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의 군사지원 조건 중 ‘민간인 학살’ 등 해당
바이든, 올해안 점령지 탈환해야 내년 대선 승산
문제는 재고 바닥난 포탄 군수품 부족
한국이 재고부족 메울 대안으로 부상
한국전쟁 빅브러더, 한국을 다시 전장으로 소환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미국방문을 1주일 앞 둔 지난 4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은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지원 불가’라는 정부 원칙(입장)을 바꿀 수 있는 ‘조건’으로 다음과 같은 경우를 들었다.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이라든지, 국제사회에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대량 학살이라든지, 전쟁법을 중대하게 위반하는 사안이 발생할 때는 인도 지원이나 재정 지원에 머물러 이것만을 고집하기 어려울 수 있다.”
윤 대통령이 부차, 이르핀에 간 까닭
지난 15일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한 윤 대통령이 먼저 찾아간 곳은 수도 키이우 인근의 소도시 부차와 이르핀이었다. 지난해 2월 24일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한 러시아군이 수도 키이우로 진격하는 과정에서 그 길목인 이들 도시가 점령당했고, 그 와중에 수백 명의 민간인들이 집단 학살당한 곳이다.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열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 참석한 직후에 윤 대통령이 이들 두 도시를 찾은 것은, 6월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군의 대반격작전이 기대만큼의 성과를 올리지 못한 가운데 전차와 포탄 등 군수품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이로 인해 최대 지원국인 미국의 여론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쳐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둔 바이든 정부가 어떻게든 전황을 호전시켜야 할 필요성에 쫓기고 있는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한국은 무기 등 군수품 재고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미국 및 유럽 등 서방 지원국들이 155밀리 포탄 등의 무기 지원을 한 목소리로 압박하고 있는 나라들 중 하나다.
바이든 정부가 지난 7일 국제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대량살상무기인 집속탄(클러스터)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겠다고 밝힌 것도 무기 재고 부족 때문이다.
아직도 명확한 조사결과가 나와 있는 건 아니지만 러시아군이 자행했다는 주장이 퍼져 있는 부차와 이르핀 시 민간인 학살은 윤 대통령이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얘기한 인도 지원이나 재정 지원을 넘어서는 지원, 즉 살상무기 지원을 할 수 있게 하는 조건인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이라든지, 국제사회에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대량 학살이라든지, 전쟁법을 중대하게 위반하는 사안”에 해당한다.
윤 대통령이 이들 두 도시를 방문하겠다고 먼저 의사를 표명했는지, 아니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부가 윤 대통령을 그곳으로 안내했는지, 미국과 나토가 압박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것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한국의 살상무기 지원 가능성 및 그 조건과 연결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돈바스 등 동남지역 탈환 시한은 올해 연말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1일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6월에 키이우를 비공개로 방문해 젤렌스키 대통령 및 우크라이나 정보 당국자들과 만났다면서, 우크라이나 정부가 ‘동남부의 러시아 점령지역을 연말까지 탈환하고 정전평화협상을 벌이겠다는 계획’을 번스 국장에게 밝혔다고 보도했다.
연말까지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때까지 우크라이나군이 돈바스 등 러시아 점령지역을 탈환하는 등 전황을 호전시키지 못하면, 내년부터는 최대 지원국인 미국이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돌입하면서 미국의 관심은 국내 정치문제에 집중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와 동시에 우크라이나 지원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공화당 쪽의 공세로 바이든 정부뿐만 아니라 젤렌스키 정부도 곤란한 상황에 빠져들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지금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화당 대선 주자들 중에서 압도적인 우세를 점하고 있어 별다른 변수가 없는 한 내년 미국 대선은 바이든 대 트럼프의 재대결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많다.
트럼프가 내년 대선에서 이기면?
지난 11일 <이코노미스트> 온라인판의 주요기사 제목이 “트럼프가 이기면 유럽은 어떻게 할까?”였다. 거기에 “나토가 열려도 유럽은 플랜B를 찾고 있다”는 부제를 달았다. 트럼프가 내년 미국 대선 승자가 될 가능성이 호사가들의 단순한 화젯거리가 아니라 점차 실현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얘기다. <이코노미스트>의 가정대로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미국의 우크라이나 정책은 근본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는 지난 5월 자신이 다시 대통령이 되면 “24시간 안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분석가들은 트럼프를 반대하든 지지하든 상관없이, 그가 전쟁을 끝내는 방식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고 러시아가 점령 중인 돈바스와 크림반도 등 동남부 영토들을 러시아 영토로 인정한 바탕 위에 정전협상을 벌이는 것이 되기 십상이라고 보고 있다.
바이든의 민주당 정권이 중국과의 관계를 ‘디리스킹’ 차원에서 유지하면서 러시아와 중국 사이를 벌려 러시아를 고립시키는 전략으로 나아가려 하는데 비해, 트럼프의 공화당이 집권할 경우 중국에 적대적인 공화당 우파들이 러시아와 손을 잡고 중국을 더욱 고립시키는 쪽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의 공화당이 집권할 경우 바이든의 민주당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정부와 유럽에게도 대재앙이 되겠지만, 트럼프가 집권해서 그렇게 밀고 나갈 경우 설사 의회와 국방부가 그것을 저지하려 한다고 해도, 그런 상황에 돌입하게 되면 유럽 질서는 이미 러시아가 바라는 쪽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시간은 바이든과 젤렌스키 편이 아니다
시간은 바이든 정권의 편이 아니다.
6월 초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군의 대반격 작전은 성과가 없지 않으나 기대에는 크게 못미치고 있다.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은 지난 6월 30일 “사람들의 예측보다 진전이 느린 것이 사실이다. 매우 곤란하고 긴 피투성이의 싸움이 될 것이다.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반격은 시작부터 늦었다. 우크라이나 평원 특유의 진창이 겨울에 얼었다가 봄에 녹은 뒤 말라야 진격이 가능한데 기온이 오르지 않아 마르는데 시간이 걸렸고, 반격에 필요한 미사일과 장갑차, 포탄 등 무기도 제때 갖춰지지 않았다. 그 기간에 러시아는 점령지에 깊은 참호를 파고 대전차 방해물들을 설치하고 지뢰를 뿌린 저지선을 몇 겹이나 구축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선에 투입된 미국의 브래들리 장갑차가 벌써 15%나 파괴되거나 손상을 입었다.
젤렌스키 정부는 어떻게든 연말까지, 즉 내년의 본격적인 미국 대선 국면이 전개되기 전까지 전황을 호전시켜야 하고, 바이든 정부와 유럽은 어떻게 해서든 그런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서 러시아를 점령지에서 몰아내서 정전협상 테이블에 앉게 만들어야 할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야 트럼프와의 싸움에서도 승산이 있다.
무기 부족-한국을 끌어들여야 할 이유
그런데, 러시아의 대응은 완강하고 이를 격파할 무기가 충분하지 못하다. 지금 전황을 바꾸는데 필요한 관건적인 요소는 무기 등 군수품의 충분한 조달이라고 우크라이나와 미국 등 서방 지원국들은 판단하고 있다. 앞서 지적했듯이 우크라이나군은 물론이고 이를 지원하는 유럽과 미국도 무기 재고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고, 이를 자체 내의 생산 확대로 단기간에 메울 방도가 없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냉전 붕괴 이후 오랜 평화체제에 적응해 온 유럽과 미국은 무기 재고 수준을 낮췄을 뿐만 아니라 무기 생산능력도 대폭 축소했다. 이를 상황변화에 맞춰 급속히 재확장하려 한다 해도 몇 년 또는 10년 이상의 세월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비인도적이라는 비난까지 감수하면서 미국이 클러스터 탄을 제공하겠다고 나선 것도, 명분은 “우크라이나가 필요한 만큼의 포탄을 갖지 못해서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게 될 위험(리스크)이 그것의 사용 때문에 입게 될 리스크보다 더 크다”(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는 것이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깊은 참호를 파고 장기전에 돌입한 동남부 지역 점령 러시아군을 몰아내지 않으면 안 될 긴박한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이 클러스터 탄을 동원하면 러시아도 유사한 무기체게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전쟁은 군수품 전쟁”
결국 어느쪽이 더 많고 살상력이 더 높은 무기와 군수품을 동원할 수 있느냐가 전쟁의 승패를 가른다. “이번 전쟁은 군수품 전쟁이다. 우크라이나는 포탄을 다 썼고, 우리도 모자란다”고 바이든 대통령도 말했다.(<CNN> 7월 7일)
이 부족한 군수품 조달에 한국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서방쪽의 주장들이 점점 커지고 있다. 심지어 미국 등 서방이 무기 생산 및 공급 능력을 일정 수준까지 끌어올릴 때까지 현실적으로 거의 유일한 대안 공급국이라는 주장들까지 나오고 있다. 나토가 지난해 6일 마드리드 정상회의에 이어 이번 빌뉴스 정상회의에 일본과 호주, 뉴질랜드와 함께 한국 등 아시아태평양 4국(AP 4)을 초청한 것도 나토의 아시아 확장 및 나토와 인도태평양 안보체제 연합이라는 기본구상 외에 당장 필요한 우크라이나군 무기 조달 필요성 때문이며 그 핵심 국가 중의 하나가 바로 한국이라는 지적들이 있다. 그런 점에서 서방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한국을 우크라이나 전쟁에 끌어들여야 할 절박한 이유가 있다.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제공하려면 앞서 얘기한 전제조건들을 충족시키는 상황이 벌어져야 한다. 윤 대통령이 부차와 이르핀을 적극적으로 찾아갔든, 아니면 그 쪽으로 안내를 받았든, 이런 상황에서 그것은 한국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지원 가능성과 연결돼 있다고 추론할 수밖에 없다. 그것을 가장 절실하게 바라는 쪽이 어디일까?
미국은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이래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 212억 달러에 달하는 군사지원을 했다. 지상전의 주력이 돼 있는 155밀리포 142문과 포탄 100만 4천 발, 대전차 미사일 재벌린 8500기 이상, 휴대형 지대공 미사일 스팅어 1600기 이상을 제공했다. 지난 6월 이후에는 고성능로켓탄 하이마스 약 20기(38기 제공 예정),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 나삼스(NASAMS) 2기(8기 제공 예정)도 제공했다. 패트리엇 시스템도 제공할 예정이다.
그리하여 미국은 이미 자국 재벌린 재고 중 40% 정도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했다. 제조에 참여하고 있는 록히드 마틴은 연간 제조량을 지금 2100기에서 4천 기 가까이로 늘리려 하고 있으나 재고량을 완전히 본래대로 채우려면 몇 년이나 걸린다. 하이마스나 스팅어, 155밀리 대포도 비슷한 상황이어서, 다른 분쟁이 발발할 경우 대처 불능이라는 우려까지 나올 지경이라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2022년 여름 동부 돈바스 지방에서 우크라이나군은 하루 6천~7천 발의 포탄을 쏘았고, 러시아군은 하루 4만~5만 발을 날려 보냈다. 아프가니스탄전쟁 때 나토군이 하루에 사용한 포탄은 300발 정도여서, 이 신문은 우크라이나 전쟁 포탄 사용량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라고 했고, <NBC>는 한국전쟁 이후 최대라고 보도했다.
70년 전 한국전쟁 당사자들, 다시 한국을 남의 전쟁에 소환
미국이 하루 제조할 수 있는 포탄은 매월 1만 5천 발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증산하기는 쉽지 않은데, 냉전 종식 뒤 군수산업이 통폐합, 축소됐고, 비축량도 줄였으며, 방위산업도 잉여 생산능력을 포기했다.
우크라이나 군수품 조달 부족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은 155밀리 포탄 재고가 바닥을 드러내자 예전의 규격인 105밀리 포탄으로 대체하고 구식 지대공 호크 미사일을 수선해서 쓰거나 체코군이 보유한 소련제 T72형 전차를 미국이 돈을 대서 고쳐 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제 155밀리 포탄도 대량 구입했다.
역사상 최대의 살상무기들을 쏟아붓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 비견할 만한 대표적인 전쟁으로 꼽은 한국전쟁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70년 전의 그 한국전쟁 때 당시로서는 사상최대의 살상무기를 좁은 한반도에서 서로 퍼부었던 바로 그 당사국들이 이제 다시 우크라이나에서 사상최대의 포탄을 서로 쏟아부으면서 여전히 전쟁상태인 분단 한국을 그 전쟁에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소련(러시아)은 당시 전면에 나서진 않았으나 북한군 탱크와 전투기들, 포탄 등은 소련제였고, 한국전쟁은 미소(동서)냉전의 본격적인 전개를 알린 서곡이자 국제전적 대리전쟁이었다. 다시 돌아온 ‘그들’의 전쟁에 ‘우리’가 끌려들어 갈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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