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영국에 특별 대우로 다른 나라들 압박

70년 군사동맹 기대 버리고 지정학 요건 활용

미국 말고도 다른 선택지 있음 보여줘야 유리

첨단기술 등 경쟁력 높이고 문화교류 넓혀야

세상에는 참 신기한 일들이 많다. 같은 바다를 건너온 배라도 어떤 깃발을 달고 있느냐에 따라 대접이 천지차이가 난다. 트럼프가 다시 백악관 주인이 되면서 벌어지고 있는 관세 드라마는 마치 조선시대 사대부 집안의 차별 대접을 보는 듯하다.

 

대한민국-미국-영국 정상의 초상. (위키피디아 종합)
대한민국-미국-영국 정상의 초상. (위키피디아 종합)

영국은 특별대우, 우리는 일반석

미국은 영국이 수출하는 자동차 10만대에 한해 관세를 25%에서 10%로 낮췄고, 알루미늄·철강 등에 부과하는 25%의 품목 관세 적용도 제외했다. 영국 자동차업계로서는 그야말로 대박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한국에는 566억 달러 규모의 수입액에 25%의 관세를 적용하며, 8월부터 모든 한국산 제품에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반도체부터 김치까지, 한반도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이 똑같이 25%라는 세금 폭탄을 맞게 생겼다.

이게 바로 '특별한 관계'와 '그냥 관계'의 차이다. 영국은 미국과 '특별한 관계'를 자랑하며 살아왔고, 그 결과가 이것이다. 우리는? 그냥 '한미동맹'이라는 이름표만 달고 있을 뿐이다. 말이 동맹이지, 실상은 일방통행 고속도로에 가깝다.

 

1차세계대전 후 영국과 미국의 '특별한 관계'를 그린 그림. (위키피디아) 
1차세계대전 후 영국과 미국의 '특별한 관계'를 그린 그림. (위키피디아) 

언어의 힘, 역사의 무게

영국과 미국은 같은 말을 쓴다. 회의실에서 던지는 농담 하나도 바로 통하는 사이다. 셰익스피어부터 비틀즈까지, 문화적 공통분모가 넘쳐난다. 더 중요한 건 역사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며 만들어진 '혈맹' 관계는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정치적 자산이 됐다.

하지만 우리는? 통역관을 끼고 대화해야 한다. "우리도 민주주의 국가입니다"라고 아무리 외쳐봐도, 감정의 미묘한 떨림까지는 전달되지 않는다. 한국 전쟁 때 피를 함께 흘렸다고 하지만, 그건 이미 70년도 넘은 옛날 이야기다.

 

1898년 미국과 영국 산업박람회를 홍보하는 포스터에 나오는 미국의 상징 엉클샘이 영국의 상징 존 불을 껴안고, 브리타니아와 컬럼비아가 손을 잡고 배경에 함께 앉아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위키피디아)
1898년 미국과 영국 산업박람회를 홍보하는 포스터에 나오는 미국의 상징 엉클샘이 영국의 상징 존 불을 껴안고, 브리타니아와 컬럼비아가 손을 잡고 배경에 함께 앉아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위키피디아)

지정학적 가치의 역설

재미있게도 지정학적으로 보면 한국이 영국보다 훨씬 중요하다. 중국과 러시아라는 거대한 이웃들 사이에서 미국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한국만큼 중요한 축은 없다.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유럽연합에서도 따돌림 당하고, 스코틀랜드는 독립하겠다고 아우성이다. 경제적으로도 예전만 못하다. 그런데도 관세 협상에서는 영국이 훨씬 좋은 조건을 받았다. 이게 바로 '가치'와 '값'의 차이다. 전략적 가치는 높지만, 협상에서 받는 실제 받은 대접은 그에 못 미친다는 말이다.

 

한미동맹 70주년 상징. (나무위키)
한미동맹 70주년 상징. (나무위키)

경제 논리 vs 정치 논리

경제적으로만 보면 이상하다. 한국은 대미 수출이 566억 달러 규모나 되는 상당한 시장이다. 반도체, 자동차, 화학제품 등 미국 경제에 꼭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면서 대안 공급망을 찾고 있는 핵심 품목이다. 삼성과 SK하이닉스 없이는 미국의 AI 혁명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정치는 경제 논리로만 돌아가지 않는다. 트럼프에게는 '거래의 기술'이 중요하다. 영국과는 빠르게 합의를 보여주며 "봐라, 나와 협상하면 이런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시범을 보였다. 다른 나라들에게 "너희도 빨리 와서 협상하라"는 압박을 가하는 셈이다.

협상력의 차이

영국이 좋은 조건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대안'이 있기 때문이다. 브렉시트로 유럽연합을 떠났지만, 여전히 유럽 국가들과는 개별적으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같은 영연방 국가들과도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즉, 미국이 아니어도 살 길이 있다는 여유를 보일 수 있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대중국 의존도가 높지만, 사드 배치 이후 중국과의 관계가 삐걱거리고 있다. 일본과는 역사 문제로 늘 껄끄럽다. 결국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는 협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의 선택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미국식 협상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그들은 '윈-윈'보다는 '딜 메이킹'을 좋아한다. 감정적 호소보다는 실리적 계산이 먹힌다.

둘째, 다른 선택지를 만들어야 한다. 미국만 바라보고 있으면 협상력이 떨어진다. 중국, 유럽연합, 동남아시아 등과의 관계도 강화해서 '미국이 아니어도 살 수 있다'는 여유를 보여줘야 한다.

셋째, 우리만의 카드를 만들어야 한다. 반도체, 배터리, K-컬처 등 미국이 우리 없이는 곤란한 분야들을 더 키워야 한다. 특히 첨단 기술 분야에서는 미국도 우리를 함부로 대할 수 없도록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넷째, 로비력을 강화해야 한다. 영국은 워싱턴에서 상당한 로비력을 갖고 있다. 우리도 싱크탱크를 활용하고, 미국 정계 인사들과의 인적 네트워크를 확장해야 한다.

다섯째, 문화적 교류를 늘려야 한다. K-팝, K-드라마의 인기를 발판으로 삼아 더 깊은 문화적 유대감을 형성하고, 이를 정치·경제적 영향력으로 전환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2022년 5월 백안관에서 BTS. (위키피디아)
2022년 5월 백안관에서 BTS. (위키피디아)

관세는 정치다

결국 관세는 경제정책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메시지다. 영국에 대한 관대함과 한국에 대한 강경함은 단순히 경제적 셈법의 결과가 아니라, 정치적 계산의 산물이다.

우리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되, 거기에 굴복하지는 말아야 한다. 관세 게임의 룰을 이해하고, 우리만의 게임을 만들어가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영국이 '특별한 관계'를 무기로 쓴다면, 우리는 '없어서는 안 될 관계'를 만들어가면 된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부터 변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자. 힘 있는 자가 룰을 만들고, 약한 자는 그 룰에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약자도 없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영국의 상징 존 불 과 미국의 상징 엉클 샘을 그린 만화.(Library of Congress)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