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플랫폼 자율규제 외치다 돌변
카카오택시 독과점 맹비난 ‘블랙 코미디’
카카오 “택시 가맹 수수료 조만간 인하”
플랫폼 독과점화 자율규제만으론 한계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이 지난 13일 비상경영회의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기자들과 만나 “모든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SM엔터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주가 시세조종 혐의로 배재현 투자총괄 대표가 구속기소되고 카카오모빌리티를 비롯한 일부 계열사의 불공정거래와 매출 부풀리기 등이 문제가 되자 진화에 나선 것이다. 무엇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카카오택시의 독과점에 대해 “부정적인 행위 중에서도 부도덕한 행태”라며 거칠게 비난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을 것이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그동안 거부했던 가맹 수수료 인하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13일 “올해 안에 택시 기사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맹 수수료를 3% 이하로 낮출 계획”이라고 밝혔다. 카카오 가맹 택시에 대한 ‘콜 몰아주기’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복잡한 알고리즘을 단순화하고 이용자와 택시를 연결하는 시스템을 새로 구축하는 방안도 마련하겠다고 했다. 위기에 몰린 카카오가 '자율 아닌 자율 규제'에 나선 모양새다.
카카오 사태는 한 기업의 일탈로만 볼 수 없는 사안이다. 카카오 같은 공룡 플랫폼을 적절하게 규제했다면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플랫폼의 성장은 ‘네트워크 효과’에서 나온다. 공급자와 수요자가 많이 모일수록 플랫폼의 가치가 올라간다. 네트워크 효과를 다른 말로 하면 운집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플랫폼은 태생적으로 독과점으로 갈 수밖에 없다. 카카오가 급성장하며 대기업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국민 메신저'로 독보적 위치에 오른 카카오톡 덕분이다.
이런 점에서 카카오의 횡포와 비윤리 경영은 카카오만의 잘못이 아니다. 독과점이 될 수밖에 없는 플랫폼을 제대로 규제하지 못한 정부와 정치권도 책임이 작지 않다. 네이버와 쿠팡, 배달의민족 등 다른 플랫폼도 본질적으로 카카오와 다를 바 없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네이버에 265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네이버가 자체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 ‘스마트 스토어’에 유리하게 검색 알고리즘을 조작했던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네이버에는 많은 온라인 쇼핑 사업자가 모여있다. 네이버는 공정하게 플랫폼을 운영할 의무가 있는데도 자체 사업을 키우기 위해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해 불공정거래 행위를 한 것으로 공정위는 판단했다.
쿠팡과 배달의민족 등도 똑같은 유혹을 받을 수 있다. 이들이 카카오나 네이버처럼 횡포를 부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직 독점적 지위를 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종 업계에 강력한 경쟁자들이 있다는 뜻이다. 불공정한 행위를 하면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 다른 플랫폼으로 넘어갈 수 있다. 경쟁 상황에서는 과도한 지대 추구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플랫폼이 독과점화 되기 전에 규제해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플랫폼의 혁신을 막지 않겠다며 ‘자율규제’를 고집하고 있다. 플랫폼 사업자 스스로 공정한 거래 질서를 구축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는 플랫폼의 특성을 망각한 비현실적 정책이다. 자율규제를 그렇게 강조했던 윤 대통령이 카카오택시의 독과점을 맹비난하며 카카오를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기업으로 몰아붙인 자가당착적 행태도 플랫폼 사업에 대한 몰지각에서 비롯됐다.
현재 국회에는 문재인 정부 당시 추진했던 플랫폼 공정화법을 포함해 플랫폼 독과점을 규제하는 법안이 여러 건 계류돼 있으나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정부와 국민의힘이 플랫폼 규제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 규제를 반대하는 논리는 대략 두 가지다. 과도한 규제는 혁신을 막을 수 있고 구글과 아마존 등 해외 플랫폼은 놔두고 국내 사업자만 규제하면 역차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규제를 하지 않았을 때 생기는 부작용을 생각하면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이다. 플랫폼 독과점을 방치하면 오히려 혁신의 기회가 줄어든다. 경쟁이 활발해야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이 나온다. 역차별 문제도 법안을 잘 만들고 국제적으로 협력하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자율규제’라는 신기루에 매몰돼 있는 동안 미국과 유럽연합 등 선진국들은 공룡 플랫폼에 대한 규제의 고삐를 바짝 조이고 있다. 미국은 플랫폼 사업자의 갑질을 막고 자체 사업을 규제하는 법안들이 의회에서 발의됐다. 유럽연합도 디지털서비스법과 디지털 시장법 등 글로벌 플랫폼을 규제하는 법을 시행하고 있다. 플랫폼 경제로 전환하고 있는 흐름에 맞춰 규제의 패러다임도 바꾸고 있는 것이다.
플랫폼 독과점은 자율규제만으로는 막을 수 없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참여연대, 한국노총,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등이 참여한 ‘경제민주화와 양극화 해소를 위한 99% 상생연대'는 지난 9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위한 10대 입법과제를 제시했는데 이 중에는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규제법 및 유통산업발전법도 포함돼 있다. 제2, 제3의 카카오 사태를 막기 위해서도 플랫폼 독점 규제을 위한 입법을 서둘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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