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 전 KBS 사장 "당사자들이 먼저 나서야"
방심위장 정무직화, '제2의 류희림 방지책'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언론 시장의 ‘조중동’ 독과점 체제가 디지털 혁명으로 인해 해체됐습니다. 윤전기 하나 장만하는 데만도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종이신문과 달리, 인터넷 매체와 유튜브 언론은 돈을 얼마 안 들이고도 시작할 수 있죠. 말하자면 기술 발전에 의한 조중동 독과점 붕괴예요.”
'조중동'이란 조어를 만들어 낸 정연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은 과거 20여 년간 언론개혁의 핵심 의제였던 조선·중앙·동아 보수 신문 3사의 언론시장 독과점 체제가 저물었다고 말했다.
“이들 수구 족벌신문 3사는 과거 언론시장의 70%를 차지했을뿐더러 그 행태가 조폭을 닮아 제가 ‘조폭 언론’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시절 종합편성 채널(종편)이 생겨나면서 방송 쪽도 기울어진 운동장이 됐지 않습니까?
“디지털 혁명이 본격화되기 전엔 방송보다 신문이 주류 언론이었어요. 방송의 영향력이 커지자 신문시장을 독과점하던 수구 족벌신문들에 이명박 정권이 종편을 하나씩 나눠줬죠. 결국 방송마저 수구 기득권 세력이 장악했습니다. 디지털 혁명이 없었다면 종편을 손에 넣은 조중동이 언론 시장의 80%를 차지했을 거예요. 언론이,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라 연직 방향으로 곧추선 운동장이 될 뻔한 셈이죠.”
그는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지듯이 지금 온라인 공간엔 증오, 혐오, 인종차별에 심지어 허위 조작 정보까지 온갖 쓰레기 정보가 난무하는데 허위조작 정보에 대해서는 이를 차단하는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요즘 언론 보도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뭐라고 보시나요?
“클릭 수에 목을 매는 센세이셔널리즘입니다.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단독 보도도 아닌데 기사 첫머리에 단독이라고 달아요. 자극적인 표현을 따옴표로 따는 따옴표 저널리즘도 심각합니다. 언론 정도에서 벗어난 보도로, 디지털 혁명의 어두운 면이죠. 선출되지 않은 권력 행세를 하면서 책임을 지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오보를 하고도 정정 보도를 잘 하려 들지 않죠. 사회의 민주화로 언론 자유가 넘치지만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을 하려 들지 않아요. 조선일보의 경우 전반적으로 수구 기득권적 관점과 시각을 깔고 있는 것도 문제예요.”
-좋은 보도의 요체가 뭐라고 봅니까?
“저널리즘의 핵심적 가치는 정확성입니다. 팩트 체크를 해 사실을 제대로 전달해야 하죠. 시시비비를 가리는 이런 노력이 축적돼 진실 보도가 됩니다. 그런데 포털을 중심으로 클릭 수 경쟁을 하는 센세이셔널리즘에 매몰돼 이런 가치를 상실하고 있어요.”
-윤석열 정부하 류희림 위원장 시절의 방심위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류희림 체제의 방심위는 검열기관 구실을 한 일종의 괴물이었어요. 자기들 눈에 거슬리는 방송 프로그램에 대해선 폭력을 휘두른 사회적 흉기였죠. 방심위 역사상 과징금을 그렇게 남발한 적이 없어요. 방심위의 과징금은 최고 수위의 징계로, 극형에 해당해요. 류 전 위원장이 윤석열 권력의 졸개 노릇을 한 거예요.”
그는 한겨레신문 워싱턴 특파원 시절 KBS 기자 출신인 류희림 전 위원장이 YTN 워싱턴 특파원으로 근무해 그의 인간됨까지 잘 안다고 말했다.
새로 제정된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구 방심위원장)은 정무직 공무원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고, 국회 탄핵소추의 대상이 된다. 여전히 민간 기구이지만 공무원인 위원장은 국회의 견제를 받게 된 것이다. 류희림 전 방심위원장 시절엔 이렇다 할 통제 수단이 없었다. 위원 추천에 작용하는 정치적 후견주의는 완화되지 않았다. 9명 중 3명은 국회의장이 국회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협의해 추천한 사람을, 3명은 국회 소관 상임위가 추천(여당 1명, 야당 2명)한 사람을 위촉한다. 나머지 3명은 대통령이 위촉한다. 위원장 포함해 방미심위 위원은 아직 위촉 전이다. 이로 인해 현재 12만 건이 넘는 온라인 유해 정보가 심의 대기 중이다. 앞서 류희림 방심위가 의결한 법정 제재는 법원의 1심 선고가 나올 때마다 취소됐다. 방심위 산하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제재 포함해 23전 전패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설치법 제정으로 방심위가 방미심위로 재출범합니다. 방미심위원장은 정무직 공무원으로 신분이 바뀌었고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할뿐더러 탄핵소추의 대상이죠. 민간 기구인 방심위 수장의 정무직 공무원화를 어떻게 보십니까?
“류희림 전 위원장이 온갖 못된 짓을 했고 방심위가 사회적 흉기화했어도 제어할 방법이 없다 보니 위원장을 탄핵할 수 있도록 정무직으로 바꾼 거죠. 방심위는 자율적인 민간 심의기구로서, 그렇기에 대외적으로 정부는 심의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위원장을 청문회와 탄핵의 대상인 정무직 공무원으로 만들면 검열기관처럼 비쳐요. 그래서 이 신분 변화 자체에 대해 찬성은 하지 않습니다. 변혁기에 해당 기구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이런 유탄을 맞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쨌거나 류희림 방지법으로서의 의미가 있군요.
“그런 셈이죠. 무엇보다 류희림 개인의 일탈이 극심했어요.”
-다음에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 정무직 공무원인 방미심위원장을 축으로 권력이 또 방송 장악에 나설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시절이 다시는 오지 말아야죠. 결국 윤석열 같은 수구 기득권 괴물이 다시 정권을 잡고 류희림 같은 인사가 또 방심위에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한 법이라고 봐야죠.”
-방심위 추천에 정치권이 작용하는 이른바 정치적 후견주의는 완화되지 않았습니다.
“원론적으로는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공영방송 이사도, 방미심위 위원도 뽑는 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국회는 국민의 위임을 받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이죠. 다만 지금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 워낙 첨예하게 대립해 있어 국회에서 선택 받은 사람들의 행태도 싸움판 같은 대립 양상을 보인다는 게 문제죠. 그래서 국회가 뽑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위촉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도 있었지만, 새로운 선출안은 이번엔 빠졌어요. 사실 정치적 후견주의라는 용어와 함의를 저는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예요.”
-방미심위원 위촉 방식을 바꾸는 것 자체엔 동의하시나요?
“방미심위원을 국회와 대통령이 뽑음으로써 생기는 정치적 대립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다른 노력을 하는 것엔 찬성합니다.”
-류희림 방심위의 법정 제재가 법원에서 23전 23패, 전패한 건 어떻게 보시나요?
“방심위 같은 규제 기관에 가장 중요한 덕목은 자기 절제와 신중함입니다. 방심위원장 시절 저는 방심위 규정에 따라 최소 규제의 원칙을 강조했어요. 자기 절제를 하지 않고 심의를 하면 심의 기능이 검열의 칼, 난폭한 사회적 흉기가 됩니다. 심의 기능은 목을 치는 게 아니라 심의 규정의 틀을 벗어나지 않도록 다독이는 거예요.”
정 전 위원장은 노무현 정부 때 KBS 사장을 지냈고, 연임해 이명박 정부 초까지 재임했다.
-방송법 등 방송 3법 개정으로 공영방송 이사 추천의 주체를 다양화함으로써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권의 영향이 약화됐습니다. 이런 변화는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공영방송 사장도 원칙적으로 국회가 뽑는 게 바람직하지만, 이번에 KBS 이사 추천 주체에 내부 구성원과 시청자위원회, 미디어학회를 포함시켰죠. 정치권의 입김을 가능한 한 줄이기 위해서이고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실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요.”
그는 KBS 내부 구성원, 시청자위원회, 미디어학회의 정당한 대표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과제로 남았다고 말했다.
“이제 공영방송 개혁은 결국 구성원들의 몫입니다. 아니 모든 언론의 기본적인 문제는 본래 언론인 당사자의 문제예요. 1974년 동아일보 기자들이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에서 밝힌 대로 자유 언론은 본질적으로 언론 종사자들 자신의 실천과제로 정부나 국민이 가져다주는 게 아닙니다. 언론인들이 스스로 노력해 언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거죠.”
-‘파우치 박’ 박장범의 KBS에 대해 어떻게 평가합니까?
“앵커 시절 윤석열 전 대통령 부인 김건희씨가 받은 300만 원짜리 명품인 디올 백을 ‘이른바 파우치, 외국회사의 조그마한 백’이라고 했어요. 그렇게 문제를 왜소화하고 탈색한 겁니다. 그 교묘한 표현으로 KBS도 왜소화됐죠. 그 과정에서 KBS 저널리즘이 죽어 버렸고, 오늘날 KBS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국민이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슬픈 현실이죠.”
그는 세 번의 해직을 겪었다. 10·24 자유언론 실천선언 이듬해인 1975년 봄 동아일보에서 강제 해직됐다. 29세 때였다. 이명박 정부 시절엔 KBS 사장 자리에서 불법 해임됐다. 윤석열 정부 시절엔 방심위원장 자리에서 위법하게 해촉됐다.
그는 “사실 기자라는 직업은 신성한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의 현장에서 사초를 만드는 일에 종사하기 때문이죠.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바티칸을 방문했을 때 동행한 백악관 기자들에게 당시 교황이었던 요한 23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지금 살아 있다면 아마 기자를 했을 것이다. 기자는 진실을 전하는 데 가장 좋은 직업이다.’”
-후배 언론인들에게 어떤 당부를 하고 싶습니까?
“기자는 인류가 보편적으로 지향해 온 가치에 대한 열망을 가슴 가득히 품어야 돼요. 자유, 민주, 정의, 평화, 생명, 인권 같은 것들이죠. 둘째, 정확한 사실 보도로 시시비비를 가리고 진실을 찾아가는 노력을 하려면 끊임없이 자기 성찰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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