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인상률 산정에도 빠듯한 판에 엉뚱한 소모전

토론회 열어 영세업종 빌미로 "차등적용” 여론몰이

노동계 “최저임금제 무력화, 노동양극화·차별 심화”

“선진국 차등적용은 취약업종 임금 더 주려는 것”

"지역별 차등은 심각한 결과, 지방소멸 앞당길 것"

이달 말로 법정 심의 기한이 끝나는 최저임금 논의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물가상승률과 실질임금 하락 등을 고려한 적정 인상률을 정하는데 집중해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지역별, 업종별 차등적용’을 놓고 소모적 공방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차등적용 이슈를 주도하는 쪽은 경영계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차등적용을 강력하게 요청하는 수준을 넘어 세미나와 토론회 등 장외 여론전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13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열린 제4차 전원회의에서 이인재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위원들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2024.6.13. 연합뉴스
지난 13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열린 제4차 전원회의에서 이인재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위원들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2024.6.13. 연합뉴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 중소기업중앙회, 소상공인연합회, 국민의힘 조정훈 의원실이 17일 공동 개최한 ‘국민이 수용할 수 있는 최저임금은’ 토론회에서도 ‘차등적용’을 강변하는 주장이 나왔다. 최저임금 수용성을 높이려면 숙박업과 음식점업 등 임금 수준이 낮은 업종은 최저임금을 다르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주제 발표자인 김강식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명예교수는 "숙박·음식점업, 농림어업, 보건·사회복지업, 도소매업 등 일부 업종은 사업자의 지급 능력이 취약해 높은 수준의 최저임금이 오히려 보호해야 할 다수의 근로자를 최저임금 보호영역 밖으로 내몰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그 근거로 지난해 전체 근로자의 13.7%인 300만 명 이상의 근로자가 최저임금액 미만을 받았다는 경총 자료를 인용했다. 그러면서 최저임금 수용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5인 미만 영세 사업체를 대상으로 하는 규모별 구분 적용, 고령 인력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연령별 구분 적용을 위한 제도 개선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동근 경총 상근부회장도 “내년도 최저임금은 동결과 같은 안정적 수준에서 결정해야 하고, 업종별 구분 적용도 반드시 시행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조정훈 의원은 “단일 최저임금제가 오히려 고용 불안정과 산업 간 격차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이제는 일률적인 최저임금제를 넘어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고 있다”고 맞장구쳤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근로자의 생활 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최저임금법 제1조)이라는 입법 취지를 정면으로 부정할 뿐 아니라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노동자의 차별을 심화할 것이라는 점에서 절대 도입해서는 안 되는 제도다. 차등적용이 필요하다며 이들이 제시한 근거들도 사실과 거리가 멀다.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시간당 임금을 받은 근로자 통계(최저임금 미달률)부터 신뢰성이 떨어진다. 최저임금 미달률은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와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가 있다. 경총은 통계청 자료를 근거로 지난해 최저임금 미만으로 받은 근로자 비율을 13.7%에 달한다고 했으나 전문가들은 고용부 자료를 더 신뢰한다. 매년 6월 실시하는 근로실태조사는 사업체를 대상으로 근로 시간, 임금 지급 현황 자료 등을 기반해 조사한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최저임금보다 적게 받은 근로자 비율은 4.2%에 불과하다.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올랐던 2019년 이후 고용부가 조사한 최저임금 미달률은 매년 3~4%대에 그치고 있다.

경영계는 또 많은 나라가 이미 차등적용을 시행하고 있다는 점을 내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 역시 사실과 다르다. 지난 4월 말 민주노동연구원은 ‘최저임금 차등적용 논리의 허구성-2025년 최저임금 논의의 주요쟁점’ 보고서를 발표했다. 경영계가 최저임금 심의 때마다 차등적용을 주장하자 해외 사례 등을 바탕으로 조목조목 반박한 자료다.

이에 따르면 국제노동기구(ILO) 회원국의 90%가 최저임금제를 도입하고 있고 이중 절반 이상이 단일한 최저임금을 적용한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발간한 ‘주요 국가의 최저임금제도’ 자료를 보면 OECD 회원국 26개국과 비회원국 15개 등 41개 국가 가운데 11개 국가가 지역별, 업종별 최저임금제를 시행하고 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이들 국가의 상당수는 차등적용 이유가 경영계가 주장하는 것과 정반대라는 사실이다. 취약 업종의 최저임금을 낮추기 위한 게 아니라 차등적용 대상이 된 업종에 속한 노동자에게 임금을 더 주기 위한 것이다.

예컨대 독일과 벨기에, 호주는 단체협약을 통해 업종별 최저임금을 정하고 있는데 모두 국가 최저임금보다 높다. 독일은 업종별 최저임금이 국가 최저임금보다 2배 이상 높다. 루마니아와 아일랜드, 체코는 특정 직업 또는 직군을 구분해 최저임금을 정하는데 해당 업종과 직군에 대해서는 가산된 최저임금을 적용한다. 이중 루마니아는 건설산업을 육성하고 숙련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업종별 차등적용을 도입한 것으로 취지 자체가 임금 상향을 전제하고 있다. 연방국인 미국과 브라질, 러시아는 주별 최저임금이 연방 최저임금과 비교해 같거나 더 높다.

민주노동연구원은 “각국 사정에 따라 최저임금을 차등하게 적용할 수는 있으나 제도의 복잡성과 집행 역량 등의 문제로 최저임금제도 본연의 목적과 취지가 훼손될 수 있어 ILO와 OECD 모두 ‘가능한 한 단순하게’ 시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원 또 “차등적용으로 임금이 (국가 최저임금 보다) 낮아지면 ILO 협약(고용 및 차별에 관한 협약)을 위배할 수 있어 상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시행해야 하고 국가의 제도적 능력, 임금 통계의 질, 행정 집행 능력 등도 신중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료 : 민주노동연구원.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 관련 제도 변화. 
 자료 : 민주노동연구원.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 관련 제도 변화. 
 자료 : 민주노동연구원. 업종별, 지역별 최저임금 차등적용 국가 특징.
 자료 : 민주노동연구원. 업종별, 지역별 최저임금 차등적용 국가 특징.
 자료 : 민주노동연구원.  경영계가 최저임금 차등적용 대상으로 지목한 업종의 인건비 비중. 
 자료 : 민주노동연구원.  경영계가 최저임금 차등적용 대상으로 지목한 업종의 인건비 비중. 

재계는 차등적용의 필요성으로 영세 사업자의 경영난과 숙박업 등 취약 업종의 인건비 부담이 크다는 이유를 들고 있으나 이 또한 과장된 측면이 있다. 민주노동연구원은 지난해 고용부가 최저임금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특정 업종에 더 낮은 최저임금을 적용할 필요성에 대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대목을 그 근거로 들었다. 취약 업종의 경영악화도 인건비 비중이 높지 않다는 점에서 최저임금보다는 원청 기업이나 프렌차이즈 본사 등이 비용을 전가한 탓이 더 크다고 연구원은 지적했다.

이처럼 최저임금 차등적용 주장은 근거가 빈약할 뿐 아니라 업종이든 지역이든, 나이든, 성별이든 등 차등적용 대상이 된 노동자를 차별한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차등적용 업종은 인건비를 줄일 수 있겠으나 좋은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질 게 뻔하다. 지역별 차등적용은 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 젊은이들이 수도권과 대도시로 떠나는 상황에서 지방소멸을 앞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연령 등의 차등적용 역시 차별 논란이 불거질 소지가 다분하다.

최저임금 차등적용에 대한 국민 여론도 싸늘하다. 재계와 소상공인 등 일부는 차등적용에 찬성하고 있으나 대다수 국민은 부정적이다. 직장갑질119가 최근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3.6%가 특수 고용직까지 포함한 모든 노동자에게 법정 최저임금을 적용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