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팔’ 폭압, 옛 남아공 백인정권 빼닮아

10·7 이전까진 팔’ 통제 과신, 이젠 싹쓸이 추구

“잔혹 행위들 책임은 후대로”…네타냐후에 경고

“소수의 다수 폭압 지배 불가능, 곧 임계점 온다”

 

예루살렘의 마운트 헤르치 군인 묘지에서 진행된 가자 전쟁 중 숨진 한이스라엘 장교의 장례식에서 그의 약혼녀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3. 11. 16 [AP=연합뉴스]
예루살렘의 마운트 헤르치 군인 묘지에서 진행된 가자 전쟁 중 숨진 한이스라엘 장교의 장례식에서 그의 약혼녀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3. 11. 16 [AP=연합뉴스]

"보통의 이스라엘인은 다시는 절대로 국가가 완벽하게 보호해 줄 거란 확신을 가진 채 잠들지 못할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대의 수렌 필레이 교수는 '아파르트헤이트 남아공은 임계점에 도달, 이스라엘도 역시 그럴 것'이란 제목의 16일 자 알자지라 기고에서 "이번 가자 전쟁 이후 우리를 기다리는 폐허 속에 남는 게 무엇일지라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문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폭력과 시민권 분야에 조예가 깊은 필레이 교수는 이 대학의 아프리카연구센터 소장 겸 A C 조르단 석좌로 재직 중이다.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를 직접 겪었다는 필레이 교수는 폭압적 지배를 통해 팔레스타인 문제를 잠재우려는 이스라엘에 남아공에서 교훈을 찾으라고 충고했다. 300년의 소수 지배 이후에야 '백인 남아공'은 폭력적 방식으로 다수 흑인 대중으로부터 자기를 지키고 도덕적 우위를 유지하려는 것은 불가능한 정치 프로젝트였음을 깨닫게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이 한달째 지속되는 가운데 6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서 어린이들이 이스라엘의 폭격을 피해 달리고 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까지 팔레스타인인 1만22명이 숨졌으며 어린이 사망자는 4천104명이라고 주장했다. 2023.11.07. AFP 연합뉴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이 한달째 지속되는 가운데 6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서 어린이들이 이스라엘의 폭격을 피해 달리고 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까지 팔레스타인인 1만22명이 숨졌으며 어린이 사망자는 4천104명이라고 주장했다. 2023.11.07. AFP 연합뉴스

남아공의 교훈, 소수의 다수 폭압 지배 '불가능'

탄압과 저항 상승작용…백인들 사이 공포 확산

필레이는 남아공에서 냉전이 한창이고 아파르트헤이트가 최고조에 달했던 1980년대를 회상하면서 "백인들이 정교한 군사 역량과 징병 군대, 핵무기 능력, 특히 미국‧영국‧프랑스 등 확고한 서구 우방국들을 신뢰했지만, 그들 사이에서 번지던 공포를 기억한다"고 말했다. 필레이에 따르면, 당시 남부 아프리카에서 유일한 '민주주의'라고 주장했던 남아공 백인 정권은 군사력과 방대한 경찰력을 동원하고 백인 소수 지배 유지를 위한 일련의 정책들을 강행했지만 대중 저항에 부딪혀 실패했다. 백인 정권은 실패할수록 백인 정치인과 유권자들의 부추김 속에 군경은 더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다. 하지만 민족해방운동을 하는 "테러리스트들"은 남부 아프리카 최강의 군대로도 분쇄할 수 없었고, 1985년 중반쯤 상당수의 백인 유권자와 집권당 일부 세력이 흑인의 저항 문제는 없어지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됐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당시 피터르 빌럼 보타 대통령은 의회에서 '백인만의 민주주의'에 다수자인 흑인의 참여를 약속하는 화해의 연설을 했지만, 나중에 약속을 뒤집고 다시 폭압 정치로 돌아갔다.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저항하는 수천 명의 시민이 사망했으며 그럴수록 보타 정권은 폭력과 탄압의 강도를 높여갔다. 급기야 집권당 리더들이 친위쿠데타를 일으켜 프레데릭 데 클레르크를 대통령으로 추대했고, 이들은 다수를 배제한 채 소수만 혜택을 보는 정치경제 시스템은 성공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필레이 교수는 "데 클레르크와 그의 정파는 더 많은 총과 폭탄, 탱크, 대포를 가지고 있어도 백인이 전쟁에서 이기지 못할 것을 알았다"며 "탄압하면 할수록 더 많은 저항에 부딪히고 더 많은 백인이 공포 속에 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폭력이 전 세계 TV 화면에 비칠수록 서구 우방국이 점점 더 백인 남아공을 확고하게 지지하기가 어렵게 됐다"고 덧붙였다. 결국 백인 정권이 '실존의 적'이었던 "테러리스트들"과 정치협상에 나섰다. 이 순간이 출신과 인종, 종교, 민족성이 아닌, 거주지에 기초해 모두가 동동한 시민권을 지닌 '단일 국가'로 가는 길을 창출하는 '임계점'(티핑 포인트)이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가자지구 북부에서 군사 작전 중인 이스라엘 병사들. 2023 11. 16 이스라엘군 제공. [AFP =연합뉴스]
가자지구 북부에서 군사 작전 중인 이스라엘 병사들. 2023 11. 16 이스라엘군 제공. [AFP =연합뉴스]

이스라엘, 10‧7 사태 직전까지 팔' 통제‧감시 과신

"팔레스타인인 살아있는 한 팔' 문제 사라지지 않아"

필레이 교수는 이스라엘도 남아공의 전철을 밟고 있다고 봤다. 그는 "보통의 이스라엘인은 이스라엘군, 모사드(정보기구) 혹은 아파르트헤이트 체제가 아무리 정교하고 강력해도 팔레스타인인이 살아있는 한 '팔레스타인 문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점을 아마도 깨닫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아공 백인에게서처럼 공포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고 이스라엘은 대대적인 섬멸 폭격 작전으로 공포에 대응하고 있다"며 "그러나 폭력은 '문제'를 없애지 못하고 이스라엘인이 갈망하는 평화로운 삶도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필레이 교수가 보기에, 이스라엘은 10‧7 하마스 기습 공격 이전만 해도 정교한 군사 및 정보 역량과 가자지구 공간 설계 및 장벽 구축, 팔레스타인인의 생활 전반에 대한 통제와 감시를 통해 '팔레스타인 문제'를 성공적으로 관리해왔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또한 이스라엘의 강력한 서구 동맹국은 군사협력과 무기와 정보 기술 판매 등을 통해 아프리카와 걸프, 남아시아에 새로운 우방국을 만드는 일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이스라엘의 대다수 국민과 정치 지도자들은 '평화협상'이나 '두 국가 해법'을 립서비스 차원에서 거론하는 것조차도 불필요하게 여길 만큼 '팔레스타인 문제'가 잘 관리되고 있다고 과신했다고 봤다. 그러나 10‧7사태로 이스라엘군과 정보기구의 무능함과 대비 부족이 드러났고 국민의 신뢰는 깨지기에 이르렀다.

 

가자 남부의 칸 유니스에서 이스라엘군과 하마스의 교전이 진행 중인 가운데, 팔레스타인 여인들이 이스라엘군의 폭격에 무너진 집 앞에 서 있다. 2023. 11. 15 [로이터=연합뉴스]
가자 남부의 칸 유니스에서 이스라엘군과 하마스의 교전이 진행 중인 가운데, 팔레스타인 여인들이 이스라엘군의 폭격에 무너진 집 앞에 서 있다. 2023. 11. 15 [로이터=연합뉴스]

팔'에 동등한 시민권 보장한 정치적 해결 촉구

"잔혹 행위들 책임이 후대로"…네타냐후에 경고

이 대목에서 필레이 교수는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할 때 이스라엘의 자위권 지지자는 민간인 사망자의 규모를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는가? 이스라엘인은 그들의 손에 수천 명 아이의 피를 묻힌 채론 살아갈 수 없다고 깨닫기 전에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가? 이스라엘과 우방국들은 이런 행동들이 인간의 삶에 동등하게 가치를 부여한다고 주장하는 문명의 표현이라고 스스로 정당화할 수 있겠는가? 이스라엘인은 집단적 처벌 행위를 통해 남자와 여자, 아이들을 몰살하려 했던 국민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이스라엘도 '임계점'에 다가가고 있다고 필레이는 봤다. 그는 "그런 프로젝트의 수호자들에게조차도 '너무 멀리 갔다는 것은 얼마나 멀리인가'란 희미한 물음이 집단양심 속에서 점점 더 크게 울리는 임계점이 있다"며 "예전 방식의 안보 약속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필레이는 "평화가 오늘 우리 눈앞에서 전개되는 행위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후대(後代)를 괴롭히는 더욱더 많은 어린이와 민간인의 피를 뜻한다면, 평화롭게 나아갈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대재앙은 모두의 동등한 시민권에 기초한 공정하고 포용적 정치적 해결만이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준다는 것을 이스라엘인이 깨닫도록 압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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