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 “최고 부자만 위한 발상 용납 안 돼”

상속세 결정세액 77% 500억 이상 자산가

상위와 하위 10% 주택 자산 격차도 40배

각종 공제로 국민 대부분 상속세 부담 없어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이 지난달 27일 주최한 세제 관련 토론회에서 상속·증여세 폐지 주장이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토론회를 주관한 황희 민주당 의원은 “오늘날 상속·증여세는 변화된 현실에 맞지 않아 오히려 국민의 생활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며 “유산세 방식과 유산취득세 방식을 비교·검토해 보고 필요하다면 상속·증여세 폐지라는 과감한 시도도 검토해봐야 한다”고 했다. 유산취득세는 상속인이 물려받는 재산 각각의 가액을 기준으로 상속세를 매기는 방식이다. 현행 유산세는 상속 재산 가액 전체에 대해 세금을 매긴다. 

 

더불어민주당 황희 의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더불어민주당 황희 의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토론회를 공동 주최한 민주당 김병욱 의원도 “스웨덴은 2005년 상속세를 폐지해 자본이득세로 전환했다”며 “상속세의 자본이득세 전환이 한 번에 되기 어렵다면 우선 기업에 적용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본이득세는 자산을 상속할 때 바로 과세하지 않고 상속받은 자산을 유상으로 처분할 때 사망자와 상속인의 보유기간 자본이득을 합산해 양도소득으로 과세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이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자료를 5일 발표했다. 경실련은 민주당 의원조차 재계 숙원 과제로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상속세 완화 기조에 동참한 것을 개탄하며 황희와 김병욱 의원 주장이 “소수 자산가만을 위한 혜택을 늘리겠다는 어이없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경실련은 그 근거로 상속세 총결정세액 중 자산가 구간의 실상을 제시했다. 지난해 상속세 총결정세액 중 20억 원 이상에서 최대치인 500억 원 초과 구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99.3%에 달했던 것이다. 이중 ‘500억 원 초과’ 구간 비중은 상속세 총결정세액 중 77.3%를 차지했다. 상속세 부담을 완화하면 사실상 소수 초고액 자산가만 혜택을 보게 된다는 뜻이다.

상속세는 헌법 119조 2항 국가의 의무로 명시된 적정한 소득분배 유지 원칙에 따라 부의 영원한 세습과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는 취지로 제정됐다. 하지만 부의 편중 현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렇게 된 이유 중에는 상속세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탓도 있을 것이다.

경실련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상속·증세 재산 가액은 135조4000억 원에 달했으나 실제 징수한 세액인 결정세액은 27조7000억 원에 그쳤다. 명목세율이 최고 구간은 50%로 다른 나라에 비해 높지만 실효세율은 20.4%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낮은 실효세율은 동거 주택상속공제와 금융재산상속공제, 가업상속공제 등 공제조항과 공제범위를 확대해온 결과다.

 

지난 10월 17일 서울 종로구 경실련에서 열린 정치·경제 분야 관련 제21대 국회의원 입법평가 발표 기자회견에서 경실련 관계자들이 취지와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2023.10.17. 연합뉴스
지난 10월 17일 서울 종로구 경실련에서 열린 정치·경제 분야 관련 제21대 국회의원 입법평가 발표 기자회견에서 경실련 관계자들이 취지와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2023.10.17. 연합뉴스

상속세 탓에 가업 승계가 힘들다는 재계 요구를 반영해 기업 공제 혜택은 계속 확대됐다. 예컨대 가업상속공제 금액 최대한도는 이명박 정부 때 30억 원으로 상향됐고 박근혜 정부 시절 500억 원에 이어 지난해 12월에는 세법 개정을 통해 600억 원으로 올랐다. 주식 할증평가 제외 대상에 중견기업을 포함해 기업 상속세 부담을 대폭 줄였다. 사실상 최대 주주 할증 과세는 일부 대기업에만 해당된다. 유산취득세 전환은 합리적인 방안일 수 있다. 그러나 과세표준이 낮아져 세수 감소 우려가 있고 납세 절차가 복잡해져 세무 행정 비용이 늘어날 수 있는 단점도 상존한다.

크게 오른 부동산 가격에 맞춰 과세표준을 조정해야 한다는 논리도 결국 부자 감세일 뿐이라는 게 경실련 주장이다. 서울 평균 집값이 10억~12억 원인 것을 고려하면 중산층도 조세부담이 늘어난다는 이유를 들고 있지만 실제로 상속세 결정세액 중 10억~20억 원 이하 건물 비중은 10.6%에 불과하다. 10억 원 이하 건물로 범위를 좁히면 2.4%로 중산층 세액 부담이 크다는 주장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지금도 상속세는 헌법이 규정한 적정한 소득분배 역할을 못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상위 10%와 하위 10% 간 소득 격차는 21배, 자산 격차는 13배에 달한다. 부동산 자산 격차는 더 심각하다. 상위 10%와 하위 10% 간 주택 자산 격차는 40배가 넘는다. 경실련은 “양극화 문제가 악화일로인데 부의 재분배 기능을 약화시키겠다는 민주당 일부 의원의 주장은 개탄스럽다”며 “정치권은 소수 자산가를 위한 입법·행정을 멈추고 민생을 촘촘히 들여다보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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