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온 이낙연 등 연이어 ‘혁신’ 언급
이재명 체제 균열 노리는 것으로 해석돼
이에 맞선 소장파 원외 인사들 “당원 중심 정당” 요구
대의원제, 중앙위원 컷오프 폐지 주장
이재명 대표 “혁신과 통합, 매우 중요한 과제”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에서 ‘쇄신’과 ‘혁신’이라는 단어가 넘쳐나고 있다. 한쪽에서는 현역 의원과 비주류 계파 세력을 중심으로, 다른 한쪽에서는 당원과 풀뿌리 세력을 중심으로 각기 다른 ‘혁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과연 국민과 당원이 어느 쪽의 편을 들어줄지가 올해 하반기 정국의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지난 14일 이른바 ‘쇄신 의원총회’를 마치고 박광온 원내대표는 ‘의원총회 결의문’에서 “당을 근본적으로 혁신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전당대회 투명성과 민주성 강화 등 당 차원의 정치혁신 방안을 준비해서 보고드리겠다”면서 “이를 위해 당 차원의 혁신기구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2일(현지시간) 귀국을 앞두고 워싱턴DC에서 진행한 특파원 간담회에서 “기존 주요 정당이 과감한 혁신을 하고 알을 깨야만 할 것”이라면서 “그러지 못한다면 외부 충격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일이 안 생기도록 기존 정치가 잘해주기를 지금으로서는 바란다”고 했다.
박 원내대표와 이 전 대표의 발언 속에 ‘혁신’은 있지만 ‘혁신’의 구체적인 내용은 나와 있지 않다. 그런데 박 원내대표가 발표한 ‘결의문’에 김남국 의원의 가상 화폐 투자에 대해 언급하면서 ‘혁신’을 거론하고 있어 기존 이재명 당 대표 체제에 대한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혁신’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생기게 된다. 또한, 최근 이재명 대표 지지자 그룹에 대한 비판이 자주 나오면서 당내 일부 세력이 이 대표 지지자 그룹을 정리하는 것을 ‘혁신’이라고 여기는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이원욱 의원은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정도의 내용으로 문자를 보내오시는 분을 자랑스런 민주당원으로 여길 수 있을까요? 이재명 대표님. 이걸 보시고도 강성 팬덤들과 단절하고 싶은 생각 없으신지 묻고 싶습니다”라고 밝혔다. 이 의원이 받았다는 문자에는 “민주당도 70%는 쓰레기 의원들입니다. 민주당만으로는 안됩니다”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외에 일부 다른 의원들도 이재명 대표와 소위 ‘팬클럽’의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인과 그 지지자가 절연해야 한다는 사상 초유의 요구가 나온 것이다.
이재명 당 대표에 대한 굳이 기사에 언급하기조차 민망한 입에 담기 힘든 모욕적 언사를 ‘당원’의 이름으로 남발하던 사람들, 엄연히 대선후보가 있는데 다른 당 후보를 지지하자거나 차라리 다른 당 후보가 되는 것이 낫다고 하던 당원과 의원들은 그대로 둔 채 이재명 대표만 ‘팬덤’과 절연하라는 것이다. 검찰과 국민의힘 세력이 즐겨 쓰던 ‘선택적 정의’를 구현해 사실상 이재명 대표에게 ‘백기 투항’을 요구하는 것으로 들린다.
지난해 이재명 당 대표는 77.77%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당 대표나 대통령이나 민주적 정당성이 있으면 그 대표성을 인정해야 한다. 물론 선출된 이후라도 다수 당원이나 다수 국민의 뜻을 배반하고 독재와 독선 그리고 실책의 늪에 빠진다면 저항권을 활용해 임기 중에라도 당 대표나 대통령을 교체해야 한다.
이재명 대표는 취임 이후 양곡관리법, 간호법 등을 처리해 내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안 통과, 김건희 특검법 통과 등을 이뤄냈다. 윤석열 정부를 매서운 논리로 비판하면서 야당 대표 본연의 임무를 수행해 왔다. 여론조사꽃이나 리얼미터 조사 결과를 보면 정당 지지도에서 더불어민주당 우위가 고착화되고 있다. 최근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여론조사가 실시되고 있지 않지만 실시될 당시 30% 후반대의 지지를 받는 국내 유일의 차기 지도자 반열에 올라 있었다. 현란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만한 일을 한 적은 없지만 표면적으로 이재명 대표가 물러나야 할 아무런 이유가 발견되지 않는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은 굴욕외교, 만성화된 무역적자 등 경제 실정 등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양희동 열사 사망 사건으로 민주노총이 윤석열 정부 퇴진 투쟁을 선포하는 등 윤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국민의 숫자도 늘어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총구를 윤석열 대통령에게 돌리지 않고 이재명 대표에게 돌리는 것을 ‘혁신’이라고 한다면 공감할 민주당원이 많지 않을 것이다.
이같은 일부 지도자급 인사들과 현역의원들의 ‘쇄신’과 ‘혁신’에 대한 인식에 맞서 풀뿌리 당원들의 ‘혁신’요구가 분출되고 있다. 22일 가칭 ‘민주혁신행동’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이 당원 중심의 정당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민주혁신행동에는 조상호 변호사, 현근택 변호사 등 원외 위원장이거나 향후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신진 정치인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이나 평당원이나 누구나 똑같은 한 표를 행사하는 당연해 보이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설파했다. 전당대회에서 대의원 1표는 권리당원 60표와 비슷한 비중을 갖기 때문에 대의원을 통해 현역 의원의 영향력이 커질 뿐 아니라 당내 민주주의에도 위배된다는 지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혁신행동은 “최근 민주당이 당내 혁신기구를 설치하고 당 구성원들의 의지를 모아 강력한 쇄신을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면서 “혁신의 탈을 쓰고 당내 기득권을 강화하려는 시도가 이어진다면 결국 민주당에 대한 지지자와 국민의 실망은 더 높아지고, 총선 승리도 요원한 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제 개혁을 향한 당원의 염원을 실천으로 옮길 때”라면서 “가장 먼저 표의 등가성에 위배되고, 나아가 민주주의를 왜곡시키는 대의원 제도부터 폐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대의원제를 폐지하자는 권리당원 청원 동의가 5만 명을 넘겼고, 지도부가 공식 답변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지도부의 결단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선출직 중앙위원 컷오프제’의 폐지도 주장했다. 당 대표나 최고위원 경선 시 본 경선에 앞서 중앙위원회에서 일정 배수로 후보자를 추리는 과정에서 당내 기득권 세력의 입김이 지나치게 강하게 작용한다는 문제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민주혁신행동은 “당원 전체를 대변하기 위해 출마한 당의 선출직들이 당원의 선택을 받기도 전에 중앙위원에 의해 걸러지는 현행 선거제도는 ‘당원 중심 대중정당’에서 존재해서는 안 될 구태”라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당원의 권한을 늘려 민주당을 ‘당원 하고 싶은 신나는 정당’으로 개조하고 더 많은 당원이 민주당으로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면서 “언제나 가장 개혁적인 선택에 앞장섰던 민주당원을 믿고, 민주당 혁신의 길로 나아가자”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이에 화답하듯 22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열린 원외 지역위원장 간담회에 참석해 정치 혁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 대표는 “저는 정치에서 혁신과 통합이라는 과제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정치 제도 전체 개혁을 위한 과제이기도 하고 정치인들 사이의 공정성에 관한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성 밖에 있을 때는 성벽이 낮기를 바라고 성벽을 넘은 다음에는 성벽이 높아지기를 기대하는데 ‘인지상정’일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현역 의원의 기득권을 낮추고 신진 정치인에게 더 넓은 문호를 개방하도록 하는 혁신 방안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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