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사고 첫날부터 정부·총리 속인 도쿄전력
멜트다운 진행 중에 "그런 일 없다" 허위보고
반응없는 방사선 측정기구 들이대며 "안전하다"
그린피스 '세계최악 악덕기업 상' 후보 올라
지난달 8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에서 ‘일본방사성오염수해양투기 저지 공동행동’ 4차 집회가 열렸다. 한 일본인이 나서 마이크를 잡더니 “도쿄전력은 은폐가 태생”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사회민주당 핫토리 료이치 간사장이었다.
핫토리 간사장의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도쿄전력은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과 쓰나미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뒤로 은폐와 거짓말을 밥 먹듯 해온 기업이기 때문이다.
그 도쿄전력이 지금 자신들 잘못으로 세계의 걱정거리가 된 후쿠시마 사고원전 ‘처리수’가 ‘과학적으로 안전’하다며 핵오염수 해양 투기를 강행하고 있다.
‘멜트다운’ 아니라는 거짓말
도쿄전력은 2011년 3월 사고 후 한동안 멜트다운(노심용융, 爐心熔融)을 부인했다. 노심(핵연료가 배치돼 핵분열이 일어는 원자로 중심부)의 핵연료가 심각한 수준으로 녹아내렸는데도 ‘노심용융’이 아닌 ‘노심손상’이라고 주장했다.
도쿄전력은 사고 발생 2개월쯤 뒤인 5월 15일 “1호기에서 지진 발생 5시간 후인 3월 11일 오후 7시 반에 노심손상이 시작됐고 다음날 아침 일찍 연료 대부분이 압력용기 바닥으로 녹아 떨어졌다”면서도 멜트다운이란 말을 쓰지 않았다.
도쿄전력은 약 5년이 지난 2016년 2월 24일에야 비로소 “초기에 ‘노심용융’이 아닌 ‘노심손상’이라고 설명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당시에는 “노심용융을 판정할 근거가 없었다”는 해명도 덧붙였다.
그런데 이 발표에도 또다른 거짓말이 포함돼 있었다. ‘판정 근거’가 없었다는 해명은 거짓말이었다. 사고 당시의 도쿄전력 매뉴얼에는 “노심손상 비율이 5%를 넘으면 노심용융으로 판정한다”는 내용이 명문화돼 있었다. 사고 발생 5일째인 2011년 3월 15일 기준 노심 손상 비율은 1호기 70%, 2호기 90%, 3호기 25%였다.
이즈미다 히로히코 니가타 현 지사는 그때 “사내에 매뉴얼이 있었고 사고 당시에도 조직적으로 공유됐을 것”이라며 “멜트다운을 은폐한 배경, 누구의 지시였는지를 밝히라”고 요구했다.
자국 정부도 속이다
멜트다운이 진행되기 시작한 것은 지진 발생 4시간 후부터였다. 그러나 도쿄전력은 정부에 “여전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나흘 뒤 올린 보고서도 마찬가지였다. 자국 정부를 상대로 거짓말을 한 셈이다.
재난 컨트롤타워의 총책임자였던 당시 간 나오토 총리는 훗날 “도쿄전력은 (책임을 회피하려) 위험을 계속 과소평가하려 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탈원전주의자가 된다.
도쿄전력의 거짓 보고 등에 관한 내용은 사고 1년 뒤 독일 공영방송 체트데에프(ZDF)가 방영한 다큐멘터리 <후쿠시마의 거짓말>에 잘 나와 있다. 사토 후토시 감독이 2016년에 발표한 영화 <태양의 덮개>도 당시 총리관저와 도쿄전력이 얼마나 불통의 상황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자국 총리도 속인 도쿄전력
도쿄전력은 지진 발생 다음날인 12일, 정부에 사실을 알리지 않고 바닷물을 붓기 시작했다. 원자로가 뜨거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총리관저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얼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허둥지둥했다.
총리관저의 분위기를 감지한 도쿄전력은 지진 발생 열흘만인 21일 “바닷물 주입을 55분간 중단했다”고 발표했다. 거짓말이었다. 도쿄전력은 바닷물을 계속 붓고 있었다.
거짓말이 드러나자 도쿄전력은 26일 ‘현장의 판단’으로 바닷물을 계속 주입했다고 밝혔다. “원전 현장소장이 사고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해수 주입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었다.
이 거짓말은 그러나 결과적으로 파국적인 폭발을 막는데 기여했다.
당시 현장소장은 제어불능의 원자로 가열을 막기 위해 바닷물을 주입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으나, 도쿄전력 경영진은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일단 바닷물이 주입되면 원자로가 파손돼 상황이 호전되더라도 다시 사용할 수 없게 돼 막대한 손실을 보게 된다는 생각에 도쿄전력 경영진은 바닷물 주입에 반대했다.
그 위급한 상황에서도 경영진은 사태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사고 수습 뒤의 손익계산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분초를 다투는 상황에서 다급해진 현장소장은 경영진에겐 그들의 지시대로 하겠다고 거짓 대답을 한 뒤 바닷물을 계속 주입했다. 현장소장의 판단은 옳았고, 그 덕에 더 큰 파국을 막을 수 있었다.
도쿄전력 경영진은 이후에도 그런 아찔한 실책과 무능을 드러내며 이기적 자사 중심주의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알프스 성능’ 과장 광고
2012년 10월 일본 기업 도시바는 오염수 처리 시설인 알프스(ALPS, 첨단액체처리시스템)를 만들어 도쿄전력에 납품했다. 이후 도쿄전력은 알프스가 삼중수소(트리튬)를 빼고는 거의 모든 방사성 핵종을 ‘제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제거 대상’ 핵종 중에는 탄소-14도 포함돼 있었다. 전문가들의 반론이 이어지자 도쿄전력은 2020년 8월 “탄소-14도 걸러지지 않는다”고 인정했다. 탄소-14의 반감기는 5730년이다. 생체에 쉽사리 축적된다.
방사성 물질 누출 막는 ‘필터 파손’도 숨겨
2021년 알프스의 오염물질 여과 필터 25개 중 24개가 손상된 사실이 밝혀졌다. 2019년에도 똑같은 필터 파손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사실은 도쿄전력이 2021년 9월 13일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에 보고하면서 알려졌다.
당시 NHK방송은 “원인 분석이나 대책을 세우지 않고 단순히 필터만 교체한 사실도 이번에 함께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반 노부히코 원자력규제위원회 위원도 “필터 문제 이상으로, 근본적인 문제는 도쿄전력의 자세에 있다”고 질타했다. 필터는 방사성 물질을 걸러내는 역할을 한다.
반응 없는 방사선 측정기구 들이대고 “안전하다”
도쿄신문은 지난해 10월 3일 도쿄전력이 ‘시찰 투어’ 방문객을 기만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도쿄전력이 ‘알프스 정화 오염수’를 담은 병에 선량계(방사선량 측정기구)를 들이대며 “반응이 없으니 안전하다”고 홍보한다는 내용이었다.
반응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감마선에만 반응하는 선량계였기 때문이다. 그 선량계는 베타선이 방출되는 삼중수소 같은 핵종에는 애초 반응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그 선량계는 감마선에 반응하는 세슘도 저농도일 때는 측정이 불가능했다.
‘세계 최악의 악덕기업’ 후보 올라
이런 조작과 은폐, 거짓말로 도쿄전력은 2012년 환경단체 그린피스와 스위스의 시민단체 ‘베른선언’이 공동주관하는 ‘공공의 눈 상’(Public Eye Award) 후보에 스위스의 농약회사 신젠타 등 다른 5개 기업과 함께 올랐다. 매년 환경오염 등에 책임이 있는 세계 최악의 악덕기업을 선정해서 주는 상이다.
같은 해 독일의 환경단체 에네콘은 ‘블랙 플래닛 상’을 도쿄전력에 수여했다. 선정 이유는 ‘지구환경을 가장 심하게 파괴한 기업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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