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작가의 공적 성취 뭉개버리려는 정치인

홍태림 미술비평가 문화연대 집행위원
홍태림 미술비평가 문화연대 집행위원

최근 서울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형재 의원(국민의힘)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서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에 참여한 노순택 작가의 <얄읏한 공> 연작을 문제 삼았다.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 문제를 다룬 이 연작이 반미·반정부 내용을 담고 있어 서울시 예산으로 운영되는 공공미술관에서 전시되기엔 부적절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는 정치인의 일반적 견해 표명의 차원을 넘어서 예술 표현에 대한 제도적 검열 시도가 아닐 수 없다. 그의 발언은 헌법 제21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뿐 아니라 예술인권리보장법 제7조와 제8조에서 명시한 예술활동 성과의 자유로운 전파 권리와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에 따른 차별 금지 조항을 정면으로 위반하기 때문이다.

 

광복80주년 가나아트컬렉션 특별전 ‘서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에 출품된 노순택 작가의 ‘얄읏한 공’ 연작, 사진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
광복80주년 가나아트컬렉션 특별전 ‘서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에 출품된 노순택 작가의 ‘얄읏한 공’ 연작, 사진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

김형재 시의원의 발언은 한 명의 작가가 자신의 삶을 걸고 어떤 작업 세계를 구축해왔는지를 무시한 편협한 시선의 산물이다. 노순택은 저서 『말하는 눈』에서 자신의 20대는 윤금이 사건과 함께 열렸다고 회상한 바 있다. 1992년, 주한미군 병사가 윤금이라는 여성을 살해한 사건은 그의 감각과 시선을 결정적으로 뒤흔들었고, 이후 그는 구조적으로 불균형한 한미 관계 속에서 벌어진 국가폭력, 전쟁의 잔재를 꾸준히 추적했다. 이런 측면에서 노순택이 카메라로 포착해온 것은 한국 사회가 억압과 침묵으로 가려온 장면들을 다시 보게 하는 감각적 실천이었다.

 

김형재 국민의힘 시의원
김형재 국민의힘 시의원

그의 이러한 성찰적 작업들은 미술계에서 높이 평가되어 2014년에 국립현대미술관으로부터 ‘올해의 작가상’을 받는 성과를 일궈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형재 시의원은 그러한 비판적 시선으로 이룬 공적 성취를 얄팍한 냉전적 권위주의로 뭉개버렸다. 이는 예술가의 치열한 삶 전체를 파괴하는 언사인 동시에 비판적 사유 자체를 불온한 것으로 치환하려는 반민주주의적 가치관의 발현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모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노순택은 이미 수차례, 국가 권력이 제도적으로 개입한 검열을 겪어왔다.『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백서』에 따르면 그는 박근혜 정부 시기인 2015년에 한불 상호교류의 해를 맞아 아트선재센터의 《Seoul vite, vite》에 <비상국가> 연작을 출품하려 했지만, 외교 당국의 개입으로 <블랙후크다운> 연작으로 교체해야 했다. 2016년에는 AHL재단의 《또 다른 한국전쟁》에 미군의 민간인 살해 사건을 다룬 <The Wrong Island II>를 출품하려 했으나, 뉴욕 대한민국 총영사관과 한국문화원의 개입으로 전시 자체가 무산되었다. 문화 외교와 국가 안보라는 이름 아래 반복적으로 이루어진 이러한 국가검열은 비판적 감각이 담긴 작품을 체제의 위협으로 간주되는 한국 사회의 오랜 병증을 그대로 보여준다.

김형재 시의원이 촉발시킨 현 상황은 10년 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발생했던 또 하나의 사례와도 겹친다. 2015년에 열린 《공허한 제국》에 출품된 홍성담 작가의 <김기종의 칼질>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 사건을 시각적으로 다룬 작품이었다. 그러나 서울시립미술관 측은 수구 단체의 반미 정서 미화라는 근거 없는 항의를 받은 뒤, 작가의 동의 없이 <김기종의 칼질>을 철거했다. 이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서울시립미술관은 또다시 정치적 외압과 검열의 무대가 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공허한 제국’(2015)에 출품되었다가 강제 철거된 홍성담 작가의 ‘김기종의 칼질’. 사진출처: 연합뉴스
서울시립미술관의 ‘공허한 제국’(2015)에 출품되었다가 강제 철거된 홍성담 작가의 ‘김기종의 칼질’. 사진출처: 연합뉴스

검열이 반복되는 그 장소가 서울시립미술관이라는 사실은 미술관이 국가권력과 감각적 실천이 충돌하는 정치적 현장임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김형재 시의원의 발언은 이 공간을 다시 검열의 통로로 전락시키려는 시도이자 예술을 정치적 위계에 따라 순치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는 권위주의적 선언이다. 문제는 이 검열의 언어가 단지 예술을 침묵시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표현의 자유가 제약될 때 민주주의는 가장 중요한 작동 조건 중 하나를 상실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본 사안을 단지 미술계 내부의 논쟁으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지난 12.3 내란에서 거듭 확인되었던 것처럼 언제든 왜곡된 권력에 의해 예술과 민주주의가 함께 억압당할 수 있음을 재확인케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반복되는 검열의 구조에 맞서 예술과 민주주의를 함께 지켜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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