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최저임금 1만30원…1.7% 찔끔 인상

누적된 고물가 고려하면 인상률 너무 낮아

실질임금 2년째 줄었는데 경영계 제안 수용

“최저임금 1만원 돌파 호들갑 떨 때 아니야”

내년에는 최저임금 1만 원대 시대가 열린다. 그러나 최근 2년간 가파르게 오른 생활물가를 고려하면 결코 높은 수준이라고 보기 어렵다. 더욱이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은 역대 2번째로 낮은 1.7%로 정해졌다. 소비자물가상승률보다 낮은 인상률이다. 이에 따라 저소득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질 것으로 보인다.

 

최저임금위원회는 12일 새벽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1차 전원회의에서 투표를 거쳐 내년 최저임금을 시간당 1만30원으로 결정했다. 올해보다 1.7% 오른 금액으로 사상 처음으로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맞게 됐다. 사진은 회의가 끝난 뒤 이인재 최저임금위원장이 자리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2024.7.12. 연합뉴스
최저임금위원회는 12일 새벽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1차 전원회의에서 투표를 거쳐 내년 최저임금을 시간당 1만30원으로 결정했다. 올해보다 1.7% 오른 금액으로 사상 처음으로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맞게 됐다. 사진은 회의가 끝난 뒤 이인재 최저임금위원장이 자리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2024.7.12. 연합뉴스

최저임금 제도 시행 37년 만에 1만 원 돌파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등 경영계는 시간당 최저임금 1만 원 시대가 되면 근무 시간을 단축하고 인력을 줄여야 할 판이라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러나 최저임금의 본래 취지가 "임금의 최저수준 보장을 통한 근로자의 생활 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에 있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낮은 최저임금 인상률은 문제가 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제11차 전원회의를 열고 표결을 거쳐 내년도 최저임금을 시간당 1만 30원으로 결정했다. 시간당 임금이 1만 원이 넘은 건 1988년 최저임금제도 도입 이후 37년 만이다. 노동계는 2015년부터 ‘최저임금 1만 원’을 요구했고 문재인 정부는 ‘2020년 달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기업과 소상공인 등 경영계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반대하고 대다수 언론이 여기에 동조하며 최저임금 1만 원 시대는 계속 미뤄졌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1만 원 이상으로 결정된 건 역설적이다. 문재인 정부 공약이 윤석열 정부에 성사됐기 때문이다. 절대 액수만 보면 노동계 염원이 이루어진 것 같으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작년과 올해 급등한 물가로 임금 노동자의 실질소득이 2년 연속 줄었기 때문이다. 장기간 누적된 고물가는 내년에 최저임금이 1만 원 이상으로 올라도 노동자들의 실제 소득을 끌어내릴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률은 1.7% 불과, 고물가 반영 안 돼

최저임금 협상 과정을 보면 고물가가 초래한 노동계의 절박성을 엿볼 수 있다. 노동계는 처음에는 시간당 1만 2600원을 요구했다. 협상을 진행하며 지난 11일 밤 4차 요구안은 1만 840원까지 내려갔다. 그런데도 경영계는 시간당 1만 원을 넘길 수 없다며 완강하게 반대했다. 경영계와 노동계가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해 자정을 넘겼고 12일 새벽 11차 전원회의가 열렸다.

공익위원들은 1만 원에서 1만 290원으로 '심의 촉진 구간'을 정해 노동계와 경영계의 5차 수정안인 최종안을 요구했다. 노동계는 마지노선으로 1만 120원을, 경영계는 1만 30원을 제시하며 양쪽의 요구 폭이 90원까지 좁혀졌다. 그러나 끝내 합의안을 도출하는 데는 실패했다. 결국 노동계와 경영계가 제시한 최종안을 놓고 표결에 들어갔고 14대 9로 경영계 안이 최종 확정됐다. 민주노총 소속 근로자위원 4명은 공익위원의 심의 촉진 구간이 주먹구구식으로 정해진 것이라며 최종 표결에 불참했다. 이들이 참여했다고 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올해도 최저임금 법정 심의시한을 지키지 못했다. 법에 규정된 심의시한은 고용노동부 장관이 심의를 요청한 3월 29일부터 90일이 되는 6월 말이다. 전체 심의 기간은 105일로 역대 최장이었던 지난해보다 5일 짧다. 최저임금 제도 도입 이후 심의 기한이 준수된 건 9번뿐이다. 노동계와 경영계, 공익위원이 합의해 최저임금을 결정한 경우는 7번에 그쳤다. 지난 2008년 결정된 2009년도 최저임금이 가장 최근에 이뤄진 마지막 합의안이다.

 

 연도별 시간당 최저임금 추이. 연합뉴스
 연도별 시간당 최저임금 추이. 연합뉴스

“최저임금은 사회임금” 모든 분야의 인건비 기준

내년도 최저임금이 1만 원대로 올라섰으나 올해 최저임금 대비 인상률이 1.7%에 그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1989년부터 지난해까지 최저임금 연평균 인상률은 9.0%에 달한다. 최저임금이 대폭 오른 문재인 정부 때는 물론이고 윤석열 정부 시기인 재작년과 작년 사이 5.0%, 작년과 올해 사이 2.5% 인상한 것과 비교해도 낮은 편이다. 더욱이 작년부터 생활물가가 치솟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 그렇다. 한국노총은 12일 성명에서 “실질임금이 사실상 삭감된 마당에 최저임금 1만 원 돌파가 엄청난 것인 양 역사적이니 뭐니,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최저임금 인상률이 중요한 이유는 다른 분야 인건비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최저임금이 사회임금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최저임금에 영향받는 노동자는 올해 기준 약 335만 명이다. 전체 임금 노동자에서 15% 정도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들만 최저임금을 받는 건 아니다. 프리랜서 등 다른 직종 노동자도 최저임금이 인건비 결정에 기준이 된다. 여기에 속하는 노동자는 850만 명에 이른다.

서울시를 비롯해 지방자치단체들은 ‘생활임금’을 지급하는데 이것 역시 최저임금 인상률에 연동된다. 서울시의 서울형 생활임금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6.7% 올랐다. 같은 기간 최저임금 연평균 인상률은 7.1%였다. 이외에도 저임금 노동자들이 종사하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최저임금은 기준 임금으로 여겨진다. 최저임금 인상률을 정할 때 노동계와 경영계가 사활을 걸고 뜻을 관철하려고 하는 것은 이처럼 파장이 크기 때문이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찔끔 올랐는데도 경영계는 불만을 토로한다. 그러면서 업종별로 차등해 최저임금을 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최저임금을 깎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업종이나 근로 계약 형태에 따라 '차등 적용'이라는 꼼수를 부리려고 하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내년도 최저임금 확정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한계 상황에 직면한 중소·영세기업과 소상공인들의 절박함을 고려하면 동결해야 했다”며 “일부 업종만이라도 구분 적용하자는 사용자위원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내년에도 단일 최저임금을 적용하기로 한 것에는 다시 한번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했다.

 

 내년도 최저임금 노사 요구안 변동 추이. 연합뉴스
 내년도 최저임금 노사 요구안 변동 추이. 연합뉴스

내년 최저시급으로 삼계탕 한 그릇 사 먹기 힘들어

최저임금이 너무 가파르게 오르면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는 건 사실이다.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하면 채용을 줄이면서 저임금 노동자의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치며 최저임금 대폭 인상의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을 지킬 수 없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 급등한 물가를 고려했어야 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공식 물가 동향을 보면 상승세가 다소 꺾이기는 했다. 그러나 농·축·수산물이 여전히 전년 대비 6.5%로 높은 상승률을 기록 중이다. 석유류도 4.3% 오르며 18개월 만에 최고 상승했다. 밥상 물가와 직결되는 신선식품 지수는 11.7%나 올랐다. 내년도 최저시급 1만 30원으로는 냉면과 삼계탕 한 그릇도 사 먹기 힘든 실정이다.

원/달러 환율과 국제 유가의 변동성에 따라 내년에도 고물가 기조가 이어질 수 있다. 물가가 잡히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저임금 노동자들은 찔끔 오른 최저임금으로 살아가야 한다. 경영계는 한국의 최저임금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저임금은 절대액만 가지고 적정성을 따질 수 없다. 경제 성장률과 생산성 등도 고려해야 하지만 최저임금 본래의 취지를 살리려면 물가 상승률을 최우선 결정 요인으로 둬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은 너무 낮다. 사상 처음으로 시간당 1만 원대 시대를 열었다는 역사적 의미를 강조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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