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오염수 민심 르포 ①] 천일염 1번지 신안군
최근 반짝 특수 출고가 2배 가까이 올라
방류 2~3달 뒤 생각땐 아찔, 벌써 그만 둔단 얘기도
“갯벌 낙지, 모시조개 이제 맛있다고 못 권하죠”
해수부장관은 퍼포먼스만, 대통령 뭐하나 '분통'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인류 생명의 원천인 바다가 위협받고 있다. 삼면을 둘러싼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일궈온 우리 어민들의 시름이 깊다. 분노가 넘치고 불안이 들끓어도 정부는 ‘나는 모른다’이다. 시민언론 민들레가 후쿠시마 핵오염수 투기를 목전에 둔 성난 민심을 전한다.
서울에서 350km가 넘는 먼 길이었다. 목포를 거치면 압해대교와 김대중대교를 건너 보석처럼 흩어진 섬들을 둘러볼 수 있었다. 빌딩 숲 대신 “잠시 모든 걸 잊어도 돼”라고 말할 수평선을 마주할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현지의 마음을 헤아리니 돌멩이가 머릿속에 굴러들었다.
29일 오후 전남 무안군 운남면의 한 염전. 하얀 밭을 기대했지만 바깥 어디에도 소금은 없었다. 바닷물을 물때에 맞춰 가둬두는 저수지, 양수기로 물을 퍼 올려 가장 먼저 도착하는 난치, 조금 농축시키는 누테, 소금이 알알이 맺히는 결정지. 염전의 구석구석을 둘러봤다.
이날 기자가 만난 최미선 씨는 소금이 가득한 보관 창고 염퇴장에 있었다. 소금은 볕이 좋은 여름에는 이틀, 가을이면 3~4일이면 완성된다. 만들어진 소금은 염퇴장에서 비를 긋는다. 장마가 시작되면서 소금 생산은 한 달가량 중단이다. 수확한 소금을 출하하는 일만 남았다.
최 씨가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자 머릿속 돌멩이가 잠시 사라졌다. 최 씨는 본인을 ‘포장 반장 최미선’이라고 소개했다. 최 씨와 팀원 8명이 염퇴장에서 소금을 포대에 담아 트럭에 실었다. 트럭 1대에 20kg 소금 포대 1300개가 실렸다. 한 포대를 포장하면 600원이 돌아온다.
천일염 반짝 특수가 마냥 즐겁지 않아
최 씨는 “보통 하루에 트럭 3대 분량을 작업하는데, 요즘 5~6대로 늘었다”고 했다. 후쿠시마 핵오염수 투기를 앞두고 벌어진 천일염 구매 열풍 때문이다.
“염전주들은 천일염 가격이 올라서 조금 재미를 보고 있지만 앞으로가 걱정이죠. 주인들은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걱정이 많았죠. 그런데 소금값이 오르기 시작하니 반짝 특수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같아요. 오염수 방류 뒤가 걱정인데, 제가 좋아했던 사람들이 이 정도의 밖에 안 되나라는 생각에 속상하기도 합니다.”
대형 마트의 소금 매출은 최근 크게 늘었다. 이마트에 따르면 핵오염수 투기 설비 시운전이 시작된 12일부터 25일까지 소금 매출은 지난해 동기보다 156%나 늘었다. 다시마(92.9%) 미역(69.9%) 멸치(20.1%) 등도 같이 증가했다. 롯데마트는 1인당 구매 한도를 제한하고 있다고 한다.
2021년 전국 소금 생산량은 281만 톤. 그중 264만 톤이 전남에서 나왔다. 하지만 최 씨가 전한 ‘천일염 1번지’ 신안, 무안, 목포의 민심은 뒤숭숭하다. 사재기 뉴스가 나오며 값이 오르고 출하량이 늘어 좋지만 마냥 즐겁지는 않다. 오염수 방류가 시작돼 사재기 열풍이 사그라든 뒤의 풍경은 상상하기도 싫다.
최 씨는 소금이 좋아서 이 일을 시작한 지 13년이 됐다. 20대부터 부산에서 사업을 했지만 도시에 지쳐 남편과 함께 고향인 신안으로 돌아왔다.
“돌아와 보니 직장도 없고 처음에는 막막했어라. 하지만 저에게는 갯벌이 있었어요. 지인의 소개로 이 일을 하게 됐지요. 나고 자란 바다가 제게 다시 직업을 줬어라.”
성실하고 꼼꼼한 최 씨는 이 일대 염전주들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발이 넓다. 소금밭 민심을 누구보다 잘 안다.
새벽 5~6시에 집을 나와 하루 종일 몸을 쓰는 고된 일이다. 진통제를 달고 산다.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해서 힘든 줄을 모른다고 최 씨는 말했다. 자연이 준 건강한 선물을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일이 행복하다고 했다. 요즘은 반짝 특수라 밤 10시가 넘어야 집에 들어오는 일이 허다하다. 몸살이 나지만 자부심과 약으로 버티고 있다. 휴대전화 속 최 씨의 일정은 다음 주까지 꽉 차 있다.
지금은 이런 행복이 금방 끝날 것 같아 마음 한 켠이 무겁다. 최 씨가 화난 마음을 표현하자 사투리가 나왔다. “투기가 시작되고 2~3개월 뒤 분위기가 어떨지 참말로 생각하면 아찔허요. 벌써 염전 사업을 그만둔다는 사람도 있당게요.” 미네랄이 풍부한 우리나라 천일염은 전 세계에서 명품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핵오염수 투기로 천일염을 꺼리면 암염이나 호수염 등이 대체재가 될 수 있다.
"삶의 터전 지키기 위해 싸워야죠"
이날 최 씨가 일한 염전의 주인 주영지 씨(가명)도 같은 마음이다. 소금값이 오르고 매출이 늘어도 즐겁지 않다. 1만 8000원이던 20kg 출고가가 2만 8000원으로 올랐다. 인터넷 포털 쇼핑몰에서 상품 20kg 소매가가 6만~7만 원에 이른다.
핵오염수 투기가 시작되면 가업인 염전업이 어찌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몰려온다. 주 씨는 정부가 나서서 국제공조를 통해 일본이 방류할 수 없도록 압박해야 하는 데 “정부가 뭐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통령이 우리를 보호해준다는 느낌이 전혀 없어요. 우리는 내 논 자식 같아요. 무정부 상태에서 사는 기분입니다. 이 어려운 시기를 잘 넘겨야겠다는 생각뿐이죠.”
주 씨는 2만 3000평 염전을 보면 매일 기적과 같다고 느낀다. 소금 농도 3% 바닷물을 끌어들여 31%까지 높이고, 이를 다시 희석해 섞는 작업을 반복한다. 대략 23%로 맞추면 소금 결정이 생긴다. 바닷물이 생명에 필수인 소금을 낳는 '매직'이 펼쳐진다.
이제 생명과 소금을 잉태하던 생명수가 죽음의 물로 바뀌는 ‘호러 매직’을 맞닥뜨릴지도 모른다. 주 씨의 염전을 감싼 둑 너머에는 드넓은 갯벌이 펼쳐져 있다. 망둥어가 깝치고 꼬마 게가 재잘대는 땅. 생명의 여신 바다가 그려놓은 아름다운 풍경이 빈 껍데기만 남을지 모른다.
“무안 낙지 드셔보셨어라? 여기는 뻘이 부드러워서 낙지가 육질이 연해서 최고로 칩니다. (투기가 시작되면) 이제 이런 자랑 못 할 것 같아요.”
80대인 최 씨의 부친도 40년 동안 갯벌에서 낙지를 잡아 5남매를 키웠다. 최 씨는 낙지와 함께 모시조개를 좋아한다. “모시조개가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며 입맛을 다신 최 씨는 좋아하는 이가 있으면 모시조개를 선물한다고 했다. 하지만 오염수가 최 씨에게서 소금을, 아버지에게서 낙지를, 섬마을 사람들에게서는 삶의 터전을 빼앗아 갈 것이라고 했다.
“당국은 뭐하는 겁니까. 해수부 장관은 대책도 안 내놓고, 지자체장은 아무 생각도 없어 보여요.” 22일 신안군의 염전을 방문한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은 소금 포장 퍼포먼스만 하고 돌아갔다고 최 씨는 비판했다.
일본의 방류가 임박했다는 뉴스가 속속 나오고 있다. 시민언론 민들레는 7월 중순부터 하순 사이에 핵오염수 해양 투기가 시작될 것이라고 한 ‘외무성 간부 A’의 문건 내용을 보도했다. 다핵종제거설비(ALPS) 처리를 거쳐도 오염물질 농도가 3만 배가 넘은 적도 있다는 기사를 보며 소금밭 민심이 술렁이고 있다.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나올 만큼 오래된 염전이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는 위기감이 물밑에서 꿈틀거린다.
그럴수록 최 씨는 “삶의 터전을 지킬 것”이라고 했다. 그는 신안 주변의 5일장을 돌며 정권 퇴진을 주장하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경찰서에서 “이번에는 어디서 시위를 하느냐”고 연락이 오는 유명 인사가 됐다. 주말에는 서울 촛불집회에 참석한다.
“나가 좋아하는 소금을 지켜야죠. 신안 천일염의 자부심도 지켜야죠. 가족들 행복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죠.”
관련기사
- '일본정부-IAEA 뇌물 의혹'에 눈·귀·입 닫은 한국언론
- 중국, 핵오염수 일본-IAEA '검은 거래 의혹' 해명 공식 촉구
- 일 외무성에 있어서는 안 될 미발표 IAEA보고서
- '세슘 우럭' 괜찮다는 원자력학회장…싸고도는 정부
- “일본정부가 뇌물주고 IAEA보고서 고친 것 맞다”
- 언론이 왜곡·외면해도 국민은 '수능' '오염수' 걱정 폭발
- [핵오염수 백화(百禍)사전] ➅ 북한은 오염수를 OO라 불러
- "일본산일지도 몰라" 소비자 불안감에 출하량 반토막
- 노량진수산시장 간 국힘의원들 뜬금없는 '바닷물' 시음
- 호주 동포들도 '핵오염수 방류반대 집회'
-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투기 8월 중순 이후로?
- “낚시꾼 절반 뚝…조만간 낚시어선 매물 쏟아질 것”
- 오염수 민심 폭발…“인간은 아가미 없어 마시면 죽어”
- "판매량 10분의 1로 줄어"…치어도 못 넣는 양식장
- 김 생산량 3분의 1 줄일 예정… “IMF 때보다 심각해요”
개의 댓글
댓글 정렬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