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불 당긴 나치행동대 만행 85돌 집회

참가자들, 이스라엘군 공격 지지 숄츠정부 비판

가자지구 집단학살 85년 전 사건 떠올리게 해

독일 여론조사 결과도 61%가 이스라엘 행태 비판

거리의 악사가 8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데포크의 팔레스타인 해방을 기원하는 벽화 앞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으로 팔레스타인에서만 1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2023.11.8. EPA 연합뉴스
거리의 악사가 8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데포크의 팔레스타인 해방을 기원하는 벽화 앞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으로 팔레스타인에서만 1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2023.11.8. EPA 연합뉴스

1938년 11월 9일 밤부터 10일 새벽 사이 독일 전역과 독일이 합병, 점령한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 스데덴에서 반유대주의 대폭동이 일어났다. 돌격대(SA)와 히틀러 유겐트 등 히틀러의 나치당 행동부대들은 요제프 괴벨스 선전장관 등의 지휘 아래 유대인의 집, 교회(시나고그), 유대인 소유 상점 등에 밀어닥쳐 모조리 부수고 불을 질렀으며, 유대인들을 집단구타하고 강간하고 살해했다.

 

9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대인협회 주최 '수정의 밤'에 참가한 여성이 "이제 다시는 안돼"라는 뜻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85주년 추모식2923.11.09.  EPA 연합뉴스
9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대인협회 주최 '수정의 밤'에 참가한 여성이 "이제 다시는 안돼"라는 뜻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85주년 추모식2923.11.09.  EPA 연합뉴스

85년 전 나치 ‘수정의 밤’ 폭동

267개 시나고그가 파괴되고 다수가 밤새 불타올랐다. 독일 소방대는 옆 건물로 옮겨붙는 불만 껐다. 약 7500채의 유대인 소유 상점들 유리창과 진열창들이 산산조각이 나고 약탈당했다. 살상당한 사람들이 흘린 피, 시신과 함께 거리에 널브러진 무수한 유리 파편들이 달빛에 빛났다. ‘수정의 밤’(크리스탈 나하트 Kristallnacht)이란 명칭이 이에서 유래했다. 폭도들은 유대인 묘지까지 훼손했다.

 

5일(현지시간)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에서 참가자가 이마에 나치 문양이 그려진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가면을 쓰고 붉은 물감을 흠뻑 바른 양 손을 치켜든 채 행진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먼저 공격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궤멸시키겠다며 가자지구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2023.11.6. 로이터 연합뉴스
5일(현지시간)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에서 참가자가 이마에 나치 문양이 그려진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가면을 쓰고 붉은 물감을 흠뻑 바른 양 손을 치켜든 채 행진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먼저 공격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궤멸시키겠다며 가자지구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2023.11.6. 로이터 연합뉴스

유대인의 파리 독일대사관원 살해가 계기

그 이틀 전인 1938년 11월 7일, 파리에 불법 체류하고 있던 폴란드 국적의 17세 유대인 헤르셸 그린슈판이 리볼버 권총을 소지하고 파리 주재 독일 대사관을 찾아가 독일인 3등 서기관 에른스트 폼 라트를 쏘았다.

그 열흘 전쯤 독일 나치정부는 독일에 거주하던 수천명의 폴란드 국적 유대인들 권리를 박탈하고 그들을 추방했다. 당시 폴란드도 반유대 정서가 강해 폴란드에서 태어난 그들을 다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린슈판의 가족도 독일에서 추방당했으나 출생지로도 돌아가지 못하는 신세가 돼 독일과 폴란드 국경지역의 난민 캠프에 수용됐다.

독일에서 추방당한 유대 난민의 복수

가족으로부터 이 처참한 소식을 전해 들은 그린슈판은 복수를 다짐하고 파리 주재 독일대사관으로 갔다. 그의 총을 맞고 사망한 라트가 실은 반유대주의 정책에 반대한 사람으로, 독일 정보기관 요시찰 대상이었다는 얘기도 있다. 어쨌거나 역사는 그의 죽음을 계기로 방향을 크게 틀게 된다.

 

1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의 한 공동묘지 내 유대인 장례식장 건물 외벽에 나치 상징 문양과 반유대주의 표식으로 보이는 낙서가 칠해져 있다. 이날 오전 해당 건물에서 불이 나 건물 로비 입구가 일부 불탔다. 경찰은 방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화재 경위를 수사 중이다. 2023.11.02. AFP APA 연합뉴스
1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의 한 공동묘지 내 유대인 장례식장 건물 외벽에 나치 상징 문양과 반유대주의 표식으로 보이는 낙서가 칠해져 있다. 이날 오전 해당 건물에서 불이 나 건물 로비 입구가 일부 불탔다. 경찰은 방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화재 경위를 수사 중이다. 2023.11.02. AFP APA 연합뉴스

홀로코스트로 가는 터닝 포인트

1933년 정권 장악 이전부터 반유대주의를 내세워 갖가지 악법들을 만들고 탄압했던 나치는, 그럼에도 유대인 소유 개인기업 등엔 손을 대지 않는 등 상대적으로 느슨했던 반유대주의 정책을 이 사건을 기화로 유대인 완전 제거 쪽으로 기획하고 실행에 옮겼다. 600만에 이른다는 홀로코스트 대학살의 출발점이자 터닝 포인트가 바로 ‘수정의 밤’이었다. 마침 그날은 나치당이 뮌헨에서 권력탈취를 노리고 자행했던 1923년 뮌헨 봉기 기념일이기도 했다.

이틀 전 유대인 청년 총에 맞은 파리 주재 대사관 서기관 치료를 위해 의사들을 파견하는 정치적 제스처까지 취했던 히틀러는 뮌헨봉기 기념 행사장에서 서기관이 결국 숨졌다는 보고를 받고, 괴벨스 등에게 행동 개시를 명했다.

다음해인 1939년 9월,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그 전쟁은 홀로코스트를 향해 폭주하기 시작했다.

독일사회의 침묵이 나치 폭주 부추겨

‘수정의 밤’ 이전까지 히틀러는 반유대주의 정책을 펴면서도 독일사회의 눈치를 보면서 노골적인 탈법행위를 마음대로 자행하진 못했다. 초기 나치 돌격대 대장을 지내고 비밀경찰 게슈타포를 창설한 2인자 헤르만 괴링조차 ‘수정의 밤’ 파괴로 인한 엄청난 보험금 지불 등 경제적 손실에 짜증을 내며 그런 식의 파괴에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독일사회는 의외로 그 광란의 폭도들 행위에 별다른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자본가와 지주들 다수는 유대인 추방과 그들의 자산 몰수를 반겼다. 히틀러가 자신감을 갖고 2차대전과 홀로코스트로 돌진한 것이 그때의 그런 경험 덕이라는 지적도 있다.

 

9일(현지시간)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불기둥이 솟구치고 있다. 이스라엘은 민간인들이 교전 지역에서 탈출하는 것을 돕기 위해 매일 4시간씩 가자지구 북부에서 교전을 중지하기로 했다. 2023.11.10. AFP 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불기둥이 솟구치고 있다. 이스라엘은 민간인들이 교전 지역에서 탈출하는 것을 돕기 위해 매일 4시간씩 가자지구 북부에서 교전을 중지하기로 했다. 2023.11.10. AFP 연합뉴스

이번 비극에는 유대인이 가해자로?

박해와 원한과 복수. 무한반복되는 듯한 이런 원한과 복수의 순환극의 최대 피해자 중 하나였던 유대인들. 홀로코스트로 이어진 85년 전 ‘수정의 밤’을 떠올리게 하는 비극이 지금 다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땅에서 벌어지고 있고, 이번에는 유대인이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라면. 최근 베를린 등 독일에서 열리고 있는 팔레스타인 연대집회에서 그런 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수정의 밤’ 85주년 추도행사들

9일 ‘수정의 밤’ 85주년을 맞아 베를린 등지의 시나고그들에서는 추도식들이 열렸고 올라프 숄츠 독일총리도 베를린의 추도모임에 참석했다. 식전에서 숄츠 총리는 “이제야말로 홀로코스트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전후 독일의 약속을 말로 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지켜야 한다”면서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공격으로 최근 급증하고 있는 유대계 주민들을 표적으로 한 범죄와 하마스 지지 활동에 엄중하게 대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12일(현지시간) 베를린 연방하원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무력 충돌이 수일째 이어지는 가운데 이날 숄츠 총리는 나치 정권 시절 독일의 과거사를 거론하며 이스라엘에 대한 굳은 지지를 표했다. 2023.10.13. 로이터 연합뉴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12일(현지시간) 베를린 연방하원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무력 충돌이 수일째 이어지는 가운데 이날 숄츠 총리는 나치 정권 시절 독일의 과거사를 거론하며 이스라엘에 대한 굳은 지지를 표했다. 2023.10.13. 로이터 연합뉴스

숄츠 “이스라엘 안전 위해 싸우는 게 독일 국시”

그는 “독일은 이스라엘 곁에 있다. 이스라엘에게는 하마스의 야만적인 테러에 대해 스스로를 지킬 자위권이 있다”며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에 대한 지지 입장을 다시 한번 천명했다. 지난달 17일의 이스라엘 방문 때 그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이스라엘의 안전을 위해 싸우는 것이 독일의 ‘국시’”라는 말까지 했다.

 

 9일 '수정의 밤' 85주년을 맞아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에 내건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다윗의 별과 '이제 다시는 안돼'라는 뜻의 문구. 2023.11.09. 로이터 연합뉴스
 9일 '수정의 밤' 85주년을 맞아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에 내건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다윗의 별과 '이제 다시는 안돼'라는 뜻의 문구. 2023.11.09. 로이터 연합뉴스

“반유대주의와 이스라엘 비판을 혼동”

지난달 유력 일간지 <벨트>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6%는 독일정부의 이스라엘 지지 천명이 ‘옳다’고 답했다. 하지만 공영방송 <ARD>가 지난 달 하순부터 이번 달 상순에 걸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1%가 가자 주민들의 희생이 뒤따르는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공격에 대해 ‘정당화될 수 없다’고 대답해, ‘정당하다’고 응답한 25%를 크게 앞질렀다.

지난 달 29일 베를린에서 열린 가자지구 주민들에 연대하는 집회에 참석한 팔레스타인 출신 이주민 2세인 회사원 사라 사이드는 “즉각 정전”을 외쳤다. 이날 집회에는 500명 정도가 모였다.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 직후에는 팔레스타인 연대집회들이 금지되기도 했다. 지금도 집회 허가는 나오지만 경찰들이 대거 출동해 참가자들 발언을 감시하고 있다.

사이드는 “정부와 정치가들이 반유대주의와 이스라엘 비판을 혼동해, 제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독일의 문제다. 민주주의 국가로서 전쟁범죄를 비난하고 적어도 정전을 촉구할 책무가 있다”면서 독일이 유대인을 탄압한 과거사 때문에 이스라엘 입장을 지나치게 배려하면서 잘못된 행위에 대한 비판도 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NHK> 11월 9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교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18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벌어진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 현장에서 불꽃이 터지고 있다. 전날 벌어진 가자지구 병원 폭발 참사에 대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가자지구 내 테러그룹의 로켓 오발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2023.10.19. AFP 연합뉴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교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18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벌어진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 현장에서 불꽃이 터지고 있다. 전날 벌어진 가자지구 병원 폭발 참사에 대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가자지구 내 테러그룹의 로켓 오발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2023.10.19. AFP 연합뉴스

유대인만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인들 홀로코스트도 안돼”

집회에 참가한 독일 원주민들도 “독일의 과오는 누구에게든 되풀이돼선 안 된다. 독일인이기 때문에 더욱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공격에) 반대해야 한다”거나 “가자지구에서 인권이나 어린이 권리 침해가 확인되고 있는데 이스라엘 편중 자세를 지금도 보이고 있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지난 4일에는 하마스의 기습공격 이후 최대의 이스라엘군 공격 반대집회가 열려, 베를린에서만 약 9천명이 참여해 “홀로코스트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모든 사람들에게”, “눈을 떠라” 등의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도심 거리를 행진하며 독일정부에게 정전 실현을 위해 나서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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