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여권 김병준 직무대행 상근 고문으로 남고

외교관 출신 김창범 전 대사 상근부회장 유력

“정치·행정 등 외부 압력 배격” 윤리헌장과 상반

4대 그룹 형식상 복귀…삼성증권은 합류 거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산하 조직인 한국경제연구원을 흡수·통합한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22일 출범했다. 전경련은 이날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임시총회를 열어 명칭 변경 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총회에서는 류진 풍산그룹 회장이 한경협 회장으로 공식 선임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신임 회장으로 선임된 류진 풍산그룹 회장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열린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3.8.22. 연합뉴스
전국경제인연합회 신임 회장으로 선임된 류진 풍산그룹 회장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열린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3.8.22. 연합뉴스

한경협은 전경련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의식해 권력의 외압을 차단할 내부 통제시스템으로 윤리위원회를 설치하는 방안을 정관에 명시했다. 구체적인 위원 구성과 세부 운영사항 등은 추후에 논의하기로 했다. 사무국과 회원사가 준수해야 할 윤리헌장도 채택했다. 정치와 행정 권력 등 외부의 부당한 압력을 단호히 배격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확산을 위해 노력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대·중소기업 상생을 선도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류 회장은 취임사에서 “부끄러운 과거와 완전히 결별하지 못한다면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며 “단순한 준법 감시의 차원을 넘어 높아진 국격과 국민 기대에 부응하는 엄격한 윤리의 기준을 세우고 실천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경협이 ‘정경유착 본능’에서 탈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정치인 출신인 김병준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이 상근 고문으로 남은 것이 문제다. 그는 지난해 윤석열 대선 캠프 선거대책위원장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친여권 인사다. 그가 회장 직무대행을 맡았던 지난 6개월 동안 전경련은 대통령실과 정부 정책에 보조를 맞춰왔다. 윤 대통령 해외 순방 때 기업인 행사를 주관하는가 하면 일제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제3자 변제를 밀어붙이는 정부를 지원하는 차원에서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와 공동기금을 조정하는 일에도 관여하고 있다.

상근부회장에 외교관 출신인 김창범 전 인도네시아 대사가 거론되고 있는 것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김 전 대사는 류 회장와 개인적으로 가까울지 몰라도 한경협 상근부회장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기업인도 아니고 기업 관련 업무 경험의 거의 없는 사람이다. 경제 이슈에 대한 분석과 해법을 제시하는 글로벌 싱크탱크로 거듭나겠다면서 비전문가를 요직에 앉히는 것은 부적절하다.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이나 김창범 전 대사 모두 외부 압력을 단호히 배격하겠다는 윤리헌장과 상반되는 인사라고 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전경련을 탈퇴했던 4대 그룹 계열사들도 형식적으로 복귀할 것으로 보인다. 전경련은 지난달 19일 삼성과 SK, 현대차, LG 등 4대 그룹에 복귀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낸 바 있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에도 4대 그룹의 주요 계열사는 한경연 회원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한경협은 한경연 회원사를 승계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4대 그룹이 복귀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삼성그룹의 경우 한경연 회원인 삼성전자와 삼성SDI, 삼성생명, 삼성화재는 회원 자격을 한경협이 승계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으나 삼성증권은 이사회 결정에 따라 합류하지 않기로 했다. 다른 그룹 계열사들도 형식상 복귀를 승인할 가능성이 높다. SK그룹의 SK㈜와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SK네트웍스, 현대차그룹의 현대차와 기아, 현대건설,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LG그룹의 ㈜LG와 LG전자가 현재 한경연 회원사로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표지석. 연합뉴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표지석. 연합뉴스

다만 4대 그룹의 회장단 참여와 회부 납부 등 실질적 복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지난 18일 “현재 시점에서 전경련의 혁신안은 선언 단계에 있는 것이고 그것이 실현될 가능성과 확고한 의지가 있는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확인된 바 없다"며 "한경협이 과연 정경유착의 고리를 완전히 단절하고 환골탈태할 수 있을지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전경련이 한경협으로 이름을 바꾸고 조직을 개편한다고 해도 정경유착 본능을 버리지 못하면 국민 신뢰를 얻을 수 없다. 4대 그룹이 은근슬쩍 한경협에 복귀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을 비롯한 각 그룹 총수는 국정농단 사태 당시 전경련을 탈퇴하며 다시는 복귀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전경련은 정경유착 비리가 터질 때마다 여러 쇄신안을 발표했으나 지금까지 무엇이 달라졌는지 알 수 없다”며 “전경련이 자발적으로 해산해 새 시대에 걸맞는 미래지향적 단체로 재설립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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