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예고 없던 일정…러시아 폭격·학살 현장 방문

젤렌스키 대통령과 정상회담…출국 전엔 부인해

극단적 미‧일 편중 외교로 중‧러와 대립 구도 자처

러시아, 한국 무기 지원시 양국 관계 '파멸' 경고

'고속도로 게이트' 국면 전환, 국내 정치용 포석도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국빈급 공식 방문 일정을 마치고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5일(현지시간) 키이우 인근의 이르핀 민가 폭격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2023.7.15 [대통령실 제공] 연합뉴스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국빈급 공식 방문 일정을 마치고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5일(현지시간) 키이우 인근의 이르핀 민가 폭격 현장을 방문했다. 2023.7.15 [대통령실 제공]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느닷없이 방문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0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관을 이유로 출국해 리투아니아에 이어 폴란드를 순방했지만 우크라이나 방문은 전혀 사전 예고가 없던 일정이다.

윤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는 15일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 인근 부차시 학살 현장과 민간인 주거지역으로 미사일 공격이 집중된 이르핀시를 돌아봤다고 대통령실 김은혜 홍보수석이 밝혔다. 윤 대통령은 전사자 추모의 벽을 찾아 헌화한 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윤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 후 공동 언론 발표를 통해 회담 결과를 공개하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와 연대 의사를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윤 대통령은 이번 순방 기간에도 우크라이나에 대해 지지를 여러 차례 천명했으며, 재건 사업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은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에게도 예고 없이 이뤄졌다. 윤 대통령은 당초 4박 6일간의 순방 일정을 마치고 이날 귀국할 예정이었으나 우크라이나 방문으로 출장 기간이 그만큼 연장됐다. 윤 대통령은 나토 정상회의 기간 열린 정상 간 공식 만찬에 참석했던 젤렌스키 대통령과 인사를 나누는 듯한 장면이 포착되기는 했지만, 출국 전에는 물론 순방 기간에도 우크라이나 방문 계획은 공개되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지난 6일 순방 일정을 브리핑하면서 우크라이나 방문 계획을 강하게 부인한 바 있다. 당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우크라이나를 별도 방문하거나 (젤렌스키 대통령과) 정상회담은 계획에도 없고, 현재 추진되고 있지도 않다"고 잘라 말했다. 이를 고려하면 우크라이나 방문 및 양국 정상회담이 실무적으로 급하게 추진됐을 가능성이 있다.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국빈급 공식 방문 일정을 마치고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5일(현지시간) 키이우 인근의 부차시 학살현장 추모공간에 방문하고 있다. 2023.7.15 [대통령실 제공] 연합뉴스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국빈급 공식 방문 일정을 마치고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5일(현지시간) 키이우 인근의 부차시 학살현장 추모공간에 방문하고 있다. 2023.7.15 [대통령실 제공] 연합뉴스

문제는 러시아의 반응이다. 극단적인 미‧일 편중 외교로 중국‧러시아와 대립 구도를 자처하던 윤 대통령이 급기야 우크라이나 현지까지 들어가 젤렌스키 대통령과 손을 맞잡는 광경을 연출함으로써 러시아와의 관계는 파국 위기로 치달을 우려가 더욱 높아졌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한국의 무기 지원설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러시아는 무기 지원이 현실화할 경우 양국 관계는 파멸할 것이라고 이미 수 차례 경고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월 19일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민간인에 대한 러시아군의 대규모 공격이나 대량학살 또는 전쟁법의 심각한 위반과 같이 국제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면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인도적, 재정적 지원만 제공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며 무기·포탄 직접 지원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에 마리아 자카로바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전달을 공개적인 반러시아 적대행위로 간주한다"면서 "해당국과의 관계에 극도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다.

안드레이 보리소비치 쿨릭 주한 러시아 대사는 지난 4월 21일 시민언론 민들레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한국은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 이후 러시아에 이미 넘치게 비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무기 공급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비우호적인 입장의 반영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한국이 미국에 155㎜ 포탄 10만 발을 수출하던 지난해 10월 27일 발다이 국제회의에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탄약을 제공한다면 러·한 관계가 파멸될 것"이라고 초강경 입장을 드러냈었다. 또 "러시아가 북한과 이러한 협력을 재개한다면 한국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라면서 북한과의 국방 협력 재개를 시사했다.

 

안드레이 B. 쿨릭 주한 러시아 대사가 지난 21일 서울 정동 주한러시아대사관에서 시민언론 민들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주한 러시아 대사관 제공
안드레이 B. 쿨릭 주한 러시아 대사가 지난 21일 서울 정동 주한러시아대사관에서 시민언론 민들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주한 러시아 대사관 제공

한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의 침략을 규탄하는 유엔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지고, 미국과 서방이 주도하는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해 러시아가 지난해 3월 22일 발표한 '비우호 49개국 리스트'에 오른 상태다. 러시아 현지의 한국 기업들이 공장 철수를 고민하는 등 전전긍긍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주블라디보스톡 총영사관은 러시아 동포들에게 신변 안전을 당부하는 공지까지 전파한 바 있다.

균형 외교와 국익을 포기한 채 '가치 외교'에 매달리고 있지만 정작 미국에는 푸대접받고, 악화된 중·러 관계 탓에 무역수지 폭락 등 경제 피해는 날로 커지며, 일본엔 과거사 면죄부에 이어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투기까지 용인하는 등 윤석열 정권의 '자해 외교'가 극한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윤 대통령의 돌연한 우크라이나 방문은 한편으로는 김건희 씨 일가의 양평 땅 특혜 의혹을 둘러싼 '고속도로 게이트'로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는 상황에서 정국 전환을 위한 국내 정치용 포석의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갤럽 여론조사 기준으로 윤 대통령 지지율은 한 주만에 6%p가 급락해 32%를 기록했다.

설상가상 김건희 씨가 리투아니아 순방 중 대규모 경호원 및 수행원을 대동하고 명품숍을 방문한 사실이 현지 언론을 통해 드러나 파문이 커지고 있는 국면이다. 정부‧여당의 "(실업급여 받은) 여자들은 해외여행 가고 샤넬 선글라스 사며 즐긴다" "시럽 급여" 등 실직자들을 모욕하는 망언 시리즈와, 폭우로 전국 곳곳에서 사망자를 포함해 심각한 수재까지 벌어지는 사태가 겹쳐 갈수록 코너에 몰리고 있는 윤석열 정권이 '이슈로 이슈를 덮는' 상투적인 정치공학적 술수 차원에서 우크라이나 방문 카드를 꺼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5min' 기사에 실린 사진. 김건희 씨가 수행원 및 경호원들과 함께 명품숍 '두 브롤리아이' 매장 앞에 서 있다. '15min' 웹사이트 화면 갈무리
'15min' 기사에 실린 사진. 김건희 씨가 수행원 및 경호원들과 함께 명품숍 '두 브롤리아이' 매장 앞에 서 있다. '15min' 웹사이트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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