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렬의 전략노트] 누리호 성공, 러시아 기술이 결정적 역할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조성렬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조성렬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어느 날 눈 떠보니 한국이 방산강국 및 우주강국이 되어 있었다? 지난 5월 25일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2)의 발사 성공으로 한국은 우주발사체 분야에서도 강국으로 떠올랐다. 오늘날 한국이 세계적인 방산강국과 우주강국으로 성장하게 되기까지 러시아와의 불곰사업을 통한 군사기술 도움이 없었다면 단기간에 적은 비용으로 이러한 성과를 거두기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 로켓기술의 도입으로 한국의 우주개발을 30년 정도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형발사체(KSLV-2) 누리호에는 75t 다단연소 사이클의 앙가라(Angara) 로켓엔진이 사용되었는데, 2008년에 도입한 러시아의 액체로켓을 역공학(Reverse Engineering) 방식으로 제작한 것이다. 역공학 방식은 쉽게 말하면 분해 재조립하면서 분석하는 방식이다. 미국, 러시아, 중국과 같은 일부 우주발사체 선진국들만이 보유하고 있는 최첨단 엔진 기술을 한국이 보유하게 된 것이다.

러시아의 첨단기술 덕분에 한국의 과학기술자들이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75t짜리 액체로켓 엔진의 개발에 들어가 3년여 만인 2018년 11월 누리호 시험발사체(KSLV-2 TLV)를 성공적으로 쏘아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해 6월 21일 제2차 발사에 이어 올해 5월 25일 마침내 ‘차세대소형위성 2호’와 큐브위성 7기를 탑재한 제3차 발사에 성공한 것이다.

조광래 항공우주연구원 전 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짧은 기간 안에 독자 액체로켓과 발사체 체계종합 기술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항우연 연구원들의 피와 땀의 결과이긴 하지만, 러시아 우주기술의 기여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한국의 자체 힘으로 개발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우주 분야에서 러시아의 도움으로 자금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었다는 의미이다.

KF-21, KAMD, K-2에도 러시아 기술 활용

러시아 군사기술을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는 누리호 우주로켓 외에도 4.5세대 전투기 KF-21의 초음속 미사일용 램젯 엔진, 능동전자주사배열 AESA 레이더의 개발이 있다. 또한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KAMD)의 핵심으로 이미 실전 배치된 지대공 미사일 ‘천궁’과 개발중에 있는 L-SAM은 러시아의 S-300과 S-400 기술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K-2 흑표 전차의 주요 기술도 러시아의 도움을 받았다.

한국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초음속 공대함 미사일을 장착한 KF-21 전투기를 자체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최대 난제는 초음속 공대함 미사일용 램젯엔진 핵심기술과 공기흡입구(DUCK) 구조설계였다. 일본은 2000년대 초부터 2조 원을 투자해 2017년 ASM-3 초음속 공대함 미사일의 개발 완료를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국내 연구진들은 기술 장벽에 막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다가 2007년부터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초음속 공대함 미사일의 개발에 성공해 KF-21 전투기에 장착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같은 초음속 대함 미사일을 개발하면서 얻은 파생기술을 이용해 국산 미티어급 장거리 공대공 미사일과 타우러스급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었다. 또한 KF-21 핵심기술의 하나인 능동전자주사배열 AESA 레이더도 그 이전에 러시아의 핵심기술을 도입하지 못했다면 타이밍을 맞춘 개발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처럼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이 수십 년에 걸쳐 수조원의 비용을 들여 개발한 첨단기술을 한-러 불곰사업을 통해 수백분의 1의 적은 돈으로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한국의 독자적인 미사일방어시스템 KAMD도 러시아가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KAMD 사업의 핵심을 이루는 지대공 미사일 ‘천궁’(옛 M-SAM)과 한국판 사드로서 2020년대 후반 실전배치를 목표로 개발 중인 L-SAM은 모두 러시아의 S-300과 S-400을 기술적 기반으로 하고 있다. 사드와 같은 미국제 방공미사일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개발하면 비용 절감은 물론 중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에서도 반발을 막을 수 있다. 주한미군이 미국산 사드를 도입했을 때 중국이 크게 반발했지만, 한국이 방공미사일을 자체 개발해 배치한다면 중국도 반대할 명분이 없다.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II)가 지난 25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되고 있다. 누리호의 다단연소 사이클의 앙가라 엔진은 역공학방식으로 제작했다.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II)가 지난 25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되고 있다. 누리호의 다단연소 사이클의 앙가라 엔진은 역공학방식으로 제작했다.

러시아의 첨단 군사기술은 K-2 흑표 전차나 장갑차의 대공 미사일 등에도 활용되었다. 튀르키예 기술수출과 폴란드 직수출 및 현지생산으로 잘 알려진 K-2 흑표 전차의 특징 중 하나는 도하 장비 없이 1.2m까지 도하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타워 형태로 설계된 스노클(snorkel)을 장착할 경우 최대 4.2m까지 잠수 도하가 가능하다. 이 기술은 1990년대 말 불곰사업으로 도입된 러시아제 T-80U 전차를 통해 습득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제작한 것이다.

불곰사업은 노태우 정부가 옛소련에 빌려줬다가 못 받은 경협차관 14억 7000만 달러를 회수하기 위해 러시아로부터 돈 대신에 군사장비를 받아온 사업으로 제3차까지 진행되었다. 불곰사업으로 들여온 러시아제 장비들이 모두 유용했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 과학기술자들이 몇몇 군사 장비들을 통해 첨단기술을 습득해 후발주자로서 방위산업과 우주산업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러의 대북 무기지원 땐 북한 군사력 도약

그 동안 한국이 러시아와의 불곰사업으로 방위산업과 우주산업을 키워오는 등 한-러 양국관계가 비교적 우호적으로 전개되어왔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한국이 러시아를 겨냥해 무기를 제공하는 문제로 양국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현재 한국은 총탄·포탄·폭탄과 같은 한반도 전쟁예비탄약(WRSA-K)을 다량 보유하고 있으며, 지난해 11월 이미 미국에 155mm 포탄 10만 발을 수출한 바 있다.

지난 4월 미 언론이 폭로한 미국의 한국 대통령실 도감청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정부에게 우크라이나에 직접 포탄을 제공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대해 당시 이문희 외교비서관이 정부의 ‘살상무기 제공 금지 원칙’을 공식 파기하고 한국이 직접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자고 제안하자,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무기를 폴란드에 수출하고 폴란드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우회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등 무기 제공 자체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0월 27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발다이 회의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0월 27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발다이 회의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나 포탄을 제공할 경우 한-러 관계가 파탄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22.10.28   AFP연합뉴스 

최근 우리나라를 방문한 우크라이나 대통령 부인 올레나 젤렌스카는 한국 정부에게 인도적 지원, 군수물자 지원에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비살상무기 외에 ‘보다 파격적인 무엇’이 필요하다면서 사실상 살상무기의 지원을 요청했다. 윤 대통령은 히로시마에서 열린 G-7 확대정상회담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났다. 구체적인 면담내용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살상무기의 지원을 요청했을 것으로 보인다. 7월로 예정된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가 구체화될 수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4월 19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의 조건으로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 △민간인 대량학살, △전쟁법규에 대한 심각한 위반을 제시했다. 그런데, '한·미 동맹 70주년 기념 한·미 정상 공동성명'에서 “민간인과 핵심 기반시설을 대상으로 하는 러시아의 행위를 가장 강력한 언어로 규탄”하며 “러시아의 명백한 국제법 위반에 단호히 대응”한다고 밝혀 이미 위의 조건을 충족했다고 선언한 것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미 작년 10월 27일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할 경우 한-러 관계가 파탄 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러시아가 북한에 무기를 지원하면 기분이 어떻겠냐”고 반문했다. 지난 4월 19일에는 러시아 대통령을 역임했던 메드베데프 연방 안전보장이사회 부의장이 한발 더 나아가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면, 러시아 무기를 북한에 공급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동안 러시아는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유엔 결의에 따라 북한에 대한 무기 제공을 자제해 왔지만,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한다면 공언한 대로 북한의 재래식무기 현대화를 지원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어느 나라보다도 역공학 방식의 무기 제조에 능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국제사회의 각종 제재 속에서도 북한은 국가의 명운을 걸고 핵탄두는 물론 각종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 초음속미사일, 심지어 군사정찰위성까지도 역공학 방식으로 제조해 왔다. 만약 러시아가 공공연하게 북한군의 현대화를 지원한다면 북한의 첨단군사력은 한층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 분명하며, 이는 우리나라의 안보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제라도 한반도의 안보 현실을 똑바로 보고 제대로 처신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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