탈법적인 갖가지 해괴한 농단 행위들 역시 명백한 탄핵 사유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이진숙 임명이 무너뜨리는 것은 MBC가 아니라 대통령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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