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와의 싸움, 무고한 주민 살해 정당화 못해"
안보리서 즉각적 휴전, 두 국가 해법 협상 촉구
이스라엘 자위권, 국제인도주의법 지켜야 정당화
마크롱 비판, 이스라엘 군사 작전 정당성 타격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가자 전쟁에 대한 '독자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전쟁 초기 미국, 영국, 독일 등 다른 서방국과 함께 이스라엘 전폭 지지 스탠스를 취했지만, 이스라엘의 무차별적인 "피의 보복" 작전이 도를 더해 가면서 제노사이드(집단 학살) 수준의 막대한 팔레스타인 민간인 사망자를 양산하자 이스라엘의 잔혹 행위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스라엘을 의식해 휴전에 반대하는 미국과는 사뭇 다른 행보다.
문제의 핵심은 이스라엘의 자위권 행사와 그로 인한 팔레스타인 민간인 희생, 그리고 휴전의 상관관계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극우 정권은 "하마스의 테러"에 대해 응당 자위권을 행사해야 하고 하마스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민간인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여긴다. 특히 아랍‧이슬람권을 비롯한 국제 사회 대부분이 요구하는 휴전에 대해선 "테러리스트 집단"인 하마스에 조직과 전투력을 재정비할 시간을 주는 것이기에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스탠스는 조금 다르다. 일단 이스라엘의 자위권과 하마스 제거엔 여전히 전폭 지지하면서 휴전에 반대하지만, 민간인 희생 최소화를 이스라엘에 공식‧비공식으로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네타냐후에게 말발이 먹히지 않는 데 바이든의 고민이 있다.
"테러와의 싸움, 무고한 주민 살해 정당화 못해"
마크롱의 프랑스 정부는 미국과도 또 다르다. 이스라엘의 자위권과 하마스 제거란 '명분'에는 공감하지만, 무고한 민간인 보호가 최우선 가치로 본다. 이런 시각은 10일 엘리제궁에서 진행한 영국 BBC 방송 인터뷰에서 확인됐다. 마크롱은 "우리는 이스라엘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테러리즘을 없애려는 그들의 의지도 공유한다"면서도 "테러리즘과의 싸움이 무고한 주민 살해를 정당화할 수 없다. 휴전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기들, 여성들, 노인들이 폭격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있다"며 "사실상의 살인"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그는 "거기에는 어떤 이유도 정당성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스라엘에 중단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마크롱은 19일 네타냐후와의 전화 통화에서도 "너무 많은 민간인이 죽었다"며 테러리스트와 민간인을 구별해야 할 절대적 필요성과 즉각적 인도주의적 휴전 협정 달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요르단강 서안에서 팔' 민간인에 대한 폭력이 폭증하는 데 큰 우려를 표명했다.
10‧7 하마스의 이스라엘 민간인 살해, 인질 납치에 보복을 선언한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 대한 무차별 공습과 지상 작전을 벌인 결과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최소 1만3000명(가자 보건부)에 이르며, 서안에서는 이스라엘군과 무장 정착민에 의해 200명 이상(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이 살해됐다. 하마스의 공격으로 살해된 이스라엘 민간인은 약 1200명(이스라엘 당국)이다.
안보리서 즉각적 휴전, '두 국가 해법' 협상 촉구
"재앙적 수준의" 인도주의 위기 완화를 위한 교전 중지와 무조건적 인질 석방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던 지난 1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도 상임이사국인 프랑스는 이스라엘 자위권과 하마스 규탄에 집중한 미국, 영국과는 '다른' 목소리를 냈다. 안보리 공식 발표에 따르면, 니콜라 드 리비에르 주유엔 프랑스 대사는 가자 주민에 대한 식량과 물, 연료, 의약품 등 생존 필수품의 공급을 위한 즉각적 교전 중지 결의안에 찬성 의사를 밝힌 것을 넘어서, △ 하마스 공격 규탄 △ 국제인도주의법 절대 존중 속에 이스라엘의 자위권 소환 △ 종전에 이르는 즉각적이고 지속적인 휴전 합의 △ 확전 방지 촉구, △'두 국가 해법'을 위한 협상 재개 등을 제안한 뒤 "유엔 안보리는 이들 사안에 침묵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런 마크롱의 '독자적 행보'에 대해 <포린 폴리시>는 '마크롱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서방의 대오를 깨다'란 제목의 17일 자 기사에서 프랑스 국내의 격화하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지지자 간의 갈등 완화와 함께 국제무대에서의 위상 강화 포석으로 해석했다. 대내적으론 파리 등지에서 가자 전쟁을 놓고 대규모의 팔레스타인 지지와 이스라엘지지 시위들이 상승 작용을 일으키면서 반유대주의와 이슬람 혐오 정서가 자칫 통제 불능의 상황으로 번질 우려가 크기 때문에 마크롱으로선 조속한 휴전이 절실한 처지란 설명이다. 이런 가운데 전쟁 초기 이스라엘을 전폭 지지한 마크롱을 비판하는 내용의 항의 서한을 최근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 주재 프랑스 대사들이 전달한 것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
마크롱 비판, 이스라엘 군사 작전 정당성 타격
또한 <포린 폴리시>는 그동안 주요 국제 현안이 있을 때마다 마크롱이 역설해왔던 "미국으로부터의 전략적 자율성'에 따른 측면도 있다고 봤다. 미국과 '코드'를 맞추는 영국, 독일과는 다른 모습이다. 실제로 마크롱은 지난 3월 중국 국빈 방문 기간에 인터뷰를 통해 "유럽은 미국 의존도를 줄여 대만 관련 미‧중 대립에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 두렵다고 우리가 미국의 추종자일 뿐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고 말해 미국을 자극했다. 6월에는 유럽의 군사협력기구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도쿄연락사무소 개설을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미국의 글로벌전략에 따라 나토와 일본이 야심 차게 준비해왔다는 점에서 미국으로선 펄쩍 뛰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랑스가 끝까지 반대하면 도쿄 사무소 개설은 불가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이 문제는 표류 중이다.
<포린 폴리시>는 이번 가자 전쟁과 관련해 프랑스가 제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이 지역의 역외 핵심 행위자인 미국과 이란에 비하면 "영향력은 제한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잡지는 "이스라엘의 행동에 대한 마크롱의 공개적 비판이 하마스의 야만적 공격에 따른 충격 덕에 국제적으로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이 누렸던 정당성의 창이 닫히는 속도를 높이느냐 여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마크롱뿐 아니라 미국, 영국, 독일 등 서방 지도자들이 막대한 민간인 희생을 낳은 이스라엘의 잔혹한 군사 작전 탓에 국내에서 정치적 위기를 겪는 상황에서 마크롱의 선도적 행동이 이들 지도자에도 영향을 주고 결과적으로 네타냐후에 대한 더 큰 압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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