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연속 위험성평가 우수사업장에서 왜?

그곳 노동자가 평가작업에 소외되었기에

‘깨어있는 노동자’ 조직만이 참사 막을 수 있어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손정순 시화노동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손정순 시화노동정책연구소 연구위원

7월 4일, 아리셀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경기도 시흥시 정왕본동 행정복지센터에 다녀왔다.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참사가 화성시에서 발생했고 경기도 화성시청에 분향소가 있지만 시흥시 정왕본동 행정복지센터에도 분향소가 마련되어 있다. 참사 희생자 중 17명이 시흥시 정왕본동에 거주하는 노동자로 그중 14명은 재중동포인 이주노동자였다. 이들은 여느 때처럼 정왕동 인력·용역업체의 차를 타고 아리셀에 일하러 갔지만 집으로 퇴근하지 못했다. 위패도, 영정 사진도 없고 찾는 이도 드물지만 정왕본동 분향소를 찾아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다.

단순 원인 분석과 탁상 대책으로는 참사 재발 못 막는다

참사가 발생한 지 보름이 지났다. 그동안 언론을 중심으로 이번 참사의 원인에 대해 다양한 의견과 관점이 분출했다. 이미 네 차례나 화재가 난 적이 있음에도 안전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사용자의 고질적인 안전 불감증이 원인이라는 주장에서부터 한국 노동사회에서 가장 주변부 노동자라 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책적·사회적 관심 부재에 이르기까지, 참사의 함의에 대한 논의가 분분했다.

대책도 제시되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7월 1일,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사고 중앙사고수습본부 2차 회의를 개최하면서 “우리 사회의 산업안전 취약 부문과 위험 요인은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며 “조속한 재발 방지대책 수립을 강조”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 동종・유사업체에 화재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점검하고 △ 전지 등 화재위험 방지대책은 관계부처 간 밀도 있게 논의하여 조속히 마련하며 △ 현장 및 협회・단체의 의견 등을 토대로 관계부처와 협업하여 이번 사고에서 다수 희생된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산업안전 강화 방안도 7월 중으로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이번 사고를 통해 문제점이 파악된 위험성 평가 인정 사업과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컨설팅 등 정부 지원 사업도 꼼꼼히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고용노동부의 대책에 기시감과 함께 뭔가 핵심이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수십 명의 노동자가 사망하는 참사는 왜 반복될까?

2008년, 경기도 이천 냉동창고 건설 현장에서 화재로 40명의 일용 건설 노동자가 사망했다. 이번 아리셀처럼 작업 참여 건설 노동자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 교육조차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고 공사 기간을 맞추려고 건설업체가 조급하게 위험작업을 병행했다. 전형적인 사용자의 안전 불감증이었다. 당시 노동부는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고를 계기로 냉동·냉장창고 시설 공사 시 사전에 ‘유해·위험 방지 계획서’를 작성해 제출토록 하는 대책을 마련했다. 이 계획서를 토대로 냉동·냉장창고 시설 건설 시 작업장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는 것이었다.

 

시흥시 정왕본동 행정복지센터에 마련된 아리셀 화재참사 희생자 추모분향소의 모습.
시흥시 정왕본동 행정복지센터에 마련된 아리셀 화재참사 희생자 추모분향소의 모습.

3년 연속 위험성평가 우수사업장에서 왜 참사가 벌어졌을까

12년 뒤인 2020년 4월, 2008년 화재 참사가 발생했던 이천의 물류창고에서 동일한 원인으로 화재가 발생해 38명의 일용 건설 노동자가 또 사망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창고 건설업체가 제출한 유해·위험 방지 계획서를 검토한 결과 화재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해 수차례 개선을 요구했지만 건설업체는 이를 지키지 않았고, 결국 38명의 노동자 목숨을 앗아가는 결과로 이어졌다.

아리셀은 산업안전보건법이 규정하고 있는 자체 위험성평가 사업에서 3년 연속 우수사업장으로 선정된 사업장이었다. 위험성평가는 사업체가 자체적으로 ‘노사가 함께’ 사업장 안 유해·위험 요인을 파악하고 개선 대책을 수립, 이행하는 제도이다. 위험성평가를 실시한 후 안전보건공단의 현장실사 등을 거쳐 우수사업장으로 인정받으면 산재보험료율 20% 감면 등의 혜택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제도도 참사를 막지 못했다. 2017년 공장 건설 이후 이미 네 차례나 화재 사고가 있었고, 올해 3월 소방점검에서도 아리셀 공장 생산라인에 대해 소방당국은 “다수 인명피해 발생 우려 지역”이라고 경고했다. 아리셀은 보름 뒤에 소방 자체점검을 통해 “문제없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했고, 그로부터 3개월 뒤 화재가 발생해 23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노사가 함께’ 위험성평가를 했음에도, 그리고 소방당국의 경고가 있었음에도 참사 발생을 막지 못했다.

노동자가 일하는 작업장에서 크고 작은 참사는 왜 반복해 일어날까? 지난 글에서 언급했지만 2008년, 2020년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와 2024년 아리셀 화재 참사를 관통하는 공통 요인은 불법적인 다단계 인력하도급이다. 유료 직업소개소를 통한 일용직과 파견·용역 노동자와 같은 간접고용 노동자는 사용자인 아리셀이 함께 위험성평가를 해야 하는 ‘노동자’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리고 아리셀 화재 참사 과정을 복기해 보면 정규직 노동자도 위험성평가를 진행한 ‘노동자’에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무(無)노조인 아리셀에서 위험성평가를 사용자와 진행할 수 있는 노동자 대표는 노사협의회 근로자 대표 밖에는 없다. 아리셀은 상시고용 30인 이상 사업장이기 때문이다. 노사협의회의 근로자 대표가 위험성평가에 실제 참여했는지, 그리고 아리셀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대표해 문제 제기를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23명 노동자 희생이 의미하는 것은 근로자 대표가 참여 못 했거나 참여해 문제 제기를 했더라도 무시되었다는 점을 드러낼 뿐이다.

노동자가 사업장 내 위험성평가에 참여하지 못하는 현실

일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아니기에 산업안전보건법 상으로는 작업장 내 위험성평가 과정에 직접고용이든 간접고용이든 해당 작업을 수행하는 노동자가 반드시 참여하도록 되어 있다. 아리셀에서는 이 모든 과정이 무시되었다. 사용자가 법을 무시한 것도 문제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용자의 법 위반에 대해 아리셀에서 일하는 노동자 누구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거나 못 했다는 것이다. 유료직업소개, 파견·용역업체를 통해 일하는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는 물론이고, 아리셀이 직접 고용한 노동자조차도 아리셀의 사업장 위험성평가에 문제 제기, 즉 보이스(voice)를 제기하지 않았다. 50여 명에 이르는 아리셀 정규직 노동자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위험성에 대해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지만 작업장 위험 요인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거나 못했다. 왜? 작업 현장에서 자신들의 의견·요구를 집약·대변해 줄 조직인 노동조합이 없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없는 대신에 노사협의회라도 제대로 역할 했다면 이번 참사 피해는 분명 줄일 수 있었지만 노사협의회도 기능부전(機能不全)이었다. 아리셀 사업장의 유해·위험 요인에 대한 노동자의 문제 제기가 작업 현장에서 원천적으로 막혀 있었고 그 결과로 참사가 발생했다. 결국 아리셀에서 노동자는 말 그대로 ‘일하는 기계’였을 뿐이었다.

노동자는 일하는 기계가 아니다. 사용자에게, 자본에게 노동력을 제공하는 한 인간이다. 공장 밖 광장에서 ‘탄핵’을 외치는 시민이기도 한 노동자는 공장 안 작업장 문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주장을 자유롭게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광장에서는 탄핵 요구를 받아안을 정당이 중요하듯이 공장 안에서는 노동자 요구를 받아안아서 작업장 민주주의를 실현할 집단적 조직이 중요하다. 노동조합, 노사협의회, 최근 확산하고 있는 공제회, 공동근로복지기금 등 명칭이 무엇이든 간에 노동자의 집단적 이해대변체가 절실한 이유는 작업장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핵심 조직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작업장에서 이해대변체가 낳는 효과는 작업장 내 직접고용, 간접고용을 가리지 않는다. 이 글에서는 아리셀의 위험성평가만을 예로 들었지만 더 넓게 본다면 사용자의 자의적인 노무관리에 대해 문제 제기할 수 있는 집단적 이해대변체의 부재가 참사 피해를 키웠다. 좁게는 고용노동부의 대책에서부터 넓게는 한국 노동사회에서 작업장 참사를 막을 주체인 노동자들의 집단적 이해대변체에 대한 고민 부족이 또 다른 원인이다.

‘깨어있는 노동자’의 조직된 힘만이 참사 막는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썼던 표현이자 묘비명이다. 작업장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노동자의 조직된 힘이다. 그리고 노동자의 조직된 힘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노동조합이다. 이래저래 욕먹어 왔지만 노동조합이 자본주의 역사에서 존재하고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공장 밖 민주주의 원칙, 즉 참여를 통한 문제 제기(voice)를 공장 안에서 구현해 왔기 때문이다. 오히려 근대 민주주의 원칙 자체가 노동조합에서 유래한 것도 있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의 4대 원칙은 이미 노동조합이 200년 전부터 위원장을 선출할 때 적용해 왔다. 19세기 초 전 세계 대부분의 지역이 신분제적 왕조국가였음에도 말이다.

참사와 관련해 작업장의 조직된 힘은 수많은 참사를 일과성으로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유일한 뒷배이기에 중요하다. 참사의 반복은 참사를 둔감하게 만든다. ‘본인이 잘못해 다치거나 죽은 것이지’라는 인식을 구조화시키는 것이다. 참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산재에서 항상 언급되는 얘기이다. 노동조합은 작업장에서의 산재, 나아가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노동자 입장에서 일종의 미시적 마지노선 역할을 한다. 이미 시작되었다. 중대재해 대책위에 노동조합이 참여해 참사 원인과 재발방지를 요구하는 유가족협의회의 입장을 반영하려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아리셀 참사로 희생된 23명 노동자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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