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오염수 민심 르포 ③] 희망잃은 통영 낚싯배 선주들
"방류 얘기 나온 뒤로 손님 줄어들고 갈치값 하락"
대통령 방문 이후 시청 태도 돌변 "가만히 있어라"
'한산대첩' 후예로 그냥 있을 수 없어 릴레이 단식
"방류 못 막은 책임 지고 정부가 낚싯배 사가라"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인류 생명의 원천인 바다가 위협받고 있다. 삼면을 둘러싼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일궈온 우리 어민들의 시름이 깊다. 분노가 넘치고 불안이 들끓어도 정부는 ‘나는 모른다’이다. 시민언론 민들레가 후쿠시마 핵오염수 투기를 목전에 둔 성난 민심을 전한다.
“낚시어선을 이제 접어야 하나 고민하는 선주들이 많습니다.”
4일 오전 경남 통영시 선촌항에서 만난 낚시어선 선주 박상곤 씨는 3일에 이어 이날도 배가 출항하지 못한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배가 4척만 정박하고 있는 선촌항은 항구로 부르기에는 어색한 작은 어촌이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 20분을 걸어야 하는 작은 마을에도 ‘후쿠시마 오염수’ 파장은 어김없이 미치고 있었다.
5~6년 동안 어선을 타고 문어, 장어 등 고기를 잡는 뱃사람이었던 박 씨는 지난해 부푼 꿈을 안고 선박을 매입해 어엿한 ‘최강리드호’의 선장이 됐다. 박 씨는 보통 오후 2시에 출항해 다음 날 아침 7~8시에 돌아오는 일상을 보냈다. 박 씨가 보유한 ‘최강리드호’는 낚시어선이다. 낚시어선은 낚시꾼을 모집해 배에 싣고 낚시를 마치면 각자 잡은 고기를 갖고 돌아가도록 하는 식으로 운영한다. ‘최강리드호’를 타고 바다로 두 시간 반 정도 가면 이르는 대마도 인근에서 조업을 한다.
다른 배를 이끌고 물고기를 이끈다는 의미의 ‘최강리드호’. 그러나 그 웅장한 이름과 달리 요즘 한적한 항구에서 움직이지 못한 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주로 갈치를 잡는 낚시꾼들이 배를 타지만 7월 한 달은 갈치 금어기라서 한치를 잡는다는 게 박 씨의 설명이다. 박 씨는 “보통 배에 낚시꾼 20명을 태웠는데 요즘은 10명 정도 신청이 들어온다”면서 “이렇게 되면 기름값 등 비용을 생각하면 남는 게 없어서 출항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위판장에서 갈치 10kg에 16만~18만 원에 팔리던 것이 지금은 12만 원에도 팔린다”면서 “중앙시장 등 통영 수산업의 중심지에서는 여전히 관광객들이 많이 와서 회가 팔리고 있지만 여기서 조금만 벗어나도 상황이 다르다”고 말했다. 박 씨는 또 “원래 일주일 7일 가운데 7일을 조업을 나갔지만, 요즘은 한 달에 10일 내외 밖에 안 나간다”고 말했다.
낚시꾼들이 어선을 타지 않는 이유는 ‘후쿠시마 오염수 공포’ 때문이라는 것이 박 씨의 생각이다. “낚시꾼 중 절반은 음식점에 직접 공급하기 위해 타는 사람들인데 후쿠시마 오염수 이슈 때문에 해산물 판매를 줄이거나 업종 전환을 추진하는 경우가 많아 어선을 타는 수요가 줄었다”고 말했다. 이어 “낚싯배를 타고 위판장에 넘기는 경우에도 가격이 내려간 데다 판매도 안 된다고 한다”고 말했다. 박 씨는 또 “나도 다른 선주들처럼 낚시어선 사업을 접고 싶지만, 빚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현재 거제와 통영 부근에는 약 1000척의 낚시어선이 조업하고 있다. 이정근 한국낚시어선협회 거제·통영 지회장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이야기가 나오면서 바다낚시를 즐기는 분들도 집에서 가지 말라고 하고 가서 잡은 고기도 집에 가져오지 말라고 한다”면서 “위판장에 팔려고 해도 어획량이 줄었는데도 팔리지 않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요즘 낚시어선 선주들이 수지가 안 맞아 사업을 접으려는 사람이 많다”면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는데 배를 처분할 수 없어 낚시어선 경매 물건이 쏟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또 “핵 오염수라는 말 자체가 어업에는 치명적”이라면서 “이달 안으로 낚시어선 선주들이 세종시에서 정부 규탄대회를 열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상곤 씨는 “솔직히 정부에서 낚시어선을 사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면서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막지 못한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박 씨로부터 확인된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한 분노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중단을 요구하며 릴레이 단식 농성을 하는 통영지역 시민단체에서도 확인됐다. 통영 수산업의 중심지를 꼽으라면 단연 통영중앙시장이다. 통영시 중앙동에 위치한 중앙시장은 인근 거제 지역 주민들까지 물고기를 사러 찾아오는 수산물 유통의 요충지다.
이곳에서는 최근 통영지역 10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통영시민행동이 릴레이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다. 통영·거제 환경운동연합이 주관해 농성을 이끌고 있다. 한 사람이 아침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12시간 현장 단식을 하면 다음 날 또 다른 사람이 현장에서 단식하는 방식이다.
통영시민들이 릴레이 단식 농성에 나선 것은 통영시청과 어민 단체들이 돌연 오염수에 대한 입장을 바꿨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통영은 전국에서 가장 강한 오염수 반대 집회가 열린 지역이었다. 횟집이나 활어차 모두에 오염수 방류 반대 깃발을 달고 다니던 동네였다. 선박들이 대규모로 해상 시위를 벌였고 올해도 그렇게 진행할 예정이었다.
이동호 통영·거제 환경운동연합 이사는 “통영이 전국 해상 시위의 원조였다”면서 “지난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를 위해 배 200~300척이 해상 시위를 벌였다”고 말했다. 이어 “윤석열 대통령이 바다의 날 통영에 방문한 이후 모든 것이 180도 변했다”면서 “어민 단체는 물론 통영시청까지 입장이 돌변해 후쿠시마 오염수가 문제가 없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또 “어민들에게 주어지는 지원금을 누가 마음에 안 들고, 말을 안 듣는다고 주고 안 주고 할 수 없는 것인데 이 정부가 그런 일을 하는 것 같으니까 어민들이 두려워하고 있어 조용한 분위기가 됐다”면서 “통영에서 정부에 반대하면 지역 커뮤니티에서 소외되는 분위기도 한몫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통영시청이 시민들에게 조용히 있으라고 강요했지만 일본 수군을 격파한 ‘한산대첩’의 본고장 통영시민들이 이를 바라만 보고 있을 리는 없다. 이 이사는 “집회가 열릴 때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어 할 수 있는 행동을 하자고 모인 것이 릴레이 단식농성이었다”면서 “일과를 마치고 저녁에 가족끼리 방문하는 등 일부러 찾아오는 등 응원하는 시민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한 걱정은 상당수 시민이 공유하고 있다”면서 “만약 바다에서 세슘이 함유된 생물체가 발견된다면 그걸로 어업은 다 끝난다는 위기감”이라고 말했다. 이 이사는 또 “처음에는 오염수 문제가 어민들의 생존권 문제로 인식됐다가 최근에는 수산물을 먹는 소비자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면서 “이 때문에 소비자 단체와 주부 모임 등이 주말에 농성장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옆에서 단식 농성을 하던 박종권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대표는 “일본이 돈이 없어서 방류라는 싼 방식을 택했다기보다는 원자력 발전을 계속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준공을 코앞에 두고 있는 로카쇼무라 재처리 공장을 가동하기 위해서라도 후쿠시마 오염수를 방류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오염수 문제가 없다고 하는 것은 원자력 진흥기구로서 전 세계의 원전에서 방사능이 배출되기 때문에, 이를 방어해야 하기 때문”이라면서 “방류 초기에는 표가 안 날지 모르지만 매우 장기간에 걸쳐 영향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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