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보고서 채택 불발에도 이진숙 씨 취임식

취임사에서 'MBC 이사회 구성 조속 완료' 의지

극우적 사고에 법카 사적유용 정황 확인

야당·시민단체 '배임 뇌물공여 혐의' 고발 계획

언론장악 않겠다던 윤, 국민 '개돼지' 취급하나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에 인사청문 보고서 송부를 요청한 지 하루 만인 31일 이진숙 씨를 방송통신위원장에 임명했다. 야당과 언론계의 강력한 반발과 국민 다수의 임명 반대 여론을 아랑곳하지 않고 이진숙 방통위원장 임명을 ‘강행’한 것이다.

이진숙 위원장은 이날 바로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해 오전에 취임식을 가졌다. 그는 청문회에서 말한 것처럼 취임사에서도 “공영방송과 미디어 공영성, 공정성을 재정립하겠다”면서 “공영방송 공공성,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이사회 구성을 조속히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공영방송 KBS를 ‘땡윤방송’으로 성공적으로 전락시킨 데 이어 MBC도 같은 길을 가도록 손을 보겠다는 뜻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이진숙 씨를 방통위원장에 임명한 것은 예상된 일이다. 인사청문회에서 그의 과거 극우적 발언, 법인카드 유용 의혹, MBC 파괴와 직원 해고 등 숱한 부적격 사유와 해소되지 않은 의혹이 제기되었지만 윤 대통령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신속히 임명장에 도장을 찍었다. 마치 야당과 국민을 상대로 군사작전을 벌이는 것 같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31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방통위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2024.7.31. 연합뉴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31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방통위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2024.7.31. 연합뉴스

그러나 청문회에서도 드러났듯이 이진숙 씨는 장관급 고위공직인 방통위원장은커녕 9급 공무원에 채용되기에도 적절하지 않은 인물이다. 그는 청문회에서 5.18을 폄훼하고, 세월호 이태원 참사에 음모론을 제기하는가 하면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논쟁적 사안’이라고 답변했다. 상식 수준을 가진 국민이 사회적 패륜 집단으로 지목하는 ‘일베’와 다를 바 없는 사고체계를 드러낸 것이다. 이런 뇌구조를 가진 인사가 취임사에 두 번이나 강조한 ‘공정성’ ‘공공성’이란 무엇인지 끔찍할 뿐이다. 공직이 아닌 사영기업이라도 이렇게 극단적 이념 편향과 삐뚤어진 역사관, 그리고 도덕 불감증을 가진 인사를 채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법인카드 유용 의혹은 또 어떤가? 빵과 영화표, 주유비로 한 번에 수백만 원의 법인카드를 사용하고도 ‘업무용으로 사용했다’는 말만 녹음기처럼 반복했다. 청렴과는 거리가 멀었고 국민 앞에서 정직하지도 않았다. 본인이 아무런 증명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결국 야당 의원들이 현장검증까지 벌인 결과 그가 퇴사 직전 무단결근을 하고 해외여행을 가서도 법인카드를 사용했다는 정황이 확인됐다. 이 정도면 국회 청문회가 아니라 공금 유용으로 수사당국에 불려가 조사를 받아야 할 사안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전 정부의 방통위원장, KBS 이사장, 방문진 이사장, EBS 이사장, 방심위원장 등을 사소한 법카 유용 의혹을 제기해 줄줄이 강제 해임(해촉)했다. 그렇다면 이진숙 씨는 방통위원장 자리를 꿈도 꾸지 말았어야 했다.

이렇게 얼토당토 않은 인사를 굳이 방통위원장에 전광석화처럼 임명한 이유는 오로지 하나다. 눈엣가시 같은 MBC를 장악해 KBS에 이어 또 하나의 ‘땡윤방송’ ‘어용방송’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진숙 위원장은 청문회와 취임사에 밝힌 대로 MBC 대주주인 방문진 이사 교체 작업에 착수할 것이다. 친정권 인사들이 장악한 방문진이 MBC 사장에 ‘제2의 박민’ 같은 극우 인사를 앉히면 MBC뉴스는 다음날부터 KBS처럼 ‘땡윤뉴스’로 바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과 김태규 상임위원 등이 31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방통위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2024.7.31. [공동취재] 연합뉴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과 김태규 상임위원 등이 31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방통위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2024.7.31. [공동취재] 연합뉴스

윤석열 정권은 이런 시나리오를 완성하기 위해 이미 준비를 마친 상태다. 야당의 탄핵 발의에 또다시 사퇴하고 달아난 이상인 방통위 부위원장 후임에 김태규 국가권익위 부위원장을 임명했다. 판사 출신인 김태규 씨는 과거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유인물을 제작 배포한 시민을 5개월 간 구속상태에서 재판하고 유죄 선고를 내린 바 있다. 대법원이 일본제철 강제징용 소송에서 내린 1억원 배상 판결을 비판했던 판사로,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비슷한 친일 역사관을 소유한 인물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국가권익위 부위원장으로서 김건희 씨 명품백 수수가 김영란법 위반이 아니라는 어이없는 결정으로 전 국민의 상식을 짓밟고 김건희 씨를 구원해준 바로 그 인물이기도 하다.

이진숙 위원장과 김태규 부위원장의 방통위는 윤석열 대통령의 언론장악 작전을 더 잘 수행할 ‘위법적 2인 체제’가 될 것이다. 여기에 김건희 씨와 친밀한 관계이면서 지난해 ‘청부심의’ ‘편향심의’로 방송언론 파괴를 지원해 온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의 ‘셀프 연임’도 큰 힘을 보탤 것이다. 이진숙 위원장은 취임사에서 “(종군기자 시절) 목숨을 걸고 전장을 누볐다는 자부심을 갖고 살았다”는 자기 자랑을 잊지 않았다. 이동관·김홍일 두 전임 방통위원장들처럼 야당의 탄핵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그는 꿋꿋하게 윤석열 대통령의 방송 장악 임무를 다할 것을 예고한 것이다.

야당과 언론계 반발은 어느 때보다 거세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의 이진숙 방통위원장 임명에 대해 “수사받고 처벌되어야 할 사람을 방통위원장에 임명한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일”이라면서 “방송장악으로 독재의 길을 가겠다는 망상을 접어라”고 비난했다. 조국혁신당 김보협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총선 결과에 아랑곳하지 않고 야권과 정면 대결을 선택했다”면서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면대결을 선택한 윤 대통령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다. 야당은 이진숙 위원장을 업무상 배임, 뇌물 공여, 부정청탁금품수수 등 혐의로 고발하기로 했다.

국회에서는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의기억연대, 민족문제연구소, 함께하는시민행동, 5·18민주화운동서울기념사업회, 4·16 세월호가족협의회, 10·29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등 시민단체들도 기자회견을 열어 이진숙 위원장 임명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9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이뤄진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도 이진숙 방통위원장을 법인카드 사적유용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키로 했다. 

 

7월 31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등 각 단체 관계자들이 더불어민주당 김현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2024.7.31. 연합뉴스
7월 31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등 각 단체 관계자들이 더불어민주당 김현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2024.7.31. 연합뉴스

원로 언론인 단체인 ‘언론탄압 저지와 언론개혁을 위한 비상시국회의’가 윤석열 정권의 언론장악을 과거 일본제국주의의 언론정책에 비유한 것이 눈길을 끈다. 이 단체는 31일 낸 성명에서 “(이진숙과 류희림) 두 사람을 각각 방통위와 방심위의 수장으로 내려보낸 의도는 제국주의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벌이면서 전쟁사령부인 대본영의 발표만 받아쓰도록 언론에 강제한 것처럼, 모든 방송을 ‘한국판 대본영 방송’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불과 석달 전 총선에서 참패한 직후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언론을 장악할 생각이 없다”고 해 언론인들의 마음을 잠시 설레게도 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총선 참패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영화 ‘내부자’들에 나오는 대사가 자꾸 떠오른다. “어차피 대중은 개돼지들입니다.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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