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끝내면 책임문제 나올 게 뻔해 선거에 불리
미, 이스라엘의 공격 조건부 지지로 방향 틀어
“전쟁은 계속하되 살상자 수를 줄여라”
소탐대실…세계의 지지를 잃어가는 건 미국 자체
이스라엘 민간조사회사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스라엘 국민의 86%가 지난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을 막지 못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마스와의 전쟁이 끝난 뒤 조속히 총선거를 실시해야 한다는 사람도 약 70%에 이르는 것으로 나왔다.
이스라엘 일간지 <하아레츠>는 2024년 중반 무렵 총선거가 실시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하면서, 네타냐후 총리가 “재선을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다”는 논설을 내보냈다. 이 신문은 그런 네타냐후에 대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전시에 나라를 분열시키고 이스라엘과 미국 간의 전략적인 동맹관계를 위험에 빠뜨릴 작정”이라며 비판했다.(<아사히신문> 12월 14일)
재선 캠페인 시작한 네타냐후
이런 상황에서 하마스 ‘완전 소탕’을 목표로 내걸고 가자지구에 대한 무차별 무력공격을 계속하고 있는 이스라엘군이 하마스와의 전쟁을 끝낼 경우, 네타냐후는 뒤이어 실시될 총선거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 선거에 질 경우 그는 당연히 총리자리에서 물러나겠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난해 말 선거에서 제1당이 된 뒤 극우정당들을 끌어들여 권좌에 복귀하기까지 그는 뇌물 수수 혐의 등 부정부패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면 총선거가 실시될 것이고, 하마스의 기습공격을 사전에 감지조차 하지 못한 채 1천 명이 넘는 이스라엘인들을 살해하고 2백여 명을 인질로 잡아간 하마스의 공격을 눈 뜨고 당한 뒤에야 허겁지겁 ‘복수’를 외치며 보복공격에 나선 그를 이스라엘 유권자들은 용납하지 않을 태세다. 그가 선거에서 지면 중단됐던 재판이 재개되고 그는 유죄판결을 받게 될 것이다.
<하아레츠>가 얘기한 네타냐후의 “재선을 위한 캠페인”이란 바로 그런 사태를 피하기 위해 전쟁을 계속해야 할 이유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미국 절대 지지에서 조건부 지지로
재선에 실패하고 유죄판결을 받는 끔찍한 악몽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일단 전쟁을 계속하는 수밖에 없다. 14일 이스라엘을 방문한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회의 보좌관과의 회담에서 네타냐후는 “하마스가 제거될 때까지, 절대적인 승리를 거둘 때까지, 싸움을 계속하겠다는 결의를 더욱 다지고 있다”고 말했다.
설리번이 이번에 다시 이스라엘을 찾아간 것은 지금까지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 일방적으로 퍼부어 온 공격을, ‘표적을 좁혀 한정적인 작전 쪽으로 단계적으로 이행’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설리번은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 다비드 바르네아 모사드 국장을 만났고, 15일에는 요르단강 서안을 찾아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압바스 의장과 만났다. 16일에는 바레인과 카타르를 방문한 뒤 이스라엘을 다시 찾아 네타냐후와 회담할 예정이다.
미국이 네타냐후의 전쟁계획에 일정한 제동을 걸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전쟁을 계속하되 살상자 수를 줄여라”
14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군이 가자공격 작전에서 “민간인의 생명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에 집중해 주기 바란다”고 했다. 그는 이날 메릴랜드 주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한 자리에서 기자단의 질문에 그렇게 대답하면서 “하마스에 대한 공격을 그만두라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신중하게 해 주기 바란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여전히 휴전에 반대한다는 기본입장은 고수하고 있지만,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공격으로 팔레스타인 주민들 희생자들이 날로 급증하면서 세계여론이 악화되고 있는 것을 의식하면서 더 정교한 표적 공격으로 살상자 수를 줄이라는 주문이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 이후 12월 14일까지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숨진 가자 주민은 1만 8787명이다.
세계의 지지를 잃어가는 건 미국 자신
바이든은 지난 12일 이스라엘이 “무차별적인 폭격으로 세계의 지지를 잃기 시작했다”고 경고했다. 세계의 지지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만이 아니다.
그날 유엔 본부에서 열린 제10차 긴급특별총회(ESS)에서 ‘즉각적인 인도주의 휴전’ 요구 결의안이 압도적 다수 찬성(79.2%)으로 통과됐다. 투표에 참가한 193개 회원국 가운데 153개국이 찬성하고 23개국이 기권했으며, 반대한 나라는 이스라엘과 미국 등 10개국에 지나지 않았다.
그 며칠 전인 8일에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유엔 헌장 99조’를 발동해 소집한 안전보장이사회 특별회의에서 아랍에미리트(UAE)가 제안한 즉각적인 휴전 촉구 결의안이 15개 이사국 중 13개국의 찬성을 얻었다. 그러나 100개국이 지지 서명까지 한 그 결의안은 5개 상임이사국 중 유일하게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바람에 통과되지 못했다.
미국의 이중기준
미국은 이런 세계 여론의 변화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 휴전하면 하마스를 징벌할 수도, 동일한 전쟁범죄의 재발을 막을 수도 없다는 것을 휴전 반대 이유로 들고 있는 미국의 주장은 먹혀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고립이 시간이 갈수록 확연해지고 있다.
이런 추세를 바꾸지 못하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고립시키고,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려는 미국의 헤게모니 전략 전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미국은 네타냐후의 전쟁계획에 대한 이제까지의 무조건적 절대적 지지에서 한 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표적을 좁혀 한정적인 작전 쪽으로 단계적으로 이행’이라는 조건부 지지로 방향을 수정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하마스에 대한 공격을 그만두라는 것은 아니다”라는 바이든의 말대로 미국정부는 하마스를 ‘절대악’으로 보고 ‘말살’시켜야 한다는 이스라엘의 관점을 기본적으로 여전히 공유하고 있다.
미국의 이런 자세에는 심각한 모순이 있다. 하마스가 기습공격을 하게 만든 역사와 이스라엘의 전쟁범죄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 이중잣대를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을 강제로 밀어내고 그들의 땅을 차지한 뒤 ‘지붕없는 감옥’으로 수백만의 팔레스타인인들을 몰아 넣었을 뿐만 아니라,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동예루살렘 등으로 구획되고 차단당한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마저 유대인 시오니스트들의 불법 정착촌 확대정책을 통해 야금야금 빼앗으면서 이에 저항하는 주민들을 살상하고 있다. 하마스의 기습공격은 그 가혹한 현실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럼에도 미국은 팔레스타인의 그런 참상에는 침묵하면서 하마스의 반인도적인 전쟁범죄를 이유로 이스라엘 극우세력의 토지침탈과 반인도적 전쟁범죄는 묵인했다.
에르도안 “정전은 미국의 책임”
지난 4일 네타냐후 총리를 "가자지구의 도살자"라 비난했던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14일 “미국에게 정전(휴전)을 실현시킬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그는 이날 바이든 대통령과의 전화 협의에서 “미국은 항구적으로 정전을 조기에 실현시킬 책임이 있다”면서 “미국이 이스라엘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를 철회하면 정전은 금방 실현될 수 있다”고 말했다.
14일 설리번 보좌관과의 회담에서 네타냐후는 “탄약 공급과 전투를 중지시키려는 유엔의 시도를 막고, 인질석방을 위해 지원해 준 미국에 정말 감사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지원이 없으면 ‘네타냐후의 전쟁’도 불가능하다.
바이든 정부는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이 내년 대선에서 미국 유권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면밀히 계산하며 정책을 조율할 것이다.
실현 불가능한 미국의 주문
미국은 가자지구 주민들 희생을 줄이기 위해 ‘표적을 좁혀 한정적인 작전 쪽으로 단계적으로 이행’하라고 압박하지만, 그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주문이다.
미국이 지원하고 있는 무기와 포탄들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CNN>은 13일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공격 때 사용한 무기들 중 절반 가까이가 표적을 정밀하게 겨냥해 타격할 수 있는 유도탄이 아니라고 보도했다. <CNN>은 미국 정보당국이 수집한 정보들을 토대로 한 미국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이스라엘이 사용한 2만 9000발의 공대지 폭탄 중 40~45%가 유도탄이 아닌 일반폭탄이라고 보도했다.
진심으로 희생자 수를 줄일 생각이 있다면, 표적을 좁힐 것이 아니라 전쟁 자체를 그만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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