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한 못 받은 국가들에도 관세 폭격 예고
알루미늄, 철강 이어 구리도 50%부과
지난달 관세 수입 역대 최대라는 착시
관세 폭탄, 시차 두고 항상 물가 반영
올해 2조 달러 신규 발행 국채도 부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당수 무역 상대국에 15% 또는 20%의 상호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른바 '관세서한'을 받지 못한 국가들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공표를 한 셈이다. 트럼프는 상호관세 이외에 구리에도 50%의 개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했다. 이미 알루미늄과 철강 등에는 50%의 개별 관세가 부과되고 있다.
한편 지난달 미국의 관세 수입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는데 이는 미국 기업들의 재고물품 소진에 따른 수입통관이 지난달에 집중된 데 힘입은 것으로 일종의 착시라 할 것이다. 마치 세상 모든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처럼 폭주하는 트럼프에게 세상이 녹록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선수가 기다리고 있으니 물가가 그것이다. 관세폭탄은 시차를 두고 반드시 물가에 반영될 수 밖에 없다. 그건 중력의 법칙과도 같은 것으로 누구도 막을 수 없다.
트럼프 “나머지 모든 국가, 15%든 20%든 관세…캐나다엔 35%”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미 NBC 방송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나머지 모든 국가는 15%든 20%든 관세를 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 비율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모두가 서한을 받을 필요는 없다"며 "우리는 우리의 관세를 정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국과 일본 등 주요국에 상호관세율을 적시한 서한을 보낸 가운데, '나머지 국가' 언급은 서한을 받지 않은 국가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와 유럽연합(EU)이 '오늘이나 내일' 새로운 관세율 통지서를 받게 될 것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힌 뒤, 곧이어 트루스소셜에 캐나다에 보낸 서한을 공개했다. 그는 "캐나다는 미국과 협력하는 대신, 자체 관세로 보복했다"며 "2025년 8월 1일부터 미국으로 수출되는 모든 캐나다 제품에 대해 품목별 관세와는 별도로 35%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적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4월 9일 상호관세 부과를 90일 유예했지만, 상호관세 중 교역국에 일률적으로 부과했던 10%의 기본관세는 계속 부과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15% 또는 20%'는 기본관세 10%보다 높은 수준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지난 7일 한국(25%)과 일본 등 14개국에 25∼40%의 국가별 상호관세율을 적시한 관세 서한을 발송했다. 이틀 뒤인 9일에도 필리핀 브라질 등 7개국에 추가 관세 서한을 보냈다. 상호관세 발효 시점은 모두 8월 1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와 함께 추가 관세 부과가 주식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를 일축했다. 그는 "관세 조치가 매우 호평받았다고 생각한다"며 "주식 시장이 오늘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덧붙였다.
알루미늄, 철강 이어 구리에도 50% 관세 부과 예정
상호관세와는 별도로 개별 품목에 대한 관세폭탄도 지속적으로 투하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11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구리에 적용하겠다고 예고한 50% 관세에 정제 구리도 포함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정제 구리는 미국이 수입하는 구리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품목이다. 구리는 전력망과 건설, 자동차 제조, 가전제품 등 다양한 산업에 필수적인 소재이기 때문에 관세가 부과되면 광범위한 영향이 예상된다. 미국은 구리를 가공해 만든 산업용 중간재인 반제품에도 50% 관세율을 적용할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백악관 관계자는 정제 구리 등에 대한 관세 조치는 트럼프 대통령이 최종 발표할 때까지 확정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미국의 구리 산업을 되살리겠다면서 구리에 50%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는 SNS에 "구리는 반도체, 항공기, 선박, 탄약, 데이터센터, 리튬이온 배터리, 레이더 시스템, 미사일방어체계, 그리고 심지어 우리가 많이 만들고 있는 극초음속 무기에 필요하다. 구리는 국방부가 두 번째로 가장 많이 쓰는 소재"라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가 구리에 대한 50% 관세 부과의 근거로 삼은 것은 국가 안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품목의 수입을 제한할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무역확장법 232조'다.
실효 관세율은 미국이 특정 국가에서 걷은 관세 총액을 수입 총액으로 나눈 것이다. 피치는 미국이 모든 국가에 부과한 기본 상호관세 10%, 자동차와 자동차부품 관세 25%, 알루미늄과 철강 관세 50%를 반영해 실효 관세율을 산출했다.
미국은 지난 4월 3일부터 자동차에 25%를, 5월 3일부터 자동차부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철강과 알루미늄의 경우 지난 3월 12일부터 25%를 부과했으며, 6월 4일부터는 50%로 인상했다.
지난달 사상 최대 관세 수입은 착시효과
주목할 건 지난달 미국의 관세 수입이 역대 최대치였다는 사실이다.
1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미국 재무부는 6월 관세 수입이 총액 기준으로 272억 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4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관세 수입이 급증함에 따라 6월 미국 연방 정부의 총세입은 전년 대비 13% 증가한 5260억 달러로 월간 기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면 지출은 4990억 달러로 오히려 7% 감소하면서 미국은 270억 달러의 월간 재정 흑자를 기록했다.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은 엑스(X·옛 트위터)에서 이 같은 결과를 소개한 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베선트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경제 주권을 되찾기 위해 열심히 싸우고 있는 와중에 관세 수입은 최고치를 기록했다"며 "인플레이션도 없다"고 밝혔다. 재무부는 복지 지출 일정 변경 등을 감안할 경우 실제로는 700억 달러가량 적자였을 것이라고 덧붙였지만, 관세는 연방 정부의 주요 수입원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연방 정부의 세수에서 관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2% 수준에서 약 4개월 만에 5%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에 따라 관세 수입은 원천징수 소득세와 비 원천징수 소득세, 법인세에 이어 미국 정부의 네 번째 수입원이 됐다. 지난해 10월 1일부터 시작된 2025회계연도에서 9개월간 관세 수입은 총액 1133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관세 수입이 회계연도 기준으로 1000억 달러 고지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8월 1일부터 상호주의에 기반한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 큰돈이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베선트 장관도 지난 8일 백악관에서 열린 내각 회의에서 올해 관세 수입이 30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트럼프와 베센트가 지난달 관세 수입에 득의양양해하는 건 자유지만 지난해 동기 대비 관세 수입이 무려 4배 가까이 폭증한 주된 이유는 다른 데 있다는 것이 시장의 판단이다. 트럼프가 취임하기 무섭게 관세전쟁을 공언한 덕택에 미국의 기업들은 관세전쟁이 본격화하기 전에 원재료와 부품과 중간재들을 경쟁적으로 수입한 바 있다. 그 재고가 3개월 가량 지나자 바닥을 드러내, 지난달에 수입통관이 몰렸다. 쉽게 말해 지난달 같은 관세 수입을 다시 구경하긴 힘들 것이란 뜻이다.
트럼프를 기다리는 물가의 복수, 쏟아져 나올 국채도 폭등시킬 듯
트럼프와 베센트는 관세전쟁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이 없다"고 기염을 토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전방위적으로 진행 중인 상호관세와 개별관세 전쟁이 트럼프가 공언한대로 실행된다면 시차를 두고 인플레이션이 고개를 들 수 밖에 없다. 관세폭탄을 맞은 기업들이 상품가격에 부과받은 관세를 전가시키기 때문이다.
특히 상호관세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알루미늄, 철강, 구리, 자동차, 자동차 부품, 전자제품 등은 수그러드는 듯 하던 미국의 인플레이션을 거세게 자극할 것이 자명하다. 이건 중력의 법칙과도 같은 것으로 트럼프가 아니라 누구도 막을 수 없다. 파월의 연준이 트럼프에게 인격살해에 가까운 모욕을 당하면서도 기준금리 인하를 극력 억제하는 건 곧 닥쳐올 인플레이션의 습격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올해 안에 신규 발행이 예고된 2조 달러 규모의 국채도 트럼프에겐 근심거리다. 천문학적이라는 표현이 식상한 미국 정부의 누적 재정적자 규모를 감안할 때 트럼프 행정부는 대규모 증세를 해야 옳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은 천문학적 감세와 복지 축소와 첨단산업에 대한 세금 혜택 감축 등을 핵심으로 하는 크고 아름다운 법안(BBB)이라는 명칭의 해괴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으로 인해 미국의 재정적자는 돌이킬 수 없는 국면에 진입했다.
당장 2025회계연도에서 9개월간 이자 비용은 9210억 달러로 전년 대비 6%나 증가했다. 국채를 신규로 발행해서 국채이자를 갚아야 하는 처지로 전락한 트럼프의 미국은 올해가 가기 전에 적어도 2조 달러 규모의 신규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 신세다. 이미 시장의 외면을 받고 있는 미국의 국채가 소화될지도 의문이지만, 설사 판매가 가능하다해도 국채수익률은 폭등하고 국채가격은 폭락할 가능성이 높다. 모든 자산의 기반인 국채시장이 격심하게 동요한다면 천하의 누구도 견딜 재간이 없다.
마치 슈퍼맨이라도 된 것처럼 세상을 어지럽히는 트럼프를 물가와 국채가 정조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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