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 정당화 위해 ‘인도 지원’ 허용하는 역설
실현 위한 구체적 방안 제시 없는 ‘공치사’
‘팔’ 저항권・자위권 부정한 서방의 이중기준
하마스 비판…이스라엘군 제노사이드는 묵인
7일부터 일본 도쿄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회의는 8일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공격과 관련해 하마스의 기습공격을 비난하고, 이스라엘군과 하마스 간의 전투를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인도적 중지’를 지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폐막했다.
G7 공동성명 ‘인도적 중지’ 방법없이 공치사만
이스라엘-하마스 군사충돌이 시작된 이래 이에 관해 G7이 처음으로 합의한 메시지를 문서로 작성한 이번 공동성명은 그러나 전투의 인도적 중지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지 않아 실현성이 없는 공치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게다가 하마스의 기습공격에 대한 보복공격을 이스라엘의 자위권 발동이라 인정하면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오랜 억압과 무력공격에 대한 팔레스타인 쪽의 저항권 또는 자위권은 무시하는 이중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이스라엘군에 면죄부 줄 ‘인도적 중지’
G7 외교장관들은 공동성명에서 하마스의 테러공격을 “단호하게 비난”하면서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인질의 즉각 석방”과 “인도(人道)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긴급 행동(이스라엘군의 가자 보복공격)”의 필요성을 지적하는 한편으로 가자지구에 대한 지원물자 반입을 위한 전투의 “인도적 중지”(humanitarian pause)를 지지했다.
그러나 공동성명은 ‘국제법 준수’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에 대한 공습의 국제법 위반 여부에 대해서는 어떤 지적도 하지 않았으며, 전투의 “인도적 중지”를 지지하면서도 압도적 무력으로 일방적으로 공격을 강행하고 있는 이스라엘군을 지목해서 전투 중지를 요구하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G7이 합의한 전투의 ‘인도적 중지’는 정전이나 종전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유엔 등에 따르면 ‘정전’(ceasefire)은 당사자들이 합의해서 전투를 일시 정지시키는 걸 의미한다. 정전보다 긴 기간의 전투 중단을 의미하는 ‘휴전협정’(armistice agreement)은 70년간 이어지고 있는 지금의 한반도 휴전과 같은 상황을 가리키는 용어다. 휴전(truce)은 부상자의 피난 등을 위해 비공식적으로 전투를 잠시 중지하는 것이다.
가자 공격과 주민살해 정당화로
지금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인도적 위기가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자주 언급되는 ‘인도적 중지’(humanitarian pause)는 지원물자의 반입 등 인도적 목적을 위해 당사국이나 지원단체 등의 관계자들이 합의해 미리 정해 놓은 기간과 지역에서 전투를 잠시 중지하는 것이다. 이는 근본적 해결책이 아닌 임시변통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극소량의 인도적 물자 반입과 이를 위한 일시적 전투 중단이 오히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공격을 정당화하고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공격과 주민살해를 정당화하기 위해 극소량의 인도지원 물자반입을 허용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불법 점령당한 사람들에게 저항권리 있다”
9일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 기사에서 구로키 히데미쓰 도쿄외국어대 교수(중동지역연구)는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난민 캠프와 민간시설에 대한 연이은 공격과 관련해 “미국 등 G7의 이중기준(double standard)과 위선・기만(hypocrisy)이 국제사회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로키 교수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의 ‘민족 정화’를 위해 주민을 강제이주시키면서 폭격을 가해 생활기반을 철저히 파괴하고 1만 명이 넘는 사람을 살해하고 있다”면서 이는 “국제인도법 위반의 전쟁범죄이며, 1948년 유엔 총회가 채택한 ‘제노사이드(집단학살) 조약’에 비춰 보더라도 제노사이드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가자지구 주민들의 대부분은 이스라엘 건국 이후 그 지역에서 추방당한 난민들의 자손이라며,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어기고 가자지구를 점령・봉쇄한 뒤 경계 바깥 세계와의 자유로운 왕래를 불허한 채 약간의 물자 반입만 허가하다가 이번엔 아예 물과 전기, 연료, 식품을 모조리 차단해 버렸다”면서, “불법적으로 점령당한 사람들에게는 저항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이야말로 테러국가”
구로키 교수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유엔이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피난장소로 삼고 있는 유엔 산하 학교 등을 공격하지 말도록 여러 번 경고했음에도 이스라엘이 이를 무시하고 폭격을 가해 민간인 살해를 거듭해 왔다”면서, “인도를 얘기하려면 무저항의 도망갈 데도 없는 시민들에 대한 폭격을 즉각 그만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언발에 오줌누기 식의 명색만 앞세워 이스라엘에 대량의 무기를 제공하는 이 기만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전 세계에 울려 퍼지고 있다”면서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자신들을 살육하면서 추방하는 이스라엘이야말로 ‘테러’국가”라고 지적했다.
고립되고 있는 것은 G7
그는 또 “고립되고 있는 것은 G7”이라면서 “세계 각지에서 이스라엘과 미국에 대한 반감은 이미 한계에 도달해 국제사회의 조류가 완전히 바뀌고 있다”고도 말했다.
그는 정보가 즉시 알려지는 오늘날 이런 노골적인 ‘이중기준’은 이미 감출 수 없다면서,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70명 이상의 유엔(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 UNRWA) 직원들을 살해하고, 이스라엘군의 가자주민 살해를 비판한 유엔 사무총장에게 자리에서 물러나라며 공공연히 모욕한 사실도 지적했다.
하마스의 공격, 범죄지만 국제법이 인정하는 저항권 행사
그는 이런 상황에서 “(하마스가) 민간인을 납치 살해한 것은 범죄지만, 이스라엘군을 공격하는 것은 국제법에서도 인정되는 저항권의 행사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구로키 교수는 가자지구의 모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인근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로 추방하는 안을 담은 이스라엘 정보부 작성 문서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이 문서 역시 그가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공격을 ‘민족 정화’나 제노사이드로 규정하는 데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미국 내 여론 바이든에 불리한 쪽으로
<이코노미스트>의 지난 7일 보도에 따르면, 이 잡지와 유고브(YouGov)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미국인의 41%가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잘 못 다루고 있다고 응답했다. 퀴니피악 대학이 등록된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무당파 유권자의 51%, 18~34세 유권자의 66%가 바이든의 중동정책에 반대했다. 바이든에 대한 아랍계 미국인들의 지지율도 급락했는데, 이는 내년 대선 때 당락을 좌우할 미시간과 같은 경합주들(swing states)에서 그에게 타격을 가할 수도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이 때문에 워싱턴에서는 앞으로 몇 주가 더 걸리겠지만, 바이든이 결국 휴전 쪽으로 방향을 바꿀 것이 분명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고 이 잡지는 썼다.
이스라엘 전쟁비용도 네타냐후에 부담
<이코노미스트>는 이스라엘이 이번 전쟁으로 떠안게 된 경제적 부담이 지금과 같은 공세를 지속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예컨대 한 달간 지속된 2006년의 레바논과의 전쟁 때 들어간 비용이 약 95억 셰켈(20억 달러, GDP의 1.3%)이었고, 2014년의 가자지구 대공세 때는 70억 셰켈(GDP의 0.6%)의 비용이 들었으나, 이번 전쟁의 비용은 그보다 훨씬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은행은 내년도 정부 재정 적자가 GDP의 3%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예측하고 있는데, 이는 2022년의 GDP 대비 0.6% 재정흑자였던 것과 대비된다. 일부 분석가들은 내년 재정적자 규모가 GDP의 5% 이상이 될 것으로 내다보기도 한다.
예비역 36만명을 동원한 것이 이스라엘 경제에 노동력 부족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 때문인지 동원된 예비역들 중 일부에게는 이미 귀향 조치가 내려졌다.
‘2개의 국가’ 해법, 네타냐후와는 추진 불가
이번에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만났을 때, 그는 한 시간도 채 시간을 내 주지 않았고 공동성명 발표도 없이 회동을 끝냈지만, 전쟁 뒤 가자지구에 대한 자치정부의 통치권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블링컨 장관을 기쁘게 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통치해 온 친서방적인 온건한 자치정부가 적대적인 하마스를 대신해 가자지구까지 통합, 통치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압바스 수반은 그 전제조건으로 “포괄적인 정치적 해법의 틀 안에서”라는 걸 내세웠다. 이는 곧 1993년 오슬로 협정 때 합의했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2개의 국가’ 공존 해법으로 가야 한다는 얘기다. 바이든 대통령과 유럽의 서방 국가들 다수도 그것이 종국적인 해법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만일에 미국이 이번 전쟁 마무리 뒤 압바스를 앞세워 2개의 국가 해법을 추진하려 한다면, 먼저 네타냐후 극우정권부터 손을 봐야 한다. 네타냐후의 정치인생 전체가 바로 오슬로 협정의 ‘2개의 국가’ 해법에 맞서 싸워온 것이어서, 그가 권좌에 앉아 있는 한 그 해법 추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전망 흐린 네타냐후 정권
네타냐후 정권이 압도적 무력과 서방의 지원 속에 당장은 상황을 주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향후 전망은 밝지 않다. 아랍과 세계의 여론이 이처럼 가자지구에 대한 반인도적인 무력공격을 계속해 온 이스라엘 반대 쪽으로 기울고 있는 데다 절대적 후원자인 미국 내의 여론과 이스라엘 자체 사정이 그에게 점점 더 불리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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