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오염수 민심 르포 ⑤] 부안 김 양식장과 젓갈 거리
30년 동안 김양식으로 살았는데 날벼락 맞은 느낌
격포항 곳곳에는 오염수 투기 반대 플래카드 걸려
곰소항 젓갈 백반집 “이제 돼지고기 백반 해야하나”
“방폐장 막았듯이 똘똘 뭉치면 오염수 막을수 있어”
언제 장마철이었나 싶을 만큼 햇살이 따가웠다. 축축해진 마음을 뽀송하게 말려줄 것 같은 날씨였다.
10일 전북 부안군 변산면 격포항에서 만난 심길섭 씨의 표정도 이날 날씨 같았다. 멀리서 온 손님을 구릿빛으로 그을린 얼굴에 새하얀 이를 내보이며 맞았다. 하지만 짧은 인사 뒤에 김 양식에 관한 대화가 이어지자 심 씨의 얼굴에 먹구름이 몰려왔다.
“(양식장에서 일할) 외국인 노동자를 신청했다가 모두 취소했어요. 올해는 이식할 종자 규모를 지난해보다 3분의 1쯤 줄이려고 해요. 생산량도 그만큼 줄어들겠죠.”
심 씨는 “격포 지역의 다른 김 양식자 4명도 똑같이 올해 생산량을 줄일 계획”이라며 “어차피 올해와 내년은 힘들지 않겠느냐고 자포자기하는 목소리도 있다”고 전했다. 일본의 후쿠시마 핵 오염수 투기가 시작되면 김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격포 앞바다 김 양식장 270ha(약 81만6000평) 가운데 심 씨의 양식장 70ha(약 21만1700평)에서는 김 400톤을 수확했다.
달콤한 부안 김 이제 못 먹나
심 씨는 1992년부터 30년 이상 김 양식을 해왔다. 긴 세월만큼 부안 김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다. 그는 “여기 앞바다는 수심이 얕고 펄에서 나오는 미네랄 성분이 풍부해 김 맛이 좋다”며 “단맛이 진하기 때문에 백화점에서 팔린다”고 자랑했다. 그는 또 남해와 서해의 다른 지역에서는 각종 해난사고로 오염이 일어났지만, 부안 앞바다는 오염이 없는 것도 장점이라고 했다.
부안 김 자랑에 환해졌던 얼굴이 오염수 얘기가 나오자 다시 굳어졌다. “IMF보다 무서운 경제적 타격이 온다는 말도 나와요. 큰 배로 고기를 잡는 대기업들이야 1~2년 안 잡아도 버틸 수 있지만 영세 어민들이나 우리 같은 양식업자들은 걱정이 태산이죠.”
양식장이 있던 바다는 지금은 수확이 끝나 텅 비어있었다. 그곳을 바라보던 심 씨는 그동안 김 양식에 쏟은 열정을 떠올렸다. “최근에는 스티로폼이던 부표를 친환경 플라스틱으로 바꿨어요. 스티로폼은 갈매기가 쪼아대면 조각이 떨어져 바다를 오염시켜요. 양식이 워낙 고된 일이라서 수확용 채취 틀도 현대화했고요.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요.” 심 씨는 2017년 김 생산 분야에서 공로를 인정받아 산업포장까지 수상했다.
심 씨는 김 양식은 자연이 결정하는 것이고 인간은 거들 뿐이라고 했다. “용왕님이 주는 대로 받았는데, 오염수가 바다에 흘러들어오면 우리는 버려지는 것인가요. 답답합니다.”
오염수가 아니라도 최근 김 양식은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온난화로 수온이 올라가 김 양식 기간이 짧아졌다. 예전에는 보통 9월 초에 종자를 내서 4월 말까지 수확했다. 어린이날(5월 5일)에서 김을 따 본 기억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은 2월 말이면 수확이 끝난다. 겨울을 나며 크는 김은 수온이 올라가면 잘 자라지 않는다. 양식 기간이 짧아지고 수확량이 줄어든다는 얘기다.
“태풍 같은 자연이 주는 시련은 한철이지만, 오염수는 기약이 없잖아요. 그래서 더 걱정이에요.”
격포항 곳곳에는 오염수 투기에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격포 어민들은 최근 규탄대회를 열어 방류 반대를 외쳤고 정부의 미흡한 대처를 성토했다.
뭉쳐서 싸운다면 희망은 있다
심 씨는 어업 종사자들이 모두 단결해 지속적으로 싸운다면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003년 부안의 방사선 폐기물 처리장(방폐장) 반대 투쟁을 떠올렸다.
“당시 온 주민이 하나가 돼 싸웠어요. 한 어르신은 기르던 소를 400만 원에 팔아 시위하는 이들의 지원금으로 내놓을 만큼 똘똘 뭉쳤죠. 지역의 생존권이 달린 절박한 싸움이었으니까요. 이번 오염수도 생존권이 달린 문제입니다.”
심 씨는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를 바꾸는 힘은 국민의 각성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고체로 만들어 지하에 묻는 방법 등 여러 대안이 있는데, 주변국이 일본을 압박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바다는 수많은 우리 먹거리가 나오는 곳이잖아요. 저와 격포 사람들에게는 삶의 터전이고요. 이걸 지키려면 우리가 나서야지요.” 심 씨는 지역 어민과 함께 조만간 상경 투쟁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부안은 김 이외에도 바다의 물산이 풍부한 곳이다. 봄에는 주꾸미, 갑오징어, 꽃게, 대하 등이 천지다. 여름에는 꼴뚜기와 소라, 가을에는 전어와 멸치, 겨울에는 김과 숭어가 나온다.
격포 수산 시장에서 만난 상인 이기옥 씨는 “당장 여름 관광객이 줄어들까봐 걱정”이라고 했다. “부안 인근에만 해수욕장이 6곳이에요. 7월 하순이면 전어잡이가 활황이고, 이걸 먹으러 관광객이 몰려와요. 그런데 올해는 오염수 때문에 사람들이 예년보다 적을 것 같아 걱정입니다.”
젓갈로 이름난 부안군 진서면 곰소항은 사시사철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이곳에서 만난 젓갈 백반집 주인 주인석 씨도 오염수 사태를 걱정했다. 주 씨는 “이제 돼지고기 백반집으로 바꿔야하나 고민한다. 대도시에 나가 있는 딸이 이제 식당 접자고 한다. 여기서 20년 넘게 장사를 해왔는데, 그말을 들으니 너무 섭섭하다”고 말했다.
부안은 내륙으로는 내소사와 숲이 있고, 바다에는 채석강이 있어 관광객이 많다. 하지만 바다가 오염돼 먹거리가 사라지면 방문객도 뜸해질 것이다. 부안 주민의 오염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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