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타냐후는 애초부터 팔 주민 영구 추방 계획
미국은 유엔 감독 아래 임정 거쳐 팔 자치 구상
문제는 이스라엘 내 평화파트너 없다는 점
대중 저항과 국제사회 개입만이 이스라엘 바꿔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전쟁이 끝나면 누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할 것인가. 하마스 완전 제거를 내걸고 한 달 넘게 가자에 대한 이스라엘의 섬멸 작전이 진행 중인 가운데 미국을 중심으로 '그날 이후'(the day after) 시나리오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인근 아랍국 순방을 통해 이스라엘의 가자 재점령 및 통치 반대와 궁극적인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 방안을 협의한 데 이어 7일부터 이틀간 도쿄에서 열린 서방 선진 7개국(G7) 외교장관회의에서도 이 문제를 비롯한 가자지구의 장기 안정화 플랜을 논의했다.
이스라엘은 가자 재점령에 이은 직접 통치 의지는 노골적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6일 ABC 뉴스 인터뷰에서 '전쟁이 끝나면 누가 가자를 통치해야 하느냐'란 질문에 "무기한으로 전반적 안보를 책임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달 15일 CBS 방송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의 가자 점령은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백악관도 거듭 재확인하고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네타냐후는 2005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철군을 반대했던 인물이다. 철군 이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가자를 장악했고 2007년 하마스가 내전 끝에 PA 정파 파타를 물리쳤으며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집권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테러리스트 집단"이라면서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네타냐후, 가자 재점령‧직접 통치 의지 노골적
이집트로 난민 영구 추방 계획…'제2 나크바'
네타냐후 정권의 전후 구상은 윤곽이 나와 있다. 압도적이고 무자비한 공격을 통해 가자를 초토화하고 230만 명의 주민을 가자 밖으로 추방하고 재점령한 뒤 군사적 통치를 하겠다는 게 대략적 그림이다. 요르단강에서 지중해까지, 그들이 말하는 '야훼가 약속한 땅'에 진정한 유대 국가를 세우는 과정의 일환인 셈이다. 전쟁 발발 한 달 만에 팔레스타인 민간인 사망자가 1만 명이 넘고 국내 난민도 150만 명이고 병원과 학교, 교회, 난민촌 등에 대한 폭격으로 '지옥'을 방불하지만, 유대 국가 건설 과정의 불가피한 희생 정도로 여기고 있다. 실제로 그런 구상은 31일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이 보도한 이스라엘 정보부 전시계획서 초안에서 확인됐다. 10월 13일 작성된 이 문건에 따르면, 가자 주민 전체를 이집트의 시나이반도로 이동시키고, 시나이반도 북부에 다수의 천막 도시를 조성해 영구화하고, 인도주의 회랑도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가상의 상황을 다룬 '개념문서'라고 주장했지만, 이집트를 상대로 가자 난민의 수용을 '설득'한 사실이 드러나 치밀한 계산에 따라 작성된 문건임이 밝혀졌다. 이에 대해 이집트는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좌절시키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고 가자 난민 수용을 거절하고 있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이 문건이 팔레스타인인에게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75만 명이 고향 땅에서 내쫓긴 '나크바'(대재앙)의 고통을 되살렸다고 썼다.
블링컨 "팔, 자치정부가 언젠가 가자 통치해야"
아랍국들, 휴전 이전에 '전쟁 이후 논의' 거부
미국의 전후 구상은 이스라엘의 하마스 해체 이후 '권력 공백'이 생긴 가자지구에 국제사회가 지지하는 다국적군(미군 제외)을 파견하고, 하마스를 배제한 팔레스타인 임시 정부를 구성하며, 과도기로 이웃 아랍국들에 공동 안보와 통치를 맡기고 유엔이 감독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가자지구를 통치해야 한다고 본다. 블링컨 장관은 31일 상원 청문회에서 "다시 활성화한 효과적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통치권을 갖고 궁극적으로 가자지구의 안보를 책임지는 게 가장 합당한 시점이 언젠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블링컨 장관은 5일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만나 이런 구상을 설명했고, 아바스는 "우리는 서안과 동예루살렘, 가자지구에 대한 포괄적인 정치적 해법의 틀에서 우리의 책임을 추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PA가 장래에 가자지구를 다시 통치하려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전반에 관한 포괄적 정치적 해법이 필요하다고 조건을 달았지만, 미국의 제안에 일단 '화답'한 모양새다. 그러나 아바스와는 달리, 아랍국들은 '휴전' 이전에 지금 '전쟁 이후'를 논의하자는 미국의 제의에 반대했다는 후문이다. 미국이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휴전'엔 반대한 채 '전쟁 이후 평화' 문제로 초점을 옮김으로써 이스라엘이 계속 제노사이드(집단 학살)를 자행할 시간을 주고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바이든 '두 국가 해법' vs 네타냐후는 '딴생각'
아바스 대중지지, 미국의 의지 부족도 걸림돌
바이든 행정부의 구상은 이스라엘 점령지인 서안과 가자지구를 묶어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하고 아바스의 PA에게 통치를 맡기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두 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인 셈이다. 이 방안은 1993년 9월 13일 맺은 오슬로 협정에서 비롯됐다. 가자지구와 서안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고 예루살렘을 동서로 나누지만, 유대교와 이슬람교 성지가 겹친 예루살렘 구시가지는 공동 통치하자는 게 그 골자다. 당시 이 협정에 따라 가자와 서안의 자치권이 PA에 이양된 바 있다. 현재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가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하고 프란치스코 교황도 찬성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난제가 적지 않다. 뭣보다 네타냐후 정권이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게 그 하나이고, 다음은 팔레스타인인 사이에서 아바스와 PA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지배적이고, 바이든이 네타냐후의 거부에도 이 방안을 밀어붙일 능력과 의지가 있느냐가 세 번째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미국이 이스라엘의 어떤 세력과 손을 잡고 이 일을 추진하느냐도 현실적 장애물이다.
미국과 의기투합할 이스라엘 내 정치세력 부재
"무조건 지지가 이스라엘 내 평화파트너 없애"
알자지라의 선임 정치분석가인 마르완 비샤라는 7일 '가자 이후의 중동에서 팍스아메리카나란 소극'이라는 제목의 기고에서 "미국은 이스라엘 안에서 팔레스타인인에게 평화를 주는 대가로 불법적 정착촌 조성을 중단하고 점령지역들에서 철수할 각오가 돼 있는, 주요 정당은 고사하고 단 하나의 정당을 찾는데도 애를 먹을 것"이라며 "단일 이스라엘 정부를 구성하고 의회의 절대다수를 점한 파시스트와 (유대교) 광신자는 지금 팔레스타인인에게 국가를 내주는 게 아니라 그들을 내쫓을 새로운 길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두 국가 해법의 한 축인 '안전하고 민주적인 유대계 이스라엘'을 상정하고 있지만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반문이다. 현재 이스라엘에는 군부 쿠데타와 암살 위협에도 1960년 아프리카 식민지 점령 정책을 폐기했던 프랑스의 드골이나, 흑백 인종차별 정책을 폐기해 1993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프레데릭 데 클레르크 대통령과 같은 인물을 찾을 수 없다는 게 그의 견해다. 비샤라는 "진실은 미국이 무조건 지지하는 바람에 오늘도 '그날 이후'에도 이스라엘에는 함께 일을 도모할 평화파트너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개탄했다.
"식민지 점령 정책 폐기한 이스라엘판 드골 없어"
대중 저항과 국제사회 개입만이 이스라엘 바꿔
아바스와 PA의 가자 통치 방안에 비샤라는 회의적이다. 88세의 고령인데다 부패해 대중적 지지가 미미한데다가, 전쟁 발발 이후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을 말로는 비난했지만 시종 기회주의적 모습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최근 서안지구에서 전쟁 반대 시위를 탄압하는 한편, 이스라엘군의 기습공격과 무장 정착민의 민간인 공격에는 시종 침묵한 점을 예로 들었다. 또한 그는 "바이든 행정부를 맹목적으로 믿는 아바스는 이스라엘이 가자(주민)를 대량 학살할 때까지 조금만 더 서안지구를 별 탈 없이 유지하면 하마스가 없는 가자를 통치할 수 있을 것으로 여긴다"고 지적했다. 이런 여러 상황을 종합해 보면, 현 상황에서 아바스에게 최선의 시나리오는 기껏해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관할하는 현재의 서안지구의 절반 정도 땅에 세워지는 '반쪽 국가'(half-state)라는 게 그의 견해다. 그것도 미국이 아랍국들과의 전면적 관계 정상화와 막대한 추가 재정 지원을 보장하면서 이스라엘에 압력을 넣어야 가능할 것으로 본다. 비샤라는 "프랑스와 남아공에서처럼 오직 대중적 저항과 국제사회 전체의 직접 개입만이 이스라엘을 압박해 인종주의적 식민지 프로젝트를 포기하도록 만들 수 있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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