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로 설계자 “핵연료 더미 추출 불가능”
원전 부지 내 핵오염수 저장 공간도 충분
10만톤 급 저장공간들 지어 100년 보관
저장공간 없어 방출한다는 정부 논리 반박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이 지난 24일 강행한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투기로 일본 국내와 한국 중국 등 이웃 나라들에서 맹렬한 해양 투기 반대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이 계획하고 있는 폐로(사고원전 폐기)작업과 해양 투기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더 효과적인 해결책이 있다고 일본인 원자로 설계 전문가가 주장했다.
“해양 방출할 이유 없다”
일본 대기업 도시바에서 원자로 격납용기 설계자로 일한 공학박사 고토 마사시(後藤政志. 74) 비정부기구 APAST 이사장은 29일 대형출판사 고단샤의 시사주간지 <프라이데이 디지털>에 실린 기사에서 녹아내린 핵연료 더미를 끄집어 낸 뒤 원자로 시설들을 철거하는 기존 폐로계획보다는 녹아내린 핵연료 더미를 그대로 두고 원자로 전체를 콘크리트 등으로 봉인하는 ‘체르노빌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고토 이사장은 또 부지 내에 들어찬 핵오염수 저장탱크들을 그대로 두고는 폐로 작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핵오염수를 해양 투기할 수밖에 없다고 한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의 주장과는 달리, 문제의 후쿠시마 제1원전 내에 더 큰 핵오염수 저장시설을 지을 공간이 충분하며 거기에 핵오염수를 100년간 저장해 두면 방사능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핵오염수 해양 투기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핵연료 더미 추출 폐로작업 불가능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제1원전 1~3호기 원자로 안에 남아 있는 녹아서 굳은 핵연료 더미를 식히기 위해 계속 물을 뿌리고 있는데, 그 물이 핵연료 더미에 접촉하면서 오염된 것이 핵오염수다. 여기에 지하수와 빗물까지 스며들어 핵오염수는 계속 불어나고 있다. 이를 액체처리 시스템인 알프스(ALPS)로 걸러 저장탱크(수조)에 보관하는데, 이것이 일본정부와 도쿄전부가 ‘처리수’라고 부르는 핵오염수다. 그 양이 지금까지 134만톤이 넘는다. 일본정부는 ALPS로 거른 ‘처리수’는 트리튬(삼중수소)을 빼고는 거의 모든 방사능 핵종들이 제거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처리수’가 일본정부가 조사했다는 62종의 핵종이 100% 제거된 것이라는 확증이 없으며, 시험 테스트에서 Sr-90(스트론튬 90)과 I-129(요드 129) 등 인체에 심각한 해를 끼치는 핵종들이 안전기준치를 훨씬 초과하는 농도로 검출됐고, 스트론튬 외에 C-14(탄소 14)도 ALPS로는 걸러지지 않는다.
일본정부는 지금 상태로는 이 핵오염수를 보관할 장소가 사고 원전 부지 내에는 곧 없어진다는 것을 핵오염수 해양 투기 강행 이유로 들고 있다. 발표한 계획으로는 적어도 2051년까지 해양 투기를 계속해야 한다.
<프라이데이 디지털>은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처리수를 해양 방출하는 이유로 ‘후쿠시마 제1원전에는 처리수를 보관할 탱크가 꽉 들어차서 폐로작업을 진행할 장소가 없어지고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폐로작업을 진행하기 위한 장소란 앞으로 원자로에서 추출할 녹아내린 핵연료 더미(이하 핵연료 더미)를 보관할 장소를 말한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애초에 핵연료 더미 추출이 가능한 것이냐는 의문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높은 방사능을 지닌 후쿠시마 제1원전 내의 핵연료 더미는 모두 880톤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을 추출해 낼 경우 어딘가에 보관할 장소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을 간단히 추출할 수 없다고 지적하는 의견들이 많다. 고토 마사시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이렇게 얘기한다.
“현재 1~3호기 원자로 내부는 높은 레벨의 방사능을 지닌 핵연료 더미가 원자로 바닥과 벽 등에 달라붙어 있는 상태다. 도쿄전력은 로봇으로 추출하려 하고 있으나 간단히 될 리가 없고, 겨우 몇 그램 정도를 채취하는 시험 추출조차 스케줄이 늦어져 지금까지 못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추출해서 처리하는 것은 앞으로 50년은 무리일 것이다. 핵연료 더미 추출이 거의 무리인 상황에서 그것을 보관장소가 필요하다는 논의는 기술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리얼리티를 지닌 감각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추출해낸 핵연료 더미를 보관할 장소를 만들기 위해 지금 핵오염수가 저장돼 있는 탱크들 자리를 비워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 저장탱크에 들어 있는 핵오염수를 바다에 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일본정부와 도쿄전력 주장의 논거였다. 그런데 핵연료 더미는 아직까지 전혀 추출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추출해낼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것이 고토 이사장의 얘기다.
고토 이사장은 설사 핵연료 더미를 추출할 수 있다 하더라도 추출에 시간이 걸린다면 추출한 핵연료 더미를 보관할 예정 징소에 핵오염수 저장탱크를 증설할 수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0만톤 급 저장시설 만들면 핵오염수 저장공간 충분
일본정부는 핵연료 더미의 일시 보관시설을 짓는데는 최대 6만 평방미터가 필요하다고 시산했다. 그것과는 별도로 핵연료 더미 저장시설 등을 건설할 때 파낸 흙을 모아 둘 장소로 원전 부지 북쪽에 약 4만 평방미터를 확보해 두었다. 따라서 이를 합쳐 약 10만 평방미터를 활용할 수 있다. 지금 핵오염수 탱크들이 있는 장소는 약 23만 평방미터다. 따라서 양쪽을 활용하면, 해양 투기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게 고토 이사장의 얘기다.
“지금의 1000톤 급 탱크들을 10만톤 급 탱크로 바꾸고 거기에 처리수를 옮긴다. 그렇게 해서 비게 될 기존 탱크들을 대형 저장시설로 바꾸면 보존용량은 현격하게 늘어난다.
또는 처리수를 모르타르로 굳혀서 방사성 물질이 누설되지 않도록 지하에 묻어 두는 방법도 있다. 트리튬의 반감기는 12년 3개월 정도니까 그렇게 해서 100년쯤만 놔두면 방사능은 무시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어떻든 지금의 해양 방출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같은 큰 사고를 일으킨 옛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도 핵연료 더미를 추출하지 않고 콘크리트 등으로 봉인했다.
방사성 물질 확산 막자는 폐로작업과 해양 투기는 모순
“체르노빌에서도 후쿠시마 제1원전과 마찬가지로 원자로 내에 핵연료 더미가 대량으로 녹아내렸지만 추출 같은 것 하지 않고 석관으로 원자로를 굳혀서 방사성 물질을 봉쇄했다. 애초에 핵연료 더미를 추출하려는 것은 환경에 방사성 물질이 방출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인데, 트리튬 등이 남은 처리수를 바다에 방출하는 것은 모순이다.”
<프라이데이 디지털> 쪽이 도쿄전력에 핵연료 더미 추출 등에 대해 물어 보니 이런 대답이 왔다.
“추출한 핵연료 더미의 일시 보관장소와 넓이에 대해서는 검토 중이다. 시험추출이 당초보다 늦어지는 이유는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영향으로 부지 내로 들어오는 인원수에 제한이 있었던 것과 추출에 사용할 로봇팔이 핵연료 더미를 정확하게 집어낼 수 있도록 제어 프로그램을 개량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추출은 시험 추출 뒤에 이뤄지는데, 시기는 미정이다. 원자로 건물 해체는 핵연료 더미 추출이 끝나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기 때문에 언제가 될지는 말씀드리기 어려운 단계다.”(도쿄전력 홍보실)
고토 이사장 얘기대로라면, 작업 인원수 제한과 로봇팔 제작 시기 지연으로 핵연료 더미 추출이 늦어지면, 그게 될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서둘러 해양 투기를 할 이유가 없다. 핵오염수를 저장할 공간은 일본정부와 도쿄전력 주장과는 달리 부지 내의 장소들을 활용하면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게다가 아직 핵연료 더미 시험 추출 시기도 알 수 없고, 핵연료 추출이 끝나야 시작할 수 있는 원자로 건물해체도 언제 시작될지조차 알 수 없다.
그런데도 핵오염수 해양 투기부터 서둔 일본정부와 도쿄전부의 속셈을 알 수가 없다.
<아사히신문>이 지난 26일 보도했듯이, 내년 총선거에서 일본의 핵오염수 해양 투기가 한국 정부 여당에게 불리한 재료가 되지 않도록 총선거 시기와 거리가 먼 이른 시기에 해양 투기를 해달라는 한국 정부 여당의 요청을 받아들인 결과인가. 사람들은 설마 한국 정부 여당이 그런 요청을 했을 리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지만(그것을 믿지 않는다는 쪽이 믿는다고 한 쪽보다 많았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었다), 아사히의 그 글은 아사히신문 서울 지사장을 지낸 하코다 데쓰야 논설위원의 기명 기사로, 일본 최고의 신문사 간부인 그가 한국에서처럼 사실무근의 기사를 쓰고도 무사하기를 바라는 따위의 장난질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일본만 해양 투기
체르노빌 원전사고나 미국 스리마일 원전사고 처리에서 공통점은 사고 뒤 핵오염수를 강이나 바다에 흘려 보내 원전사고 핵오염수에 포함된 방사성 물질들을 사고지역 바깥으로 확산시키는 것을 막았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은 자국 또는 사고지역에서 방출된 핵오염물질을 해양에 투기함으로써 자신들의 과오로 인한 손실과 부담을 자국 어업 종사자와 소비자들뿐만 아니라 이웃나라와 전 세계에 전가하고 있다. 고토 마사시 같은 전문가들이 다른 더 좋은 처리방법이 있다고 얘기하는데도 거기에는 귀를 닫고 있다.
어쨌거나 이대로 가면 앞으로 30년 이상 태평양에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투기가 계속될 것이다. 그 사이에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이 신경쓰는 트리튬 외에 방사성 물질이 섞여 들어가는 등의 문제라도 발생하면 국제적으로 큰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며, 일본이 리스크 높은 불씨를 끌어안고 있다고 <프라이데이 디지털>은 지적했다. “폐로로 가는 분명한 길이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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