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부산행에 재벌 총수 대거 차출

7년 전 박근혜-이재용 대구 사진과 겹쳐

해외 순방 때마다 대규모 경제사절 대동

정부의 잼버리 참사도 기업이 나서 수습

“일만 생기면 기업 동원하는 구태 여전”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주요 신문들은 7일 자 1면 또는 경제면에 비슷한 사진을 크게 다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일 부산 중구 깡통시장을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기업 총수들과 함께 떡볶이를 먹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에는 이 회장 외에도 최재원 SK 수석부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등 다른 대기업 총수들 모습도 보인다. 사진엔 없지만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류진 한국경제인협회(전 전경련) 회장 등이 이번 윤 대통령 부산행에 동행했다.

이 장면은 묘한 기시감을 들게 만든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당하기 직전인 2016년 3월 10일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이때도 이재용 회장은 박 전 대통령과 동행하며 여러 장의 사진을 남겼다. 그 후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했던 윤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과 이 회장 관계를 ‘정경유착’으로 규정했다. 정권과 자본 권력의 부도덕하고 부적절한 밀착이라며 유죄를 선고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6일 부산 중구 깡통시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재벌기업 총수들과 떡볶이 등 분식을 시식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재원 SK 수석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윤 대통령,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2023.12.6.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6일 부산 중구 깡통시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재벌기업 총수들과 떡볶이 등 분식을 시식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재원 SK 수석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윤 대통령,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2023.12.6.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당시 부회장)이 지난 2016년 3월 10일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해 전시관을 둘러보고 나서 행사장을 떠나고 있다. 2016.3.10.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당시 부회장)이 지난 2016년 3월 10일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해 전시관을 둘러보고 나서 행사장을 떠나고 있다. 2016.3.10. 연합뉴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비슷한 장면들이 다시 연출되고 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박 전 대통령 자리에 윤 대통령이 있다는 것이다. 특별검사 시절 정경유착을 단죄했던 윤 대통령이 툭하면 재벌 총수들을 동원하는 모습은 박근혜 정부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기업인들과 만나지 않았느냐는 항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윤석열 정부와 달리 재벌 친화적인 정책을 펼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엑스포 유치 실패로 좌절감에 빠진 부산 시민을 위로한다는 명분으로 대기업 총수들까지 동원한 것은 보수언론조차 도를 넘었다고 지적한다. 중앙일보는 7일 자 사설에서 “윤 대통령 취임 후 크게 늘어난 해외 순방마다 주요 대기업 회장과 최고경영자(CEO)들을 줄 세워 수행시키는 것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며 “지난달 윤 대통령의 런던·파리 순방에 다녀온 기업인들 상당수가 다음 주 윤 대통령의 네덜란드 국빈 방문의 경제사절단에 다시 이름을 올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만 생기면 기업인들부터 동원하는 이런 정부의 행태는 ‘자유’라는 정책 기조와 맞지 않을뿐더러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재계에서도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엑스포 유치 실패를 사과하고 부산 민심을 달래는 자리에 이재용 회장을 비롯한 재벌기업 총수를 꼭 동원했어야만 했냐는 것이다. 윤 대통령과 엑스포 관련 부서 장관, 국민의힘 당직자 정도만 참석해도 될 일을 연말연시를 맞아 일정이 많은 기업인들은 차출한 것은 지나쳤다는 지적이다. 정경유착 사건을 수사를 했던 윤 대통령의 퇴행적 행태에 안타까움을 표시하는 재계 관계자도 한둘이 아니다.

윤 대통령의 부산행이 내년 총선을 겨냥한 ‘정치적 행보’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민간 기업인을 들러리로 세운 것은 부적절하다. 엑스포 유치 실패로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에 대한 부산 민심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부산 지역에서 윤 대통령 국정 운영을 긍정 평가하는 비율이 떨어졌다. 

윤석열 정부는 입으론 자유시장 경제와 기업의 자율성을 강조하고 있으면서 시대착오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갈 때마다 대규모 경제사절단을 꾸리는 것부터가 1970년대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 시대로 회귀한 듯한 인상을 준다. 세계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인지도가 낮았던 과거에는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쳐 경제를 이끌어가는 게 정당화됐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인지도와 위상이 높다. 대통령이 해외에 나갈 때 총수를 대동하는 게 기업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쓰지 않아도 돈을 정부 정책과 외교에 투입하는 일이 더 많다.

이번 부산 엑스포 유치전만 해도 그렇다. 민간 유치위원장이었던 최태원 회장의 SK그룹을 비롯해 기업들은 엄청난 돈과 시간을 쏟아부었다. 정부와 보수언론들은 유치전을 펼치는 과정에서 우리 기업의 인지도를 높이는 성과를 얻었다고 애써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비용 대비 효과 측면에서 설득력이 약하다. 현금을 주고 신용도가 매우 낮은 어음을 받은 셈이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잼버리 참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부는 준비 부족과 부실 관리로 사고를 치고 실추된 국격을 수습하기 위해 기업에 손을 내밀었다. 보수언론은 미래 고객인 세계 청소년들에게 좋은 인식을 심어줄 기회 운운하며 민간의 ‘자발적’ 지원을 호도했다. 그러나 정부의 갑작스러운 요청에 많은 기업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예상하지 못했던 비용을 쓸 수밖에 없었다. 당시 재계에서는 "정부가 아쉬울 때마다 민관협력을 들먹인다"는 볼멘 소리가 나왔다.

재벌 총수들이 대통령 ‘호출’을 거부하지 못하는 이유는 정부 규제와 지원 정책이 기업 수익성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친기업 성향의 윤석열 정부와 재벌이 부적절한 방식으로 협력하는 상황은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다. 윤 대통령과 재벌 총수들이 부산의 한 재래시장에서 떡볶이를 먹고 있는 모습과 7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회장이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함께 웃고 있는 사진은 '구시대 유물'로 알고 있던 정경유착의 추억을 다시 떠오르게 만든다.

 

  박순찬의 만화시사. 
  박순찬의 만화시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