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들, 윤과 유럽 동행"…고질적 정경유착 거론
"정치지도자들, 여전히 재벌들에 기대며 지원 요구"
기업 브랜드 이미지 먹칠…총수들 '의문의 1패'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파리에서 벌인 윤석열 대통령의 '폭탄주 회식' 불똥이 재벌총수들에게 튀었다.
2030세계박람회(엑스포) 부산 유치를 위해 프랑스 파리를 방문 중이던 윤 대통령은 지난달 24일(현지 시간) 파리의 한 한식당에서 이재용, 최태원, 정의선, 구광모, 신동빈 등 재벌그룹 총수들을 끼고 밤늦게까지 소폭(소주 폭탄주) 술자리를 가진 것으로 뒤늦게 확인돼 큰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는 엑스포 선정 투표일인 28일을 나흘 앞둔 시점으로 엑스포 유치 여부를 놓고 온 나라가 다들 노심초사하던 때여서 윤 대통령의 몰상식한 처신에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NYT 한국 재벌 조명…재벌과 '폭탄주 회식' 불똥
재벌총수들을 차출해 부하 다루듯 한 사례는 이것뿐이 아니다. 지난 6일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재벌총수들을 대동하고 부산 중구 깡통시장을 찾았다. 이 자리엔 이 회장 외에 최재원 SK 수석부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도 동석했다. 윤 대통령 본인의 주장대로 엑스포 유치를 위해 취임 이후 "96개국 정상과 한 150여 차례" 만났다면서도 고작 29표를 얻는 대참사로 인해 급속히 악화한 부산 민심을 달래보려는 일종의 총선용 행보였다. 그러나 재벌총수들을 정작 그곳에 대동하고 가서는 함께 떡볶이를 먹었다. 그리고 이들 총수를 배경 삼아 떡볶이를 먹는 이른바 '병풍 사진'을 남기기도 했다.
이처럼 윤 대통령과 재벌총수의 '어색한 회동'이 이어지자, 급기야 미국의 뉴욕타임스(NYT)가 '한국 경제를 지배하는 재벌가에 관해 알아야 것"이란 18일 자 기사를 통해 한국의 재벌 문제를 다뤘다. 윤 대통령의 파리 폭탄주 회식과 부산 깡통시장 떡볶이 먹방을 직접 조명한 건 아니지만, 한국 재벌들이 정치권력에 끌려다니는 역사적 배경과 최근 상황을 조명했다.
"재벌총수들, 윤과 유럽 동행"…고질적 정경유착 거론
기사에서 뉴욕타임스는 "올여름 재벌총수들은 한국의 엑스포 유치 작업의 일환으로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유럽을 여행했다. 또한 (조)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윤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도 동행했고 백악관 만찬 게스트에 포함됐다"고 소개했다. 신문은 "재벌가들은 정치 리더십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왔다"며 "정치지도자들의 뒷받침은 재벌기업들이 제조업 복합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하에서 "협조적인" 기업들에 편파적으로 재정 지원을 해주고, 독과점을 허용하고, 공적 책임도 묻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뉴욕타임스는 "정부와 기업 간 긴밀한 관계는 최근 수십 년 줄어들긴 했지만, 정치지도자들은 여전히 빈번하게 재벌들에게 기대며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며 "그 답례로, 경제에 워낙 중요하다는 이유로 때때로 그 기업들은 (정권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뉴욕타임스는 고질적인 한국의 정경유착 문제도 거론했다. 신문은 "몇몇 스캔들이 재벌기업 이미지를 더럽혔다"며 "재벌기업들은 정치적 부패 사건들에 연루돼 왔다"며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의 최대 정치 스캔들 중 하나는 정치지도자들과 가족경영 재벌들 간의 긴밀한 관계를 드러냈다"고 썼다. 그리곤 2017년 탄핵 된 박근혜가 대통령 재직 때 삼성과 SK, 롯데 등 세 재벌의 뇌물을 받거나 요구한 사건을 사례로 들었다. 이 사건과 관련해 한국의 최대 재벌인 삼성전자의 이재용 회장도 징역 2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가석방된 뒤 2022년 윤 대통령의 사면으로 경영 일선으로 복귀하게 됐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기업 브랜드 이미지 먹칠…총수들 '의문의 1패'
뉴욕타임스는 재벌들의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한국 사회와 한국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NYT는 삼성의 이씨, LG의 구씨, SK의 최씨, 롯데의 신씨, 현대의 정씨 등 5대 재벌 가문을 일일이 거론한 뒤, "지난 수십 년간 한국 경제는 한 줌의 가족경영 재벌들에 지배돼왔다. 이들은 막대한 부와 영향력을 갖고 한국의 삶 거의 모든 측면에 파고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 재벌기업은 가전은 물론이고 병원에서, 생명보험, 아파트 건설에서 신용카드와 소매, 식품에서 엔터테인먼트, 미디어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삶에 침투해 있다"고 덧붙였다. 재벌의 역사적 배경도 짚었다. 신문은 "1953년 한국 전쟁이 끝나고 한국의 독재자들은 한 줌의 패밀리를 낙점해 특별차관과 재정 지원을 해주며 경제 재건 임무를 맡겼다"면서 "그 기업들은 빠르게 확장하고, 이 산업에서 저 산업으로 옮겨 다니며 마침내 문어발식 재벌로 형태를 바꾸었다"고 소개했다. 끝으로 신문은 "경제적 취약성, 불평등 심화, 부패 증가 등 때문에 그들은 한국의 안과 밖에서 점점 더 면밀한 조사 대상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뉴욕타임스의 재벌 관련 보도는 한국민에겐 주지의 사실이지만, 이 신문이 세계 여론에 미치는 영향력을 감안하면, 대한민국 자체는 물론 세계를 무대로 영업 활동을 하는 한국의 간판 기업들의 브랜드 이미지에 먹칠할 공산이 크다. 재벌총수들이 의문의 1패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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